프랑스혁명
G. 르페브르 지음, 민석홍 옮김 / 을유문화사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원저의 제목인 Quatre-vingt-neuf를 직역하면 그냥 '89(년)'이다. 실제로 이 책이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시기는 1788년에서 1789년까지이다. 즉, 앙시앵 레짐 말기의 사회전체적 위기, 정부에서 시도한 여러 개혁정책과 좌절, 삼부회의 소집 과정에서부터,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공포되고 일반 민중들이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며 루이 16세가 베르사이유에서 파리의 튈르리로 송환되는 그 시점까지의 역사적 사건들이 이 책에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 프랑스 혁명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려는 의도를 갖고 쓰여졌지만 1789년 혁명 발발 이후의 사건 전개 과정을 서술하기보다는 1789년의 사건들로 귀착된 당대 프랑스의 여러 정치·경제적 조건들과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집단들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혁명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다. 그 의구심이란 르페브르의 혁명 해석에 대한 것이 아니라 르페브르, 마띠에, 소불 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혁명사 해석의 '정통'에 대항해 이들의 견해를 사회사적 관점에서 비판한다 하는 '수정주의'적 견해에 대한 것이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수정주의적 해석은 영국 사학자 알프레드 코반이 1950년대에 '프랑스 혁명의 신화'라는 강연을 행하면서 대두되었고, 그 후 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전통적 해석을 고수하는 진영과 논쟁을 거듭하였다

수정주의적 견해의 내용인 즉,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을 마르크스적 역사발전단계도식에 종속시켜 역사적 필연에 의한 부르주아 혁명이라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실제로 전통적 해석에 의해 '부르주아'라고 범주화되는 혁명 지도 세력들은 직종에 있어서나 이해관계에 있어서나 분열되어 있었고, 또한 혁명에 폭력을 제공한 농민과 민중들은 프랑스 혁명이 구현했다고 하는 이념과는 달리 반부르주아지적이고 반자본주의적 성격을 갖고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혁명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대표하는 르페브르의 경우,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수정주의가 비판하는 그러한 도식적 해석을 프랑스 혁명에 가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수정주의가 제기하는 비판의 벼리가 이미 1939년에 나온 르페브르의 저작 속에 혁명의 요소로 충분히 다루어져 있거나 그 단초로서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르페브르는 이 책에서 프랑스 혁명을 귀족혁명, 부르주아혁명, 민중혁명, 그리고 농민혁명의 순차적이며 중층적인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그 혁명의 필연적 조건들을 고찰하면서도 사건과 사건 사이를 매개하는 수많은 우연적이고 돌발적인 상황들의 중요성을 아울러 강조한다. 또한 국민의회 안에서의 여러 신분의 착종, 성직자와 부르주아지의 협력관계, 민중들의 앙시앵 레짐 말기 이전으로의 회귀를 원하는 반동적·반자유주의적 성격 등을 충분히 서술하였다. 이렇게되면 수정주의는 그 비판의 지점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수정주의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통'적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혁명의 대가들의 해석에 대한 주석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수정주의는 그저 사료에 충실할 뿐이었던 전통적 해석을 맥락없이 요약하여 비판하기 좋은 하나의 '신화'로 구성하고 그 신화를 신랄히 공격함으로써 성립하고 권위를 획득한 해석이 아닌지 나는 의심하는 것이다. 물론 수정주의에 대한 이와 같은 반(反)비판을 위해서는 퓌레(F. Furet)나 코반과 같은 수정주의자들의 저작과 두 해석 사이의 논쟁을 정리한 민석홍의 『프랑스혁명사론』과 같은 책들을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한편 『프랑스 혁명』이 다루는 사건은 1789년으로 종결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 책만 가지고서는 루이 16세의 처형과 외국과의 전쟁, 그리고 그에 따른 혁명의 급진화 과정을 살펴볼 수는 없다. 따라서 당통, 마라, 로베스삐에르와 같은 혁명기의 걸출하고 또 과격한 '영웅'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빠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 혁명 이야기의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상당부분 빠뜨려 놓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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