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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ㅣ 창비세계문학 42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평점 :
카프카는 살아 생전에는 무명 작가였다. 평생을 직장인으로 살았던 그는 40살에 폐결핵으로 죽으면서 절친인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작품을 불태워 줄 것을 부탁했다. 대중들에게 읽힐 것을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해 쓴 것이다. 그랬던 카프카가 재발견되어 유럽 문단에서는 실존주의의 대표작으로 소개되고 있다. 정작 카프카 본인은 문단활동을 해본 적도 없고 실존주의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카프카가 다른 작가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보여주기위해 쓰는 글은 화려하게 문장을 꾸미는 것은 물론이고 적당한 과장은 필수일 것이다. 소설은 시작부터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이다. 등장인물과 배경 모두 짜여진 각본에 의해 움직이는 허구의 글이다. 소설이라는 표현의 틀을 통해 솔직한 생각을 쓴 글이라면 읽는 재미와 솔직한 타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기와 비밀일기에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다. 카프카의 글은 비밀일기를 몰래 들여다보는 맛이 있다.
카프카의 마지막 작품인 ‘성‘은 그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묘사가 상당히 ‘주관적‘이다. 이를테면 테이블 위에 나란히 앉아서 웃고있다가 한사람이 저 끝으로 멀어진다던가, 방문을 열자마자 추운 시베리아 벌판이 등장한다느니 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묘사와 상상력의 천재, 표현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허나 이는 카프카의 단편적인 특징에 불과하다. 즉 상상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개인의 시각을 나타내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처음 카프카의 작품에서 읽히는 신비감과 비현실성에 매료된다. 그러다가 인간관계에 대한 본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부분에서 공감을 하게 된다.
1. 카프카의 ‘성‘ 바르게 읽기
작가노트에 따르면 카프카는 이 작품을 1인칭으로 썼다가 도중에 작품 전체를 K라는 3인칭으로 다시 고쳤다고 한다. 이 책의 주제는 관료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과 조직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이라고 해석되곤한다. 카프카가 꾸준히 관심가져오던 주제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이 책의 모든 것을 해석하기는 어렵다. ‘성‘에서는 조직에 새로이 합류하는 개인에게 촛점을 맞춘다. 까뮈는 이 작품에서 이방인으로서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는 인간의 고뇌에 영감을 얻어 ‘이방인‘이라는 작품을 쓴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읽어보니 까뮈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관점이 들어왔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는 개인의 고뇌가 실은 자기 자신의 오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 K를 공격하는 인물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각자 다른 목적에 의해 K에게 잘해주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본인의 편견도 작용한다. 바르나바스를 처음 보았을때 그의 잘생긴 외모에 호감을 느꼈지만 더러운 속옷을 보고 실망하는 것이 그러하다. 게중에는 프리다나 페피처럼 자신의 목적을 위해 K를 이용하거나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마부 게르스태커처럼 진심으로 챙겨주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작품의 전체는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이 지속적으로 상황을 반전시킨다. 그동안의 모든 전개들이 마지막장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뒤집혀서 해석된다. K가 클람에게 접근하기 위해 사귀었던 연인 프리다가 사실은 자신의 목적으로 K를 사귄 것이고, 조수들 역시 애초에 K를 도울 마음이 없었다는 것이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진실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살아보니 인간관계에 정답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통감하곤한다. 많은 환상과 사차원적인 배경으로 다소 혼란스럽지만, 단순히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이 바라보는 주관적인 느낌을 반영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도 종종 직면한다. 예를 들면 같은 한시간도 어떤때는 길게 느껴지고 어떤때는 짧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같은 사람이라도 누구에게는 좋은 사람이고 누구에게는 나쁜사람으로 비춰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런 모습을 이미지로 구성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카프카의 작품이 지닌 셰익스피어적 마력이라 볼수 있다.
처음에는 표현의 독특함 때문에 흥미를 갖게되고, 계속 읽어가다 보면 인간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이 읽히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결론에서 다시한번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아군이 적군으로 바뀌고 적군이 아군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카프카가 생각하기에 우리 인생이라는 게 그런 모습인 게다. 동전의 양면처럼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어떤 나쁜 상황에도 반전을 이룰 수 있으며, 좋은 상황에도 일순간에 구렁텅이로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을 카프카는 보여준다. 성의 마지막 장에서 페피가 내용의 모든 것을 뒤집는 것이 좋은 예이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한동안 붐을 일었던 적이 있다. 그러다가 대안없는 위로라며 젊은 세대들에게 오히려 역풍을 받았다. 절대 공감한다. 잘 할 수 있다는 ‘격려‘만으로는 타인을 도울 수 없다. 그에 대해서 카프카가 남긴 인상적인 문장이 ‘성’에 있다.
“격려한다는 것은, 그의 말이 옳고 지금까지 하던 방식대로 계속 밀고가라는 뜻이야. 그런데 그런 식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거야. 천으로 두 눈을 가린 사람은 아무리 격려해주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법이지. 천을 벗어야만 볼 수 있어. 그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가 아니라 도움이야. “
카프카의 작품을 읽다보면 요소요소에서 마치 나의 속마음을 들추는 것 같아 놀라곤한다. 고전문학으로 너무 진지하게 다가서기 보다는 친구의 일기나 고백록같은 느낌으로 가볍게 접근하기 좋은 이유다. 타인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다니 인간관계 고민을 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카프카의 작품은 가히 축복이다.
2. 카프카의 ‘성‘, 이야기 속으로
카프카의 ‘성‘은 주인공 K가 낯선 마을에서 일주일간 보낸 이야기다. 내면의 생각을 실타래처럼 풀어서 편하게 읽다가는 자칫 길을 잃기 쉽다. 복잡한 카프카의 작품을 이해를 위해서는 줄거리를 놓치지 않고 잡아나가야 한다. 혹시나 작품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아래 줄거리를 참고해보시기 바란다. 창비에서 펴낸 책의 역자해설을 상당부분 참고했으나 역자와 견해가 다르거나 부족한 부분은 임의대로 수정하고 보충했다.
1장 도착
눈이 내리는 추운 날 밤. 주인공 K가 성의 관리에 의해 지배를 받는 어느 마을에 도착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을은 온통 눈에 덮여 있고, 성은 어둠과 자욱한 안개에 싸여 있는 통에 일단 K는 ‘다리목 여관‘에 들어가 식당 한켠에서 간신히 잠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성 관리인의 아들이라는 슈바르처가 잠든 그를 깨워 숙박 허가증을 요구하면서 성의 주인 베스트베스트 백작의 허가 없이는 마을에 머물수 없음을 통고한다. K는 자신은 토지 측량사로 성의 초청을 받았다고 항변하자 슈바르처는 성의 사무국에 전화를 걸어 이를 확인한다. 처음에는 K를 초청한 일이 없다던 사무국에서는 다시 전화를 걸어와서 K의 주장이 거짓이 없음을 확인해준다. 다음날 아침 K는 이제 맑게 갠 대기 속에서 또렷한 윤곽을 드러낸 성을 향해 나아간다. 집들이 여러채 늘어선 마을처럼 보이는 성에 들어가고자 그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계속 걸어도 도무지 다다를 수 없다. 결국 K는 눈 속을 헤매다가 빨래와 목욕을 하느라 수증기가 자욱한 어느 농가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하려한다. 하지만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쫒겨난다. 이때 마부 게르스태커가 그를 다리목 여관으로 데려다주고, 여관에서 K는 성이 그에게 보내준 두 조수를 만난다.
2장 바르나바스
서로 똑같이 생겨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운 두 조수, 예레미아스와 아르투어는 그의 업무를 보조하도록 파견되었지만, 측량의 일은 전혀모르고 또 진지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때 성의 심부름꾼이라는 바르나바스가 나타나 성의 관리인 클람의 서명이 담긴 편지를 전해준다. 편지에는 K가 성의 관청에 봉사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K는 바르나바스가 성으로 되돌아갈 것을 기대하고 그를 따라나서지만, 그는 K를 누추한 자기 집으로 인도한다. 가난한 집안 분위기를 감지한 K는 자신이 바르나바스에게 과도한 기대를 했다는 데 크게 실망을 하고, 이들 가족의 호의를 거절하고 바르나바스의 누이 올가를 따라 성의 신사들이 머무는 여관인 ‘헤렌호프‘로 향한다.
3장 프리다
헤렌호프에서 K는 주점 여급 프리다를 알게 되고, 엿보기 구멍을 통해 마을에 잠시 내려온 클람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모든 노력을 클람에게 집중하고, 프리다가 클람의 애인이라는 말에 그녀에게 관심을 보인다. 프리다가 여관 주인에게서 K를 숨겨준 일을 계기로 둘은 연인 사이가 되어 다리목 여관으로 옮겨오게 된다.
4장 여주인과의 첫 대화
다리목 여관의 여주인 가르데나는 프리다의 양어머니처럼 굴면서, 클람과 직접 면담하겠다는 K의 계획을 만류한다. 하지만 K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다.
5장 촌장의 집에서
K는 클람의 편지에 언급된 바대로 직속상관으로 배정된 마을의 촌장을 찾아가지만, 촌장은 이 마을에는 토지 측량사가 필요없고, 혹시 토지 측량사를 초빙했다면 부서의 사무적 착오일 것이라고 말한다.
6장 여주인과의 두번째 대화
K가 여관으로 되돌아오자 여주인은 과거 자신이 클람의 애인이었음을 털어놓으며 클람을 만나려는 K를 한사코 막으려 한다.
7장 학교 선생
얼마후 학교 선생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K를 학교의 임시 관리인으로 채용하겠다는 촌장의 뜻을 전달한다. K는 이를 단박에 거절하지만 함께 동거할 공간을 마련하자는 프리다의 간청에 결국 학교 관리인 자리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8장 클람을 기다리다
K는 클람을 직접 만나고자 서둘러 헤렌호프를 찾아가 그의 마차에 잡입해 기다리지만 만나지 못한다.
9장 심문에 대한 저항
이 문제로 클람의 마을 비서인 모무스가 K를 심문하려하자, 거부하고 헤렌호프를 떠난다.
10장 길거리에서
다리목 여관으로 돌아오는 중에 K는 마중 나온 조수들과 바르나바스를 만나 측량 일에 대한 열성을 칭찬하는 클람의 두번째 편지를 전해받는다. 자신이 일하는 것을 제대로 본적도 없는 클람의 영혼없는 칭찬에 당황한 K는 바르나바스를 불러, 클람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11장 학교에서
조수들과 함께 학교로 오게 된 K는 관리인 숙소가 따로 없는 탓에 프리다, 조수들과 교실 한켠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저녁식사를 하며 K는 프리다에게 조수들의 문제를 털어놓지만, 그녀는 조수들을 오히려 편든다. 아침이 되어 들이닥친 교사 둘과 언쟁을 벌이게 된 K는 자신을 해고하겠다는 남자 선생의 협박에 불복한다.
12장 조수들
이어 K가 조수들을 해고하자, 프리다는 클람이 보낸 자들이라며 조수들을 옹호하면서 K에게 이 곳을 떠나 먼 나라로 이주하자고 제안한다. K는 이곳에 머물기 위해 왔다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13장 한스
K는 그를 찾아온 제화공 브룬스비크의 아들 한스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면서 성에서 온 소년의 어머니를 만날 방법을 모색한다.
14장 프리다의 비난
이에 프리다는 여관 여주인인 가르데나의 충고를 들어 K의 태도를 비난한다. 프리다의 불만은 K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를 한낱 수단으로만 여긴다는 것이다.
15장 아말리아의 집에서
온종일 바르나바스의 소식을 기다리던 K는 결국 프리다의 만류도 뿌리치고 바르나바스네 집을 다시 찾는다.
16장
올가는 K에게 바르나바스가 수행하는 심부름꾼 일의 의미와 성의 사무국 그리고 클람에 대한 여러 의구심을 털어놓는다.
17장 아말리아의 비밀
이어 K는 올가의 가족이 마을에서 배척당하게 된 내력을 듣게 된다. 3년 전 마을 축제일에 막내 아말리아가 소르티니라는 성 관리의 추잡한 구애를 감히 거절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18장 아말리아의 벌
이러한 소식이 마을에 퍼지자 사람들은 바르나바스네 가족을 경멸하며 배척했다.
19장 탄원
이때부터 바르나바스의 아버지는 탄원을 시작하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결국 자리에 몸져눕게 된다.
20장 올가의 계획
이제는 올가가 직접 성에 관한 정보를 얻고자 헤렌호프를 드나들며 하인들의 희롱까지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올가가 집안의 운명과 K의 운명 간의 연결성을 설명하는 와중에 조수 중 하나인 예레미아스가 K를 찾아온다.
21장
그에게서 프리다가 자신을 떠났음을 듣게 된 K는 이제야 클람의 비서인 에어랑어의 메시지를 가져온 바르나바스와 함께 헤렌호프로 향한다.
22장
에어랑어의 심문을 기다리는 사이, K는 다시 헤렌호프 주점에서 일하기 위해 돌아온 프리다를 만나 언쟁을 벌인다.
23장
K는 프리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몸시 지친 채 에어랑어의 방을 찾다가 우연히 뷔르겔이라는 비서의 방에 들어선다. 뷔르겔은 K의 예기치 않은 방문을 받았지만 민원인의 어떤 요청이라도 들어줄 가능성이 있다고 호의를 베풀어준다. 그러나 정작 K는 자신의 용건을 밝히지도 못하고 심히 지친 상태에서 잠에 빠져버린다.
24장
에어랑어는 잠에서 깨어난 K를 불러, 클람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프리다를 포기할 것을 명령하고, K는 아침 시간에 성의 하인들이 분주하게 서류를 분배하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하지만 불청객 K로 인해 헤렌호프에 소동이 벌어지고, 여관 주인의 비난에도 K는 주점 구석에서 곯아떨어지고 만다.
25장
저녁에야 깨어난 K는 프리다의 후임으로 주점 메니저로 근무하다가 다시 객실 담당 하녀로 돌아가게 된 페피에게서 프리다의 음모를 듣는다. 페피는 프리다가 클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K를 이용한 것이며 페피는 진심으로 K를 돌봐 줄 수 있다면서 함께 살기를 제안한다. 그 제안을 고민을 하던 K는 헤렌호프에서 여주인을 만나 옷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부 게르스태커가 K에게 함께 말을 돌보는 일을 해볼 것을 권한다. K는 일단 그의 집을 방문해보겠다는 생각에 헤렌호프를 나서면서 소설은 완성같은 미완성으로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