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경제경영서를 많이 읽지만 원래는 고전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좋아한다. 반면 집사람은 현대 소설을 주로 읽는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공지영과 오쿠다 히데오다. 읽는 취향이 전혀 다른 우리 부부는 서로 책을 권하지 않는 편이다. 가끔 내 쪽에서 좋았던 책을 권하기라도 하면 귀찮게 하지 말라는 핀잔만 돌아온다. 그런 아내가 오히려 나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준 책이 있다. 바로 오쿠다 히데오의 ˝우리 집 문제˝다. 읽을 책이 많았지만 오랜만에 맞이한 아내의 추천이라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6개의 단편으로 엮여진 이 책은 제목과 달리 모든 가정에서 있을법한 문제를 참으로 세련되게 다루었다. 문체나 소재가 특이하지는 않지만 술술 잘 읽힌다. 덕분에 오랜만에 이런 것이 독서의 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해답은 없다. 가족에게는 매뉴얼이 없다.˝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문장이다. 저마다 가정을 꾸리고 살지만 모두가 어려운 것이 가정의 문제라는 것은 일본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남편이 왕따임을 알게된(어쩌면 그렇게 오해한) 아내의 이야기 ‘허즈번드‘편은 절대감동 그 자체였다. 남편의 기를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도시락을 멋지게 싸서 남편이 화제의 중심에 서게 하는 현명한 아내의 이야기다. 매사에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긍정과 부정. 남편이 못났다는 사실을 알고 부정하거나 혐오하는 대신, 멋지게 힘을 주는 아내의 이야기는 어벤져스보다 더 영웅적인 이야기였다. 가끔 마음대로왕자와 공주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엄마아빠가 이혼할까봐 노심초사하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재밌기도 하면서 부부간의 대화도 조심하게 된다. ‘에리의 4월‘편은 그런 고3짜리 딸의 조바심 어린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후로 7년동안 관심을 끊고 잊고지냈던 아빠와 엄마. 어느날 두 분 사이에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다. 우리 집도 이혼을 하는 가정이 될수 있다(어쩌면 그렇게 오해한) 는 불안함 말이다. 당황스러운 에리와 달리 남동생은 태연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이 먼저 눈치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는데...‘남편과 UFO‘편은 더 극적이다.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UFO를 탄 외계인과 교신을 한다고 고백했다. 아내는 남편이 제정신이 아니라고(어쩌면 그렇게 오해한) 생각한다. 뒤를 미행하기도 한다. 남편과 사내 커플이었던 아내는 어느날 남편의 직장 동료 여직원에게 회사 사정을 전해듣는다. 못된 상사때문에 고생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기적인 동료때문에 이일 저일 끌어안아서 힘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착한 남편은 아내에게 회사욕을 하는 대신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다 결국 헛것을 보게 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를 알게된 아내는 결국 외계인으로 분장해 남편과 교신을 하는 척을 해준다. 마지막의 ‘아내와 마라톤‘편은 반대로 남편이 아내를 돕는 내용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사일만 하는 아내는 아이들이 중3이 되어 부모의 손길을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정붙일 일도 취미삼을 일도 없어진다. 돈도 제법 잘 벌어다주는 남편덕분에 살기 어렵지는 않지만 사람이 어찌 돈으로만 사는 존재인가. 그러다 문득 시작하게 된 달리기. 그 달리기를 응원하다 결국 마라톤대회까지 출전하게 되는데... 마라톤에라도 열중하게 하기 위한 남편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통괘하고 재미있다. 에피소드들이 하나같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로잡기 보다는 그 상황에 깊숙히 개입해서 함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준다. 가족이란 무릇 그런 것이 아닐까.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는 대신 껴안고 보듬어야 하는 존재말이다. 경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살림살이가 여간 팍팍한게 아니다. 아내가 보기에도 의욕이 많이 떨어져보였나보다. 책을 다 추천해주다니... 책도 책이지만 요즘들어 아내의 조언에 힘이 난다. 아이 둘을 건사하는 것도 보통일은 아닌데 참 많이 슬기롭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걸 보니 감사한 마음마져 든다. 결혼하기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