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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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당할 대로 착취당한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부당하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참으로 정당한 거래의 결과다. 그 어디에도 부정은 없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았다. 자본가는 가격대로 노동력을 샀고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했을 뿐이다.˝

-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인간은 걱정의 동물이다.
요즘 주변에서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인생이모작`이라는 단어다. 경제가 불안하고 미래가 불투명하기에 나온 단어겠지만 내심 씁쓸하다. 진로적성교육이 한창인 요즘에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린가.
얼마전 SNS에 전공불문하고 결국에는 모두 치킨집을 하는 것으로 진로가 결정되는 그림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대기업을 다니는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 불안의 시대에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2008년 리먼 사태이후 마르크스의 자본론 읽기가 붐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에는 작고하신 서울대학교 고 김수행 교수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자본론을 재출간하실 정도로 자본론은 우리에게 다시 각광받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자본주의 경제의 `보이지 않은 손`이라는 마법은 더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이러한 전통적인 경제학을 부정한다.

이런 불황의 원인과 해법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진짜 혼란은 화폐의 이상한 행동과 가격의 대폭락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또 원인이 된 것은 금의 결핍이며, 금의 결핍은 어느 선까지는 세계의 수요에 채굴량이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도 기인하고있다.
그런데 아직도 다른 모든 혼란은 고율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국제 무역을 저해하는 경제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경제학자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과학 기술의 발전이 노동자의 수요를 감소시킨 결과, 실업이 증대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원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들의 견해와 또 다른 여러 가지 견해 또한 제각기 근거는 있을 것이고, 이런 세계의 질환을 야기한 역할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들어보면 하나같이 불황에 대한 결과일 뿐이지 원인은 아니다.

그러면 진정한 불황의 원인은 무엇인가?
채사장의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에 보면 과잉 생산이 재난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말이다. 몇백만의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품조차도 부족해서 고생하고 있는 때에 과잉 생산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아프리카에서는 몇억의 사람들이 제대로 입을 옷조차 구하지 못하는 상태인데, 월가에서는 성과급과 보너스를 엄청나게 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사람들이 그런 물건을 사기에는 너무나 가난하다는 것이지 그들이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대중에게 돈이 없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화폐의 결핍은 세계 민족간의 화폐의 배분이 변화했으며, 또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 즉 부의 분배에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에서는 부의 과잉이 있고, 그 소유자들은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모른다.

하지만 빈부차이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존재해 온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경제 공황의 원인이 되었다는 말은 왠지 납득하기 어렵다.
봉건시대에 사람들의 삶은 거의 정체되어 있거나 변화의 폭이 적었다. 반면 거대한 기계와 세계 시장을 수반하는 자본주의는 동적이어서, 개인과 집단이 부를 축적함에 따라 급격한 변화가 나타났다. 부의 분배에서 불평등의 증대는 다른 약간의 요인들과 결부되어 여러 공업국에서 노동과 자본의 새로운 대립을 유도했다. 이들 여러 나라의 자본가들은 식민지나 후진 지역을 착취한 돈으로 노동자들에게 양보 - 임금 인상이나 생활 조건의 개선 등을 함으로써 긴장을 완화했다. 이런 식으로 서유럽이나 북아메리카의 여러 공업국들은 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 그리고 동유럽을 착취해 부를 축적했지만, 노동자에게 준 것은 겨우 한 줌의 몫에 불과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서구 열강의 세력이 확대되는 동안 서양에는 많은 공황이 있었다. 어떤 나라는 너무 많이 축적했기 때문에 일어났고, 또 다른 어떤 나라는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공황은 자본가들이 잉여 자금을 가지고 계속 후진 지역을 개발하고 착취했기 때문에 모면할 수 있었다. 즉, 새로운 시장이 개척되고, 상품의 소비가 증가했기 때문에 공황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자본주의에서 성장은 더이상 없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몰락을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마르크스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불황에 대처하는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끝에 제일 먼저 만난 책.
바로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이다. 시원한 콜라같은 청량감을 준다.

천연균을 연구하고 사람을 이해한 탓에 일주일에 4일만 일하는 빵집을 운영하는 저자는 마르크스가 꿈꾸던 사회를 가게에 실현한 독특한 사람이다.


빵집 수련 시절의 나는 누군가의 강제에 의해 내 노동력을 팔지는 않았다. 나 자신의 의지로 사장에게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리고 빵을 만드는 기계와 재료, 즉 생산수단을 하나도 소유하지 못한 상태였다.
거꾸로 말하면 자신의 노동력을 떼어 팔기 싫다면 자기 소유의 생산수단을 가지면 된다. 그 점을 깨달은 나는 제빵 기술을 익혀 내 가게를 열고, 생산수단인 믹서와 오븐 등의 기계를 갖추었다, 또 가급적 근처 농가에서 재료를 구입하여 불안정한 시장에 좌우되지 않고 재료를 구하는 방법을 실천했다.

천연균에 빠져사는 이타루씨에게 요즘은 발효균이 말을 건넨다고 한다. 무언가 하나에만 몰입하면 도달하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시골의 작은 가게를 힘들게 운영하는 이 사람을 지탱한 것은 바로 마르크스의 철학이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기술혁신은 결코 노동자를 풍족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자본이 노동자를 지배하고 보다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즉, 기술혁신의 결과물이 고스란히 인간에게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타루씨의 예를 살펴보자.
상품의 가격은 교환가치에 의해 정해진다.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이다. 기술혁신의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1시간당 만들어지는 빵의 양이 2배가 되면 빵 하나당 교환가치는 반으로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술혁신 후의 빵 가격은 기술혁신 전의 반인 50엔이 되어야 옳다.
그런데 어떤 조건하에서는 기술혁신 후에도 그 이전과 같은 가격으로 상품을 팔 수 있다. 새로 개발된 기술을 한정된 특정 자본가만 사용하면 된다. 교환가치의 크기는 세상 일반의 표준적인 기술 수준을 토대로 정해진다. 이 말은 세상의 대부분의 빵집이 1시간에 10개의 빵을 만드는 기술만 보유한 상태라면 남들을 앞질러 기술혁신에 성공한 빵집은 기술혁신 전의 가격대로 땅을 팔 수 있으니 커다란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경쟁사회다. 자본가들끼리 보다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말이다. 새로운 기술을 획득한 자본가는 더 많은 이득을 얻으려고 가격을 조금 낮춰서 시장을 공략할 수도 있다. 빵을 1개당 80엔에 파는 것이다. 뒤쳐진 경쟁 자본가가 이 상황에 제대로 맞서지 못한다면 자연히 도태되어버릴 것이다.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기술 수준을 따라잡았다고 해도 상대는 반격하기 위해 가격을 50엔으로 더 낮출지도 모른다.


그 결과 상품은 드디어 교환가치대로 팔리게 되고 이윤은 기술혁신 전의 수준으로 돌아간다.

인류는 지원개발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폐기물과 배기가스를 배출해 공해를 일으키며, 안전성이 완전히 증명되지 않은 농약 과 화학비료, 식품침가물, 유전자 변형작물을 시용한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처럼 인간이 절대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하는 위태로운 기술까지 만들었다. 방사성 폐기물은 장차 몇 만 년이나 생명을 지속적으로 위협할 것이다(이 부분도 `부패하지 않는` 범주에 넣을수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전 세계에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사태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이 통화량 늘리기다. 재정정책(적자국채 발행)과 금융정책(제로금리정책•양적완화)을 통해 돈을 마구 풀어서 시중에 돈이 넘쳐나게 만드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부패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는 주범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돈과 경제를 `부패하게` 만들어버리면 어떨까? 이것이야말로 이타루씨가 발효의 힘을 빌려 발효와 부패 사이에서 빵을 선택한 원동력이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에 보면 두 가지 책이 자주 언급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히라카와 가쓰미의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게 된 계기도 사실 이 책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를 읽었다. 가쓰미씨는 일본의 원전폭발과 동일본대지진 사고 이후에 자연의 거대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인간이 만든 제도인 자본주의를 다시한번 살펴보는 것이 저자의 의도이다.

일본판 제목이 `소상인의 권유`인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는 대기업 의존적인 구조를 지양하고 개인 사업자로서 살아갈 것을 제안한다. 성장중심의 경쟁사회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인간중심의 사회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먹거리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소상인인 것이다. 이타루씨의 사례는 이 책에서 설명하는 소상인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라고 한다.

소상인이란 비즈니스의 규모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사업 방식, 사원 한 사람 한사람이 만들어낸 팀워크,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 경영자의 신념이 소상인적인 휴먼 스케일을 축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말한다.

제품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정성껏 만들어내는 생산 라인, 그것을 고객에게 보내 신뢰와 만족도를 피드백시키는 시스템이다. 확대보다 지속을, 단기적인 이익보다 현장의 한 사람 한사람이 노동의 의미나 기쁨을 음미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드는 것, 그것이 삶의 긍지로 이어져 날마다 노동 현장에서 작은 혁명이 일어나는 회사 말이다.
참으로 멋진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여기까지만 언급되어 있다. 구체적인 방안이나 사례는 아쉽게도 나와있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휴먼 스케일이란 인간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규모를 말한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경기는 호황과 불황의 반복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우리 인생 자체가 그런지도 모른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아닌가.

어떤 강대국도 천년만년 태평성대를 누린 경우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들은 계획된 자본주의라든가, 후진 지역 개발을 위한 국제 협력 따위를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의 배후에서는 국가 간의 대립과 세계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서구 열강의 전쟁이 더욱더 치열해지고 있다.

무엇을 위한 계획인가? 남의 희생을 통한 어떤 자의 이익을 위해서인가? 자본주의의 동기는 개인의 영리이며, 그것의 표어는 경쟁이다. 그리고 경쟁과 계획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이외에도 현대의 여러 조건하에서 자본주의의 능력을 의문시하고 있는 지식인이 적지 않다,

제레미 러프킨은 그의 책 `노동의 종말`에서 노동자의 노동 시간을 주 당 40시간으로 단축함으로써 한꺼번에 실업을 완화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것을 실행하게 되면, 몇백만 명의 노동 예비군이 취업할수 있어 그만큼 실업이 감소될 것이다. 노동자의 대표자들은 모두 이것을 환영했으나, 영국 정부는 여기에 반대하고 독일과 일본을 꾀어서 이 제안을 봉쇄할 공작을 폈다.
공황과 불황은 세계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대책도 국제적이고도 세계적인 정책이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각국은 협력해서 어떻게든 이것을 타개하려고 시도했으나, 현재까지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총체적으로 볼 때 이들의 사정은 부문적이고 일시적인 안정을 낳을 수는 있어도, 실제로는 세계 전체로서 보면 사태를 더욱 악화시길 뿐이었다. 그것은 국제 무역을 감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부의 분배의 불평등을 유지시키고 증대시켰다. 어떤 나라는 관세를 인상함으로써 끊임없이 상대국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바로 말 그대로 `관세 전쟁` 이다. 세계 시장이 더욱 좁아지고 더욱 보호 정책이 가해짐에 따라 경쟁이 점점 더 격화되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경쟁하기 위해 고용주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인하할 것이라고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불경기는 한층 더 심각해져서 실업자 무리는 늘어날 뿐이었다. 임금이 인하될 때마다 노동자들의 구매력은 메말라 가기만 했다.


이런 점에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는 노동자에서 소상공인으로의 방향전환을 제시한다. 인생이모작시대에 발맞추어 이제 우리도 스스로를 고용할 시점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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