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지음 / 지식플러스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창의성 교육도 물론 필요하지만, 괴짜를 아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 절실합니다. 제가 좀 남다른 일을 해내고 있다고 한다면, 그건 제가 특별히 머리가 좋아서도 아니고 그보다는 조용히 남다르게 좀 이상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새로운 생각이란 궁극적으로 자기가 직접 살아가는 생활과 경험 속에서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장하석 `과학, 철학을 만나다`


하버드대학교와 스탠포드대학교에 동시에 합격하여 두 학교를 2년씩 다니게 되었다는 김정윤양의 보도가 오보라는 소식이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고 있다. 식당에서 보도를 처음 접한 나는 너무 부러워서 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넘보기 조차 불가능한 일을 보고 스스로 유능한 부모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자학했던 것일까?

처음 두 학교의 합격 보도를 접하면서도 비정상적인 상황임이 감지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안타까운건 언론들이다. 기초적인 사실관계 확인절차없이 당사자의 얼굴이 TV뉴스까지 나올 정도라니. 사실상 우리 한국사람들은 미국사람이 팥으로 메주를 쑨데도 믿을 것같은 분위기다. 사태가 이쯤 되다보니 이제는 김정윤양의 미래가 걱정이다. 아직은 무능한 부모까지는 아니라는 안도감은 덤이다. 학벌주의의 최고의 해프닝으로 기록되리라.

김정윤양은 왜 하필 하버드와 스탠포드를 선택한 것일까? `하버드=인문, 스탠포드=정보통신`을 연결시키고 싶었을까? 부모의 압박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인문학 인재 열풍에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상은 인문학도와 공학도를 융합한 것이다. 김정윤양은 컴퓨터학과에 가서도 인문 고전을 읽어야 하는 대한민국의 세태를 본인의 바램에 솔직하게 담은 것뿐일지도 모른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인문학 관련 책과 강의가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조금이라도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면 이런 책이나 강의 한, 두 개 쯤을 알고 있어야 무식함을 가릴 수 있다. 기업 CEO들조차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을 이수했음을 본인 약력에 한 줄이라도 기록한다. 정부주도하에 각 도서관에서는 인문학을 살리기 위한 프로그램과 강좌들이 넘쳐난다. 김정윤양의 헤프닝은 성급한 성과주의의가 우리의 눈을 얼마나 멀게 만들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러한 사회 흐름속에서 순수과학이 지니는 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는 과학철학자 장하석 교수의 주장은 귀기울일만하다. 김정윤 양의 아버지는 어쩌면 장하석교수의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김정윤 양의 소식을 듣고 대다수의 부모가 그러했듯이...

장하석 교수는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차남이다. 아들 셋이 모두 외국에서 교수로 있는 수재집안이다. 스탠포드에서 철학박사 학위 취득하고 28세의 나이로 런던대 교수 임용되어 현재 케임브리지 과학철학부 석좌교수로 있는 그야말로 거짓말같은 스팩을 자랑한다.




김정윤 양 사건에 최고의 엄친아 장하석 교수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가 어느 정도 해법을 줄 수는 있겠다. 이 책은 EBS 교육방송의 프로그램으로 먼저 알려졌다. 방영된 12강 모두가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나처럼 듬성듬성 방송을 보았다면 챙겨볼만하다. 방송을 책으로 펴내서 그런지 TV못지않은 몰입도를 자랑한다. 평소 과학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도 가볍게 아메리카노 한잔 들고 강변을 산책하는 느낌으로 읽어도 좋을 정도.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는 구성도 좋다. 한 챕터식만 봐도 재밌다. 이 포스팅에서 소개하는 내용을 보고 필요한 부분부터 훑어보시는 것을 권장한다.

제 1부에서는 과학이 철학의 인식론적 관점에서 어떻게 지식을 얻어내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과학지식이 지닌 한계와 극복해 나가는 방법이 핵심테마 되겠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지식의 기반이 되는 관측을 믿을 수 있는가, 이 관측을 가지고 이론을 증명할 수 있는가, 과학 지식은 축적되는가, 혁명적으로 개편되는가, 과학적 진리란 무엇이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과학은 어떤 의미에서 진보하는 것인가 등 과학철학자들의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소개한다.

또한 과학사에 여러가지 혁명을 소개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이 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시작된 양자역학은 그동안 진실로 알려졌던 뉴튼역학을 전면적으로 뒤집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종교계를 일대 혼란으로 몰아넣은 엄청난 혁명이었다.





2부에서는 과학사의 일화를 자세히 소개하여 과학 연구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과학연구의 구체적 모습을 이론적 ‧ 실험적 ‧ 역사적 ‧ 철학적 관점에서 소개함으로써 과학의 실천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안내한다.
너무 가까워서 흔히 존재조차 잊고 지내는 것이 무엇일까? 여자친구? 와이프? 아니면 물? 공기? 지금은 너무도 흔해서 일상적으로 여겨지는 물질들이 만들어지는 배경을 설명한다.

화학식으로 표현되는 산소라는 물질은 어떻게 발견했는가. 누가 가장 처음에 산소라 부르기 시작했는가. 물은 어떻게 섭씨 100도에서 정확하게 끓는가.
지금은 너무나 일상화되어 발명품 축에도 끼기 어려운 건전지라는 놈은 과연 어떻게 인류에게 등장했으며 거기에서 전기가 발생하는 원리속에는 어떤 과학이 숨어있는가.






특히 물이 바닥부터 끓기 시작하기 때문에 다른 용기에 담아서 중간위치에서 끓여보았다는 과학자들의 노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 못해봤으나 정말 누군가는 궁금했었을 내용. 뭔가 머리를 강하게 스친다. 장하석 교수는 왜? 라는 생각이 과학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종이나 나무 등을 태우면 많은 열과 불꽃이 나온다.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태우기 전에 종잇장을 만져보면 차갑고 전혀 불이나 열과 상관없을 것 같은데, 연소가 시작되면 신기하게도 그 속에서 뜨거운 불이 계속나온다. 옛날 과학자들은 가연성 물질에는 모두 이런 불꽃이 잠복해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의 이름은 `플로지스톤`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타는 기운` 정도가 될 것이다.

1700년대까지만 해도 플로지스톤 없이는 어떤 것도 설명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막강했다. 그러나 `라봐지에`가 산소의 존재를 발견하면서 `플로지스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처럼 합리적인 것만 만들고 발견했을 것같은 과학의 역사속에서 엉성한 가설이 몇백년동안 진실처럼 받아들여진 사례는 무수히 많다.




장하석 교수가 소개하는 화학적인 방법을 따라해보면 진짜 `은`나무는 만들수 있다. 더 나아가서 소금물에 구리와 금을 넣고 전기를 통과시키면 금이 녹아내린다. 이것이 `볼타의 전지(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건전지의 원조)`가 작동하는 원리다. 구리쪽에서 나오는 전파가 수소를 발생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연금술사라고 하면 정신나간 과학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금술로 생명을 창조하고자 했던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비웃던 크렘페 교수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방법을 따라가다보면 왜 수많은 과학자들이 금을 만들기 위해 일생을 바쳤는지 조금은 알것도 같다.





3부에서는 철학이 과학을 어떻게 돕는지 이야기한다.
요즘 교육이 가장 관심을 갖고있는 창의성교육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의미있다. 창의성은 ‘정상과학의 퍼즐 풀기를 열심히 하다 위기에 처하면 필요에 의해 생긴다’는 쿤의 주장을 보완한다. 정상과학은 토머스 쿤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주장한 개념이다. 상식이라고 여겨지는 사실을 지지하기 위해 보완해 나가는 과학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장하석 교수는 창의력이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다원주의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원주의 과학의 지식체계는 가능하면 한 분야 내에서도 여러 가지를 발달시키고 유지하자는 사고방식이다. 2부에서 이야기한 플로지스톤의 경우 산소를 발명한 라봐지에에 의해 개념조차 사라졌다. 비록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더라도 다원주의를 활용하여 유지되었더라면 과학의 발전은 훨씬 더 눈부셨으리라.

더 나아가 과학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다원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특한 질문을 장려하는 문화가 부족한 교육환경을 개선해야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는 철학은 다원주의를 이루는 데 유용하다고 결론을 맺는다.



△ 용산의 천문대에서 별을 관찰하는 마음대로나라 아이들

인간의 가치와 관련된 문제를 역사, 철학과 문화 등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인문학이라면,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것도 인문학이라는 울타리 속에 포함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흔해서 이제는 진부한 융합이라는 단어처럼 세상살이를 더이상 하버드나 스탠포드로 나누거나 철학과 과학으로 나눌 필요는 없다.
우리 중에 누군가는 끊임없이 다른 이야기를 해야한다. 지금 당장은 쓸모없지만 나중에 언젠가 필요할 지 모르는 생각이 있게 마련이다. 일상생활에 바빠서 다들 건드리지 못하는 그런 내용들을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는 해야한다.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어떤 전공으로 어떤 미래를 선택했냐는 전혀 무시한 채, 하버드와 스탠포스 대학교에 붙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세상사람들이 죄인이다. 학벌이 뭐길래 김정윤양에게 그런 무모한 선택을 강요했는가. 그녀의 맘고생은 얼마나 심했을까? 김정윤양의 사태의 책임에 우리 기성세대도 절대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