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
김용석 지음 / 멘토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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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해 평균 독서량이 짐승만도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각종 고전에 대해 누구 앞에서건 아무 거리낌 없이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시키는 데 총체적 목적이 있는 공리주의적 텍스트라 할 수 있으며, 일종의 인문학적 데자뷰 현상을 도모하는 학구적 심령 기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 김용석의 `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중에서


- 사랑하는 승모에게

어제 너희들 만났을때 책 안읽는다고 너무 구박한거 같아 이렇게 편지를 쓴다.
20년전에는 그렇게까지 무식하지 않았던거 같은데 어제는 솔찍히 좀 실망했다. 소위 엘리트라는 `세무사` 녀석이 대화내용이 그게 뭐냐. 여중생같이... 한편으로는 이제 우리도 고급스러운 언어를 구사해야할 사회적인 지위와 체면을 가져버린 기성세대라는 서글픔도 밀려온다.

지난번 카톡으로 김수영의 시 `강가에서`를 보냈을 때, 한 편 더 보내달라는 너의 답변에 고마웠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줄은 차마 몰랐다.

하지만 내가 준 카톡을 그대로 베껴서 네가 자주가는 카페에 잘난척 하는 용도로 썼다는 말에 사실 실망했다. 얼마나 쏘스가 없었으면 친구가 위로하려고 보낸 시를 SNS생활의 떡밥으로 사용하냐.

이 사람아 책 좀 읽어라.

몇년전에 읽어보라며 건네준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픽처`를 받아들고 네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구나.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꼬옥 붙잡고 이렇게 말했지 .

`솔직히 창피하지만 친구니까 말할께... 안읽어 버릇해서 그런가, 열페이지도 못읽겠다... 면목이없다, 마음대로대왕˝


도서관에서 너를 위한 책을 발견했다. 제목이 `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이란다.
죄와 벌, 데미안, 이방인...... 어떠냐? 제목만 들어도 심장이 쪼그라들지? 읽지도 않았는데 책 내용에 대해 물어보면 어쩌나 싶어 두려움이 앞서고, 읽지 않았다고 실토하는 순간 너에게 쏟아질 냉소적인 시선을 견딜 재간이 없겠지. 딴지일보 김용석 편집장이 고전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이 책, 참 재밌다.

읽으면서 개그콘서트 보듯이 미친듯이 웃었다.


별로 읽고 싶지 않지만, 읽지 않았다고 얕잡아보는 카페 회원들이나 동호회 사람들에게 잘난척하고 싶다고 했지?
​이 책에 이렇게 쓰여있다.
˝누군가에게 잘 알지 못하는 인문 고전 얘기로 불의의 공격을 받았을 때 자신의 가녀린 영혼을 보호하기 위한 호신용 서적이다.˝ 라고...

우리가 중 고등학교 때 고전문학 한두 권 읽긴 했잖냐... 공부를 못했던 놈들도 아니고 나름 대학물도 먹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 시절 책 내용을 우리가 뭐 제대로 이해하긴 했냐? 대부분 ‘고전문학’ 하면 좋은 책이긴 한데 왠지 어렵고 진부하다는 생각부터 떠올리지.

난해한 번역체 문체 때문에 재미를 미처 느끼기도 전에 책을 집어던지거나, 줄거리 파악하기에 급급해 행간 속 숨은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마련이다. 어쩌다 읽어봐야지 싶다가도 묵직한 두께 때문에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지레 포기하는거지. 요즘 어른들중에 이말에 공감하는 사람 많으리라 본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고전문학이 재미없고 난해한 책이라면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동안 모든 사람들이 즐겨 읽을 수 있겠니...

˝생업에 지친 나머지 읽고 싶어도 책 읽을 기력과 의욕을 상실한 독자들에게,
설령 의욕이 있다손 치더라도 직장 내 오랜 눈칫밥 습관으로 인해 한곳에 1분 이상 눈동자를 모으기 힘든 독자들에게,
그리고 어디 가서 모르는 책 이야기만 나오면 자아에 치명상을 입는 가녀린 영혼을 소유한 독자들에게
이 책이 조그마한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저자 김용석은 ˝고전은 재미있다˝라고 강조한다.





이 책의 최고의 미덕은 ‘시간이 없어 고전문학을 읽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줄거리를 요약해주고 지식을 이입함으로써 해당 고전의 중요한 핵심만을 손쉽게 취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20대때 듣던 팝송 가사나 우려먹는 교양이 바닥 난 우리 어른들에게는 최적이 교과서인 셈이지. 그나마 너는 영어라도 잘했으니 팝송 가사지만, 책 한권 안읽는 정빈이나 범성이는 가요가사를 인용하는게 고작 아니냐.

하지만 승모야, 이 책의 또다른 감동은 따로있단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에게 조차 대단히 탁월한 분석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 실린 책목록을 한번 보여줄께. 전부 다 내가 읽은 책이다.

PART 1 삶의 의욕을 상실했을 때

죄와 벌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덴의 동쪽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PART 2 1분 이상 한곳에 눈동자를 모으기 힘들 때

농담
1984
호밀밭의 파수꾼
채털리 부인의 연인

PART 3 자아에 치명상을 입었을 때

데미안
이방인
위대한 개츠비
그리스인 조르바
목로주점


이 책을 읽고나서 나도 책을 얼마나 허술하게 읽어왔는지 반성하게 됐다. 너한테 책 안읽는다고 구박할 자격이 없더라.
딴지일보 편집장 김용석이라는 사람, 독서 내공이 대단하더구나. 어려운말 하나도 없이 재밌고 적절한 비유로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재밌는 문장을 뽑아볼께 한번 들어봐라.

˝`위대한 개츠비`의 내용과 분위기는 30대 이상의 독자라면 누구나 알만한 대한민국의 대표적 신파극으로 알려진 `이수일과 심순애`와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 다이아몬드에 눈이 멀어 김중배에게 시집간 심순애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리대금업으로 큰 부자가 되어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난다는 내용은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각종 문화적 상징이니, 시적 묘사니 하는 디테일을 빼고 본다면 꼭 닮은 줄거리라 하겠다. 다만, `이수일과 심순애`의 경우, 마지막에 죽는 인물이 이수일이 아니라 죄의식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택한 심순애라는 점은 아무래도 남존여비 혹은 일부종사의 유교적 생활양식에서 익숙했던 그 시대 동양과 서양의 감수성 차이라 볼 수 있다.

참고로 `이수일과 심순애`는 일본의 `금색야차`를 번안한 소설인 `장한몽`의 별칭이므로 20세기 초 우리나라에도 `위대한 개츠비`에 견줄만한 작품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식의 괜한 애국심 마케팅적 읽은 척을 구사할 경우, 본의 아니게 친일파의 후손으로 낙인찍힐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그밖에 `위대한 개츠비`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은 척함에 있어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단순히 하루키가 `위대한 개츠비`를 몹시 좋아한다더라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체나 전반적인 작품 분위기,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상실감을 주제로 하는 것 등 `상실의 시대`는 `위대한 개츠비`를 오마주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


이제 우리도 부모잖냐.
언젠가 회사 선배한테 아이들 공부시키는 노하우를 물은 적이 있다.
선배는 그저 `부모가 잘하면 된다`고 그러시더라.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배운다면서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아이들을 보면, 나중에 커서 이런 책을 읽을 때 무식하다는 소리듣지 말아야지 싶다. 아이들만 책 읽으라고 잔소리할게 아니라 부모도 함께 책을 가까이 하는 습관을 길러야겠어.

다음에 만날때는 이 책을 다 읽고와라. 좀 더 교양있는 이야기를 나눠보자. 10년동안 한 권 읽었다는 정빈이랑, 드라마왕국 범성이한테도 전해줘라. 그리고 승모야 너네 집사람한테 게임 좀 그만 하라고 해라. 우리 애들이 배울라.



​이만 줄인다.

- 너의 마음대로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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