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52
오스카 와일드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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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만 봐서는 알수없는 게 사람인 것 처럼,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서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펼치기 전에는 온갖 편견이 있게 마련이다. 표지가 이쁘면 이뻐서, 후지면 후져서. 그렇다고 책장을 넘겨봐서 알수있는 것은 또한 아니다. 비로소 100페이지 정도는 읽어봐야 비로소 나한테 맞는 책인지 알수 있게 된다.

프루스트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비슷한 생각을 언급한 바 있다.
"내게 새로운 책이란 그 책과 유사한 많은 것들중 하나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 이유가 있는 유일한 사람 같았다.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그런 의미에서 내가 많은 편견을 갖고 있었음을 반성하게 만든 책이다.  

너무도 유명하고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았던 상황에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잘생긴 남자가 나온다는 줄거리가 개인적으로 맘에들지 않았고, 결과도 뻔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내 생각은 잘못 된 것으로 드러났다.

 

오스카와일드는 첫 문장에서부터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것에서 추한 것을 찾아내는 사람은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타락한 사람이다. 이건 잘못이다.
아름다운 것에서 아름다운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교양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들은 선택받은 사람들로, 그들에게 아름다운 것들은 오롯이 아름다움만을 의미한다.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책은 헨리 경의 헨리 경을 위한 헨리 경에 의한 작품이다. 그는 순진한 도리언 그레이를 악으로 빠지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의 황홀한 언변은 성경책 못지 않은 인생의 통찰을 담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마치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말이다.

 

 

브루스 윌리스는 어느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는 배짱과 근성을 지닌 존 맥클레인 형사역할을 맡아서 영화의 성공을 크게 견인했다. 특유의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며 구군분투하는 브루스 윌리스의 냉소가득한 유머가 없었다면 다이하드의 지금과 같은 인기는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의 관전포인트도 다이하드와 다르지 않다.

책을 펴는 순간 헨리 경의 화려한 언변을 보는 것 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진 독서를 경험 하게 될 것이다.

 

헨리 경은 인생의 목적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생의 목적은 자기 발전이오. 자신의 본성을 완벽하게 실현시키는 것, 그것이 이곳에 있는 우리들의 존재 목적이지요.

요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두려워해요. 모든 임무 가운데 최고의 임무인 자기 자신에 대한 임무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오. 물론 사람들이 자비심이 있기는 해요.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거지들에게 옷을 입혀주니까. 하지만 그들 자신의 영혼은 굶주리고 벌거벗은 채로 있어요. 우리 인간이라는 족속에게는 용기가 사라진지 오래요. 어쩌면 애초부터 그런 게 없었는지도 모르지. "


 

또한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도리언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우리가 남들에 대해 좋게 생각하기를 바라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을 염려하기 때문이라네. 낙관주의의 밑바탕에는 순전한 공포가 깔려 있거든.
우리가 스스로 관대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우리의 이웃이 우리에게 득이 될 것 같은 미덕의 열정을 지녔다고 믿기 때문이라네.
우리가 은행가를 칭찬하는 건 혹시라도 우리가 계좌 금액을 차월할지 모르기 때문이야.
노상강도가 우리 호주머니 사정을 좀 봐줄지 모른다는 점 때문에 그에게 아부를 하는 것처럼 말일세.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심이라네. 난 낙관주의를 가장 경멸하지. 삶을 망친다는 점에 관해서라면, 자신의 성장에 발목이 잡히지만 않는 한 삶을 망치는 경우란 없는 거야.
사람의 본성을 훼손하고 싶으면 단지 그걸 교정하기만 하면 되네."

 

내가 활동하는 북카페의 어떤 분이 오스카와일드를 유미주의자라고 언급한 바 있다. 정말 딱 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이와관해서는 어떤 책에서 오스카와일드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 글을 본적이 있다. 그가 공항에서 세관 직원한테 저지를 당했다. 직원은 혹시 신고해야할 물건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때 오스카와일드가 이렇게 답을 했다고 한다. "저의 고고한 천재성을 빼고는 달리 신고할 것이 없습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작가는 헨리 경의 입을 통해서 이러한 자신의 아름다운 언어적 통찰을 거침없이 선보인다. 확실히 글을 아름답게 쓰는데에 철저한 노력을 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글을 맛깔나게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권 소장하기를 권한다.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는데 너무도 멋진 말이 많아서 후회하고 당장 서점에 달려가서 사버렸을 만큼 빌려보는 당신을 후회하게 만들 것이다.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헨리 경의 말들이 읽어도 읽어도 잠언같이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매혹적인 사람이 되는 법에 관한 헨리 경의 명언을 소개하면서 마칠까 한다.

"정말 매혹적인 사람들은 딱 두 부류야. 모든 것을 철저하게 다 아는 사람하고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이렇게 딱 두 부류라고. 저런, 저런, 그렇게 비극적인 표정 짓지말게!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절대 격에 어울리지 않는 감정을 품지않는 데 있단 말일쎄... "  

P.S. 책의 번역본에 관하여.

이 책을 읽으면서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작품도 함께 봤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세계문학시리즈여서 실제 구매는 펭귄클래식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정한 출판사의 번역이나 번역자에 대한 편견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아름다운 문체가 최고의 강점인 이 책을 특히 직역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번역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는 열린책들의 윤희기 번역이 매우 만족스럽게 다가왔다. (펭귄께는 죄송.. 다른 번역에서는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ㅠ.ㅠ)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인생의 목적은 자기 발전이오. 자신의 본성을 완벽하게 실현시키는 것, 그것이 이곳에 있는 우리들의 존재 목적이지요.

요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두려워해요. 모든 임무 가운데 최고의 임무인 자기 자신에 대한 임무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오. 물론 사람들이 자비심이 있기는 해요.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거지들에게 옷을 입혀주니까. 하지만 그들 자신의 영혼은 굶주리고 벌거벗은 채로 있어요. 우리 인간이라는 족속에게는 용기가 사라진지 오래요. 어쩌면 애초부터 그런 게 없었는지도 모르지. " - 열린책들

 

"인생의 목적은 자기계발이거든요. 자신의 본성을 완벽하게 깨닫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유인 셈이라오.

오늘날 사람들은 본래의 자기 자신을 겁내고 있어요. 그들은 가장 지고한 의무를 잊어버린 거죠. 자신의 자아를 소유하는 의무를 말이죠.

물론 그들은 자비로운 사람들이오.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거지에게도 입을 것을 주니까. 그래도 자신의 영혼은 굶주리고 헐벗는단 말이오. 우리 인종에게 용기는 사라져버렸다오. 아마도 우린 진정한 용기를 지닐 수 없을 거요." - 펭귄클래식  

모든 번역본을 다 훑어보지 못해서 안타깝기는 하지만 펭귄클래식의 문장은 왠지 가독성이 좀 떨어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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