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흑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68
스탕달 지음, 임미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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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쥘리앵의 머리를 보며 오열하는 그의 애인 라몰양
 

소설이란 큰 길을 가면서 둘러메고 다니는 거울 같은 것이다.
그 거울에는 때로 푸른 하늘이 비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길에 팬 진창이 비치기도 한다.
사람은 그런 거울을 등에 둘러메고 다닐 뿐인데 독자여러분은 그 사람을 부도덕하다고 비난하다니!
거울에 흙탕물에 비치는 것일 뿐인데 그 거울을 욕하다니!
그보다는 차라리 진창이 팬 큰길을, 아니 그보다 흙탕물이 고이도록 방치한 도로관리인을 비난해야 할 것이다.
- 스탕달 - 
 

이 문장은 ‘적과 흑’ 중간에 나오는 독자에 대한 작가의 호소문이다. 그러면서 작가가 이 작품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나기도 한다. 
 

1830년의 연대기라는 부제를 단 ‘적과 흑’의 배경이 되는 당시의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면 상당히 복잡하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권력은 부르주아층이 가지게 되며 귀족은 그냥 명맥만을 이어가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대혁명 당시에는 노동자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이 혼재된 상태로 계급투쟁을 하였지만 이러한 시민계급 혁명이 완성된 후 플롤레타리아 계급의 소외를 통해 또 다른 계급투쟁이 시작된다.

스탕달의 ‘적과 흑’은 바로 부르조아와 귀족이라는 두 계층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아주 강렬한 단절면에서 존재한다. 주인공 줄리앙 소렐은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사람이다. 그는 작품 전체를 통해 크게 두 가지 욕망을 꿈꾸게 된다.
'적'은 군인을 말하며, '흑'은 성직자를 뜻한다는 해석에 따르면 쥘리앵은 평민의 신분에서 벗어나고싶어서 새로운 계급에 진입하는 것을 꿈꾼다.
1권에서는 나폴레옹과 같은 군인이 되기를 꿈꾸며, 2권에서는 성직자가 더 빠른 성공을 보장 할 것이라는 판단아래 목표를 수정한다. 

몇 번의 혁명을 더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싹터오르게 되는 점진적 평등의 발전은 그당시 프롤레리아 청년들에게  줄리앙과 같은 꿈을 꾸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능력이 정말 뛰어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능력도 없으면서 그냥 무작정 파리로 달려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능력의 경중과 무관하게 그들이 가지는 욕망의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 했을거라는 점이다. 그들의 욕망은 사용가치에 의한 욕망이 아니라 교환가치에 의한 욕망이다. 자신들의 경쟁자가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면서 욕망을 간접화시키게 된다.

이러한 수천 수만의 줄리앙의 욕망을 첫째로 매개하는 자는 바로 1권에 등장하는 레날.
적당히 부유하고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살아가는 그는 전형적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줄리앙의 입장에선 욕망의 매개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레날과 줄리앙은 경쟁적 관계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이런 레날은 초반엔 과격왕정복고주의자였지만 나중에 1827년 선거시기에 자유주의자로 변모하게 된다. 이는 그의 정치적 성향이 바뀌었다는 상징이라기보다는 레날이 가지는 욕망의 상징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사실 그에게 있어 군주주의냐 자유주의냐 라는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발르노. 이자와의 경쟁관계가 중요할 뿐이다. 즉 레날은 발르노를 매개로 한 욕망의 성취와 그 경쟁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레날과 발르노의 관계는 줄리앙과 레날의 관계와도 크게 다를 게 없다고 판단된다. 줄리앙 역시 자신이 원하는 사용가치에 의한 삶보다는 상황과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과의 비교를 통한 교환가치의 크기가 더 중요하니 말이다. 그러니 줄리앙은 시대상황에 따라서 군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성직자가 될 수도 있는것 아니겠는가?
 

2권에서 줄리앙은 라몰 후작을 만나게 된다.

라몰후작은 왕정복고 시기의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귀족이다. 이 라몰후작 역시 재미있는 인물이다. 귀족이긴 한데 부르주아에게서 질투심을 느끼지는 않는다. 사실 과격왕당파의 사람들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혁명 이후 영향력이 높아진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질투와 욕망의 화신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상승계급을 매개로 하여 어떤 대상을 욕망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라몰 후작에게서는 부르주아에 대한 질투와 욕망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심지어 평민인 줄리앙을 사위로 삼으려 하는 결심까지 하게된다. 결국 라몰 후작은 줄리앙의 두 번째 욕망의 매개자가 된다.

라몰 후작을 통해 귀족 직전까지 나아갔던 줄리앙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앞서 보았던것과 마찬가지로 경쟁자와의 비교를 통한 욕망의 해결과 그로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허영이다. 
 

이러한 줄리앙의 허영은 사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어떤 대상을 욕망하지만 스스로의 사용가치에 의한 욕망이라기 보단 타인에 의해 주입된 욕망에 불과하다. 스콧니어링이 지적한 대로 현대자본주의의 가장 나쁜 점은 남을 이겨야 내가 사는 ‘경쟁원칙’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욕망의 노예상태에 빠진지도 모른채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애인 라 몰양이 노력을 뒤로한 채 진정 사랑했었던 레날 부인을 위해 스스로 사형을 선택한다.

아, 부질없는 욕망 속에 무기력한 인간의 사랑이여.

좀더 자세한 해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시간을 갖고 천천히 다시 읽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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