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여우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50
한성옥 그림, 팀 마이어스 글, 김서정 옮김 / 보림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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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이란 걸 모르다니,

 

눈 내린 아침 얼마나 아름다운가

평소에는 미움받는 까마귀조차도 

                                             - 마쓰오 바쇼 - (선시 전문)

 

  마쓰오 바쇼는 아름다운  하이쿠를 많이 쓴 인물로 1644년에 태어나 51세의 나이로  1694년에 세상을 떠났다.  하이쿠란  5, 7. 5로  17음절로 된 짧은 일본의 단형 시를 일컫는다. 그 안에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의미까지 담겨 있어 읽는이에게 선명한 이미지와 함께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준다.

 

   이 그림책에 바쇼가 사는 곳은 후카가와 산속이다. 실제로 바쇼는 37살에 후카가와에서 은둔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가 살았던 오두막은 바쇼암이라 칭해졌다 한다. 

 

 '자기  먹을 것을 먹고, 자기 잘 만큼 자고, 자기 사는 대로 살면서, 자기 시를 썼지요.' 이 글귀가 참 마음에 든다.

 

  바쇼가 사는 오두막 아래 강가에는 버찌나무가 하나 있다. 바쇼는 그 곳에서 버찌를 맛나게 먹는 여우를 발견하게 된다.

여우는 바쇼에게 인간이 쓰는 시란 결국 잠이 든 인간들에게

여우가 속삭여주는 걸 시인이 깨어나서 쓰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자 바쇼는 자신이 보통 시인이 아니라 '위대한 시인'이라고 한다.

 

    다음해 봄, 여우는 바쇼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그것은 바로 여우에게 멋진 시를 한 수 주면 벚나무의 버찌를 다 가져도 좋다는 것이다.  그러자 시인은 옛 시를 읽고 새 시를 쓰면서 아름답고 감동적인 시를 찾으려고 애를 쓴다.

 

'자두 향 풍겨

산길 위로 일순간

솟는 아침해'

 

라는 첫번째 시를 여우에게 읊어준다.

여우의 반응은 별로다. 그러자 바쇼는 훌륭한 시도 여우에게는 신통치 않다는 걸 알고는 다시 한 달 동안  열심히 시를 쓴다. 쓰고 , 고치고, 낱말을 바꾸고 더하고 빼고, 읽어 보고 들어 보고, 다시 생각한다.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든다

물소리 퐁당'   

 

이 시는 실제 바쇼의 유명한 하이쿠이다. 그렇지만 여우는 그 정도는 새끼여우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한 달 동안 바쇼는 다시 열심히 시를 쓴다. 그렇지만 마음에 하나도 드는게 없자, 바쇼는 시를 쓰지 못한 채 여우를 만나러 간다.  보름달이 높이 떠오른 밤에 바쇼는 오두막을 나와 벚나무로 향하면서 가는 동안 좋은 시를 지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걷는다.  그러다가 보름달이 떠 있고, 먼저 도착한 여우의 불그스레한 털이 달빛에 희미하게 빛나는 것을 보자 갑자기 바쇼의 머리속에서  마치 물흐르듯, 시 한 수가 떠오르게 된다.

 

'여름 달 위로

여우 꼬리 끝처럼

흰 산 봉우리'

 

  여우는 벌떡  일어나 '완벽한 시'라며 칭송한다. 그리고 여우의 가족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말한다. 바쇼는 왜 이 시는 마음에 드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여우는 '이 시에는 바로 여우가 들어있지 않느냐?'고 대답한다.  그러자 바쇼는 좋은 시란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세번째 시를 마음에 들어하는 여우를 보니, 독자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글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자기와 무관한 글이나 시는 독자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는 걸 여우는 말해준다.

 

   이 그림책을 펴낸 팀 마이어스는 일본에서 3년간 살았던 미국의 작사가, 작가이다. 일본에 사는 동안 바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림은 한성옥 작가가 그렸다. 팀마이어스와 한성옥은 <시인과 요술 조약돌>이란 그림책도 펴냈다. <시인과 여우> 그림책의  그림들은 한적한 숲 속 오두막에 생활하는 바쇼를 잘 표현해냈다. 숲의 사계절이 드러나 있고, 벚꽃이 활짝 피었을 때의 장면은 분홍빛이라 더욱 아름답다. 겨울철의 바쇼의 오두막은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산 속에 위치에 있는데,

나무 뒤로 눈 덮인 개울가가 인상깊다.

 또 바쇼가 옛시를 읽고 새 시를 쓸 때 오두막 내부가 나온다.

창문 위에 까마귀가 시 쓰는 바쇼를 바라보는 장면이 새롭다.

 빨간색의 화려한 기모노를 입은 여우와 회색빛 기모노를 입은 대머리의 바쇼의 대비 역시 눈에 띈다.

 

 바쇼의 시 쓰는 자세는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도 있다. 옛 시를 읽으며, 새 시를 쓰는 것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 또 쓰고, 고치고, 낱말을 더하고 빼고 하는 것은 퇴고의 중요성을 말한다.  마지막으로는 마치 물이 흘러나오늣 머릿속에서 바로 나오는 경우, 이것은 아마도 새벽녘에 '뮤즈'를 만나는 것이리라.

 

그리고 좋은 시란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남들의 반응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나도 ' 내 먹을 것을 먹고, 내가 잘 만큼 자고, 내가 사는 대로 살면서, 내 시를 쓰며' 살아가고 싶다. 그러다가 영원히 남을

나만의 시를 쓰고 싶다. 

여름 달 위로 여우 꼬리 끝처럼 흰 산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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