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철학 - 모든 위대한 가르침의 핵심
올더스 헉슬리 지음, 조옥경 옮김, 오강남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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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멋진 신세계]를 읽으며 올더스 헉슬리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강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이번에 그의 필생의 역작이라고 불러도 좋을 [영원의 철학]을 구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원저는 ‘The Perennial Philosophy’인데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은 1945년이다. 이 책은 크게 두가지 면에서 놀라움을 주는데 그것은 참나를 찾고자 하는, 즉 영성의 본질을 직접 추구하는 동서양 현인들에게서 혹은 경전에서 기독교냐 아니냐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지혜의 글들을 모아놓았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70년이 지나가는 이제서야 뒤늦게 한국어판이 나왔다는 점이다.


비단 기존 종교내에서뿐만이 아니라 신앙이나 수행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있어서 혹은 삶의 본질, 나의 본성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영성은 핵심적인 단어이자 공부의 주제이다. 올더스 헉슬리는 그 영성의 본질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지식이나 현학적 자료로만 이야기하는 이들에게서 글을 가져오지 않고 성인들의 경전이나 직접 수행 등을 통해 영성의 핵심을 근원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에게서 글을 가져온다. 참나를 걷는 이들의 방법과 가치는 지역과 역사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그것의 핵심은 놀라울 정도로 공통점을 보여준다.


올더스 헉슬리는 [영원의 철학]을 통해서 서구의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등을 포함)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에서 이들 종교의 가르침이 사제나 신앙인들을 통해서 그 영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수되어 온 도그마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다. 또한 한 종교만이 한 사회에서 지배적인 가치가 되었을 때, 특히 그것을 타지에 폭력적으로 적용했을 경우의 ‘신학적 제국주의’를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누구보다 서구에서의 제도종교에 대한 역사적 진행으로 발생하는 매너리즘과 위험한 도그마에 대한 각성의 자료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동양은 특히 한국은 기존의 유불선에 기독교가 유입되며 다양한 형태로 번창하고 있는 상태에서 올더스 헉슬리의 이 책은 낯설기 보다는 영성을 어떤 식으로든 본질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공감을 많이 가져올 것 같다.


올더스 헉슬리는 [영원의 철학]을 통한 지혜로운 구절의 출처가 종교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는다. 또한 기독교냐 불교냐 무교를 따지지도 않는다. 다만 그 구절들이 현학적 지식의 나열이나 주변만 도는 것이 아니라 핵심에 접근했는지 혹은 영성의 본질에 합일했는지만 중점을 둔다. 이런 책은 이런 길을 본격적으로 걷는 이들에게 굳이 필요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이 현상들의 너머 핵심이 무엇인지를 다양한 현인들과 경전들의 구절을 통해서 접근해 갈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스스로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믿음이 허례허식과 도그마의 굴레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를 살펴보게 해준다. 더하여 스스로 신앙이나 종교가 없어도 양심의 본성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내면의 빛을 좀더 쉽게 접근하는 이정표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영원의 철학]은 자신이 현재 서 있는 내면적 위치(!)의 가늠자로 삼기에 충분하다.


이 우주에 진리-그것이 과학을 통해서 접근하든 종교를 통해서 접근하든 아니면 직접 체험을 통해서 접근하든-가 존재한다면 그것이 어디에는 적용이 되고 어디에는 안 되겠는가? 그러나 그 진리의 아름다움은 외형적으로는 백합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장미로 나타나기도 한다. 문제는 그 아름다움 이면의 본질을 헤아려보는 지혜의 눈을 뜨는 것이다. 이 지혜의 눈을 뜨는 시도를 게을리하게 되면 본질과 작용의 우선순위가 정리되지 않고 핵심적 주제와 주변적 언술들이 뒤섞여버리는 지식의 잡화상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시대는 많은 부분에서 그렇지만 지식에서도 풍요속의 빈곤 속에 있다. 거대한 서점과 도서관들, 인터넷의 자료들속에서 어떤 것이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진리로 가는 것일까. 기본적인 자세중의 하나는 지극히 상식적으로 출발하는 것이다. 내안의 양심(혹은 영성)의 가치를 믿고 그 선택을 존중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또 다른 말로는 임마누엘 칸트가 얘기했던 것처럼 밤하늘의 빛나는 별(외부적 진리근거)을 보는 동시에 내면의 도덕률(내부적 진리근거,양심)을 견지하면서 자신의 참나를 추구한다면 약간은 돌아가거나 시간은 걸릴지언정 결국 그는 가는 길로, 가야만 하는 길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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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물로 죽어서 식물이 되었네.

식물로 죽어서 동물로 태어났고,

동물로 죽어서 인간으로 태어났네.

왜 두려워해야 하는가?

죽어서 더 나빠진 때가 있었던가?

한번 더 인간으로 죽어서 축복받은 천사로 높이 솟으리.

그러나 천사조차도 지나가야만 하리라.

신을 제외한 모든 것은 사라지기에.

천사의 영혼조차 희생했을 때,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 되리니.

오, 내가 존재하지 않기를! 

비존재로 선언하나니,

"그분에게로 우리는 돌아가리라"


- 잘랄루딘 루미 / 올더스 헉슬리의 <영원의 철학> p.357 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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