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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희 - 난설헌의 사라진 편지, 제42회 여성동아 장편소설상 수상작
류서재 지음 / 파소출판 / 2020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허난설헌은 그녀의 시호 ‘난설헌’을 붙여서 부른 이름으로
본명은 허초희이다. ‘초희’와 ‘난설헌’이란 이름은 아버지
허엽이 손수 지어주셨는데 당대에 여자들에게 이례적인
일로 초희에게 ‘여자라서’란 이유는 통하지 않았다. 허봉의
표현으로 빌리자면 겉과 속이 같은 투명하고 거짓없이
참되었기 때문에 더 불행했던 성정이었다.
이 소설은 시대적인 배경에 대해 잘 묘사되어 있어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의 살아있는 생생한 설정으로 1500년대의
조선중기의 그림속에 들어가게 된다. 성리학의 예만을
중시하여 집단과 서열만을 중시하는 풍토가 만연해지는
상황에 고구려부터 이어진 선도사상의 중요성을 알고
이어온 허엽은 선도로 유불선 회통 삼아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자 했던 청렴결백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그의
사상은 허난설헌과 허균을 비롯해 아들에게로 영향을
미쳤다. 허균의 최초 한글소설 ‘홍길동전’에서도 볼 수 있듯
당시 조선의 모순을 비판하고 진보적인 역사의식을 가졌으며
조선 지식인 사회의 부조리를 대척점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동인과 서인의 대립의 구도에서 시회 ‘무륜당’
사건으로 인해 안동 감씨 김첨의 외아들 감성립에게
시집을 가면서 초희의 인생은 새로운 삶에 발을 들여
놓으며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고려와 조선중기까지
서옥제도라고 해서 사위가 여자집에 들어가 살며
일손도 돕고 데릴사위제의 역할을 했다면 선조 때
친영제도로 바꾸면서 여자들이 사댁에 들어가면서
나라에서 여자들이 부덕을 공부하고 따르기를 공표한다.
친영제도 1세대인 초희는 시댁의 가풍을 이어받기 위해
몸과 마음이 한 집안의 며느리가 아닌 노예로 전락하며
새장 속에 갇힌 새가 되어 시어머니 송씨의 냉대와 남편
김성립의 방탕한 생활에 지쳐가며 외로움과 싸우며
시로 마움을 달래며 1000편이 넘는 시를 남기지만
2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며 유언으로 자신의 작품을
다 태워줄 것을 남긴다. 신사임당과 다르게 혼인제도의
변화로 고려와 다른 조선만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고자
했던 선조의 의지대로 남성의 지위는 강화되며 아들을
얻으려는 문화가 깊숙히 자리 잡게 된다.
한편 불태우다 남은 시들을 비단에 싸서 문잡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한 하균은 중극 문사 주지번과 양유년을
찾아 시를 보여주고서 찬사를 받으며 ‘난설헌집’이란
유고집을 펴낸다. 임진왜란에 일본으로 건너가 유명해진
허초희는 중국과 일본에서 먼저 인정 받은 여류 시인이다.
15세에 원하지 않던 결혼과 함께 미풍양속이란 이름 하에
자행된 폭력에 당당하고 올곧은 초희의 심정은 공감하게
된다. 그녀에게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나 뛰어난 시격으로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었던 것이 형벌이 되어
그녀를 가두며 마지막 죽음에 다다른 모습에서
허난설헌에 대한 평가에 대한 많은 역사적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우리에게 역사란 삶의 지침서로 나를
들여다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여자란 이유 하나로
삶이 지난하다면 세상의 반이 여자안 세상이 온전하게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시는 그녀의 세상을 향한 사랑이었다고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