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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마음 - 썩어빠진 교육 현실을 유쾌하고 신랄하게 풀어낸 성장소설
호우원용 지음, 한정은 옮김 / 바우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같은 동네에 조카들이 산다. 밤늦게 회식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학원에서 나오는 조카들을 종종 마주친다. 볼 때 마다 축 쳐진 가방을 맨 조카 녀석의 등이 한 없이 굽어보인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되었는데 회사를 다니는 나보다 귀가 시간이 더 늦다. 복숭아 같은 두 볼을 가진 녀석의 무거운 가방 속에는 무엇으로 꽉 차 있는지 너무 궁금하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으로는 부족하여 사교육이 비대해지는 것이 한국의 교육 실정이다. 그 교육의 틀 안에서 우리 아이들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고등학교 다닐 적에도 하루에 8교시나 되는 공부 시간도 모자라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전교생이 자율적이지 않은 공부를 했다. 같은 내용물이 담긴 통조림에 같은 상표를 붙여 출고되는 것처럼 공부했다. 통조림 뽑아내는 기계처럼.
나는 호우원용이라는 대만 작가를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다소 무거운 주제인 교육을 다룬 대만의 이야기이다. 책 띠지에 “나는 머리가 아프고, 엄마는 가슴이 아프다.” 라고 써져 있다. 내용을 한 마디로 잘 정리해 놓은 글이다. 일률적인 교육의 틀 안에서 색깔 없이 자라라는 아이들의 시선,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뚜렷한 대답을 줄 수 없는 부모님의 시선으로 본 작품이다. 학생의 안중에도 없는 교육실정, 그 어쩔 수 없는 교육 속으로 내 아이를 넣어야 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아프고, 짐을 짊어지는 아이들의 머리는 아프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문제의 발단과 전개만 있을 뿐, 해답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교육 현실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바꿀 수 없어 현실에 순응해야만 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가슴이 답답했다.
잘못된 교육과 맞대응 하는 주인공 ‘정지에’를 통해 대만의 교육을 고발하는 호우원용의 신랄한 시선과 쉽게 읽히는 문체사용이 마음이 들었지만, 내용을 전개 하는데 있어 약간의 억지스러움이 아쉽다. 하지만, 아이를 가진 부모님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길 바란다. 그리고 교육에 대해 부모의 시선이 아닌 우리 아이들의 시선으로 한번 바라보고 위험한 마음은 누가의 마음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내 아이가 나와 선생님의 기대에 맞게만 자라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위험한 것인가? 자아를 찾기 위해 현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위험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