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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책 수업 천천히 깊게 읽기 - 교과서 대신에 책 한 권을 학생들과 천천히, 그리고 깊게 나누기
유새영 지음 / 지식프레임 / 2020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부럽다. 가능하다면 2000년 대생 어린이가 되어 슬로 리딩, 온작품읽기, 한 학기 한 권 읽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책 수업을 받고 싶을 정도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과감하게 교과서를 버리고 한 권의 문학을 온전하게 읽을 수 있도록, 문학과 삶이 교차하는 지점을 오롯하게 감각할 수 있도록, 문학과 삶이 교차하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내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유도하고 격려해 주는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더 폭넓은 시선과 태도로 삶과 문학을 다양한 층위에 놓고 탐구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 흥미로웠던 부분은 교실이 일종의 카니발적 광장(Carnivalesque Agora)으로 변모한다는 점이다. 카니발화된 교실에서 어린이들은 이데올로기의 억압에서 벗어나 일시적으로 자유를 누리게 되는데, 유새영 선생님은 슬로 리딩, 온작품읽기,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통해 한 번, 교육 연극을 포함한 다양한 예술을 접목한 통합 교육을 통해 또 한 번 교실을 카니발적 광장으로 변화시킨다. 비록 통제권을 지닌 성인-교육자의 재가[허락/승인]로 작게 분할된 카니발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교실을 지배하는 위계 구조는 유지되나, 카니발이 벌어지는 동안에는 교육자도 학습자도 모두 ‘배우’가 되어 나이, 성별, 지위, 계급 등에 따른 위계적 불평등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자유롭고 친숙하게 교류한다는 점에서 카니발화된 아동문학을 활용한 카니발화된 교육은 기존의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수업 모델을 대체할만한 긍정적인 수업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각종 매체로 접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유새영 선생님의 수업은 카니발적(carnivalesque)이다. 권위적이고 강압적이어서 모두가 실패했고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라 단언하는 공교육의 틀 안에서 유새영 선생님은 어린이들의 동료 독자이자 조력자, 보호자가 되어 일시적으로 카니발을 재가한다. 카니발을 재가하기 위해 유새영 선생님은 간단한 연극 기법을 적용하여 어린이들보다 먼저 카니발적 인물로 분한다. 교육부 장관이 되어 “‘자율 방과 후 클럽 의무화’ 정책”(93쪽)을 펼치거나 보건당국 책임자가 되어 어린이들을 “보건당국 요원으로 임명”(243쪽) 하고,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제균청소포”를 나누어주며 “교실에 있는 바이러스와 세균을 제거하는 작업”(243쪽)을 진행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는 간단한 연극적 기법과 함께 어린이들의 눈앞에서 생생하게 연출된다. 교실 문을 열고 복도에 잠깐 나갔다가 시간차를 두고 교실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교실로 되돌아온 선생님은 교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간’ 선생님과 동일하지 않다. 재킷이나 안경, 라텍스 장갑과 같은 소품을 이용해 작은 변화를 줌으로써 선생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주도적이고 독립적인 교육자:수동적이고 의존적인 학습자로 양분된 페다고지적 관계가 고착화된 교실의 시공간은 카니발적 시공간으로 변모한다.
카니발이 벌어지는 동안 일상을 지배하던 공식적이고 권위적인 질서와 가치, 규범, 금기는 사라지고, 나이, 성별, 계급, 지위 등에 따른 불평등은 일시적으로 파기된다. 성인/아동, 교육자/학습자로 구분되던 선생님과 어린이들은 카니발화된 교실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공식적인 이름이나 지위가 ‘아닌’ 상대방이 선택 혹은 변장한 인물의 이름이나 별명으로 서로를 호명하며 자유롭고 친밀하게 교류한다. 이는 어린이들이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를 현실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어린이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카니발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93) 알고 있다. 심지어 자신들에게 주어진 카니발이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서 일시적으로 벌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니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이유는 가면을 쓰고 분장을 했을지언정 가장 ‘나답게’ 있을 수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몇 차례의 경험으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어린이들은 문학 작품 속 인물의 이름과 상황을 빌려 성인이 강요하는 규칙을 지키는 동안 억눌러야 했던 욕망을 표출한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 지점이다. 유새영 선생님의 ‘맛있는 책 수업’을 듣는 어린이들이 어린이 문학 작품 속 인물을 통해 간접 경험한 카니발을 현실 층위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 어린이 문학에는 마법적인 능력 없이도 성인이 지닌 권력을 전복하는 어린이 인물이 등장한다. 현실의 어린이 독자들은 일시적으로 성인의 권력을 전복하고 일탈과 해방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어린이 인물의 모습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자신이 미처 드러내지 못한 욕망과 성인 규범(adult normativity)에 의해 억압되거나 부정되어 왔던 타자성(otherness)을 발견할 기회를 획득한다. 유새영 선생님이 교실에서 재가한 카니발은 어린이 문학 내부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느슨하게 빠져나오기 시작한 어린이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욕망과 타자성을 탐색할 자유, 욕망을 발산하고 타자성을 긍정하거나 보완할 자유, 내면에서 발견한 타자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할 자유를 허락한다. 이토록 다양한 작품과 매체, 예술 갈래를 활용한 통합 교육의 끝에 존재하는 것은 획일화된 교육 과정 때문에 타자성이 억눌린 어린이가 아니라 내면의 타자성을 발견하고 성장의 가능성을 획득한 어린이다.
물론 “어떤 책을 어린이들 손에 건네주어야 할”(308) 지 고민하는 건 교사, 강사, 보호자 등을 모두 포함한 양육자의 몫이다. 이전에도 지금도 대부분의 양육자들이 스스로 책을 읽으며 동시대성과 문학성, 유희성을 골고루 지닌 작품을 큐레이션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양육자들이 “직접 읽어보”(311)며 어린이들과 함께 읽을 책을 추려냈으면 좋겠다. 양육자로서가 아닌 동료 시민이자 동료 독자로서. 교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학 안에서만이라도 자유롭게 뛰어놀며 위로를 받고 자기-자신을 탐구할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이 슬로 리딩, 온작품읽기,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시작하려는 교사들뿐만 아니라 몇 차례 진행한 바 있는 수업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고 싶은 모든 교사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여기에서 교사들이 행하는 교육을 엿보고 확신을 얻고 싶은 모든 양육자들에게도 미약하게나마 신뢰와 희망, 도움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