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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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동안 뇌졸중과 그 후유증으로 병원...집...중환자실...집...을 오가는 경헙을 주기적으로 하게 해 주었던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키기로 결정한 날부터 내 우울증은 다시 시작됐다. 
그 우울의 와중에서 읽은 구경꾼들 

처음엔 이 무슨 동화적인 설정이람....
세상에 이런 가족 구성원들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
의식의 흐름도 아니고 이런 난삽한 나열은 또 뭐야....
김도언의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를 읽다가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그 존재의 찌질함에 가슴이 답답해져 중간에서 읽기를 멈춰버려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고는 절대로 홍상수의 영화는 보지 않으리라고 다짐할 정도로
내 현실의 삶이 어둡고 갑갑하다고 느끼고, 게다가 그 삶의 찌질함을 누군가 그러하다고 보여주는 순간
진짜 현실로 확정이 되어버릴 것 같아...
그런 류의 느낌-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영화나 소설은 애써 피해온 것이었는데 
여기서 또다시 다른 방법으로 그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위기를 만난 것이다.
동화적 설정으로 동화적 이야기를 나열하면서 니 삶은 찌질해...라고 손가락질할 것 같은...

이 소설 속에서 작가는 여기서 나열된 모든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들이라는 식으로 인물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있는 내내 현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 시선 때문이었다는 것을 200쪽쯤 읽고 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나열된 모든 이야기들은 카메라를 통한 것들처럼
혹은 앨범에 순서없이 끼워진 사진들을 보고 있는 것처럼
담담하게 서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슬품, 안타까움....이런 감정의 깊이는 의도적으로 사진 뒤편으로 숨겨두고
그냥 사건만 있고, 행동만 있고, 이야기만 있다.

240쪽 쯤을 읽고 나서야 감겨 있던 눈이 열리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아버지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키고 마음으로는 우울해 하지만
밥도 잘 먹고, 직장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있고, TV도 보고....
우리의 삶이란 것이 희로애락에 얽인 사건들로 가득하지만
결국 그것들은 사건일뿐, 나는 그리고 모든 우리는 그 삶이란 사건의 구경꾼이라는 것 아닐까

유혹을 이겨내는 나이를 넘어 하늘의 명을 아는 나이에 가까워 갈수록 더 내 인생에게 미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소설읽기는 참 쉽지 않다. 나의 도서목록에도 소설이 많지 않다.
나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까봐 두렵고, 
나를 확인하게 될 것 같아 기분 나쁘고,
그것이 나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것 같아 무섭다. 

하지만 구경꾼들은 나를 다독인다. 원래 그런거라면서, 누구나 다 그런 거라면서
이 소설은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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