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작년인가부터 속을 알 수 없는 오묘한 태도로 멀지도 가감지도 않은 허공을 바라본다.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한 아득한 표정 속에 홀로 머문다. 그러나 이번의 혼자는 내게 무척 익숙한 그 혼자, 얼굴을 냉소적이고 불행한 가면으로
만들어 그 뒤에 숨거나 당신의 아픔과 실망을 하염없이 헤아리고 있을 때의 혼자와는 다르다. 이 혼자에는 슬픔이 아닌 온화함이 깃들어 있다. 호기심과 흥미는 있어도 자기연민은 없다. 엄마의 눈이 가늘어진다는 건 엄마가 이미 아는 것을 조금 더 명확히 보고 싶어한다는 것. 이제껏 살아온 삶에 집중하고 싶어한다는 의미다. 엄마는 진실을 알려준 꿈에서 깬 것처럼 몸을 흔들면서 말한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삶을 살 권리가 있지." 엄마는 나직하게 말한다. - P95
시티칼리지도 포위엔 일가견이 있었다. 다만 그 대상은 지성이 아닌 무지였다. 순수한 의도로 보면 약속의 땅으로 통하는 유일한 여권처럼 보였던
‘시티칼리지‘는 알고 보면 진정한 침략자였다. 그곳은 엄마와 네티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격동을 불러일으켰고 나를 두 사람 모두에게서 떼어놓았으며 내 머리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삶을 심고 영양분을 주어 나를 반역자로 길러냈다. 나는 내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으나 더 이상 거기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시티칼리지에 다니는 학생 대부분이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공강 시간이면 익히 아는 거리를 걷고 매일 저녁 익히 아는 동네로 돌아가 고등학교때 친구와 만난 다음 자던 침대로 들어가서 잔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머릿속 세상 안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머리가 읽고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은 부모나 집에서의 생활, 그 익숙한 거리의 삶과 철저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속으로 숨기는 생각과 겉으로 표현하는 생각의 차이를 처음 소개받았고 하나씩 익혀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각자의 집안에서 불순분자가 되어갔다. -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