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반조 > «어우야담» 번역논쟁을 지켜보며

먼저 한겨레신문 지면과 웹상에서 벌어졌던 «어우야담» 번역논쟁 기사를 연결한다:

이 논쟁의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개인적인 소감을 덧붙히고자 한다. 이 논쟁은 이상수 기자가 최근에 신익철 교수 외 3인이 번역한 유몽인의 «어우야담»(돌베개, 2006년 11월 출간) 서평기사에서 시작되었다. 이상수 기자는 서평에서 «어우야담»을 흥미롭게 소개한 뒤 번역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짤막한 평을 덧붙였다:

옮긴이들은 서로 다른 판본 27종을 견주어 <어우야담>의 원문에 표점과 교감 내용을 덧붙여 별책으로 묶었고, 본문 속에 나오는 동아시아 인물들에 대한 꼬마 사전도 덧붙였다. 독자들은 비로소 우리 고전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 번역을 만난 셈이다. 그러나 번역문 가운데 수장(水漿), 상식(上食), 임모(臨摹) 등 이미 죽은 옛말들을 풀이말도 없이 그대로 드러낸 건 아쉽다. 민간에 발을 깊게 담근 유몽인의 민중지향 정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또 중국을 ‘상국(上國)’이라 쓴다거나 ‘우리나라 말’을 ‘방언(方言)’이라고 옛말 그대로 옮긴 건, 연구자가 현대 한국인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 [서평] 야사와 괴담으로 읽는 조선시대 /이상수

이 평에 대하여 신익철 교수와 출판사측이 서평이 적절하지 않다는 전화·메일을 했고 신익철 교수는 독자의견란을 통하여 짤막한 반론을 개진했다. 이러한 반응에 대하여 이상수 기자는 지면 한계상 서평에서 건드리지 않고 넘어갔던 것을 지적했다. 그는 두 군데의 명백한 오역을 지적하면서 한국학계의 고전 주석의 수준이 아직은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물론 주요 논쟁사항은 “상국”과 “방언”의 번역 관련 문제인데 이 문제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므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신익철 교수는, 아래의 인용문처럼, 오역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 오역된 사항을 빌미로 이상수 기자가 과도한 판단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역자들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번역자들이 어떤 <장자> 주석서든 아무 것이나 하나만 뒤적여봤더라도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었음에도 그런 수고조차 게을리 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라거나, “아는 것은 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모르는 것은 의미가 통하지 않는 대목 그대로 남겨두는 학자적 양심이 무엇보다 요구된다.”라는 이 기자의 지적에 대해서는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 [재반론] 이상수 기자의 지적에 대한 답변 /신익철

그러면서 신익철 교수는 이 번역본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 탄생하였으며 얼마나 수고를 기울였던 것인가를 주지시키면서 우리나라의 열악한 번역풍토마저 환기시켰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번역이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에 내맡겨져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고전 번역을 체계적으로 점검하며 지원하는 시스템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주요 고전에 대한 교감을 수반한 수준 높은 번역을 수행하기 힘들게 하며, 우리의 번역 수준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신익철)

이에 대하여 이상수 기자가 지난 2월 6일 마침내 심중에 품고 있던 칼을 뽑았다. “옛글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것인가” 하는 대단히 깊고 풍요로운 제목의 반론이었다. 그는 “아는 것은 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모르는 것은 의미가 통하지 않는 대목 그대로 남겨두는 학자적 양심이 무엇보다 요구된다”는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지기 위하여 그 발언에 걸맞는 대목들을 지적한 뒤, 인문학자가 갖추어야 할 근본적인 자세를 언급했다. “인문학은 굶어죽을 각오로 하는 학문이다”, “국가 쳐다보지 말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道)가 존중받지 아니한다”는 소제목 아래의 글이 바로 그것이다. 인상적인 대목 몇 군데를 읽어보자:

우선 나는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 국가가 뭘 해주길 바라며 그쪽을 자꾸 쳐다보는 데 대해 좋게 여기지 않는다. 국가가 하는 일은 무엇을 하든 그건 결국 국가의 사업이다. 언제 어느 곳에 존재했던 국가가 진정한 인문 정신의 발양을 위해 투자했던가? 어떤 계몽군주의 위대한 발자취도 결국은 군주와 통치자들의 치적을 위한 사업일 뿐이다.

물론 나는 국가의 예산 가운데 좀더 많은 부분을 인문 분야로 돌리도록 하는 데에는 적극 찬성한다. 그거야 당연히 나쁠 게 없다. 그럼에도 인문학을 한다는 행위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무관하다. 국가가 돈을 주든 말든, 누가 알아주든 말든, 높은 평가를 해주든 말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가장 기초적인 태도라고 나는 믿는다. 그게 좋아서 인문학을 하는 게 아닐까.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는 채. 사실 난 국가가 제대로 된 인문학 연구를 악랄하게 방해하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국가가 쓸데없이 나서서 간섭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

나는 굶어죽을 각오로 하는 게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대학에서 오라고 해도 가지 않고 안경알을 가는 걸로 생업을 삼다 폐병 걸려 죽었고, 인문학의 정신과 같은 맥락의 치열한 삶을 살았던 모차르트도 고흐도 살아생전엔 아무런 영화도 누리지 못하고 가난뱅이로 비참하게 죽었다. 그러나 그런 죽음도 작은 일이다.

— 옛글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것인가 /이상수

이상수 기자에게 존경을 표한다. 한겨레신문에 이토록 동양적 깊이를 갖춘 기자가 있다니 놀랍다. 아마 신익철 교수가 반론을 시작하면서 이상수 기자의 학문적 깊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4인의 학자가 6년 간 공들여 번역해낸 노작을 일개 기자가 촌평했다는 사실이 불쾌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기자는 그저 흔한 일개 기자가 아니라 «어우야담»의 번역본을 누구보다도 면밀하고 예리하게 비평할 수 있는 역량의 기자였다. 신익철 교수는 이상수 기자에게 의외의 일격을 당하면서 다음의 말을 했다:

이 기자가 <장자> 인용문 중 오역임을 밝힌 것은 두 대목이다. 177화 ‘한유의 교묘한 글 솜씨’와 231화 ‘정호음과 어숙권의 박식함’ 중 <장자>를 인용한 대목의 해석이 그것인데, 여기에 오역이 있다는 것은 정확한 지적이다. 나는 겸허하게 이 지적을 수용하며 이 기자의 박식함에 감탄하는 바이다.

— [재반론] 이상수 기자의 지적에 대한 답변 /신익철

그러나 나는 그것에 감탄하지 않는다. 그것은 학자의 기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갖고 있지 못한, 글의 폭과 깊이에 맞추어 자신의 모습을 은연히 조금씩 드러내는 이상수 기자의 인간적 깊이에 감탄하는 바이다. 그리고 인문학자의 근본자세에 대한 그의 일갈은 두고두고 음미할 만하다. 아울러 그는 이 논쟁 때문에 혹시 독자들이 번역본의 수준을 오해할까 염려하여 다음의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신 교수 등 연구자들이 6년 광음(光陰) 피와 땀으로 옮긴 <어우야담>을 한 권 사서 서재에 모셔두길 권유한다. 한국 인문학의 진일보를 위한 발전 기금을 낸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책 디자인도 그지없이 세련됐고 장정도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논한 건 좀더 나은 번역을 위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내용을 얘기한 것이다. 독자 제현들의 혜량(惠諒)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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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드팀전 > 베토벤집에 불이 났다.

갑자기...홀연이...창졸간에...뜬금없이...베토벤 전집 폭풍이 불었다.엄청난 양에 엄청난 가격이다.

대략 40-60장의 베토벤 CD를 석장 정도 가격에 얻을 수 있다니....길거리에서 파는 리어카표도 아니고 기존의 주요 클래식 레이블의 폭탄공세다.연주자들은 이름없는 야인들이 아니다.클래식 듣는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는 1류 연주가들이다.

도대체 어째 이런일이 생겼을까?

아무래도 CD의 시대를 접고 PC음원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한번 쎄게 팔아보자는게 아닐까 추측해본다.음반 매장에서 선주문 받고 있는데 대략 입고일들은 3-5월이다.관심있으면 미리 주문해야 할 듯


독일 카스카드 레이블는 레코드 총수는 가장 많다.무려 87장 ,가격도 그중에는 비싼편 9만원대다.87장을 9만원이라하는데 비싸다고 하다니 써놓고도 좀 이상하네.거의 모든 베토벤의 곡,베토벤의 600여곡이 수록된다.헬무트릴링,미하엘 길렌 등 베토벤의 본거지 독일을 중심으로 연주단체들이 구성된다.대략 4월쯤 수입예정이다.

대표적인 메이저 클래식 EMI에서도 50장 짜리 콜렉션을 내놓았다.이건 3월쯤 입고예정이고 가격은 CD3장 가격.대략 6만원 안팎일 듯하다.(근데 이건 4장 가격에 가깝다)

음원들은 과거 EMI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음원들이다.

 클뤼탕스,오이스트라흐,바렌보임,리히터 등이 포진해 있다.이미 명반으로 소문이 나있는 음원들도 다수 포함된 듯 하다.

EMI시리즈는 모차르트,슈베르트도 이 시리즈로 내 놓았다.

 

 

 소니 BMG에서는 60장으로 콜렉션을 만들었다.가격은 6만원대.EMI보다 10장 많다.EMI보다 녹음은 최근 음원이 많고 지명도는 조금 낮은 연주자들이다.그러나 이건 상대적인 것 뿐이다.현역들의 음원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

선수들 볼까...상대적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걸 낮은 지명도라고 이야기하니 참 어색하다.

안너빌스마,요요마,데이빗 진먼,쿠르트마주어.....

결국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내 판단 기준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베토벤 음반과 겹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뭐 이런 정도의 생각이다.

아무거나 택해도 억울한 건 없을 듯 하다.^^ ....솔직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그냥 사라 !! 클래식을 잘 안듣는 사람도 몇 장은 꺼내서 들어볼 때고 그리고 장식해놓아도 3장 가격 이상의 데코레이이션 효과가 있다.클래식 자주 듣는 사람은.. 이거 언제 다 듣나나 고민하면 된다.

^^...그러고 보니 베토벤 사진이 전부 똑같네.비극적 영웅을 닮은 베토벤.낭만적 영웅 신화로 태어난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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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드팀전 > 성조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 - 8.15에서 5.18까지
박태균 지음 / 창비 / 200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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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내게 다가왔다.

흑백 TV 앞에 앉아 있던 나는 실내 안테나를 이리 저리 돌렸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던 주사선을 줄여야 했다.토요일 오전,10시. TV에서 애국가가 끝나면 나는 미국으로 초대되었다.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미국 만화들.한국 TV가 주말의 웃음을 제조하기 위해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시간,AFKN은 심심해할 미 8군 아이들과 한국 아이들을 위해 만화를 융단폭격했다.영어를 알아 듣지 못한 것은 답답했지만 그다지 큰 장애는 아니었다.미국 만화가 끝나고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나올 때 까지 TV를 붙들고 있었다.나는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듣기 좋았다.축축 처지는 애국가보다 행진곡 풍의 멜로디가 흥겨웠고 노래 아래 깔린 그림들은 더욱 멋졌다.미국 독립전쟁 그림,탱크와 비행기의 행진 장면,자유의 여신상,러시모아 국립공원의 큰 바위 대통령얼굴,달에 착륙한 암스트롱....  나중에는 피아노 건반으로 그 멜로디를 누를 수도 있었다. "솔미도미 솔 도.. "

<우방과 제국,한미관계의 두 신화>를 읽다가 처음 떠올랐던 것이 내가 미국과 처음 만난 기억이었다.<한국전쟁>에서 대중적이며 균형감 있는 역사서를 선보였던 박태균 교수의 책이다.이 책의 제목은 저자가 한미 관계사를 바라보는 지향점을 명백히 보여준다.우리 사회는 미국을 둘러싼 두 가지 '신화'가 있다.하나는 미국을 동맹을 넘어 '혈맹'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며 다른 하나는 미국을 '제국주의 식민 모국'으로 보는 신화이다.전자는 수구보수 세력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가치이다.후자는 80년대 사회구성체논쟁에서도 시각차가 존재했을 정도로 주요주제였으나 지금은 그런 식의 도그마화된 규정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물론 아직도 실제로 그렇게 믿지도 그렇게 분석하지도 않으면서 '미제'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그저 레토닉이나 배설의 언표 정도로 받아 들이는 편이다.

저자는 한미 관계를 '동태적' 관계로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미국의 세계 전략이라는 작용과 한국의 대응이라는 반작용의 틀 속에서 한미관계를 보고 있다.박태균 교수는 한미 관계가 정상적인 두 국가 사이의 외교 관계를 넘는 '특수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이러한 '비정상성'의 외부적 요인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세계전략을 한반도에 강요한 것이 첫번째 원인이다.내부적으로는 역대 정권의 '비정통성'을 들고 있다.정권의 창출의 정통성 부재와 정권 내부의 불안정성을 외부의 힘에 의존해서 풀어나가는 방식들이 한미관계의 특수성을 만들어 내게 된 조건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는 한미관계를 몇 가지 모델로 설명한다.먼저 미군정시기의 한미 관계는 제국과 식민지 관계로 규정한다.미 군정기는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면 처음으로 만나는 시기이다.내가 대학들어가서 현대사를 공부하며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부분이 미군정기부터 한국전쟁 까지의 시기였다.특히 모스크바 3상회의와 신탁통치안에 대한 이야기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과 너무 달라서 충격적이었다.고등학교때는 '민족주의자들은 반탁,소련의 사주를 받은 공산주의자들은 찬탁' 으로 배웠다.물론 이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스크바 3상회의의 전체적 견해와 신탁통치안의 현실성에 대해 일방적으로 앞뒤 꼬리떼어낸 것이었다.당시 동아일보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를 특종했다.그리고 한국 언론사에 길이 빛날 왜곡보도를 한다.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는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미국은 즉시 독립주장,소련의 구실ㄹ은 38선 분할점령'이라고 기사를 작성한다.이어서 12월 28일 조선일보는 박스기사를 통해 '독립전쟁을 시작하자'라고 선동한다.

<우방과 제국>도 모스크바 3상회담과 신탁통치에 대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남한 내에서 좌익과 중도세력이 우의를 점한 상태에서 미국은 신탁통치에 긍정적이었다.우선 한국인의 자치 능력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또한 중국 국민당이 우세한 45년 상황에서 미소영중이 신탁통치를 하면 자유주의 세력이 숫자적 우위를 구성하고 한반도 내에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었다.미국은 남한 사회내에서 우익 세력을 양성하고 좌익 세력에 탄압을 가하기 시작한다.문제는 김구를 필두로 한 우익세력이 미국의 신탁 통치에 적극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한국 내 보수세력 강화를 위해 뒤늦게 귀국시킨 임정이 중심에 있었다.미국 입장에서는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힘을 실어야 하는 우익에서 미국의 전략에 반대하고 나섰기때문이다.결과적으로 미소공동위원회는 성과를 얻기 힘들었으며 남북이 각각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박태균 교수는 이 사건을 미군정이 한반도내의 내부적 정치 역동성에 전략을 바꾸게 된 첫번째 사안으로 꼽고 있다.

모스크바 3상회의를 필두로 한미 관계는 끊임없이 갈등한다.미국의 대외전략이 케넌의 '봉쇄정책'과 이후 니츠의 '전방위적 봉쇄정책' 등에 따라 수시로 발생한다.미국의 기본적 전략은 일본을 지키기 위한 한반도 개입이었다.미국은 소련의 핵실험 성공과 중국 공산화를 견제하는 교두보로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미국은 50년대 이승만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과 북진정책에 이승만 제거 계획까지 고려한다.아이젠 하워의 정전 협정 조기추진론에 지속적으로 반대되는 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이다.4.19 당시 미국의 관망은 미국의 한반도 내에서의 기본 입장을 보여준다.즉 미국은 제 3세계 정책을 펼때 민주주의와 반공독재 사이에서 고민한다.미국은 이 두마리 토끼를 쫓지만 국민들의 반대로 더이상 독재정부가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이 들때 미국은 민주주의의 손을 들어주게 되지만 그 전까지 한국의 독재체제는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유지된다.

60년대 미국의 대외정책은 로스토우에 빚지고 있다.근대화론으로 대표되는 로스토우의 논리는 경제성장을 통해 체제 우위를 점한다는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도 양보될 수 있다고 본다.특히 로스토우의 논리중 관심이 가는 부분은 저개발국가에서 과도기적 단계를 효율적으로 거치기 위해 군대를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보았다는 것이다.마치 5.16 군사 쿠데타를 예견하는 듯 보이는 이론이다.

이 책에 나오는 5.16 군사 쿠데타 부분은 마치 정치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 진지하다.쿠데타를 제압하겠다는 유엔군 사령관과 미국 대사,'올것이 왔다'이를 계기로 정계 개편을 꿈꾸는 윤보선 대통령,쿠데타 상황에 대처해야함에도 숨어버린 장면 총리, 윤보선을 권좌에 계속 두면서 쿠데타정권의 도덕적 정당성문제를 넘어가려한 미 국무부.박태균 교수는 3,500명으로 성공한 쿠데타의 뒤에 미국의 역할보다 한국 정치인들의 무능이 있다고 지적한다.

60년대 중반이후  한미관계의 중심은 '베트남전 파병'이었다.60년대초 권력 기반이 아직 불안했던 박정희는 쿠데타 주체세력과 미국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절대권력의 위치에 오른다.박정희는 전세계 여론과 무관하게 베트남에 전투병 파병을 시작하면서 미국과 특별한 관계임을 부각시키고자 한다.박정희가 전투병 파병을 강행하게 된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하면 첫째 한일협정 체결로 인한 국내여론 악화의 돌파구였다는 점,둘째 64년 주한미군과 한국군 감축계획에 대한 반대,셋째 베트남 특수를 통한 경제활성화 등이다.한일협정을 계기로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역할론이 어느정도 현실화되고 있다고 본 미국은 주한미군과 한국군 감축을 주도한다.이승만이 동남아시아 파병론을 내세웠듯이 박정희도 베트남 전투병파병론으로 이 상황을 돌파하려한다.미국은 베트남전이 장기화되어가면서 국내여론과 재정압박에 고민하게 된다.결국 한국군을 이용하는 것이 비용면에서도 또 아시아국가의 참여라는 홍보용으로도 적당했다고 본 것이다.미국은 기본적 한국군 파병에 대한 비용을 감당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런데 박정희는 이것을 주도권 확보로 보고 미국의 마지노선을 넘는 무리한 요구를 시작한다.요즘말로 하면 오바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68년 1.21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사건과 푸에블로호 사건은 한미관계를 급격히 냉각시켰다.영화 <실미도>가 그 당시 박정권 내부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박정희는 대북 보복공격에 대해 고려한다.또한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해결을 위한 미북간 비밀협상에 배제된 것에 분노를 표한다.멀리는 베트남의 늪에 빠져있고 가까이는 선원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곤란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한국이 베트남을 빌미로 '벼랑끝 전술'을 쓰고 있다고 파악한 미국은 '너희들이 베트남에서 군대를 철수시키겠다면 우리도 남한에서 미군을 빼내겠다.'라는 상황까지 이르게된다.당시 미국은 북한을 통제하는 것보다 남한을 통제하는데 훨씬 많은 공을 들인 형태가 되었다.박태균 교수는 파병문제에 있어서도 우리정부의 전략이 오판이었음을 지적한다.

70년대 닉슨독트린과 지미 카터의 데탕트 시대에도 미군 철수론이 등장한다.박정희는 또 한번 벼랑끝 전설울 쓴다.핵을 보유하겠다고 선언하고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맛이 간 민족주의자들은 이 시점을 한국의 위상을 당당히 보인 것이라고 아직도 그리워한다.한때 신문광고 해대던 <무궁화꽃>인지 뭔지도 그런 내용아닌가 싶다.최근에 북핵이 문제되니까 김정일을 감금하고 밥‚–기는 소설도 하나›㎢?광고한다.소련과 군축도 논의대고 개입전략보다는 현상유지전략을 택한 미국이 이걸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그러고 보니 30년정도의 시차를 두고 미국은 남한핵문제와 북한핵문제를 다루고 있다.핵을 둘러싼 아이러니다.

<우방과 제국>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점은 한미관계사를 신화의 틀에서 보지말고 '동태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또한 수구언론이 즐겨쓰는 '한미동맹강화'라는 것이 지난 역사에서 그렇게 순탄치 않았음을 그리고 또 보편적인 상황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다.한미관계는 출렁이는 바다처럼 단 한번도 평온했던 적이없다.그럼에도 마치 한미관계를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인양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저자는 한미관계의 갈등원인이 미국측에 있음을 우선 밝힌다.무리한 세계전략을 추진하는 제국이 가진 한계이다.또한 한국정부의 부적절한 대응도 지적된다.일부에서 이 부적절한 대응을 '민족주의'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반대한다.결코 민족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된 적은 없다는 것이다.그 때 그 때 정권차원의 안보가 중심이었던 것일뿐이다.마지막으로 한국민들 사이에 미국에 대한 신화가 지적된다.한국 사회의구성원들은 한국과 미국 사이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당연히 받아들인다.거기에는 '사회진화론'이 자리잡고 있다.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우리가 이라크에 젊은 이들을 보낼때도 파병론자들의 논리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이 그것이었다.파병에서 어떤 특수를 얻을 수 있을까? 못해도 미국과의 관계가 좋아질 테니 떡고물은 있겠지? 그걸 현실론으로 받아들이고 그 토대 위에 논리의 탑을 쌓는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봐왔다.그리고 그 논리의 현실적 이득과 그 논리의 기계적인 정합성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경우도 많이 봐왔다.어떤 이득이고 어떤 평화이고 어떤 국가인지가 중요한 것 아닌가? 논리의 토대가 인류애와 평화에 있지 않다면 그 많은 삼단논법과 통계수치,미래 예측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스스로 억압하는 또는 억압받는 민중임을 알고 그 땅 위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걸 잊고 멋진 이론과 논리와 통계로 무장한 자신을 엘리트라고 착각하지 말아야한다.

<우방과 제국,한미 관계의 두 신화>는 정치외교 영역에서 한국에 늘 존재하는 미국을 보여준다.이것과 함께 우리의 일상성 속에 우리의 문화 속에 ..유행하는 말로 우리의 '아비투스'속에 존재하는 미국은 또 어떤 것인지 고민해보게된다.

P.S) 이 책은 대중적 역사서를 지향한다.약간의 관심만 있다면 아주 빠른 속도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마치 <제3공화국><제5공화국>하는 정치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진진하다.책에는 8.15부터 5.18까지 한미관계사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80년대 부분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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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 > 주마"관"산으로 뒤적이기 (70) : 유영모와 태권브이

어쩌면 내가 다석에 대해 실망하게 된 것은 그만큼 큰 기대를 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기대한 만큼은 물론이고 실망할 만큼도 숙독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는데, 어쩌면 다석의 "진미"를 알기도 전에 내 관심사가 아예 그쪽에서 멀어진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긴 이제 와서 다석이면 어떻고 일석이면 어떻겠는가. 내게는 별로 상관 없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문득 책장에 있는 <다석 유영모 어록>을 꺼내 뒤적뒤적하다가 다음과 같은 대목을 발견했다.

  • 나는 예수, 석가를 좋아하고 톨스토이, 간디를 좋아한다. 그런데 예수를 좋아하다 보니 예수의 이름에서 이러한 생각을 얻었다. 예수의 '예'는 여이가 합하여 예가 되었다. 예는 곧 여기다. '수'는 재주의 능력이다. 할 수 있느냐의 수가 바로 능력이나 재주를 말한다. 여기의 이 재주와 능력이 예수다. 나의 매 손가락에 위로부터 내려오는 재주와 능력이 있다. 위로부터 한량없이 내리는 수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이어진다. 하느님께서 손수 내리는 그 힘이 지금도 자꾸자꾸 내린다. 한없는 능력이 이 손끝에 내리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람의 손은 하느님이 잡고 쓰시는 붓이다. 이어이어 내려진 그 능력이 예수와 나를 이어지게 한지도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절대자에게 이어져서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모양은 같다고 생각된다. (143쪽)

근데 솔직히 "예수"라는 이름을 "여기의 이 재주와 능력"이라고 해석한 것은 나름대로 흥미로운 언어유희일지는 몰라도, 원래 "예수"라는 이름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 해석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러니 결국 이는 다석 개인의 자의적인 해석이요, 달리 말하자면 억측일 수밖에 없다. 나로선 이 대목을 접하는 순간, 이전부터 일종의 "다석 르네상스" 현상을 지켜보면서 품었던 의구심이 한층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즉 지금이야 너도나도 "독창적인 우리말 사상가"니 "시대를 앞선 인물"로 추앙하는 다석의 사상에 대한 평가는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는 의구심이었다. 물론 다석이 특이한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그의 시대에나 지금 시대에나 그와 같이 살다 간 사람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이 독특하고 그의 인격이 고매했다고 해서, 그의 사상조차 대단한 것으로 한꺼번에 추켜세워지는 것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이른바 "다석 르네상스"에는 다석이란 인물의 "삶"과 "사상"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신비화와, 또한 이른바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우리 것"을 찾고자 하는 앞뒤가 전도된 열성이 없지 않음을 지적하고픈 것이다.

오해의 여지가 없지 않겠지만, 나로선 다석이 과연 "보편적인 사상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해 "칸트나 헤겔" 급의 사상가가 될 수 있느냐는 거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다석을 잘 모르는 것만큼이나 칸트나 헤겔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리고 굳이 칸트와 헤겔을 들먹인 것은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보편적인 사상가"의 대표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감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들먹일 수 없었던 고충을 이해하시라.) 물론 한국인인 우리가 보기에 칸트와 헤겔의 사상이 "보편성"을 띠게 된 데에는 이른바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맥락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두 사람의 사상이 어떤 "외적 요소"에 의해 그토록 각광받았던 것이라면, 과연 지금과 같은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가? 철학사를 뒤져 보면 칸트와 헤겔 사이에도 당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그리고 중요하게 평가되었던 사상가는 얼마든지 있었다. 어쩌면 칸트와 헤겔 역시 그런 숱한 사상가들 가운데 한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보편적 사상가"가 되었고, 나머지는 한때의 유행으로 잊혀져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단순히 어떤 철학 "외적 요소", 그러니까 요즘 하는 말로 서구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라든지,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라든지, 또는 (헤겔의 경우) 마르크스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소산이라고 일축할 수 있을 것인가? 꼭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약 두 사람의 사상에 있어 어떤 "보편적 관심"을 일깨워주는 요소가 없었더라면, 이들의 사상 역시 일회적이고 당대적인 것으로 끝나버렸을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의 사상이 처음부터 끝까지 "옳은 소리"만 들어차 있는 것은 아니었고, 분명히 시대적이거나 개인적인 한계도 지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두 사람의 사상이 다른 시대, 또는 사상에 비해 뭔가 탁월한 면을 지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다석은 어떨까? 다석은 흔히 종교사상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교와 불교의 배경 안에서 외래사상인 기독교를 "끌어안은" 인물로 묘사된다. 좋게 말하자면 "한국식 통합"이고, 노골적을 말하자면 결국 "짬뽕"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하긴 모든 사상이 "짬뽕"이고 "잡탕"인 것은 사실이지만, 다석의 경우에는 특별히 어떤 체계나 주저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물론 칸트와 헤겔의 시대 이후에 어떤 "거대 체계"를 구축하려는 것은 바람직하기는커녕 도리어 무의미하고 "헛점만 만들어내는" 시도로 여겨진 감도 없지 않고, 또 한편으로는 비트겐슈타인처럼 생전에 짧은 논문 하나만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수많은 해석자들이 자처하고 나서면서까지 "무체계의 체계"를 수립해 주는 호사를 누리게 된 것도 사실이다.(즉 "꿈보다 해몽이 더 좋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은 꿈이고 해몽은 해몽, 결코 "해몽"이 "꿈"을 대체할 수는 없는 법이다. 모든 해석은 오독과 오해의 여지를 남기며, 그렇기 때문에 다석의 경우처럼 주저나 주장이 선뜻 손에 잡히지 않는 사상가의 경우에는 "원문"을 대하기보다는 "해석"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데, 그런 까닭에 해석자에 따라, 그리고 해석자의 의도에 따라 그 해석도 천차만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다석의 생애에 대해, 그리고 다석의 사상에 대해 나온 책들(특히 다석의 수제자인 박영호의 저서)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다석의 "탁월성"이 일종의 "비교우위"에 근거한 것임을 알게 된다. 즉 다석의 위대함은 매번 "예수, 석가, 톨스토이와 간디"의 사상과 비교되어서만 드러날 수 있는 듯 보이는 것이다. 이는 내 오해일 수도 있지만, 솔직히 박영호의 논법이 "다석은 이런 말을 했는데, 이는 예수의 저런 말을 연상시킨다"거나 "다석은 이런 주장을 펼쳤는데, 이는 톨스토이의 저런 주장과 상통한다"는 식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결국 다석이 "예수나 톨스토이"를 숙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모를까, 다석이 그 두 사람에 필적할 만한 사상을 실제로 지녔는지 여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다석이 지금처럼 "대중화" 되어버린 풍조가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딱하기도 하다. 생전에 김교신이 다석을 가리켜 "놀라운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서, 어째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펼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하던 것이며, 다석 스스로가 김교신에게 "내 생각은 워낙 비정통적인 것이어서, 보통 사람은 받아들이기가 힘들 것"이라고 운을 띄웠던 것 역시, 다석에 관한 "신화"를 한층 두텁게 만들어주기는 할지 몰라도 오늘날 다석에 대한 갖가지 오해나 오독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여겨져선 안 될 것이다. 또한 다석은 근본적으로 "기독교" 사상가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가 유교와 불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독교를 "우리것으로 만들었다"는 호의적인 평가를 받을런지는 몰라도, 그의 "신학"(물론 이런 명칭을 부여할 수 있다면)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것이었고, 차라리 일종의 신비주의자나 영성가로라면 몰라도,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칸트나 헤겔의 "보편적 사상"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물론 칸트나 헤겔 역시 기독교에 관한 논저를 남기기도 했지만, 오늘날 이들의 사상이 "보편적 관심사"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그와는 좀 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다석"인가? 나는 혹시나 그것이 뭔가 "있어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즉 다석은 <다석일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네 권(거의 한 권이 무슨 국어대사전 만한)짜리 개인기록을 남겼는데, 이 대부분은 다석 특유의 언어나 사고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로선 도무지 읽어내기조차 힘들 정도로 "난해"하다. 어쩌면 다석이 일종의 "숨은 광맥"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그 난해함, 또는 접근의 어려움에도 일말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즉 모르니까 신기한 것이고, 모르니까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이고, 몰라서 아직 연구가 안 되었으니까 지금부터 연구하면 뭐라도 나올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다석이 오늘날 각광받는 한국 사상가로 떠오른 것은 신학 전공자이고 하이데거 전공자인 철학교수 이기상이 토로한 것처럼 "이 땅에서 우리 문제로 고민한 한국의 사상가는 없는가?" 하는 의문 때문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대부분 (감히 지식인이라 말하기 뻘줌한 나 역시 비슷한 경로를 걸었으니) 서양사상으로 시작해 동양사상, 그리고 결국 한국사상으로 선회하는 과정을 겪게 마련인데, 이는 오늘날의 서구화된 교육제도나 문화, 또는 사회풍조 속에서는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 선회의 동기에 대해서도 일종의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현상이다. 쉽게 말해 "서양사상을 파고들어가다 보니 한계가 느껴지더라"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 또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 물론 우리 사상을 탐구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을 모조리 "전향자"나 "지적 속물"로 몰아버리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 앞에서 '우리 것'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처해 하다가 결국 '우리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고백은 철학자 이기상의 것이건 가수 김수철의 것이건, 어딘가 구차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남들의 눈이 없었다면, 또는 "남들 앞에 우리 것을 들고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었다면 이들의 지적, 또는 음악적 경로는 지금과 또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기상이 다석을 들고, 또는 김수철이 국악을 들고 국제 무대에 진출하는 것은 바람직까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좋은 일일런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굳이 다석이나 국악 말고 이기상이 뛰어난 하이데거 해석자로, 그리고 김수철이 뛰어난 록 기타리스트로 국제 무대에 진출하는 것 역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두 사람의 의도를 오해하고픈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가 종종 그처럼 "남에게 뭔가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계기로 인해 "우리 것"에 새삼 눈을 뜨는 일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급조된 전통이나 급조된 "자랑거리"를 내세울 때도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며, 때로는 "초라한" 것을 초라한 그대로 내밀어보기보다는 오히려 "뭔가 있어 보이게" 과대포장까지도 서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왕 "하려면" 좀 더 "제대로" 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만화영화 <로봇 태권 브이>가 복원되어 극장에 걸린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실제로 관객이 많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로선 솔직히 이 뜬금없는 "복원" 소식을 듣고 좀 당황스러웠다. 어째서 지금 갑자기 <태권 브이>일까? 나 역시 어린 시절 그 만화영화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나마 나는데, 그때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다지 "걸작"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태권 브이>를 일종의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간 걸작"으로 치켜세우는 주장도 없지 않은 모양인데, 솔직히 그건 좀 아니라고 본다. 물론 "태권"이란 이름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만화가 일본 만화, 특히 <마징가 제트> 류의 거대 로봇물과 완전 독립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물론 나름대로의 개성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만화의 직접적 영향하에서의 부분적인 개성일 뿐이지, 거기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로선 차라리 <태권 브이>를 전후해서 나온 또 하나의 "걸작" 애니메이션(물론 이에 대한 평가는 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인 <호피와 차돌바위>와, 현재는 필름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그 전편 <홍길동>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는 더욱 큰 의의를 지니지 않았나 생각한다.(이 두 편은, 역시 어려서 이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는 윤석화에 의해 <돌아온 영웅 홍길동>인가로 리메이크 되었는데, 이 역시 원작들과는 달리 당시 국내에서 기세를 떨치던 일본만화의 영향을 떨치지 못하고 "홍길동이 아니라 드래곤볼이더라"는 비아냥을 얻으며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안다.) 뭐, 까놓고 말하자면 지금 와서 <로봇 태권 브이>에 열광하는 (열광하긴 하는지 모르겠지만) 풍조에는 이른바 애니메이션 산업이나 만화 산업이 일종의 미래형 고부가가치 콘텐츠 산업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일종의 "법통 만들기"나 "역사 만들기"의 의도가 은근히 엿보인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굳이 한국 애니메이션, 또는 "한국 로봇 애니메이션"의 계보를 작성하는 것은 모든 계보 만들기가 그렇듯이 현재를 정당화하고, 현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태권 브이>를 만들어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영웅으로 추앙되는 김청기 감독의 이후 작품 가운데, 일본 애니메이션의 노골적인 "베껴먹기"(대표적인 것이 <마크로스>에 나온 로봇-전투기가 <스페이스 간담 브이>란 제목으로 애니메이션 화 된 것을 들 수 있겠다)가 존재한다는 것 역시 우리의 "자랑스러운" 계보 가운데 포함시켜야 할 것인가? 이왕 <태권 브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어쩌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어디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지켜볼 만 하겠다.

결국 다석이건 태권브이건, 굳이 "우리 것"으로 의미부여를 하려면 못 할 것은 없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것이 아주 설득력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게 문제인 거다. 이른바 "블록버스터"에 대해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사실 초라하고 구차한 이야기일 수 있다.(이는 "느와르"와 "홍콩 느와르", 또는 "웨스턴"과 "마카로니 웨스턴"하고는 또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뭔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기보다는 할리우드의 "물량공세"를 겉핥기 식으로 흉내내는 "한국형 물량공세"인 셈이니까.) 남들 앞에 뭔가 내세우기 위해 굳이 우리 것을 찾아야 할 때, 그리고 원래의 문맥과는 무관하게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 때, 나는 문득 예전에 24시간 편의점이 건물마다 들어서며 크게 유행할 때에 있었던 한 가지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저기서 24시간 내내 불을 밝혀 놓은 LG25시니, 패밀리마트니, 바이더웨이니 하는 편의점들이 문을 열자, 우리 동네의 어느 구멍가게도 이른바 "한국형 편의점 사이클론"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그런데 여기서의 핵심은 바로 그 "한국형"이라는 데에 있었다. 즉 그 "한국형 편의점"은 밤 12시가 되면 셔터를 내렸던 것이다. 내가 지금 다석과 태권브이를 바라보며 그 일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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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 > 진실과 거짓에 관한 우화 (1)
여자의 일생.단편선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32
G.D.모파상 지음, 이정림 옮김 / 범우사 / 1998년 9월
평점 :
품절


1.

모파상의 단편 "노끈"은 고데르빌이라는 마을의 장터 풍경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장날이 되면 그 마을로 오가는 길 위에는 인근 마을에서 온 농부와 아낙들이 분주하게 걸음을 옮긴다. 그 중에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오슈꼬르느 영감도 있었다.

  • 브레오떼의 오슈꼬르느 영감은 방금 고데르빌에 도착하였다. 그는 땅에서 작은 노끈 한 조각을 보자 광장 쪽으로 갔다. 진짜 노르망디 사람으로 검소한 오슈꼬르느 영감은 소용이 될 만한 것은 뭐든지 주워 모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고통스럽게 몸을 굽혔다. 류머티스로 고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땅에서 가느다란 끈 조각을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막 정성스럽게 감으려고 할 때, 문지방에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마구 제조인 말랑댕 영감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전에 말고삐에 대한 문제로 곤란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모두 원한을 품고 있었다. 오슈꼬르느 영감은 진창 속에서 노끈 토막을 주우려고 하는 것을 자기의 원수에게 들킨 것이 수치스러웠다. 그는 얼른 그 찾아낸 물건을 작업복 밑에 숨겼다가 바지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러고는 찾아내지 못한 그 무엇을 땅에서 아직도 찾는 듯한 시늉을 하다가,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고통으로 잔뜩 몸을 구부리고 시장 쪽으로 갔다. (351쪽)

땅에 떨어진 그까짓 노끈 한 조각,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그 물건 때문에 이후에 자신이 어떤 곤란하고도 울화통 터지는 일을 겪게 될지 미처 알기만 했더라도, 오슈꼬르느 영감은 결코 그 노끈 조각을 주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점심 때가 되어 식사를 하던 영감은, 울브레끄 씨라는 사람이 현금 500프랑과 각종 서류가 든 지갑을 그날 아침에 분실해서 애타게 찾고 있다는 공고를 접하게 된다. 점심 식사가 끝났을 무렵, 지서 주임이 나타나 그를 데리고 면장 앞으로 간다. 면장은 마구상인 말랑댕이 "오슈꼬르느가 지갑을 줍는 것을 보았다. 그걸 줍고 나더니, 또 뭔가가 떨어져 있지 않나 싶어서 더 두리번거리더라"고 한 증언을 토대로, 오슈꼬르느 영감에게 지갑을 어떻게 했느냐고 신문한다. 오슈꼬르느 영감은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진 채 "내가 주운 것은 노끈"이라고 항변하며, 자기 주머니에서 노끈을 꺼내 면장 앞에 흔들어 댄다. 그러나 면장은 "말랑댕 씨도 신용할 만한 사람인데, 그까짓 노끈을 지갑으로 착각할 리가 없다"며 영감을 몰아세운다.

영감은 두 번 세 번 아니라고 맹세하지만 면장은 끝내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는 눈치였다. 결국 말랑댕과 대질하게 되었지만, 계속해서 진술이 엇갈리는 바람에 결국 한 시간이나 서로 욕설을 퍼붓고 나서 아무런 결론도 내려지지 않는다. 면장 역시 명확한 증거가 없으니 난처해서 영감을 풀어주고 만다. 그러나 이 소문은 이미 장터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진 다음이었고, 영감이 면사무소에서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그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 영감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결백을 호소한다. 사람들은 영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만, 그저 빙긋이 웃을 뿐 아무도 그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노인은 사람들의 미지근한 반응에 더욱 울화통이 치밀어 자기 주머니를 뒤집어 보여주며 결백을 주장하지만, 그가 흥분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더욱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다. 영감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편을 들어주진 않는다.

다음 날 아침, 다른 마을에 사는 어느 농부가 울브레끄 영감을 찾아와 그의 지갑과 현금을 어제 길에서 주웠다며 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 소문 역시 금세 사람들 사이에 퍼진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오슈꼬르느 영감은 의기양양한 태도로 또다시 사람들을 붙잡고 "그것 봐라, 왜 멀쩡한 사람을 거짓말장이로 모느냐?"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번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뜨듯미지근하기만 했다. 사건의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났고, 이젠 더 이상 자신이 의심받을 이유가 없을 텐데, 어째서일까? 다음 번 장날에 고데르빌로 간 영감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도중에 문득 자신에게 또 다른 "혐의"가 덧씌워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즉 사람들은 오슈꼬르느 영감이 지갑을 주운 것은 사실이며, 그저 자신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자 당황한 나머지 "한패거리"인 다른 농부를 시켜 그 지갑을 갖다 바침으로써 그 혐의를 벗어나려 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영감은 말문이 막힌다.

  • 그러자 그는 그 뜻밖의 사건을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매일 자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으면서, 매번 새 이유와 보다 강력한 항의, 그리고 그가 상상한 것보다, 그가 혼자 있는 시간에 준비했던 것보다 더 엄숙한 맹세를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의 정신은 오로지 노끈의 이야기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의 변명이 보다 복잡해질수록, 그의 논증이 보다 치밀해질수록,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저것이 바로 거짓말장이의 해명이지" 하고 그의 등 뒤에서 사람들이 쑤군거렸다. (356쪽)

노인은 홧병으로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불과 몇 주 되지 않아 숨을 거둔다.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듯, "짧은 노끈이요...... 짧은 노끈...... 자, 여기 있어요, 면장님." 하고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2.

나 역시 이와 비슷하게 종종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남들이 보기에 뭔가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기 때문에, 처음 모파상의 단편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공감하는 동시에, 또 무척이나 불안을 품게 되었다. 정말 이렇게 될까? 오얏나무 밑을 지나면서 갓끈을 매거나, 외밭을 지나면서 신발끈을 매다 보면 정말 이렇게 빼도박도 못할 궁지에 몰릴 수 있는 것일까? 아닌 게 아니라, 나 역시 이제껏 살면서 그런 억울하고도 한심한 궁지에 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억울하다는 것은 내가 하지도 않은 일, 또는 내가 의도하지도 않은 결과 때문에 내 행동이나 의도를 의심받곤 했기 때문이고, 한심하다는 것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계기로 인해 그런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의도를 품지 않았다는 것, 내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 자신이야 분명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방에게 이를 어떻게 전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백 번 천 번 아니라고 말해도 상대방은 곧이 듣지 않는다. 아니, 아니라고 하면 할 수록 더욱 "수상쩍게" 보이기 일쑤다. 그저 입 꾹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나처럼 성질 급한 사람은 울화통이 터져 살 수가 없다. 차라리 대판 난리법석을 치고 삿대질 하며 언성을 높이는 게 정신건강에는 더 낫다. 그로 인해 더 큰 오해를 사고, 심지어 아직까지는 내 진실성을 약간이나마 믿어줄 의향이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까지도 진저리를 치며 떨어져나감으로 인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혼자서 광분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대체 그 억울함을 어떻게 호소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중에 사건이 백일하에 밝혀지더라도, 어느 누구 하나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거나, 오해한 것이라고 시인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미 "진실"의 문제에서 "감정"의 문제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겪은 "사건"을 문제시하던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내가 드러낸 "인격"을 문제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그냥 가만히 누워서 죽어가야 할까? 당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일 수도 있다.

집사람과 문득 그 "석궁 교수"(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이름보다도 먼저 생각나는 게 "석궁"이란 단어다. 본인은 질색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그 "레저용 기구" 또는 "살상까지도 가능한 흉기"의 이름이야말로 그의 평생에서 지워지지 않을 상징이자 꼬리표가 된 것은 아닐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 단편을 떠올렸다. 사건의 발단은 "수학문제 오류 여부"로서 그 교수의 주장이 "맞다"고 해야 하는데, 나중에 재판 과정에서는 문제의 핵심은 젖혀놓은 채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법으로 심판하는 격이 되어 "잘못이다"라고 했으니 이는 뭔가 잘못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른바 "교육자로서의 자질 여부도 법으로 판단하는 격"이 되었던 그 재판 절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파이드로스가 이야기한 양과 질의 문제가 떠올랐다. 어떤 도덕성, 자질, 인격에 대한 시비를 법의 잣대로 판가름한다는 것 역시, 질적인 것을 양적인 것으로 환산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정식 절차를 밟는 재판에서는 이겼다 하더라도, 이른바 "여론 재판"이라는 것이 있으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이긴 했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법적으로까지 들어갈 정도면 정말 빼도박도 못할 난처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는 거다. 법은 평범한 한 사람이 호소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며, 바꿔 말하자면 거기서도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면 그냥 앉아서 죽는 수밖에는 없다는 거다. 게다가 법은 결코 공정하지가 않다. 남들은 그래도 특권층이네 뭐네 하는 교수 정도가 되어서도 결국 석궁을 들고 나서야 했을 정도니, 솔직히 이건 뭐, 수입이나 사회적 지위 등등에서 그보다 못한 일반인이야 굳이 갖다댈 것이나 있겠나. 석궁 쏜 게 잘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령 무슨 영화 같았으면 이런 식으로 "폭력"에 호소해서 클라이막스를 이끌어내는 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했을지 몰라도, 엔드 크레딧과 함께 끝나 버리는 영화와는 달리 현실은 클라이막스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석궁을 쏜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또 새로운 고초와 오해와 억울함과 비난과 기타 등등이 다시 한 번 시작된다는 거다. 다만 역지사지 해보니 또 한 사람의 약자인 나 같았더라도 어쩌면 고스란히 앉아서 죽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내가 읽은 모파상의 단편 "노끈"은 <여자의 일생 / 단편선>(이정림 옮김,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1, 범우사, 1990 4쇄)에 수록되어 있었다. 지금은 크기가 좀 뻥튀기되어 나오는 책이지만 특별히 크게 달라지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 흠, 요즘은 이것저것 떠오르는 소설도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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