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드팀전 > 성조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 - 8.15에서 5.18까지
박태균 지음 / 창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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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내게 다가왔다.

흑백 TV 앞에 앉아 있던 나는 실내 안테나를 이리 저리 돌렸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던 주사선을 줄여야 했다.토요일 오전,10시. TV에서 애국가가 끝나면 나는 미국으로 초대되었다.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미국 만화들.한국 TV가 주말의 웃음을 제조하기 위해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시간,AFKN은 심심해할 미 8군 아이들과 한국 아이들을 위해 만화를 융단폭격했다.영어를 알아 듣지 못한 것은 답답했지만 그다지 큰 장애는 아니었다.미국 만화가 끝나고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나올 때 까지 TV를 붙들고 있었다.나는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듣기 좋았다.축축 처지는 애국가보다 행진곡 풍의 멜로디가 흥겨웠고 노래 아래 깔린 그림들은 더욱 멋졌다.미국 독립전쟁 그림,탱크와 비행기의 행진 장면,자유의 여신상,러시모아 국립공원의 큰 바위 대통령얼굴,달에 착륙한 암스트롱....  나중에는 피아노 건반으로 그 멜로디를 누를 수도 있었다. "솔미도미 솔 도.. "

<우방과 제국,한미관계의 두 신화>를 읽다가 처음 떠올랐던 것이 내가 미국과 처음 만난 기억이었다.<한국전쟁>에서 대중적이며 균형감 있는 역사서를 선보였던 박태균 교수의 책이다.이 책의 제목은 저자가 한미 관계사를 바라보는 지향점을 명백히 보여준다.우리 사회는 미국을 둘러싼 두 가지 '신화'가 있다.하나는 미국을 동맹을 넘어 '혈맹'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며 다른 하나는 미국을 '제국주의 식민 모국'으로 보는 신화이다.전자는 수구보수 세력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가치이다.후자는 80년대 사회구성체논쟁에서도 시각차가 존재했을 정도로 주요주제였으나 지금은 그런 식의 도그마화된 규정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물론 아직도 실제로 그렇게 믿지도 그렇게 분석하지도 않으면서 '미제'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그저 레토닉이나 배설의 언표 정도로 받아 들이는 편이다.

저자는 한미 관계를 '동태적' 관계로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미국의 세계 전략이라는 작용과 한국의 대응이라는 반작용의 틀 속에서 한미관계를 보고 있다.박태균 교수는 한미 관계가 정상적인 두 국가 사이의 외교 관계를 넘는 '특수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이러한 '비정상성'의 외부적 요인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세계전략을 한반도에 강요한 것이 첫번째 원인이다.내부적으로는 역대 정권의 '비정통성'을 들고 있다.정권의 창출의 정통성 부재와 정권 내부의 불안정성을 외부의 힘에 의존해서 풀어나가는 방식들이 한미관계의 특수성을 만들어 내게 된 조건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는 한미관계를 몇 가지 모델로 설명한다.먼저 미군정시기의 한미 관계는 제국과 식민지 관계로 규정한다.미 군정기는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면 처음으로 만나는 시기이다.내가 대학들어가서 현대사를 공부하며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부분이 미군정기부터 한국전쟁 까지의 시기였다.특히 모스크바 3상회의와 신탁통치안에 대한 이야기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과 너무 달라서 충격적이었다.고등학교때는 '민족주의자들은 반탁,소련의 사주를 받은 공산주의자들은 찬탁' 으로 배웠다.물론 이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스크바 3상회의의 전체적 견해와 신탁통치안의 현실성에 대해 일방적으로 앞뒤 꼬리떼어낸 것이었다.당시 동아일보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를 특종했다.그리고 한국 언론사에 길이 빛날 왜곡보도를 한다.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는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미국은 즉시 독립주장,소련의 구실ㄹ은 38선 분할점령'이라고 기사를 작성한다.이어서 12월 28일 조선일보는 박스기사를 통해 '독립전쟁을 시작하자'라고 선동한다.

<우방과 제국>도 모스크바 3상회담과 신탁통치에 대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남한 내에서 좌익과 중도세력이 우의를 점한 상태에서 미국은 신탁통치에 긍정적이었다.우선 한국인의 자치 능력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또한 중국 국민당이 우세한 45년 상황에서 미소영중이 신탁통치를 하면 자유주의 세력이 숫자적 우위를 구성하고 한반도 내에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었다.미국은 남한 사회내에서 우익 세력을 양성하고 좌익 세력에 탄압을 가하기 시작한다.문제는 김구를 필두로 한 우익세력이 미국의 신탁 통치에 적극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한국 내 보수세력 강화를 위해 뒤늦게 귀국시킨 임정이 중심에 있었다.미국 입장에서는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힘을 실어야 하는 우익에서 미국의 전략에 반대하고 나섰기때문이다.결과적으로 미소공동위원회는 성과를 얻기 힘들었으며 남북이 각각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박태균 교수는 이 사건을 미군정이 한반도내의 내부적 정치 역동성에 전략을 바꾸게 된 첫번째 사안으로 꼽고 있다.

모스크바 3상회의를 필두로 한미 관계는 끊임없이 갈등한다.미국의 대외전략이 케넌의 '봉쇄정책'과 이후 니츠의 '전방위적 봉쇄정책' 등에 따라 수시로 발생한다.미국의 기본적 전략은 일본을 지키기 위한 한반도 개입이었다.미국은 소련의 핵실험 성공과 중국 공산화를 견제하는 교두보로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미국은 50년대 이승만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과 북진정책에 이승만 제거 계획까지 고려한다.아이젠 하워의 정전 협정 조기추진론에 지속적으로 반대되는 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이다.4.19 당시 미국의 관망은 미국의 한반도 내에서의 기본 입장을 보여준다.즉 미국은 제 3세계 정책을 펼때 민주주의와 반공독재 사이에서 고민한다.미국은 이 두마리 토끼를 쫓지만 국민들의 반대로 더이상 독재정부가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이 들때 미국은 민주주의의 손을 들어주게 되지만 그 전까지 한국의 독재체제는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유지된다.

60년대 미국의 대외정책은 로스토우에 빚지고 있다.근대화론으로 대표되는 로스토우의 논리는 경제성장을 통해 체제 우위를 점한다는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도 양보될 수 있다고 본다.특히 로스토우의 논리중 관심이 가는 부분은 저개발국가에서 과도기적 단계를 효율적으로 거치기 위해 군대를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보았다는 것이다.마치 5.16 군사 쿠데타를 예견하는 듯 보이는 이론이다.

이 책에 나오는 5.16 군사 쿠데타 부분은 마치 정치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 진지하다.쿠데타를 제압하겠다는 유엔군 사령관과 미국 대사,'올것이 왔다'이를 계기로 정계 개편을 꿈꾸는 윤보선 대통령,쿠데타 상황에 대처해야함에도 숨어버린 장면 총리, 윤보선을 권좌에 계속 두면서 쿠데타정권의 도덕적 정당성문제를 넘어가려한 미 국무부.박태균 교수는 3,500명으로 성공한 쿠데타의 뒤에 미국의 역할보다 한국 정치인들의 무능이 있다고 지적한다.

60년대 중반이후  한미관계의 중심은 '베트남전 파병'이었다.60년대초 권력 기반이 아직 불안했던 박정희는 쿠데타 주체세력과 미국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절대권력의 위치에 오른다.박정희는 전세계 여론과 무관하게 베트남에 전투병 파병을 시작하면서 미국과 특별한 관계임을 부각시키고자 한다.박정희가 전투병 파병을 강행하게 된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하면 첫째 한일협정 체결로 인한 국내여론 악화의 돌파구였다는 점,둘째 64년 주한미군과 한국군 감축계획에 대한 반대,셋째 베트남 특수를 통한 경제활성화 등이다.한일협정을 계기로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역할론이 어느정도 현실화되고 있다고 본 미국은 주한미군과 한국군 감축을 주도한다.이승만이 동남아시아 파병론을 내세웠듯이 박정희도 베트남 전투병파병론으로 이 상황을 돌파하려한다.미국은 베트남전이 장기화되어가면서 국내여론과 재정압박에 고민하게 된다.결국 한국군을 이용하는 것이 비용면에서도 또 아시아국가의 참여라는 홍보용으로도 적당했다고 본 것이다.미국은 기본적 한국군 파병에 대한 비용을 감당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런데 박정희는 이것을 주도권 확보로 보고 미국의 마지노선을 넘는 무리한 요구를 시작한다.요즘말로 하면 오바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68년 1.21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사건과 푸에블로호 사건은 한미관계를 급격히 냉각시켰다.영화 <실미도>가 그 당시 박정권 내부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박정희는 대북 보복공격에 대해 고려한다.또한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해결을 위한 미북간 비밀협상에 배제된 것에 분노를 표한다.멀리는 베트남의 늪에 빠져있고 가까이는 선원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곤란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한국이 베트남을 빌미로 '벼랑끝 전술'을 쓰고 있다고 파악한 미국은 '너희들이 베트남에서 군대를 철수시키겠다면 우리도 남한에서 미군을 빼내겠다.'라는 상황까지 이르게된다.당시 미국은 북한을 통제하는 것보다 남한을 통제하는데 훨씬 많은 공을 들인 형태가 되었다.박태균 교수는 파병문제에 있어서도 우리정부의 전략이 오판이었음을 지적한다.

70년대 닉슨독트린과 지미 카터의 데탕트 시대에도 미군 철수론이 등장한다.박정희는 또 한번 벼랑끝 전설울 쓴다.핵을 보유하겠다고 선언하고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맛이 간 민족주의자들은 이 시점을 한국의 위상을 당당히 보인 것이라고 아직도 그리워한다.한때 신문광고 해대던 <무궁화꽃>인지 뭔지도 그런 내용아닌가 싶다.최근에 북핵이 문제되니까 김정일을 감금하고 밥‚–기는 소설도 하나›㎢?광고한다.소련과 군축도 논의대고 개입전략보다는 현상유지전략을 택한 미국이 이걸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그러고 보니 30년정도의 시차를 두고 미국은 남한핵문제와 북한핵문제를 다루고 있다.핵을 둘러싼 아이러니다.

<우방과 제국>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점은 한미관계사를 신화의 틀에서 보지말고 '동태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또한 수구언론이 즐겨쓰는 '한미동맹강화'라는 것이 지난 역사에서 그렇게 순탄치 않았음을 그리고 또 보편적인 상황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다.한미관계는 출렁이는 바다처럼 단 한번도 평온했던 적이없다.그럼에도 마치 한미관계를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인양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저자는 한미관계의 갈등원인이 미국측에 있음을 우선 밝힌다.무리한 세계전략을 추진하는 제국이 가진 한계이다.또한 한국정부의 부적절한 대응도 지적된다.일부에서 이 부적절한 대응을 '민족주의'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반대한다.결코 민족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된 적은 없다는 것이다.그 때 그 때 정권차원의 안보가 중심이었던 것일뿐이다.마지막으로 한국민들 사이에 미국에 대한 신화가 지적된다.한국 사회의구성원들은 한국과 미국 사이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당연히 받아들인다.거기에는 '사회진화론'이 자리잡고 있다.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우리가 이라크에 젊은 이들을 보낼때도 파병론자들의 논리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이 그것이었다.파병에서 어떤 특수를 얻을 수 있을까? 못해도 미국과의 관계가 좋아질 테니 떡고물은 있겠지? 그걸 현실론으로 받아들이고 그 토대 위에 논리의 탑을 쌓는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봐왔다.그리고 그 논리의 현실적 이득과 그 논리의 기계적인 정합성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경우도 많이 봐왔다.어떤 이득이고 어떤 평화이고 어떤 국가인지가 중요한 것 아닌가? 논리의 토대가 인류애와 평화에 있지 않다면 그 많은 삼단논법과 통계수치,미래 예측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스스로 억압하는 또는 억압받는 민중임을 알고 그 땅 위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걸 잊고 멋진 이론과 논리와 통계로 무장한 자신을 엘리트라고 착각하지 말아야한다.

<우방과 제국,한미 관계의 두 신화>는 정치외교 영역에서 한국에 늘 존재하는 미국을 보여준다.이것과 함께 우리의 일상성 속에 우리의 문화 속에 ..유행하는 말로 우리의 '아비투스'속에 존재하는 미국은 또 어떤 것인지 고민해보게된다.

P.S) 이 책은 대중적 역사서를 지향한다.약간의 관심만 있다면 아주 빠른 속도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마치 <제3공화국><제5공화국>하는 정치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진진하다.책에는 8.15부터 5.18까지 한미관계사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80년대 부분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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