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문학과지성 시인선 309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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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안의 말>

어떤이는 말을 부리고 어떤이는 말과 놀고 어떤이는 말을 지어 아프고 어떤 이는 말과 더불어 평화스럽다. 말은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고 말은 나를 끌고 당신에게로 가곤 했다. 더운말 차가운 말, 꿈과 불과 어둠과 전쟁의 말.

나는 나늘 부리고 간 말들이 이를테면 2003년 가을 어느날, 경찰이 되어 어린딸아이와 늙은 어미를 먹이기 위해 검문소 앞에 줄을 서 있다. 폭탄테러를 당해서 죽은 한 이라크인을 위해 있었으면 했다. 말로 평화를 이루지 못한 좌절의 경험이 이 현대사에는 얼마든지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거대정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여, 말이 그대를 불러 평화하기를, 그리고 그 평화 앞에서 사람이라는 인종이 제 종을 얼마든지 언제든지 살해 할 수 있는 종이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라는 종은 '살기/살아남기' 의 당위를 자연 앞에서 상실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란 이런 비관적인 세계 전망의 끝에 도사리고 있는 나지막한 희망, 그 희망을 그대에게 보낸다. 한 도시가 세워지고 사람들이 한 세상을 그곳에서 살고 그리고 사라진다는, 혹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이롱 위레의 인식이 비극적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인간적인 그리고 자연적인 비극이다. 그러므로 그 비극은 비극적이지 않다.

부기 : 어떤 의미에서는 뒤로 가는 실험을 하는 것이 앞으로 가는 실험과 비교해서 뒤지지 않을 수도 있다. 뒤로 가나 앞으로 가나 우리들 모두는 둥근 공처럼 생긴 별에 산다. 만난다, 어디에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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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집이 아주 오랜만에 나왔다.

얼마전 그녀는 수필집도 냈다. 그녀는 지금 언어에...모국어에 굶주려 있다보다. 이렇게 허덕증이 나도록 모국어를 토해 내는 걸 보면... 

독일에서의 오랜 유학생활 때문인지 그녀의 글속에는 "한국적인의 삶" 보다 존재로서의 "아시안적인 삶"이 훨씬 많이 느껴진다.

이번에 나온 시집<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과 수필집<모래도시를 찾아서>를 사면서, 그녀의 시를 처음 만나게 해주었던 한 친구에게도 같이 선물을 했다.(그 친구는 무척 감격해 했다. 친구란 얼마나 소박한 존재인가...이렇게 작고 사소한 것에 감동한다)

어쩌면, 인연은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한 친구를 통해 처음 허수경의 시어들과 만나게 되었고, 허수경의 새로운 시어들을 만날때 마다 한 친구를 연상하게 된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소박한 인연이다.

가을 문턱을 넘어서고 있는 지금부터 아시안의 감수성이 깊게 배어있는 허수경의 시집을 느껴보련다. <아름다운황무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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