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 뻗어야 위로 자랄 수 있다



성장할 수 있는 ‘높이’는 성장하기 위해서 아래로 뻗은 뿌리의 ‘깊이’가 좌우한다. 아래로 파고드는 깊이 없이 쉽고 빨리 위로 성장하려는 사람은 어느 순간 높이 자랄 수는 있지만 높이를 지탱할 수 있는 깊이가 없어서 쉽사리 무너진다. 아래로 뿌리를 내리는 노력이 위로 성장하기 위한 가능성을 결정한다. 잡초의 생명력은 위로 자란 줄기의 높이보다 아래로 자란 뿌리의 깊이가 결정한다.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야 뿌리 뽑히는 나무가 되지 않는다. 일단 뿌리가 뽑히면 나무는 더 이상 생명 연장이 불가능하다. 그만큼 나무에게 뿌리는 생명의 다른 이름이다.


아래로 깊이 뿌리를 내려야 결국 위로 높이 자랄 수 있다. 아래로 뿌리를 내리는 노력은 위로 줄기와 가지를 뻗으려는 노력보다 힘들고 어렵다. 그러나 뿌리 내리기를 포기한다면 성장의 가능성도 함께 포기해야 한다. 뿌리 없이 줄기 없고, 줄기 없이 가지 없으며, 가지 없이 꽃을 피울 수 없고, 꽃이 피지 않고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열매의 풍족함과 풍요로움은 뿌리의 깊음과 힘겨움을 버텨내는 노고에서 비롯된다. 연못을 가득 채운 연잎도 ‘위로 밖으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래로 안으로’ 향하고 있다. ‘위로 밖으로’ 향하고 싶은 욕망이 강할수록 ‘아래로 안으로’ 파고들어 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낮추면 높일 수 있다. 낮춤이 높임이다. 아래로 숙여야 더 높이 치켜세울 수 있다. 아래로 파고든 깊이가 위로 치솟을 수 있는 성장 에너지를 결정한다. 그러나 파고들지 않고 치켜세우려고만 하면 금방 무너진다. 무너지지 않으려면 기초를 튼실하게 가꾸어야 한다. 기초는 기본이고 본질이며, 본질은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파고들어야 한다. 확고부동한 신념은 파고들어간 깊이에서 나온다.


“나무든 풀이든 모든 생명체는 뿌리를 닮는다.”


뿌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겉으로 드러난 실체의 본질을 결정하고 지배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결정하는 셈이다. 지금 나의 모습도 지금까지 내가 파고든 뿌리가 만든 산물이다. 파고들기 전에 옆으로 뻗거나 위로 올라가다가 무너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파고든 깊이의 내공이 옆으로 뻗을 수 있는 넓이를 결정하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높이를 결정한다.


나무가 위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은 아래로 뻗은 뿌리 덕분이다. 뭔가를 얻거나 되려면 뭔가를 해야 한다. 나무는 위로 향하면서도 옆으로 몸집을 불린다. 사람도 위로 성장하면서 옆으로 살이 찐다. 그러나 위로 성장하는 키에 비해 옆으로 성장하는 몸집 불리기는 그다지 이미지가 좋지 않다. 몸집 불리기는 지나친 욕망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나무에게 높이 성장하는 것은 수직적 깊이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시간적 성장이고 옆으로 몸집 불리기는 수평적 넓이의 확산을 통한 공간적 성장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나무는 위아래로 성장하는 동시에 옆으로도 성장하면서 나무로서의 존재 가치를 드러낸다.


사람에게 수직적 깊이의 심화는 곧 전문성의 추구를 통한 종적(縱的) 심화 과정이다. 이에 반해 수평적 넓이의 확산은 또다른 전문성과의 부단한 접목을 통한 인식 지평의 확대, 즉 횡적(橫的) 확산을 의미한다. 부정적 뉘앙스를 지니고 있는 수평적 몸집 불리기와는 다르게 횡적 확산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좌정관천(坐井觀天)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분투노력이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나이가 있다. 하나는 깊이 파고든 수직의 나이다. 수직의 나이가 깊을수록 해당 분야의 전문성의 정도도 깊어진다. 또 다른 하나는 수평의 나이다. 수평의 나이는 인간관계를 통해 인맥을 구축한 관계의 나이다. 수직적 깊이 없는 수평적 넓이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며, 수평적 넓이 없는 수직적 깊이는 견딜 수 없는 답답함이다. 나무는 수직으로 파고들면서 동시에 수평으로 줄기와 가지를 두껍게 만들어나간다.


오랜 준비 없이 쉽게 시작하는 모든 일은 그 결실을 맺기전에 무너지기 십상이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보다 빠른 시간에 관심과 주목을 받기 위해 튼튼한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기도 전에 보여주는 생각과 행동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첨단을 걷기 쉽다.


“용두사미(龍頭蛇尾)란 경구를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정당이든 단체든 개인이든 거대하고 요란한 출발은 대체로 속에 허약함을 숨기고 있는 허세인 경우가 허다하다. 민들레의 뿌리를 캐어본 사람은 안다. 하찮은 봄풀 한 포기라도 뽑아본 사람은 땅속에 얼마나 깊은 뿌리를 뻗고 있는가를 안다. 모든 나무는 자기 키만큼의 긴 뿌리를 땅속에 묻어두고 있는 법이다. 대숲은 그 숲의 모든 대나무의 키를 합친 것만큼의 광범한 뿌리를 땅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대나무가 그 뿌리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나무가 반드시 숲을 이루고야 마는 비결이 바로 이 뿌리의 공유에 있다.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나면 이제는 나무의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의 마디와 뿌리의 연대가 이루어내는 숲의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잡초에는 TR비라는 것이 있다. TR비는 잡초가 땅 속 깊이 뻗은 뿌리(Root)와 땅 위로 뻗은 줄기와 가지의 높이(Top)의 비율이다. 80:20 법칙이다. 잡초의 80%는 땅속에 뻗어 있고 20%만이 겉으로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잡초를 뜯어내고 동물들이 아무리 많은 양의 잡초를 뜯어 먹어도 잡초는 땅 밑의 뿌리로부터 새로운 싹을 틔우고 줄기와 가지를 뻗어 자신의 종족을 퍼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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