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짧고 기다림은 길다



자연에는 속도와 효율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모두 때가 되면 싹이 트고 잎이 나오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봄을 기다려야 싹이 나오고 여름을 기다려야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을 기다려야 단풍을 구경할 수 있으며 겨울이 되어야 삭풍을 견디는 나목을 볼 수 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자연의 속도를 조절하여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기간을 단축할 수 없으며, 여름이 길다고 바로 가을로 가는 길을 개척할 수 없다. 그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현대인은 기다리지 않고 바로 기대했던 일을 보려하는 조급증에 걸려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직장인은 3분마다 딴짓을 한다고 한다.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이메일을 보고 SNS 메시지를 바로바로 확인하고 답장을 보낸다. 속성만이 판을 치고 숙성할 기다림의 시간이 없다. 묵은지를 기다렸다가 먹는 그윽함이 없어지고 겉절이로 만들어 빨리 먹어버리려는 듯 속도는 빨라지고 삶의 밀도와 강도는 약해지면서 행복한 순간에서 느끼는 깊은 충만감도 없다. 효율은 높아지고 있지만 무엇을 위한 효율인지 의문이 들며 진정 우리가 원하는 효과를 달성하고 있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편지를 쓰면서 그리움의 형상을 떠올리고, 편지를 보낸 뒤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깊은 사랑의 애절함을 나누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메일이나 그것보다 더 빠른 SNS로 이런저런 메시지들을 보내고 즉석에서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화를 내는 세상이 되었다. 소통의 빈도와 속도는 높아지고 있지만 소통의 강도와 밀도는 약해지고 있다.


나무의 경쟁은 꽃이 만개하는 봄부터 시작된 게 아니다. 한 해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야 진한 향을 지닌 아름다운 꽃을 봄에 피울 수 있다. 다른 나무보다 꽃을 앞서 피우려면 먼저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목련의 하얀 꽃을 볼 수 있는 것도 꽃이 진 후에 곧장 이듬해에 피울 봉오리를 만드는 목련의 꽃 농사 덕분이다. 가을에 만들어진 봉오리는 겨울 내내 햇살을 맞으면서 봄을 준비한다.”


강판권의 이 말처럼 준비에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진리를 나무는 잘 알고 있다. 사람도 기업도 마찬가지다. 가장 잘나갈 때 다음을 기약하는 준비를 서둘러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추락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자연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생명체들의 축제의 장이다. 자연에는 원래 그런 것이 없고, 당연히 거기에 존재하는 생명체도 없다. 모두 거기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리는 꽃은 개나리와 진달래다. 개나리와 진달래는 추운 겨울을 나면서 모든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가 봄이 오면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트린다. 겨울눈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낸 덕분이다. 즉, 눈에 보이는 결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조용히 준비한 결과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모습이다. 경쟁은 꽃이 만개하는 봄부터 시작된 게 아니다. 봄에 준비하는 꽃은 봄에 꽃을 피우지 못한다. 봄 이전의 봄부터 겨울까지 치밀한 준비를 해야 진한 향기를 지닌 아름다운 꽃을 봄에 피울 수 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남보다 먼저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가장 먼저 피는 꽃은 추운 겨울이라는 시련과 역경이 오기전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꽃눈을 준비한 나무에서 나온다. 나무는 긴 기다림 속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짧은 기회를 위해 준비한다. 기다림은 길어도 기회는 재빨리 지나간다. 기회는 긴 기다림 속에서 인고의 시절을 보낸 덕에 누릴 수 있는 선물이다. 짧은 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긴 겨울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긴 겨울을 겨울잠으로 허비하고서는 용솟음치는 새봄의 기운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겨울은 그저 움츠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폭풍전야의 전운이 감도는 치열한 준비 기간이다. 가을은 짧고 여름은 길다. 짧은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거둬들이기 위해서는 긴 여름 동안 활화산 같은 열정을 불태워야 한다. 봄은 오행으로 보면 ‘목(木)’에 해당한다. 나무가 새싹을 틔우는 시기라는 뜻이다. 여름은 오행의 ‘화(火)’에 해당한다. 불같은 열정으로 신록을 우거지게 하고, 작열하는 태양과 더불어 천둥과 번개 속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시기다. 여름을 열정적으로 보내지 않고서는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


보통 준비 기간은 길지만 승리의 환호와 잔치는 짧게 끝난다. 준비 기간을 짧게 하고 승리의 축배 시간을 길게 잡으면, 다음 승리는 바로 물 건너간다. 바닥에서 오랫동안 몸부림친 사람은 기회가 오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설혹 기회를 놓쳤다 할지라도 준비 시간 동안 자신이 성실하지 못했던 것을 탓하며 자신에게 채찍을 가한다. 칼을 쓰는 시간보다 칼을 가는 시간이 길어야 한다. 그래야 단칼에 승부수를 던질 수 있다. 대패질하는 시간보다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길어야 한다. 그래야 나뭇결을 따라 아름다운 대패질을 할 수 있다. 기다리는동안 절치부심하면서 얼마나 몸부림의 시간을 보냈는지에 따라 기다림 끝에 맛볼 수 있는 승리의 맛이 결정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