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교하면 불행해지지만 비전을 품으면 행복해진다
나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참나무는 참나무대로 살아가고, 벚나무는 벚나무대로, 등나무는 등나무대로 살아간다. 수많은 나무들이 있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이렇게 각기 다른 나무가 숲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나무 열전이 펼쳐지는 숲에 가보면 나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아간다. 송직극곡(松直棘曲), 소나무는 곧게 자라고 가시나무는 뒤틀리면서 자란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도 가시나무는 소나무를 부러워하지 않고 소나무의 흉내를 내려고 하지도 않는다. 소나무는 소나무, 가시나무는 가시나무다. 소나무는 소나무처럼 자라고, 가시나무는 가시나무답게 자라는 것이 자연이다. 어찌 이게 나무에게만 해당되는 사실일까.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다리가 긴 학은 학대로, 다리가 짧은 오리는 오리대로 살아간다. 다리가 짧은 오리는 다리가 긴 학과 자신을 절대 비교하지 않는다. 이렇듯 각각의 특성을 살려가며 개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순환 원리이자 이치다. 비교하면 불행해지지만 비전을 품으면 행복해진다. 잎이 넓은 활엽수는 활엽수대로, 잎이 가늘고 긴 침엽수는 침엽수대로 살아간다. 높이 자라는 나무는 하늘을 보고 자라고 땅에서 가까운 나무는 땅을 보며 저마다 행복하게 살아간다. 물가에 자리 잡은 버드나무는 물을 정화시키며 살아가고 산 정상에서 자라는 나무는 수시로 불어닥치는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자세를 낮추어 살아간다.
남도 지역에서 부르는 〈나무타령〉을 잠시 감상해보자. 나무 이름으로 지은 노래 가사가 예사롭지 않다. 나무의 성격이나 존재 이유를 드러내는 것도 같고 고유한 색깔대로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나무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하다.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곱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거짓 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양반골에 상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나무 가운데 나무는 내 선산에 내나무.
이외에도 수액 좀 그만 빨아먹으라고 호소하며 자고로 인간의 사악함을 한탄하는 고로쇠나무, 저마다 참나무라고 우기는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총을 잘 쏘는 딱총나무, 물가에서 언제나 푸르게 자라는 물푸레나무, 화살처럼 날아가는 화살나무, 밤나무 보고 너도나도 밤나무라고 하는 나도밤나무와 너도밤나무, 맨날 말아 먹는 국수나무, 고민 끝에 찾다가 실마리를 잡은 가닥나무, 밤에만 자기를 부르는 자귀나무와 그 옆에서 질투를 느끼는 머귀나무, 가뭄을 걱정하는 가문비나무, 계획을 세우고 언제나 미루기만 하는 미루나무,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작살나무, 그 옆에서 조금 덜 무섭다고 우기는 좀작살나무,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를 내뿜으며 유혹하는 향나무, 언제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구상나무, 대패질하는 집 앞에 서 있는 대팻집나무, 음식 만들 때 자기를 꼭 양념의 재료로 쓰라고 부탁하는 생강나무, 세상의 비밀을 숨기자고 쉬쉬하는 쉬나무, 까마귀에게 밥 주는 까마귀밥나무, 보리밥만 대접하는 보리밥나무, 꿩 보고 덜떨어졌다고 우기는 덜꿩나무, 말이 오줌을 주로 누어서 생겼다는 말오줌때나무가 있다.
또 먹어보면 신맛이 나는 신나무, 사람에게 많이 퍼주는 사람주나무, 예로부터 덕이 많은 예덕나무, 참 죽이 잘 맞는 참죽나무, 언제나 차를 대접해오는 차나무, 자신을 태운 재가 노랗다고 생각하는 노린재나무, 조밥을 닮은 조팝나무, 이 밥만 먹고 자란 이팝나무, 박쥐가 날아가다 쉬고 간다는 박쥐나무, 산딸기 모양의 열매를 맺는 산딸나무, 사시사철 푸름을 자랑하는 사철나무,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 같은 먼나무,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쓰이는 박달나무, 크고 날카로운 가시로 접근 금지를 엄하게 외치는 엄나무,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부르며 자라는 층층나무, 화류계(花柳界)의 거두로 무한히 뻗어가는 버드나무21, 감 떨어지기 전에 감나무, 두려워서 벌벌 떠는 사시나무, “왜 소태 씹은 얼굴을 하고 있어?”라고 물을 정도로 정말 잎이 쓴 소태나무, 임도 보고 뽕도 따며 일 년 365일 방귀만 뀐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주인공 뽕나무와 그 옆에서 덩달아 방귀를 뀌는 꾸지뽕나무… 이런 나무들이 만들어가는 숲의 경이로움과 자연의 위대함에 우리는 얼마나 감탄하며 살고 있는지를 되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