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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소가 끄는 수레 - 창비소설집
박범신 지음 / 창비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박범신의 소설 연작집 <흰 소가 끄는 수레>를 읽고 나서 책표지 안쪽에서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을 몇번이고 펼쳐보았다. 소탈하게 웃고 있는 그의 어디에 그런 야성과 신열이 존재했었나, 아니 통렬한 산화를 꿈꾸던 그가 이제 한 촌노의 얼굴로 새들의 울음소리의 다양성과 그것의 의미나, 씨뿌리고 김매는 농사의 이치를 통해서 자연과의 친화력을 보여주는, 여성화자로 오해할 정도로 온화하고 편안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감춰두고 있었는가.
무지의 탓이었지만 고등학교 때 읽은 <풀잎처럼 눕다>란 소설을 본 후 그를 여지없이 대중작가로 분류하고 깊이 읽지 않았다. 80년대 중반에 대학을 다닌 386세대였던 나는 <그해 내린 눈 지금 어디에>에서 작가가 말한 것처럼 순수가 아니면 참여 뿐이었던 시대를 살았다. 아니 세 부류가 있었다. 이청준이나 이문열처럼 지적이고 관념적인 작가, 김지하나 박노해, 황석영 같은 참여 작가, 박범신처럼 신문연재소설을 쓰던, 시대의 아픔과는 상관없이 사는 듯하던 대중작가. 그는 분명 대중작가였다. 그때는 인간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졌든, 삼류 연애소설을 쓰든 꼭두각시 언론에 소설을 연재하던 베스트셀러 작가는 대중작가란 이름으로 폄하됐던 때였다. 이데올로기의 칼을 든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 역시 무분별한 편가르기에 너무나 열중해 있어서 이쪽 아니면 저쪽의 선택을 강요했던 시대였다.
무분별한 이데올로기에 휩쓸려 있었지만 소설을 좋아하던 나는 박범신의 <숲은 잠들지 않는다>란 신문연재소설을 아파하고 공감하며 읽었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가수가 부른 노래 '....어둠 속에 앉아 있으면....' 지금은 그 가사는 잊어버렸지만 어둠은 편안하게 자신을 안아주고 덮어준다는 그런 내용으로 그것은 20대 내내 어둠을 정의한 명언이었다. 하지만 관념은 마음 속 감성을 읽어내지 못하고 '노동자', '노동운동' 등의 현실이 될 수 없었던 구호만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라 메마른 토론으로 밤을 새우곤 했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뒤늦게 심심풀이 삼아 지나간 유물같아 보이던 <흰 소가 끄는 수레>를 읽고 놀라움과 소용돌이 쳐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작가로서의 양심과 어느 편에도 설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작가의 고통이 선연히 느껴져왔고, 열정에 들떠 부랑하는 자식들에게 가지는 따뜻하고 안스러운 아버지로서의 시선, 생의 짐을 진 자로서의 나름의 고독을 헤쳐온 아내에게 가지는 애틋한 사랑은 부랑과 신열에 들떠 20여년간 청년처럼 조포하게 달려온 그였기에 더욱 크게 보였다. 젊은날의 격정을 추스르며 일상적인 자아에 삶의 깊이를 획득해내는 장면에서는 차마 다 읽지 못하고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그가 겪었을 혼란과 깨달음과 삶에의 통찰이 나의 치부를, 아집을, 무지를 관통해 와 당장 고해성사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휘황한 광휘의 허공으로 형형색색 날아오르는 수천의 나비떼들,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는 그 수 많은 나비중에서 어떤 나비를 어떤 포충망에 담아 원고지 네모난 우물에 가두느냐'를 고민했을 광활한 상상력과 격정, 부랑하는 자식들을 안스럽게 지켜보는 것 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버지로서의 안타까움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에야 비로소, 가려졌던 오솔길이 보이듯이 선명하게 보여 너무 부끄럽고 놀랍고 가슴 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