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1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1
키류 미사오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다섯살박이 아들은 '합체'란 단어를 자주 쓰고 좋아한다.

'엄마, 가이거(사자왕 가오가이거의 레드건과 블루건) 합체하면 어떻게 돼?'
'응, 멋지고 큰 합체 로보트가 되는 거야'
'엄마, 밥하고 국물하고 김치하고 합체하면 무슨 맛이야?'
'응, 짬뽕맛이 되는 거야'
'엄마, 아가는 엄마 아빠가 합체해서 만들어진 거지?'

이렇게 물었을 때 대답이 궁색해졌다. 하지만 다섯살박이 아들의 눈에는 우리가 민망스러워하는 내용이 아닌 다른 것이 보이리라 생각돼서 '응, 성현이도 그렇게 만들어진 거야'라고 대답했다.

왜 진부한 일상을 여기에 옮기냐 하면 '그림동화'를 바라보는 눈에 따라 내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키류 미사오가 쓴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를 재미있게 읽었고 색다른 맛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개운찮고 우리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됐다. 그것이 문화일보 리뷰에서 보여주는대로 '동화의 여러가지 요소 가운데서 잔혹성과 성적인 요소를 특히 부각시킨 책'이기 때문이다.

<백설공주>에서 성(性)은 권세를 누리기 위한, 또는 살아남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있으면서도 도구로 전락한 성에 대해 꺼리낌이 없다. 그리고 <파란수염>에서는 성이 서로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강자의 일방적이고 변태적인 성이 약자에게 강요되고 있다. 잔혹성과 성이 맞물려 너무나 일본적으로 변형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민족성을 가장 잘 그려내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되는 김주영의 성의 묘사를 보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외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성춘향이 서로를 희롱하는 모습은 성이 놀이처럼 느껴지며 <홍어>에서는 장중한 느낌마저 든다. 눈이 온 날 밤 들리는 그 소리는 너무나 범속한 일상이면서 너무나 인간적인 쾌락이 있어 작중 화자가 짜릿짜릿한 끌어당김으로 그 앞을 떠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한때 빨리 결혼해서 성에서 자유로와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성에서 자유롭지 못함이 인생을 제대로 사는데 제약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생각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이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결혼 전 보지 못한 세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이 인생의 비밀을 푸는 유일한 패스워드일 수는 없다. 현대사회가 키류 미사오가 묘사한 것보다 더 잔혹하고 성적인지 모르지만 동화는 동화인채로 어린이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된다. 해상도가 높은 사진이 명작이 아니듯 인간 삶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낱낱이 파헤쳐 놓는 것이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림동화'를 원본 그대로 복원하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오랜 세월 어린이에게 명작동화로 살아남은 것은 인간살이의 여러가지 요소들을 단순화해서 독자 나름대로 살을 붙이고 옷을 입혀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라 본다. 백설공주의 아름다움과 일곱 난장이의 친숙함을 되돌려 주는 것이 댓가로 지불되는 도구로 전락한 성을 가르켜주는 것 보다 훨씬 아름답고 정겹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