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서갑숙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9년 10월
평점 :
절판


매일 아침, 3개월 된 갓난애와 네살박이 큰 애를 씻기고 옷 입히고, 밥 먹여서 애보는 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면 얼굴은 땀으로 얼룩져 있고 팔 다리 힘이 쭉 빠진다. 하루하루 전쟁같은 나날 속에서 본 서갑숙의 <나는 때론 포로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는 현실이 아닌 소설처럼 읽혀진다.

TV 뉴스에서 검찰에서 책을 수사했다고 하고 사무실에서도 화제인 데다 사춘기 시절 <초록빛 모자>를 보고 서갑숙에게 혹했던 옛 기억까지 겹쳐 굉장한 호기심으로 다가간 책이었기에 더 실망스러웠다.

삶의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도 그 글에는 사랑과 SEX만 있는 듯이 느껴진다. 육아, 부모부양, 경제력, 직장일이나 동료들간의 불화로 인한 스트레스 등 사랑으로부터 시작된 의무이면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감수해야 하는,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무게이면서 한편으로 우리를 생활이라는 체바퀴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없었다. 서갑숙에게는 <초록빛 모자>의 주인공처럼 소녀의 사랑이 있을 뿐, 성인?, 아줌마의 생활이 없다.

또한 서갑숙은 솔직함을 무기로 내세워 글을 썼지만 스스로 유교적 윤리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은연 중에 보여주고 있다.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관계맺었던 사람 모두를 사랑으로 회상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SEX는 무죄라는 항간의 윤리의식으로 스스로에게 사랑의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이 일치해야 된다는 생각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부부간의 사랑이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그것이 부끄럽고 떳떳치 못한 것이라서가 아니라 가장 예민한 프라이버시로 존중되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에게 자신의 전위적인 SEX의 내용을 공개하여 여성 삶의 활력소가 되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이 책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수사한 검찰이나, TV 드라마 속의 불륜이나 삼각관계를 성의 한 지표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성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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