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 - 귀순 장교 출신 북한 담당 저널리스트가 쓴 북한군 A-Z 그리고 핵 KODEF 안보총서 2
이정연 지음 / 플래닛미디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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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


안경없는 군대이야기

북한군 병사 가운데는 안경 쓴 사람이 없다. 혹시 안경을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에 북한군인들은 안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김정일 위장을 비롯하여 북한 주민들이 선그라스를 애용하고, 심지어 모내기할 때도 선그라스를 끼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어떻게 설명할까? 혹시 북한의 경제난이 심각해져서 병사들이 안경도 구입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 것일까?

인민군에 복무하다가 귀순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경 쓴 남한군인들을 보고 의아해 한다. 개성 대덕산 민경대대 부소대장으로 근무하다가 89년 9월 10일 귀순한 김광춘씨(29)는 안경 쓴 남한의 군인들을 보고 “솔직히 군복입은 사무원들인 줄 알았다”고 말한다. 북한에서는 안경 쓴 군인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김광춘씨에 따르면 북한군 입대를 위해서는 철저한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시력이 나쁜 사람은 신체검사에서 탈락된다. 북한군인들 가운데 안경 쓴 병사가 없는 이유이다.

1993년에 출판된 ‘안경없는 군대이야기’(김균태, 의암출판사)는 북한군 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80년대말에 탈북했던 사람들의 북한군대 체험담이다.

이제 ‘안경없는 군대’의 소식을 알려주는 또다른 책이 출판되었다. 10여년간 북한군 생활을 하고, 1999년까지 북한의 비빌정보사찰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이창연씨가 쓴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이다. 이 책은 이창연씨가 90년대에 체험한 북한군 경험이므로 시기적으로 볼 때 ‘안경없는 군대 그 후 이야기’라고 해도 괜찮을 듯하다. 


건빵없는 군대에 대한 의문

북한 사회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남북교류가 활발해져서 2005년도에는 1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하였다. 평양 시가지는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낮 설은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보이는 모습 한 겹 너머에 있는 북한의 모습은 아직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가면 대개의 경우 고려호텔에 머물지만, 고려호텔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사무실에 들어가기는 힘들다. 고려호텔의 운영체제까지 알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스스로 '조선노동당의 혁명적 무장력'이라고 부르는 인민군의 생활을 알기는 더더욱 힘든 일이다.

‘안경없는 군대이야기’는 북한군 출신인 새터민들의 증언을 모아서 출판한 책이다. 남북대결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북한군인들의 삶을 진솔하게 기술해서 호평을 받았었다. ‘안경없는 군대이야기’ 이후 14년만에 북한군 출신이 쓴 책이 다시 나온 것이다.

이번에는 ‘안경’이 아니라 ‘건빵’이다. 북한군 내부의 물자부족은 과거나 최근이나 비슷한가보다. 북한군에도 건빵이 보급된다. 건빵은 건쌀(찐쌀 종류로 물을 부으면 몇분후 밥이 된다)과 함께 식사대용품이다. 잠복근무를 할 경우에는 건빵, 사탕, 껌 등이 들어 있는 간식봉지가 지급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급과정에서 이래저래 빼돌리기 때문에 한달에 공급받는 건빵은 몇 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인민군에게도 건빵이 보급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책 제목이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가 된 듯하다.

‘안경없는 군대이야기’에서 인민군에서 가장 모자라는 물자는 세면도구, 의복, 식량이라고 했다. 북한이 84년부터 경공업 혁명을 추진하고 있지만 내외의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해서 생활필수품 부족은 북한군대나 주민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로 보인다.


남조선군의 약점, 인민군의 약점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의 필자인 이정연씨는 고등중학교 시절부터 군사와 관련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이정연씨는 북한군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정연씨는 겸손하게도 북한을 탈출한 것이 7년전이고, 북한군의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도 힘들다는 점을 할 수 없다며 이 책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북한군을 체험한 사람이 쓴 가장 생생한 북한군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 군일들의 일상생활에서부터 북한군의 보급, 교육, 훈련, 북한군의 편제, 장비, 예비병력 그리고 북한 핵개발까지 상당히 체계적으로 북한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북한의 군대와 군인들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그러나 이책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읽을 필요가 있다. 이정연씨가 북한군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고 말한 데에 이 책의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정연씨에 따르면 북한군에서는 한국군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전투에 임하는 군인들의 사기, 정신력, 의지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남조선군의 4대약점’이 군사교육의 필수과목이라고 한다.

4대약점으로 “△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가지고 있으므로 유사시 미군과 의사소통이 안되므로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상하간에 인간적인 유대가 없다,△군기가 매우 저하되어 있다”를 꼽는다고 한다. 남한에서 군복무를 한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노릇이다. 북한군의 사기진작을 위해서 한국군의 비약하고 왜곡해서 한국군의 실상을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북한이 한국군에 대해서 일부만을 과장해서 약점이라고 교육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정연씨가 말하는 북한군의 모습도 북한군의 약점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북한군은 부패하고 보급이 안돼서 허약하며 군율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군대가 군대로서 기능을 하고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이다.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정연씨가 북한군대에서 대해 남한에서 글을 쓰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한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전제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북한군의 생활이나 체계에 대해 이해하는데 가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민군의 얼룩무늬 위장복

재미있는 것은 ‘안경없는 군대이야기’에서는 북한군이 북한주민들의 선망의 대상인데, 그 이후의 북한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 책에서는 북한군은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는 것이다.

안경없는 군대이야기에서는 “북한의 젊은이들은 고등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군대에 지원합니다. 그들은 각종 검사를 통과한 이후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군대에 지원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는 당원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는 군대를 제대하더라고 당원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두 책이 틀림없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면, 군대에 대한 북한 젊은이들의 선호도가 80년대에 비해  90년대에 크게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실을 판단하기 위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판단을 일단 유보하자. 또 선군정치를 내세우고 있는 2000년대의 북한에서도 군에 대한 선호도가 낮은가에 대해서도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다만 두 책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북한 젊은이들에게도 군대 외적인 동기부여가 있어야 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언론에서 북한군복이 최근에 얼룩무늬 위장복으로 깜짝 바뀌었다고 보도하였다. 문화일보(4.25)에서는 위장복 사진을 공개하였고, 조선일보도(4.26) 이를 인용하여 보도하였다. 이 책에서도 위장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특수부대의 경우 일찍부터 위장복을 보급받았다고 한다. 북한군의 사병들은 6.25 당시의 디자인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에 위장복을 부러워한다는 것이 이정연씨의 설명이다.

이와같이 북한군인들의 복장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북한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가지는 장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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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최후의 도박 - 북한 핵실험 막전막후 풀 스토리
후나바시 요이치 지음, 오영환 옮김 / 중앙일보시사미디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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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김정일 최후의 도박


북한핵문제는 십수년동안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불안하게 만든 요인이다. 북한 핵문제의 본질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정치군사적 불신에 있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위협하고 압박한다고 보기 때문에 자위적인 차원에서 핵을 개발한다고 주장하며, 궁극적인 비핵화를 위한 핵개발이라는 다소 모순에 찬 논리를 펼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라는 위험한 집단이 핵무기를 개발해서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게된다면 국제질서는 더욱 어지러워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북한 핵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해체(CVID)’를 목표로 해왔다. CVID를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도 감수하겠다는 것이 부시행정부의 입장이었다.


북한과 미국의 이와같은 대결속에서 한반도는 전쟁 일보직전의 위기상황으로 내닫기도 했다. 6.15 남북공동선언의 이행이 지리멸멸한 것도 2002년부터 북한핵문제가 다시 급부상하여 이른바 2차 북핵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북핵문제의 진행과정에 대한 목마름

북한핵문제가 이와같이 한반도 문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면, 북한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경우 한반도 상황이 급진전될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북한핵문제에 대해서 민간차원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북한핵문제 자체가 외교안보의 핵심적인 사안으로서 국가안보를 이유로해서 그 진행과정이 공개되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민간차원에서는 항상 북핵문제의 전개과정에 대해 궁굼해왔다. 정보의 비공개가 때로는 상황에 대한 엉뚱한 결론을 내리기도 했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인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2년 10월이후 발생한 이른바 2차 북한핵문제만을 살펴보도라도 그 진실이 정확하게 공개되어야할 할 대목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2002년 10월에 제임스 켈리 미국 차관보가 방북했을 때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보유를 인정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당시 무슨말이 오고갔는지 대화록이 정확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것은 북일 국교정상화과정에서 핵심적인 걸림돌로 등장한, 북한이 납치한 후 사망하자 일본에게 돌려준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이 조작되었는지 여부이다. 아울러 2005년 4차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공동성명 이후 BDA 문제가 갑자기 제기되어 9.19 공동성명을 표류시킨 이유도 매우 궁굼한 사안이다.


일본이 아사이신문 칼럼리스트인 후나바시 요이치가 4년간의 추적끝에 3,000장의 대기록으로 남겼다는 ‘김정일 최후의 도박’은 2차 북핵위기 이후 2006년 핵실험 이전까지의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후나바시는 이 책의 서술을 위해 한국,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의 전현직 외교안보관련 종사자 158명을 포함해서 각국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하였다. 이 책의 상세하게 묘사에서 알 수 있듯이 후나바시와 각국의 전현직 관리들과의 인터뷰는 밀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밀도 있는 인터뷰를 할 수 있는 후나바시의 능력이 탄복스러울 정도이다.


각국의 주요관리들이 후나바시의 인터뷰에 응한 것은 각국의 입장을 정확하게 알리기 위한 필요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나 시민사회 관계자들 가운데 정보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서 같이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보유에 대한 의문

후나바시는 HUE 문제가 불거져서 2차 북핵위기를 가져온 케임스 켈리와 강석주의 면담을 상세히 설명하고 분석하고 있다. 강석주는 켈리에게 “우리가 HEU 계획을 갖고 있는 게 뭐가 나쁘다는 건가. 우리는 HEU 계획을 추진할 권리가 있고,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만들게 돼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켈리는 강석주의 이 발언을 듣고 옆자리에 있던 프리처드 대북협상담당 특사에게 “들었지? 방금 이야기, 틀림없이 말했지?”라고 말을 건넸다. 강석주는 이어서 “ 부시 정권이 이처럼 우리들에 대해 적대시 정책을 취하는 이상 우리가 HEU 계획을 추진한다 해서 무엇이 나쁜가. 그것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한 억지력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켈리는 강석주와 이와 같은 대화를 기초로해서 미국 정부에 북한이 HEU 보유를 시인했다고 보고 했고, 이것이 바로 2차 북핵위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HEU를 실제 보유하고 있는지, 어디에 그런 시설이 있는지에 대한 확인된 정보는 갖고 있지 않았다. 후나바시는 강석주가 핵억지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여 미국의 관심을 끌고자 이와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 그토록 불신하고 있는 미국은 충분한 사실확인이 안된 강석주의 발언을 신뢰하면서 이를 근거로 해서 북한이 HEU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미국이 이런 제기를 통해 2차 핵위기를 발생시킨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의혹만 제기되어왔을 뿐이다. 미국도 북한이 HEU를 보유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결국 2005년부터 고농축우라눔(HEU)이 아닌 농축우라늄계획(EUP)이라고 표현을 바꿨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이 채택되어 남북 화해가 급진전되고 이는 동북아질서에까지 영향을 미쳐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총리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평양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평양선언 직후에 불거진 HEU 문제가 남북관계를 비롯하여 동북아 정세를 냉각시켰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엄청난 결과에 비해서 HEU의 진실은 미약한 것일 수도 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HEU는 미국이 핵시설로 지목했으나 텅빈 동굴에 불과했던 금창리 사건에 비춰 제2의 금창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 2.13 합의 이행과정에서 HEU 문제가 다시 제기될 수도 있으나 진실을 오랫동안 덮어두기는 힘들 것이다. 


9.19 공동성명 채택 배경에 대한 의문

후나바시는 이 책에서 채택 직후부터 표류할 수밖에 없었던 9.19 공동성명의 운명에 대해서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9.19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NPT 가입시점과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 시점을 연결시키지 않고 있다. 9.19 공동성명 채택 이후 각국 대표들이 폐막성명을 읽었다. 미국의 힐 차관보는 준비한 문장을 읽기 전에 옆에 있던 미국 대표단 멤버에게 “ 왜 이런 것을 읽지 않으면 안되나. 이건 좀 심하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힐이 읽은 미국의 폐막성명은 북한이 NPT에 재가입한 후 적당한 시기에 경수로를 제공하고, 북한의 인권침해, 생화학무기 계획, 탄도미사일 계획과 확산, 테러, 불법 활동의 우려에 대해서도 제기해나갈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김계관은 힐이 공동성명을 읽는 동안 전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온몸으로 분노를 표출했다고 한다.


9.19 공동성명 발표 직후 미국에서는 홍콩의 BDA를 자금세탁우려대상으로 지목했다. 북한의 위조지폐 제도와 자금세탁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9.19 공동성명합의를 계기로 미국 행정부 내에서 북한의 체제전환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다시 강해졌다고 한다. 미 국무부의 6자회담 관계자는 이를 두고 “ 9.19 공동성명 이후 ‘장검’이 다시 등장했다”고 말했다. BDA를 담당하는 미 재무부 고위관리는 BDA와 북한 돈세탁, 위조지폐 문제는 6자회담과 관계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김계관은 9.19 이후 미국이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에 나선 것을 새로운 체제전환의 음모라고 비난했다.


결국 9.19 공동성명은 합의할 때부터 미국 강경파들에 의해 파산될 운명을 안고 태어난 것이다. 2.13 합의가 기존의 합의와 달리 세부적인 이행절차를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를 실시하는데 매우 유효하다고는 하지만, 9.19 공동성명의 채택과정을 볼 때 낙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요코다 메구미 유골에 대한 의문     

후나바시는 북핵문제의 진행과정을 묘사하고 분석하면서 각국의 이해관계와 전략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서술방식을 보면 사건의 경과에 대해 언급하고, 이후 그 사건에 얽힌 뒷이야기와 후속조치 그리고 배경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방식이 지난 4~5년동의 북핵문제의 경과와 각국의 전략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후나바시는 요코다 메구미 유골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사건처럼 상세히 묘사하고 해설하던 방식을 택하지 않고 슬쩍 비껴가고 있다. 북일관계의 최대 현안은 납치자 문제인데, 2002년 평양선언에서 김정일이 납치를 시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납치자 문제가 북일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요쿄다 메구미 유골 문제 때문이다. 북한은 납치한 요코다 메구미가 사망했다고 알리고 그 유골을 일본측에 보냈다.


후나바시는 이책에서 북한이 보낸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을 감정한 일본정부가 감정결과 “다른 사람의 DNA가 검출되었다”고 단정했다고 짧게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진실은 이와 다르다.  일본정부는 3개의 기관에 감정을 요구했는데, 2개의 기관은 감정불가 판정을 내렸고, 다른 한 기관은 “확정적이 아니다”, “샘플이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일본정부는 이를 가지고 감정결과 DNA가 다르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는 2005년 3월 17일자 사설에서 “일본정치인들은 정치를 위해 과학을 희생시키지 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후나바시가 언론인의 사명에 충실하다면 이 책에서 ‘북일간 최대 현안인 요코다 메구미 유골 문제를 피해간 것은 정치를 위해 언론을 희생시킨 것과 다름없다‘는 의문에 대해 답변할 필요가 있다.

또 후나바시가 비교적 객관적이고 쉬운 문체로 서술하면서도 한미간의 현안에 대한 대목에서 한국정부가 민족주의적인 시각에 갇혀 있다는 뉘앙스로 접근한 것은 분명 균형 있는 서술로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이 책의 영어판과 일어판 제목은 “The Peninsula Question'인데 한국어판을 ‘김정일 최후의 도박’으로 번역한 것은 뛰어난 번역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의 전과정을 파헤치면서 의문에 답하고자 한 후나바시의 저술 취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다. 마지막으로 90년대 초반 1차 북핵위기의 경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비록 미국시각이 강하게 있다고 하더라고 제네바 협상과정에 참여한 미국측 인사들이 기록한 ‘북핵위기의 전말(Going Critical)을 참고할 것을 권한다. 북핵 위기에 대한 이러한 저술들이 주는 교훈은 북핵문제의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해결은 남북미 3자 정상 사이의 정치적 결단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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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
김현경 지음 / 한얼미디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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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현경 기자의    ‘Mr.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


흔히 남북관계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대화와 협력이라는 한 측면과 대결과 갈등이라는 또 다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가운데 어느 한 측면만을 강조하면  균형감을 상실했거나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면서 대결과 갈등을 완화시키면 통일을 향해 그만큼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남북의 변화하지 않는 대립과 갈등의 현실을 조롱할 때 자주 사용되던 사례가 있다. 하나는 비무장지대의 모습이다. 잘 알다시피 비무장지대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 2km의 완충지대를 말한다. 동서로 249km의 비무장지대는 분단의 역설적인 존재로 알려져있다. 분단 때문에 사람의 손질이 닿지 않아 천혜의 자연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으로 4km의 완충지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구간은 거의 없다고 한다. 심지어 연천 태풍전망대 주변은 8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북이 철책선을 밀어붙인 결과이다.

거기에는 온갖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 비무장지대에서 사람이 마음 놓고 지나다닐 수 있는 구간은 경의선 도로와 동해선 도로 뿐이다. 비무장지대 안에로 들어갈 경우 즐비하게 널려 있는 위협 때문에 한 발자국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다. 비무장지대가 아니라 무장지대이다.  

 

다른 하나는 판문점 인근에 있는 세계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자랑하는 대형국기게양대이다. 북측의 기정동 마을에 있는 게양대는 높이가 160미터이고, 인공기의 넓이만도 135평이다. 남쪽의 대성리에는 높이 100미터의 게양대에 넓이 65평의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태극기 유지 교체비용으로 한 달에 200만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렇게 높지 않았는데 서로 경쟁적으로 높이를 올려서 지금과 같은 초대형 시설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현경 기자가 쓴 ‘Mr.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이하 ‘차 한 잔’)라는 책에서 다시 한 번 이런 내용을 확인하였다. 남북대결이 빚어낸 웃지못할,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사례를 ‘차 한 잔’에서 발견하고 나니 김현경 기자의 글이 술술 읽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남북관계라는 고차방정식을 푸는 해법과 북한이라는 매우 어려운 상대를 알아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차 한 잔‘은 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매우 쉽게 풀어가고 있다. 어려운 문제를 알기 쉽게 풀어내는 김현경 기자의 정갈한 글솜씨 때문이기도 하다. 또 비무장지대나 국기게양대 같은 사례들을 제 때에 제시하고 있어서 읽다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금방 실감이 난다.

 

김현경 기자는 남북관계와 북한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문제와 비유해서 설명한다. 통일문제가 나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숭고하고도 엄숙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현경 기자가 자신의 어린시절 추억에서부터 우리가 늘 접하는 생활과 연결해서 설명하는 것을 쭉 읽다보면 통일문제는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때로는 아주 밀접한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김현경 기자는 “어렵고 지루해지기 쉬운 평화와 화해의 이야기를 일상의 대화처럼 가볍게 나누고 싶었다”고 이 책을 쓴 취지를 말했다. 적어도 ‘차 한 잔’의 읽다보면 오히려 평화와 통일이 일상의 대화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하는 반문이 생길 정도이다.  ‘통일운동의 일상화, 생활화, 대중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평소에 사람의 재주 가운데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사방팔방으로 막힘없이 통하는 능수능란함을 높이 쳤다. ‘차 한 잔’을 읽다보면 김현경 기자는 남쪽에서나 북쪽에서나 막힘없이 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통일문제를 다루다보면 통일의 상대인 북쪽도 신경써야하고, 다원주의 사회인 남쪽의 다양한 여론도 신경 써야 한다. 북쪽을 앞에 두고 상대하더라도 뒤에 있는 남쪽의 정부와 국민, 옆에 있는 국외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모두를 고려해서 속으로 곱새기고 우려서 나오는 이야기가 통일의 주체인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 능수능란함을 키우기 위해서는 관심과 애정과 기예가 필요하다.   

 

한편 이 쪽 저 쪽 신경 쓰느라 해야 할 말을 마냥 안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남북관계를 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는 것이다. 김현경 기자는 ‘차 한 잔’에서 때로는 북에 대해서, 때로는 남에 대해서 할 말을 하고 있다. “몇 년 사이에 남북관계는 열정에 들 뜬 연인에서 권태기를 느끼는 부부처럼 변해버렸다”는 한마디에서 남쪽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시각이 엿보인다.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 이후 잘 나가던 남북관계가 미국에서 부시대통령의 취임으로 꽉 막히던 때가 있었다. 북쪽에서 남북관계를 일방적으로 끊은 것이다. 김기자는 만약 그때 북쪽에서 남북관계를 정상적으로 진행시켰으면 그 결과가 어땠을 것인가를 물으며 북쪽의 정책에 대한 갑갑함을 토로한다.

 

‘차 한 잔’에는 할 말 하면서도 남북을 서로 이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남북관계에 대한 오랜 취재관록에서 나오는 노련함이 그녀를 남북 양쪽에서 사통팔달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차 한 잔’에서는 대북포용정책의 대표적인 산물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왜 중요한 것인지, 남쪽 일부여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과연 일방적인 퍼주기인지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과거 정보기관에서 금강산 장전항 사진 한 장 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는데, 이제는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강산을 다녀왔다. 개성공단 만들기 위해 도로가 연결되는데 북측에서도 이 도로가 북침통로로 이용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그동안 일방적인 단순논리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귀 번쩍 뜨일 일이다. 다시 한 번 남북관계는 상대가 있는 것이므로, 상대는 어떻게 생각하는 것인지에 대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균형있는 논리를 만든다는 것을 느낀다.

 

북은 지금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북의 변화에 대한 북쪽 내부의 갈등은 무엇이며, 북쪽의 지도부들은 어떻게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가와 같은 전문적인 내용들을 에세이 형식의 ‘차 한 잔’에서 접할 수 있었으니,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올 여름 유난했던 무더위라도 어찌 내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겠는가. 항상 취재만 당해서 취재기자들의 세계가 낯설기만한 사람들에게는 김기자가 전하는 취재 뒷 이야기와 기자들 세계도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한가지, 이 관록이 넘치는 기자가 쓴 재미있는 통일 이야기 가운데 ‘Mr.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라는 제목에 대해서만큼은 시비를 걸어보고 싶다. 말랑말랑하고 재미있는 표현이지만, 혹시 작년에 부시 미국대통령이 ‘Mr.김정일’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이 6자회담 재개의 발판이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아닐까? 그건 한 번의 일화에 불과한 것으로 넘겨버리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다. (2006.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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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
김현경 지음 / 한얼미디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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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현경 기자의    ‘Mr.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


흔히 남북관계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대화와 협력이라는 한 측면과 대결과 갈등이라는 또 다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가운데 어느 한 측면만을 강조하면  균형감을 상실했거나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면서 대결과 갈등을 완화시키면 통일을 향해 그만큼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남북의 변화하지 않는 대립과 갈등의 현실을 조롱할 때 자주 사용되던 사례가 있다. 하나는 비무장지대의 모습이다. 잘 알다시피 비무장지대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 2km의 완충지대를 말한다. 동서로 249km의 비무장지대는 분단의 역설적인 존재로 알려져있다. 분단 때문에 사람의 손질이 닿지 않아 천혜의 자연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으로 4km의 완충지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구간은 거의 없다고 한다. 심지어 연천 태풍전망대 주변은 8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북이 철책선을 밀어붙인 결과이다.

거기에는 온갖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 비무장지대에서 사람이 마음 놓고 지나다닐 수 있는 구간은 경의선 도로와 동해선 도로 뿐이다. 비무장지대 안에로 들어갈 경우 즐비하게 널려 있는 위협 때문에 한 발자국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다. 비무장지대가 아니라 무장지대이다.  

 

다른 하나는 판문점 인근에 있는 세계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자랑하는 대형국기게양대이다. 북측의 기정동 마을에 있는 게양대는 높이가 160미터이고, 인공기의 넓이만도 135평이다. 남쪽의 대성리에는 높이 100미터의 게양대에 넓이 65평의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태극기 유지 교체비용으로 한 달에 200만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렇게 높지 않았는데 서로 경쟁적으로 높이를 올려서 지금과 같은 초대형 시설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현경 기자가 쓴 ‘Mr.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이하 ‘차 한 잔’)라는 책에서 다시 한 번 이런 내용을 확인하였다. 남북대결이 빚어낸 웃지못할,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사례를 ‘차 한 잔’에서 발견하고 나니 김현경 기자의 글이 술술 읽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남북관계라는 고차방정식을 푸는 해법과 북한이라는 매우 어려운 상대를 알아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차 한 잔‘은 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매우 쉽게 풀어가고 있다. 어려운 문제를 알기 쉽게 풀어내는 김현경 기자의 정갈한 글솜씨 때문이기도 하다. 또 비무장지대나 국기게양대 같은 사례들을 제 때에 제시하고 있어서 읽다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금방 실감이 난다.

 

김현경 기자는 남북관계와 북한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문제와 비유해서 설명한다. 통일문제가 나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숭고하고도 엄숙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현경 기자가 자신의 어린시절 추억에서부터 우리가 늘 접하는 생활과 연결해서 설명하는 것을 쭉 읽다보면 통일문제는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때로는 아주 밀접한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김현경 기자는 “어렵고 지루해지기 쉬운 평화와 화해의 이야기를 일상의 대화처럼 가볍게 나누고 싶었다”고 이 책을 쓴 취지를 말했다. 적어도 ‘차 한 잔’의 읽다보면 오히려 평화와 통일이 일상의 대화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하는 반문이 생길 정도이다.  ‘통일운동의 일상화, 생활화, 대중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평소에 사람의 재주 가운데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사방팔방으로 막힘없이 통하는 능수능란함을 높이 쳤다. ‘차 한 잔’을 읽다보면 김현경 기자는 남쪽에서나 북쪽에서나 막힘없이 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통일문제를 다루다보면 통일의 상대인 북쪽도 신경써야하고, 다원주의 사회인 남쪽의 다양한 여론도 신경 써야 한다. 북쪽을 앞에 두고 상대하더라도 뒤에 있는 남쪽의 정부와 국민, 옆에 있는 국외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모두를 고려해서 속으로 곱새기고 우려서 나오는 이야기가 통일의 주체인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 능수능란함을 키우기 위해서는 관심과 애정과 기예가 필요하다.   

 

한편 이 쪽 저 쪽 신경 쓰느라 해야 할 말을 마냥 안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남북관계를 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는 것이다. 김현경 기자는 ‘차 한 잔’에서 때로는 북에 대해서, 때로는 남에 대해서 할 말을 하고 있다. “몇 년 사이에 남북관계는 열정에 들 뜬 연인에서 권태기를 느끼는 부부처럼 변해버렸다”는 한마디에서 남쪽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시각이 엿보인다.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 이후 잘 나가던 남북관계가 미국에서 부시대통령의 취임으로 꽉 막히던 때가 있었다. 북쪽에서 남북관계를 일방적으로 끊은 것이다. 김기자는 만약 그때 북쪽에서 남북관계를 정상적으로 진행시켰으면 그 결과가 어땠을 것인가를 물으며 북쪽의 정책에 대한 갑갑함을 토로한다.

 

‘차 한 잔’에는 할 말 하면서도 남북을 서로 이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남북관계에 대한 오랜 취재관록에서 나오는 노련함이 그녀를 남북 양쪽에서 사통팔달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차 한 잔’에서는 대북포용정책의 대표적인 산물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왜 중요한 것인지, 남쪽 일부여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과연 일방적인 퍼주기인지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과거 정보기관에서 금강산 장전항 사진 한 장 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는데, 이제는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강산을 다녀왔다. 개성공단 만들기 위해 도로가 연결되는데 북측에서도 이 도로가 북침통로로 이용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그동안 일방적인 단순논리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귀 번쩍 뜨일 일이다. 다시 한 번 남북관계는 상대가 있는 것이므로, 상대는 어떻게 생각하는 것인지에 대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균형있는 논리를 만든다는 것을 느낀다.

 

북은 지금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북의 변화에 대한 북쪽 내부의 갈등은 무엇이며, 북쪽의 지도부들은 어떻게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가와 같은 전문적인 내용들을 에세이 형식의 ‘차 한 잔’에서 접할 수 있었으니,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올 여름 유난했던 무더위라도 어찌 내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겠는가. 항상 취재만 당해서 취재기자들의 세계가 낯설기만한 사람들에게는 김기자가 전하는 취재 뒷 이야기와 기자들 세계도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한가지, 이 관록이 넘치는 기자가 쓴 재미있는 통일 이야기 가운데 ‘Mr.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라는 제목에 대해서만큼은 시비를 걸어보고 싶다. 말랑말랑하고 재미있는 표현이지만, 혹시 작년에 부시 미국대통령이 ‘Mr.김정일’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이 6자회담 재개의 발판이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아닐까? 그건 한 번의 일화에 불과한 것으로 넘겨버리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다. (2006.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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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백낙청 지음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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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




백낙청 교수는 8년전에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이 책에 대해 최근에 출간한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책의 머리말에서 제목을 잘 지어서 재미를 좀 보았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에 진행된 남북관계 ‘뽕나무 밭이 변해서 바다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변화하였다. 이런 변화를 실감한 사람들은 6.15 공동선언 발표 이전에 이미 분단체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간파한 백낙청 교수의 혜안에 감탄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제목 잘 지어서 재미를 좀 보았다는 백교수의 표현에 은근한 자부심(?) 같은 것이 묻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백교수는 이번에 출간한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이라는 책에서도 재미를 보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똑같은 재미를 두 번 되풀이해서 느끼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한반도식 통일이란?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제목에는 말 그대로 분단체제가 흔들린다는 분석과 예측이 담겨 있다. 그 예측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제목 잘 달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제목도 얼핏 우리가 못느끼는 사이에 통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예언 같은 게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세월이 흐른 뒤에 사람들이 “그때 백교수가 한 예언이 딱 맞았어”하고 말한다면 백교수는 또 제목 잘 달았다는 자부심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이른 표현은 점쟁이처럼 미래를 예측하는 표현이 아니다. 그 표현은 우리의 통일의 성격을 말해주는 표현이다. 예측을 잘해서 그게 입증되면 나중에 재미를 볼 수 있는 성질의 제목이 아닌 것이다. 이미 우리가 맞이해야할, 맞이하고 있는 통일의 성격을 밝히고 있으므로, 그 성격을 정확하게 표현했다는 사실만으로 재미를 보기에 충분하다.

백교수는 ‘한반도식 통일’이란 독일식도, 베트남식도 아닌 ‘우리식’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진행형’이란 통일은 과정이고, 6.15 선언 이후 과정으로서 통일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표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이란 표현은 우리가 이룰 통일에 대해 압축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는 제목이다.

2차대전 이후 분단국가가 통일된 사례로 흔히 독일, 베트남, 예멘을 꼽는다. 하지만 독일의 통일은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진행된 일방적인 흡수통일이라는 점에서, 베트남의 경우 전쟁에 의한 비평화적인 통일이라는 점에서, 예멘의 경우 국민대중의 지지와 참여가 없이 이루어진 정치권력에 의한 야합형 통일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면, 분단의 유지와 지속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의 늦은 통일을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통일은 준비가 필요하고, 일방적인 흡수통일이거나 전쟁에 의한 통일이 아니며, 국민대중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바로 다른 나라의 사례와 다른 한반도식 통일의 내용이 될 수 있다.  




현재진행형은 통일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통일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표현은 백교수가 통일에 대한 개념을 바꿀 것을 제창한 의미속에 그 표현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백교수는 “단일형 국민국가로의 ‘완전한 통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 어느 지점에서 남북간의 통합작업이 일차적인 완성에 이르렀음을 쌍방이 확인했을 때 ‘1단계 통일’이 이룩되는 것이라는 새로운 발상”을 제창하고 있다. 그리고 “다소간에 두루뭉수리로 진행하다가 문득 통일이 되는 과정이야말로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한반도식 통일의 참뜻”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필자도 오래전부터 통일의 개념을 바꿀 것을 주장해왔다. “통일은 하나가 되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통일은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널리 퍼져 있다.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 통일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아무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민족동질성의 회복은 곧바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은 하나가 되는 것이고, 통일은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반은 맞지만 결코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통일은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놓쳐서는 안될 것은 통일은 하나로 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통일은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지만, 민족동질성에 기초하되 남북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통일과정에서 더 중요하다.

통일을 과정으로 바라보지 않을 경우에는 급격한 체제통합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급격한 체제통합이 가져올 후유증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통일을 논의하지 말자는 데로 이른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빨리 통일을 하는 것에 대해 염려하고 통일이 가져올 혼란을 걱정하면서, '지금 이대로'가 더 낫다는 논의를 만들어 낸다. 통일을 과정으로 이해하지 않을 경우 '통일'에 대해서 이와 같이 부정적인 연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현단계에서 추구해야 할 통일은 '통일과정의 초기 단계로서 공존'이라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남북의 공존도 통일이고, 현시기에 추구해야할 통일상태는 공존이며, 이 상태가 역동적으로 발전해 가면서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을 미룰 필요도 없고, 통일 때문에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염려해서 통일을 부정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통일과정에서 모아진 민족적 열망을 통일공동체 건설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본다면 6.15 공동선언 합의 이후 현재의 상태를 통일이 진행 중인 상태라고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통일논의 활성화를 기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6.15 선언이 발표되었고 한반도 통일이 현재 진행중인데도 통일에 대한 논의는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급속한 통일이 가져올 혼란을 피하자는 것이 그 이면에 깔려 있어 보인다. 하지만 통일논의를 활성화하여야 오히려 혼란을 방지하고 통일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다.

통일을 과정으로 바라보고 통일을 점차적으로 추구한다면 통일논의를 피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활발한 통일논의를 통해서 어떻게 통일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모아야 한다. 급속한 통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평화롭게 공존하는 통일은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해서 창조적으로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활발한 통일논의를 통해서 어떤 상태를 통일이라고 말하는 것인지에 대한 기준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이런 기준을 바로 세우는 것이 통일을 준비하는 길이다. 

백낙청교수의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한동안 주춤했던 통일논의를 다시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식 통일의 성격, 통일의 개념, 통일운동 방식, 통일과 남한사회개혁과의 관계, 6.15선언 2항을 비롯한 통일방안 논의, 통북아와 한반도 평화체제 등 통일론을 형성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백교수의 주장이 통일논의 활성화에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통일을 준비하는 것인지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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