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정일 최후의 도박 - 북한 핵실험 막전막후 풀 스토리
후나바시 요이치 지음, 오영환 옮김 / 중앙일보시사미디어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서평> 김정일 최후의 도박
북한핵문제는 십수년동안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불안하게 만든 요인이다. 북한 핵문제의 본질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정치군사적 불신에 있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위협하고 압박한다고 보기 때문에 자위적인 차원에서 핵을 개발한다고 주장하며, 궁극적인 비핵화를 위한 핵개발이라는 다소 모순에 찬 논리를 펼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라는 위험한 집단이 핵무기를 개발해서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게된다면 국제질서는 더욱 어지러워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북한 핵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해체(CVID)’를 목표로 해왔다. CVID를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도 감수하겠다는 것이 부시행정부의 입장이었다.
북한과 미국의 이와같은 대결속에서 한반도는 전쟁 일보직전의 위기상황으로 내닫기도 했다. 6.15 남북공동선언의 이행이 지리멸멸한 것도 2002년부터 북한핵문제가 다시 급부상하여 이른바 2차 북핵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북핵문제의 진행과정에 대한 목마름
북한핵문제가 이와같이 한반도 문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면, 북한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경우 한반도 상황이 급진전될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북한핵문제에 대해서 민간차원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북한핵문제 자체가 외교안보의 핵심적인 사안으로서 국가안보를 이유로해서 그 진행과정이 공개되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민간차원에서는 항상 북핵문제의 전개과정에 대해 궁굼해왔다. 정보의 비공개가 때로는 상황에 대한 엉뚱한 결론을 내리기도 했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인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2년 10월이후 발생한 이른바 2차 북한핵문제만을 살펴보도라도 그 진실이 정확하게 공개되어야할 할 대목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2002년 10월에 제임스 켈리 미국 차관보가 방북했을 때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보유를 인정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당시 무슨말이 오고갔는지 대화록이 정확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것은 북일 국교정상화과정에서 핵심적인 걸림돌로 등장한, 북한이 납치한 후 사망하자 일본에게 돌려준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이 조작되었는지 여부이다. 아울러 2005년 4차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공동성명 이후 BDA 문제가 갑자기 제기되어 9.19 공동성명을 표류시킨 이유도 매우 궁굼한 사안이다.
일본이 아사이신문 칼럼리스트인 후나바시 요이치가 4년간의 추적끝에 3,000장의 대기록으로 남겼다는 ‘김정일 최후의 도박’은 2차 북핵위기 이후 2006년 핵실험 이전까지의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후나바시는 이 책의 서술을 위해 한국,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의 전현직 외교안보관련 종사자 158명을 포함해서 각국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하였다. 이 책의 상세하게 묘사에서 알 수 있듯이 후나바시와 각국의 전현직 관리들과의 인터뷰는 밀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밀도 있는 인터뷰를 할 수 있는 후나바시의 능력이 탄복스러울 정도이다.
각국의 주요관리들이 후나바시의 인터뷰에 응한 것은 각국의 입장을 정확하게 알리기 위한 필요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나 시민사회 관계자들 가운데 정보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서 같이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보유에 대한 의문
후나바시는 HUE 문제가 불거져서 2차 북핵위기를 가져온 케임스 켈리와 강석주의 면담을 상세히 설명하고 분석하고 있다. 강석주는 켈리에게 “우리가 HEU 계획을 갖고 있는 게 뭐가 나쁘다는 건가. 우리는 HEU 계획을 추진할 권리가 있고,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만들게 돼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켈리는 강석주의 이 발언을 듣고 옆자리에 있던 프리처드 대북협상담당 특사에게 “들었지? 방금 이야기, 틀림없이 말했지?”라고 말을 건넸다. 강석주는 이어서 “ 부시 정권이 이처럼 우리들에 대해 적대시 정책을 취하는 이상 우리가 HEU 계획을 추진한다 해서 무엇이 나쁜가. 그것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한 억지력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켈리는 강석주와 이와 같은 대화를 기초로해서 미국 정부에 북한이 HEU 보유를 시인했다고 보고 했고, 이것이 바로 2차 북핵위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HEU를 실제 보유하고 있는지, 어디에 그런 시설이 있는지에 대한 확인된 정보는 갖고 있지 않았다. 후나바시는 강석주가 핵억지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여 미국의 관심을 끌고자 이와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 그토록 불신하고 있는 미국은 충분한 사실확인이 안된 강석주의 발언을 신뢰하면서 이를 근거로 해서 북한이 HEU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미국이 이런 제기를 통해 2차 핵위기를 발생시킨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의혹만 제기되어왔을 뿐이다. 미국도 북한이 HEU를 보유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결국 2005년부터 고농축우라눔(HEU)이 아닌 농축우라늄계획(EUP)이라고 표현을 바꿨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이 채택되어 남북 화해가 급진전되고 이는 동북아질서에까지 영향을 미쳐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총리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평양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평양선언 직후에 불거진 HEU 문제가 남북관계를 비롯하여 동북아 정세를 냉각시켰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엄청난 결과에 비해서 HEU의 진실은 미약한 것일 수도 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HEU는 미국이 핵시설로 지목했으나 텅빈 동굴에 불과했던 금창리 사건에 비춰 제2의 금창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 2.13 합의 이행과정에서 HEU 문제가 다시 제기될 수도 있으나 진실을 오랫동안 덮어두기는 힘들 것이다.
9.19 공동성명 채택 배경에 대한 의문
후나바시는 이 책에서 채택 직후부터 표류할 수밖에 없었던 9.19 공동성명의 운명에 대해서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9.19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NPT 가입시점과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 시점을 연결시키지 않고 있다. 9.19 공동성명 채택 이후 각국 대표들이 폐막성명을 읽었다. 미국의 힐 차관보는 준비한 문장을 읽기 전에 옆에 있던 미국 대표단 멤버에게 “ 왜 이런 것을 읽지 않으면 안되나. 이건 좀 심하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힐이 읽은 미국의 폐막성명은 북한이 NPT에 재가입한 후 적당한 시기에 경수로를 제공하고, 북한의 인권침해, 생화학무기 계획, 탄도미사일 계획과 확산, 테러, 불법 활동의 우려에 대해서도 제기해나갈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김계관은 힐이 공동성명을 읽는 동안 전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온몸으로 분노를 표출했다고 한다.
9.19 공동성명 발표 직후 미국에서는 홍콩의 BDA를 자금세탁우려대상으로 지목했다. 북한의 위조지폐 제도와 자금세탁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9.19 공동성명합의를 계기로 미국 행정부 내에서 북한의 체제전환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다시 강해졌다고 한다. 미 국무부의 6자회담 관계자는 이를 두고 “ 9.19 공동성명 이후 ‘장검’이 다시 등장했다”고 말했다. BDA를 담당하는 미 재무부 고위관리는 BDA와 북한 돈세탁, 위조지폐 문제는 6자회담과 관계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김계관은 9.19 이후 미국이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에 나선 것을 새로운 체제전환의 음모라고 비난했다.
결국 9.19 공동성명은 합의할 때부터 미국 강경파들에 의해 파산될 운명을 안고 태어난 것이다. 2.13 합의가 기존의 합의와 달리 세부적인 이행절차를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를 실시하는데 매우 유효하다고는 하지만, 9.19 공동성명의 채택과정을 볼 때 낙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요코다 메구미 유골에 대한 의문
후나바시는 북핵문제의 진행과정을 묘사하고 분석하면서 각국의 이해관계와 전략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서술방식을 보면 사건의 경과에 대해 언급하고, 이후 그 사건에 얽힌 뒷이야기와 후속조치 그리고 배경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방식이 지난 4~5년동의 북핵문제의 경과와 각국의 전략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후나바시는 요코다 메구미 유골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사건처럼 상세히 묘사하고 해설하던 방식을 택하지 않고 슬쩍 비껴가고 있다. 북일관계의 최대 현안은 납치자 문제인데, 2002년 평양선언에서 김정일이 납치를 시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납치자 문제가 북일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요쿄다 메구미 유골 문제 때문이다. 북한은 납치한 요코다 메구미가 사망했다고 알리고 그 유골을 일본측에 보냈다.
후나바시는 이책에서 북한이 보낸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을 감정한 일본정부가 감정결과 “다른 사람의 DNA가 검출되었다”고 단정했다고 짧게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진실은 이와 다르다. 일본정부는 3개의 기관에 감정을 요구했는데, 2개의 기관은 감정불가 판정을 내렸고, 다른 한 기관은 “확정적이 아니다”, “샘플이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일본정부는 이를 가지고 감정결과 DNA가 다르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는 2005년 3월 17일자 사설에서 “일본정치인들은 정치를 위해 과학을 희생시키지 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후나바시가 언론인의 사명에 충실하다면 이 책에서 ‘북일간 최대 현안인 요코다 메구미 유골 문제를 피해간 것은 정치를 위해 언론을 희생시킨 것과 다름없다‘는 의문에 대해 답변할 필요가 있다.
또 후나바시가 비교적 객관적이고 쉬운 문체로 서술하면서도 한미간의 현안에 대한 대목에서 한국정부가 민족주의적인 시각에 갇혀 있다는 뉘앙스로 접근한 것은 분명 균형 있는 서술로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이 책의 영어판과 일어판 제목은 “The Peninsula Question'인데 한국어판을 ‘김정일 최후의 도박’으로 번역한 것은 뛰어난 번역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의 전과정을 파헤치면서 의문에 답하고자 한 후나바시의 저술 취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다. 마지막으로 90년대 초반 1차 북핵위기의 경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비록 미국시각이 강하게 있다고 하더라고 제네바 협상과정에 참여한 미국측 인사들이 기록한 ‘북핵위기의 전말(Going Critical)을 참고할 것을 권한다. 북핵 위기에 대한 이러한 저술들이 주는 교훈은 북핵문제의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해결은 남북미 3자 정상 사이의 정치적 결단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