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기기 위해 도전한다
딕 모리스 지음, 손지애.박소정 옮김 / 리더스북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이기기 위해 도전한다.




힐러디 대 콘디?




미국정치계에서 대표적 스핀닥터(Spin Doctor·정치홍보 전문가)로 알려진 ‘딕 모리스’가 2008년 미국 대선을 분석한 책이 출간되었다. 미국판 원제는 ‘CONDI vs. HILLARY’인데, 한국어판에는 ‘나는 이기기 위해서 도전한다’는 제목을 달았다. 원래 미국에서 2005년에 출간된 책이다. 국내에서는 2007년도에 번역판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몇가지 약점이 있다. 2005년도의 시점에서 2008년의 미국 대선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생물인데, 2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는 2005년도의 분석이 현실성을 지니기 어렵다. 이 책에서 딕 모리스는 콘돌리자 라이스가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등장할 것을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20여년간 클린턴의 참모였다가 힐러리 반대자로 돌아선 딕 모리스는 콘디가 공화당 후보가 되어야 힐러리를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힐러리가 당연히 민주당 후보가 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공화당 후보는 메케인이고, 또 힐러리는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와 접전을 벌이고 있다. 아마 ‘민족화해’가 출간될 무렵에는 민주당의 후보 윤곽이 보다 분명해질지도 모르겠다. 딕 모리스의 주장은 힐러리가 당연히 민주당 후보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힐러리를 이길 수 있는 공화당 후보는 콘디뿐이라는 것이다.

 미국정치 현실에서 지금 오바마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딕 모리스의 예측과 달리 힐러리가 공화당 후보인 메케인과 비교해서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딕 모리스는 오바바 돌풍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힐러리가 당연히 민주당 후보가 될 것으로 보았으며, 그 경우 힐러리를 대적할 공화당 후보는 없다고 분석하였다. 딕 모리스의 분석과 예측은 여지없이 빗나간 것이다.




21세기 마키야벨리의 변신과 수모




“초등학교 반장선거서부터 1996년 클린턴의 기사회생 선거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불패의 신화의 주인공", "공화당, 민주당 어느 당이든 자신의 고객으로 가지고 있는 정치 용병",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소위 '제3의 길'의 소유자", ”21세기의 마키야벨리“... 딕 모리스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기기 위해서 도전한다’는 책은 딕 모리스의 이와같은 명성에 먹칠하고 말았다.

정치현실을 분석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으나 미래의 정치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치의 변화는 예측하기 어려운 많은 변수들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또 정치행위가 그 변수들에 영향을 주어서 변수를 더욱 다양하고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딕 모리스는 이 한권의 책으로 클린턴의 장자방으로서 대선불패 신화를 만든 그 명성에 큰 흠집을 입었을 것이다.

물론 필자가 이 책을 서평으로 선정한 것은 딕 모리스를 조롱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나 클린턴의 참모였다가 힐러리 저격수로 변신한 딕 모리스가 자신의 명성에 큰 흠집을 낼 만큼 잘못된 예측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마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딕 모리스는 정치가가 아니다. 그는 정치 컨설턴트, 여론조사 전문가, 정치홍보 전문가일 뿐이다. 그런 자신의 본분을 잊고 이 책을 출간하여 현실정치의 구조를 변화시키려고 다소 무모하게 정치에 개입였다. 곧 힐러리를 낙마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그녀에 대한 대항마로 콘디를 내세운 것이다. 힐러리와 콘디를 비교해서 콘디가 힐러리에 비해 우위에 있으므로 콘디를 공화당 후보로 출마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이 책을 저술하였다. 힐러리 저격수로서 그의 목적의식은 집착으로 보일 정도로 지나친 것이다. 그 집착과 지나침 때문에 미국에서 손꼽히는 정치컨설턴트 딕 모리스는 이 책 출간으로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커다란 수모를 감수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러한 오류나 지나침을 제외한다면 클린턴 전 대통령의 20년 정치참모답게 그가 분석한 틀은 미국정치와 대선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워싱턴 포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로 꼽히는 힐러리와 콘디의 서로 다른 기질과 장단점에 대해 이처럼 예리하고 면밀하게 분석한 책은 없었다.”고 평하였다. 실제로 미국대선의 변수들에 대한 분석은 현 시점에서도 유용하고, 미국 대선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사람들이 읽어볼만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힐러리와 콘디의 장단점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아니다. 콘디는 대통령 출마를 하지 않았고, 힐러리는 흑인 남성인 오바마와 접전을 벌이고 있다. 힐러리와 콘디의 비교는 이제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




힐러리의 이중성




이 책에서 딕 모리스는 힐러리를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비교하면서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이중인격자라는 식으로 혹독하게 비판한다. 딕 모리스의 비판은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초점이 모아진다. 딕 모리스는 20년간 클린턴의 장자방이었다. 이제 힐러리 저격수로 변신하였다. 그는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만 크게 본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딕 모리스의 비판은 오히려 현실 정치인으로서 힐러리의 모습을 더욱 크게 만들어 버렸다는 느낌이다. 딕 모리스의 변신이 영혼이 없는 정치 기술자의 모습이라면, 힐러리의 변신은 정치인의 반성과 변화와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딕 모리스에 따르면 힐러리는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보건의료, 여성과 어린이 권익보호, 국가 유물의 보전과 같은 이슈들을 다루었으나 모두 실패했다고 한다. 또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후 윤리적인 이슈들이 뒤따라 다니는 스캔들 메이커였다.

힐러리는 2000년 상원의원에 선출되어서 ‘힐러리’라는 브랜드를 출범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후 백악관 재입성을 위한 기나긴 여정을 시작했다.

힐러리는 민주당의 자유주의적인 후보들이 실패했던 경험을 교훈 삼아서 자유주의 노선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딕 모리스는 이를 가리켜 “좌파에 중독된 민주당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온건파로 부상”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딕 모리스는 힐러리의 변신을 “그녀(힐러리)의 중도주의는 카메라가 그녀를 주시할 때만 발현됐고, 그녀가 중도주의적인 목소리를 높이는 이슈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며 비판한다.

힐러리는 상원의원으로서 초당파적인 중재자로서 이미지를 만들었는데, 이러한 이미지 변신역시 딕모리의 눈으로 보면 이중적인 모습에 불과하다. 사적인 공간에서 종종 거칠고 비꼬는 당파적 정치인이지만 공적으로는 당파를 초월한 협력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딕 모리스의 눈에 비치는 힐러리의 이중적인 모습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TV 카메라가 가까이 있을 때는 소리내서 웃기도 하면서 ‘유머의 대명사’라는 이미지도 만들고 있다. 눈에 거슬리는 이상한 의상을 버리고 검은색 바지 정장에 블루, 핑크, 흰색의 블라우스를 입으며 세련된 뉴욕의 패션을 따라간다. 대중이 받아들이기 쉬운 헤어스타일을 위해서 항상 매력적이고 안정적인 짧은 금발의 보브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변신의 기술과 원칙 지키기




딱딱하고 차갑고 사상적이며 당파적이고 계산적인 미국 중·남부의 여성의 모습에서 항상 미소를 짓는 편안한 모습, 모든 사상에 열려 있는 온건한 성향, 정직하고 재미있으면서 매력적이고 친숙한 뉴요커의 모습으로 변신하였다.

 미국 상원의 투표기록을 보면 힐러리는 전체 상원의원 가운데 여덟 번째로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에서는 중도주의를 지향하면서 비교적 비중이 자은 이슈에 대해서는 공화당 우파와 뜻을 같이하는 모습도 보인다. 종교면서는 정신적인 가치에 대해 좀더 개방적인 자세를 보이고, 국가안보와 테러리즘 문제에서는 날카롭고 전문가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런 힐러리의 모습을 딕 모리스는 “일정 시간 동안 모든 사람을 속일 수는 있고 일부 사람들은 항상 속일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들을 항상 속일 수는 없다”는 격언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힐러리가 모든 사람들을 항상 속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힐러리의 변신이 모든 사람들을 항상 속이려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현실정치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경직된 이념형 인물에서 탈피하여 유연하고 능수능란하면서도 원칙을 지키는 큰 정치인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뭐가 문제인가?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수정해서 재출판할 것과 한국의 정치인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일독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 힐러리의 변신은 아름답다. 

이렇게 변화해온 힐러리도 변화(change)를 앞세운 오바바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또다른 변화의 법칙을 말해준다. 멈추게 되면 그 순간 변화는 더 이상 변화가 아니다. 변화란 시간이 지속되는 한 끝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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