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맙습니다 (일반판)
올리버 색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알마 / 2016년 5월
평점 :
의사를 직업으로 하면 죽음을 자주 접하게 된다. 중환자실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혹은 내가 담당하던 환자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기도 한다. 처음에 죽음을 접하면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시간이 가면 '의사는 신이 아니고,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타자의 죽음을 접하는 것이지, 나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일 것이다. 건강하게 살고 있던 내가 갑자기 암을 진단받고 내 인생에 6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근래 우리에게 죽음과 인생에 대한 화두를 던진 친숙한 인물은 스티븐 잡스다. 죽음을 결국 맞닥드리는 우리에게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그의 이야기는 사실, 죽음을 바로 앞에 둔 사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고 죽음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의사이면서 따뜻한 글을 남겨 널리 알려진 저자 올리버 색스는 여든살을 맞이하여 자신이 허비한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를 토로함과 함께 죽음이 임박했을 때까지도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을 소소하게 표현한다.
아쉬운 점은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그리고 지금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든 살이 되고서도 스무살 때와 마찬가지로 지독하게 수줍음을 탄다는 것도 아쉽다. 모국어 외에는 다른 언어를 할 줄 모른다는 게 아쉽고, 응당 그랬어야 했건만 다른 문화들을 좀더 폭넓게 여행하고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도 아쉽다. (중략) 마침내 갈 때가 되면, 프랜시스 크릭이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순간까지도 일하다가 갔으면 좋겠다. 크릭은 대장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처음에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냥 일 분쯤 먼 곳을 바라보다가 곧장 전에 몰두하던 생각으로 돌아갔다. 몇 주 뒤에 사람들이 그에게 진단이 어떻게 나왔느냐고 물으면서 들볶자 크릭은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지"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는 가장 창조적인 작업에 여전히 깊이 몰입한 채로 여든여덟 살에 죽었다. - p. 19
흑색종이라는 악성종양으로 9년여간의 투병 후에 그는 암이 간으로 번졌다는 사실, 그리고 인생에 6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독자들에게 작별인사를 남겼다.
두렵지 않은 척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이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남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나도 조금쯤은 돌려주었다. 나는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썼다. 세상과의 교제를 즐겼다. 특히 작가들과 독자들과의 특별한 교제를 즐겼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 p. 29
충실한 삶을 산 사람이기에 담담하고 의연하게, 감사함을 표현하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죽음을 앞에 두고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 <고맙습니다>에 수록된 올리버 색스의 뉴욕 타임즈 기고문 <My Own Life>의 번역문이 NewsPeppermint에 올라와 있다. 올리버 색스의 말년의 글 일부를 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