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사는 사람은 상황 속에 뛰어들고 과제가 주어지면 반응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머리로 사는 사람은 상황과 거리를 두고 과제가 주어지면 거기에 반응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두고 생각을 하는 식으로 '반응'하곤 한다. 가끔 무언가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도중에 일어나는 잦은 회의로 인해 길게 가지를 못한다.
나는 최근 매우 거칠기 짝이 없는 이 구분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이 때 '적지 않은'이란 상대적인 형용사인데 어떤 현대정치철학의 개념에 자신이 부합하냐, 어떤 이론적 준비가 갖춰졌느냐,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의 철학적 내지는 거시적 의미를 알고 있느냐의 기준들보다 그러하다는 것이다. 몸과 머리의 이분법을 내가 따라왔던 이 모든 가치기준을 상대화시키는 것을 가능케 해준다. 그리고 이 가치기준에서 폄하되어 왔던 삶과 모습들에 대한 재평가, 나아가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역시나) 지적인 기초를 마련해준다.
여기서도 지적 기초에 집착하는 것은 내가 아직도 머리로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겟지. 나를 포함한 이런 사람들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는 않지만 크지는 않다. 유물론 대 관념론이라는 식상한 구분을 들여놓고 싶지 않고, 자기반성이 또 한번 나중에 반성할 일을 만들게 하고 싶지 않다. 만약 이 구분에서 한 쪽에 속했다고 간주되는 사람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그가 어디 한 쪽에 속해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 자체가 모자라서 그러한 경우가 훨씬 많다.
나는 그저 내가 적어도 조만간에는 몸으로 사는 사람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이분법이 시사하는 것을 좀더 이해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런 이유에서 이 리스트를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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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코뮤니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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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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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몸으로 살길 강요당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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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스스로가 머리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 머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기록 중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