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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지지는 정치적 치정관계의 외설입니다.
<문국현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시인 백무산


강제적 선교활동을 중단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문국현 후보를 지지하기로 마음먹은 데는 최근에 벌어진 소위 범여권 후보 단일화 추진 과정에서 기인한 바가 큽니다. 통합신당의 주변 인사들과 존경받는 사회원로들의 문국현 후보에 대한 부당한 압박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번 대선에서 사회당이나 민노당 후보 가운데 한 명을 투표소에 가서 찍는 것으로 의무를 다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백주대낮에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는 사람을 구하는 심정으로 그것도 선거 막판에 별 영광도 없는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런 행위는 대부분 그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자신도 심각한 부상을 입고 끝이 나기 일쑤지만,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고 깁스를 하고 병원에 눕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가 피를 흘리며 추구해온 민주주의적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을 보고 피해갈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선배나 스승으로써 민주화세력의 좌절과 몰락을 지켜보는 일은 실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원로들의 행동에 대해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고, 발 벗고 나서신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부끄럽고 또 고마워했습니다. 그러나 중재 과정에서 그분들은 곧 무엇 때문에 모여서 왜 기자회견을 했는지 노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균형을 유지한 중재자의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분들은 후보단일화에 참여하지 않는 세력이나 개인은 민주평화세력에서 제외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작은 이해관계에 매달려 단합을 저해하는 일은 개탄할 일이”이라고 하면서 “참여정부의 오만과 무능에 대한 차별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해도 이는 자칫 또 하나의 오만이요, 정치적 무능세력으로 규정될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압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이 행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향하는가를 굳이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일화를 위한 모든 절차가 사실은 처음부터 문국현 후보 사퇴를 위한 계획된 움직임이 아닌가를 의심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 눈에는 최근에 우리를 안타깝게 하였고, 또 허탈하게 만든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겹쳐보였습니다. 하나는 선교활동이 금지된 나라 아프간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납치 살해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이명박 장로님을 지지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어느 유명 교회 부흥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민주세력 분열을 꾀한 일이 전혀 없고, 부패세력을 도운 일도 없는 문국현 후보에게 강제적 선교활동은 폭력입니다. 회개할 것 없는 사람에게 몰매를 가하면서 회개하라고 강요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민주평화운동생명책’이 있다면, 혹여 무형으로라도 그런 ‘비슷무리’한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불속에 던져 넣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이비교 교주의 명부에 이름이 오를 것입니다.

창조적 시대정신을 짓밟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이미 낡아버린 민주개혁세력이 제대로 된 반성도 없이 재집권을 위한 과거회귀세력 반대 연합을 시대적 과제로 가치몰이 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개혁세력과는 단절적으로 자기가치를 완성할 미래세력이 우리 사회에 충분히 형성되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단일화든 연합이든 현실과 미래 사이 가장 적절한 가치균형을 꾀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사실, 가치를 몇 가지 공약과 정책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발현하는 신념, 태도, 정신, 감성, 욕망, 행동 등을 결정하는 삶의 통합적 원리로써, 이것은 산술적으로 저울질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한 시대의 가치 중심뿐 아니라 그 지향점을 제시해 주어야 할 사회 원로들의 가치와 정치인들의 가치는 그래서 많이 다른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가치라고 말할 때 그것은 대체로 도구나 수단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평소에는 다른 태도를 보이다가 선거판에 와서 어지럽게 늘어놓는 수사를 가지고 그 사람이 지닌 가치관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정치적 해석일 뿐입니다. 사회원로들께서는 자신의 언어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언어로 가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들이 ‘가치의 밑받침’을 전제로 추진한 모든 가치에는 가치가 들어있지 않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여기에 있습니다.

문국현 후보는 선거과정에서 범민주세력 내 소수세력으로 폄하되고 있습니다. 후보단일화 추진세력들이 그것을 상징조작화 했습니다. 이것은 실로 중대한 실책을 범한 것입니다. 천재와 범인의 차이는 종잇장 하나 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창조성의 차이입니다. 고릴라와 인간의 유전자는 99.6%가 같다고 했습니다. 20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현대인의 차이는 0.01% 차이도 없습니다.

정동영 후보가 문국현 후보의 정책을 수용하니 그러면 다 되었지 않느냐고 하는 말로 대중을 설득하려 드는 것은 실로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차이를 극대화해서 바라보아야 해답이 나옵니다. 우리 사회에서 좌측이든 우측이든 현재로서는 모두 옆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가는 행위는 대단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동안 진보운동이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진보를 수량적 확대, 힘의 확대 과정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보를 곧 권력의 문제로 등치시켜버린 것입니다. 집권 오직 집권! 이외에는 어떤 대안도 없습니다. 대안이 없으므로 집권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진보의 무능력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창조성입니다. 창조성이 담기지 않는 어떤 것도 시대정신이 될 수 없습니다. 문국현의 가치를 너무 많이 밟아버렸습니다. 내가 문국현을 지지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국현을 진보라고 말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진보의 생명은 창조성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창조성이 진보를 우선 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문국현을 지근거리에서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우리 시대의 창조적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었기에 그를 지지합니다. 문국현을 더 이상 죽여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소중하게 다가온 꽃씨 하나를 무심코 발로 밟아버려도 어쩔 수 없겠으나 그것이 꽃이 되어 보여줄 찬란한 우주의 한 절정을 짓밟는 것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비판적지지는 정치적 스와핑입니다.

나는 모든 권력에 다소 회의적입니다. 국가권력으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네그리나 홀러웨이의 입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주장에 현실성을 담기 위해 나는 조금 수정하여 신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르트르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권력을 지금 당장 철폐할 수는 없기에 지난한 역사적 진퇴를 거듭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입장도 조금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권력은 권력을 해체하기 위한 수단의 권력만이 정당한 권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 역시 권력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도록 대단한 긴장이 요구되는 위험한 물건입니다.

그래서 나는 정당정치가 안정이 되어야 민주주의가 완성된다는 정치학자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새롭고 다양하고 활력 있는 정당이 언제나 실험되고 기존정당에 끝임 없이 도전하는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삶의 가치, 시대적 가치가 끝임 없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비판적지지라는 말이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 치정관계를 말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이번 딱 한번만 그렇게 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모든 선거에서 비판적 지지를 해야 할 후보가 없는 선거는 거의 없습니다. 과거에 잘못된 비판적지지 행위와 그 분란으로 인해 지금쯤 좋은 가치정당 하나 완성할 수 있었을 만큼의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였습니다.

노동운동을 해온 사람들 가운데서도 특정후보에게 비판적지지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하긴 다양한 가치정당이 없는 현실에서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만, 비판적지지의 최대 피해자는 언제나 노동자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선택을 한 분들은 국가적 관점으로 모든 걸 판단하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잘못된 애국주의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국가 자체는 어떠한 실체도 없습니다.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그것을 내 신념에 가져 올 수 없습니다. 가져올 수 없는 것을 가져와 결정력을 만든 것이 이데올로기입니다. 자신이 처한 사회적 입장을 분명히 하는 일이 가장 사회를 위하는 일입니다. 이념과 가치가 분명한 정당은 그 자체가 하나의 나라입니다. 자신을 국가에 통합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권영길, 금민 후보에게 던지는 표도 사표가 되지 않습니다. 적립됩니다. 적립된 표는 이자가 붙어서 돌아갈 것입니다.

후보단일화는 패배주의 전술입니다.

선거운동을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선거가 대단한 최면력을 가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자기후보에게 유리한 모든 정보는 극대화됩니다. 당선될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그런 의지를 보여주어야 유권자들이 지지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유권자를 설득하려다가 자기최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냉정하게 조정해야 할 사람들은 여기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정동영 후보가 좋은 정치지도자이고 또 인간적으로 훌륭한 인격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좋은 인격을 지키기 위해서도 현실을 차가운 눈으로 직시해야 합니다. 어찌되었건 최대의 문제는 객관적으로 통합신당 후보가 누구와 후보단일화를 하더라도 당선될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는데 있습니다. 그건 그 내부에서 최면에 빠진 사람들도 대부분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혼자서 아름다운 2등이라도 해야겠으나 그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위기감은 여기에 있습니다. 인정할 건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2등이 아니라 3등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 때 그 위기감은 극에 달합니다. 게다가 문국현 후보에게 뒤질 수 있고 결과적으로 문국현후보로 단일화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나올 경우까지 예상하면 위기감은 거의 폭발 직전까지 이릅니다. 이쯤 되면 두려운 것은 이명박이가 아니라 문국현입니다. 그러므로 문국현이가 첫 번째 제거 대상이 됩니다. 무리한 상상이 아닙니다. 통합신당의 핵심인사인 손학규씨도 인정했듯이 문국현 후보의 표가 정동영후에게 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후보단일화가 가지는 진짜 의미가 무엇입니까? 승리를 위한 단일화입니까? 아니면 문국현 제거입니까?

좀 다르게 생각해 봅시다. 긍정적으로. 단일화를 통해 문국현과의 경쟁도 피해보고 또 평화민주세력의 통합력을 유지하여 선거 패배 이후에도 세력을 지속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나쁜 전술입니다. 어떤 선의에도 불구하고 문국현의 파괴력과 경쟁력을 꺾는 것을 전제로 한 패배주의 전술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패배한 장수가 성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급 장수들은 군기가 흐트러지고 집 생각에나 빠져 있습니다. 낡은 병기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함락은 시간문제 입니다. 그러나 뒤에는 결전을 치를 장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문을 지키는 장수는 비켜서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를 살릴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노장 원균을 제치고 그보다 한참 아래 계급인 이순신을 파격적으로 발탁한 사람은 유성룡입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이순신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위기이며 무엇이 지혜로운 대처인가를 가르쳐줄 유성룡 같은 눈 밝은 원로가 필요할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런 원로가 없다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정동영후보도 제발 살아남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또 하나의 전투가 우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8년 대통령 재선거!!라는!


2007년 12월 13일 울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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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4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니 2007-12-15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로버트 오웬”의 향기가 나는 사람, 문국현!
- 경제인 문국현, 그에게는 사람의 향기가 있다!

로버트 오웬(Robert Owen)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 영국 자본주의가 낳은 위대한 인물.
그 자신이 자본가였지만, 아동, 여성노동에 대한 파렴치한 착취와 과도노동, 무지막지한 빈곤과 무지,타락,폭음 등이 횡행했던 당시 영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희망을 실천적 이론적으로 제시했던 인물이자 당시 가장 진보적인 사상가의 한 사람.

또한 당시 영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익을 위해 진행된 모든 사회운동과 이 사회운동의 모든 실제적 성과들을 가능하게 했던 인물.

비록 그를 껄끄럽게 여겼던 당대와 이후의 부르주아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사람들조차(심지어 맑스의 평생지기였던 엥겔스조차도!) “공상가”라고 그를 폄하했지만, 오히려 “성숙한 칼 맑스”는 [자본론]등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위대한”이라는 존경의 수식어를 마다하지 않고 정당하게 평가했던 인물.

저는 문국현을 보면서 이와 같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인 로버트 오웬의 향기, 사람의 향기를 문득 문득 느낍니다.

삶의 궤적도 참으로 비슷합니다. 
10대에 상점 점원에서 출발해서 여느 자본가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자본가로 성공한 로버트 오웬, 그리고 유일한 박사에게 감동해서 대기업대신 중견기업의 평사원으로 시작 한국의 여느 자본가들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경영으로 성공한 자본가 문국현.

오웬의 경쟁자들이 심지어 아동들에 대해서까지 하루 14시간 심지어 일주일 내내 종일을 공장에 가둬두면서 보잘 것 없던 임금마저 아까워 임금깍기를 즐겨했던 시절에 노동자들에대한 배려와 교육을 우선시하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수준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했던 로버트 오웬, 바로 이런 로버트 오웬처럼 남들은 사람짜르기(정리해고)와 파리목숨 비정규직화에 열을 올리는 시대에 거의 홀로 인간에게 더 투자함으로써 고정비용을 줄이고 노동시간은 단축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와 고용을 확대한 인물 문국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고  심지어 노동계급의 강경파 지도자들조차 존경하는 매우 드문 유형의 자본가로서의 윤택한 삶을 버리고, 대신에 노동자⋅서민들의 정치적 대변자로 나서 당시 영국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익을 위하여 진행된 모든 사회운동과 이 사회운동의 모든 실제적 성과들을 있게 하는데 크나큰 공헌을 했던 인물 로버트 오웬, 바로 이 로버트 오웬처럼 성공하고 심지어 드물게도 사회적으로 진심어린 존경까지 받을 수 있는 자본가로서의 삶을 뒤로 한 채 “사람중심의 진짜경제”를 외치며 정치적 행보에 나선 인물 문국현.

삶의 철학도 참으로 비슷합니다.

사회구성원들이 더 나은 더 바람직한 사회에서 살기를 꿈꾸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로버트 오웬과 “남의 꿈⋅남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고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며 진정성 있게 살아왔던 문국현.

참으로 비슷한 것은 이외에도 여럿 보입니다.

평생교육에 대한 문국현의 지극한 관심, 사람중심의 경제관 등등...

그렇지만 제가 로버트 오웬에 대해서 전기작가 수준만큼이나 훨씬 더 소상히 모를 뿐만 아니라 문국현에 대해서도 소상히는 모른다는 점에서 더 많은 비교는 곤란한 듯합니다.

다만,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문국현을 알면 알수록 로버트 오웬만큼이나 대단히 매력적인 사람으로 사람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는 것입니다.

물론 문국현에게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인 로버트 오웬의 향기가 느껴진다고 해서 문국현 그에게 흠결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예컨대 그의 인식과 태도에서 흠결을 찾는다면 한미FTA에 대한 것도 꼽을 수도 있습니다. 문국현 정도라면 마땅히 지금의 한미FTA가 대등한 조건을 전제로 하는 자유무역이 결코 아니라 오히려 명백하게 일방의 희생을 강요하는 “자유방임 협상”임을 모를리 없을 터인데도, 그는 여기에 대해 무척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또는 문국현이 한국 농촌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고 오랫동안 진정성 있는 농촌살리기 운동을 해왔던 인물답게 망상에 가까운 정부등의 대안(기업농의 방향성 등)을 질타하고 한국 농촌이 가진 독특한 문화적 자산이나 생태적 자산 의학적 자산을 활용하는 매력적인 정책비젼을 제시하지만, 한미FTA 같은 것들 때문에 그런 매력적인 비젼을 실천할만한 최소한의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는 사실은 눈치 채지 못합니다.

정치적 실천에서도 흠결은 뚜렷합니다.

더 나은 더 바람직한 사회를 바라는 민심이라는 든든한 빽그라운드가 그의 진정성을 지지할 수 있는 가능성은 활짝 열려 있지만, 민심이 바라고 그가 바라는 “사람중심의 진짜경제”를 구체적으로 구현해 갈 수 있을만한 진정성 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도 잘 알고 있듯이, 사회구성원들의 보다 바람직한 삶을 위해 세상을 더 좋게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생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문국현 그가 존경하고 저 또한 존경해 마지않는 유일한 박사의 지적처럼 동시에 “기술적 신뢰 능력”까지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사회변혁의 문제는 사회적인 일인지라 좋은 생각과 능력까지 고루 갖춘 지도자 한 사람만으로는 부족하며, 우수한 인재들이 동시에 포진되어 있어야 하고 사회를 더 바람직하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사회조직들을 가급적 많이 그 기반으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문국현에게는 사회적 건강성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조직기반은커녕 우수한 인재들도 별반 보이지 않습니다.
비록 정치적 행보를 이제 막 시작한 문국현에게는 불가피하고 치명적인 약점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명백한 정치적 흠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오웬처럼, 문국현도 사람인지라 이런 저런 흠결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쉬이 인정하는 저로서는 현재까지 눈에 보이는 문국현의 흠결은 그럴 수도 있는 정도로만 이해할 뿐, 크게 문제삼을 만한 사안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그의 긍정적인 측면들과 그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우선 그에 대한 정치적 지지율이 한국 사회에서 언론⋅방송의 벽인 5%를 넘어설 수 있다면, 그는 분명 정치영역에서 태풍이 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문국현은 그의 진정성 있는 삶의 궤적과 철학 및 주장(비젼)이 국민대중에게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또한 그의 진정성 있는 삶의 궤적과 철학 및 주장들은 거의 단박에 국민 다수를 매료시킬 수 있을만큼 폭발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문국현 그는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거의 모든 면에서 현재의 대선주자 모두를 압도시킬만한 매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심지어 문국현 그는 삶의 궤적과 철학 및 주장(비젼), 그리고 경제분야, 통일분야, 생태⋅환경분야에서의 우월적인 경쟁력 뿐만 아니라, 노동분야에서조차 제가 속한 민주노동당 후보만큼이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경영에서 무척 어려운 조건에서조차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배려를 하고 고용을 확대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한 사람,
자신의 자식들을 통해 비정규직의 아픔을 피부로 이해하고 비정규직 문제나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해 이래서는 안된다고 강력히 말하는 사람,
자신의 첫 정치적 행선지로 평화시장을 택하고 전순옥 박사(전태일의 여동생)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
노사문제에서 경영권을 가진 사람이 우선 양보해야 하고 노동조합과의 관계에서도 서로가 긍정하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토론하고 공유한 뒤에야 경영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실천했고 주장하는 사람,

우리나라의 경우 노조 조직률이 너무 낮다고 진정성 있게 한탄하는 사람 등등...

이런 문국현이기에 저는 감히 노동분야조차도 민주노동당 후보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매우 강력한 잠재적 경쟁자 하나가 도사리고 있는 셈입니다.

종교적인 면에서도 이명박 후보만큼이나 문국현은 경쟁력이 있는 듯합니다.

이명박 후보가 교회장로이고 “서울시를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사”를 낭독하는 등 가시적인 측면에 치중하면서도 실생활에서는 성경의 말씀⋅그리스도의 말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땅에 대한 집착”과 “사적인 치부”등을 보여 온 것과는 달리, 같은 기독교인인 문국현은 형식보다는 삶 자체가 남을 배려하는 이웃사랑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형식에 치중하는 한국 기독교의 주류 활동가들 눈에는 이명박 후보가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희망과 사랑을 갈구하는 평신도들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훌륭하고 선량한 목자로 이해될 수 있는 요소를 문국현은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저는 소망합니다.

정치적 절망과 실의에 빠진 한국의 노동자⋅서민들에게 제가 속한 민주노동당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희망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할 가능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문국현이 우리 사회의 정치적 벽인 5%의 지지율 벽을 넘어 정치영역에서 태풍의 눈으로 부상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도자라면 마땅히 “약자에 대한 배려”와 “남의 꿈” “남의 행복”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대접받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문국현의 삶의 궤적과 철학 그리고 그의 주장(비젼)이 실현될 수 있는 통로가 열리길 기원합니다.

문국현이 가급적 기존의 낡은 정치세력들의 낡은 정치문화에 물들지 않고, 민주노동당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대안의 정치를 펼칠 수 있는 정치적 세력으로까지 성장하는 기폭제로 되길 염원합니다.

이는 분명 정치적 절망과 실의에 빠진 한국의 노동자⋅서민들에게는 크게 보탬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며, 심지어 더 나은 더 바람직한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고 또 실제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를 촉진할 가능성을 현재로선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물론 현재로선 태생적 한계 등 때문에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회적 조직인 제가 속한 민주노동당에게조차도 크게 보탬이 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민주노동당도 아닌 곳에서 사람의 향기를 내뿜는 정치인을 봤다는 느낌과 함께

2007년 8월 29일에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에서 정책실장직을 가지고 민생경제정책 분야를 담당하는 송태경이란 사람이 순전히 개인적인 사견을 전제로 씀.

 

p.s "경제인 문국현, 그에게는 사람의 향기가 있다"라는 이 글에서의 제 판단은  "자본론 박사", "재야 최고의 정책두뇌", "민생경제전문가" 등 사람들이 저에게 붙여준 영예로운 별칭들을 걸어도 전혀 아깝지 않을만큼 현재로선 확신에찬 판단입니다. 물론 문국현 그도 사람인지라 흠결이 있을 수 있고 전혀 다른 사고 다른 실천을 하는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소 유동적일 수 있지만, "법조인이자 정치인 노무현" 같은 사람들에게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확신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노사모에  소속되었던 사람 등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법조인이자 정치인 노무현씨에게 느꼈던 느낌은 사람의 향기는 커녕 (한때 회자 되었듯이) "놈현스럽다" 였을 뿐입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urisaju/15002178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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