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진보넷 neoscrum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http://blog.jinbo.net/neoscrum/)
제가 처음 배웠던 민중가요는 88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였습니다. 90년에 그 노래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음반에 실려 'KBS 가요톱텐'의 3위까지 올라간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느낌은 참 묘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3위를 차지했어도 그 노래는 TV에서 제목만 나올 뿐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90년대 초반 대학가요제에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가 나와서 민중가요를 부를 때도 묘한 느낌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은 토론회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어떻게 볼 것인가> 였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니 그 소련이 없어져 버렸더군요. 동독도 사라지고, 대통령도 바뀌고.. 더 이상 군부독재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처음 참가한 집회에서 들었던 <희망의 노래>는 많이 황당했습니다. "집회에서 무슨 권주가도 아니고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분위기 파악 못하는 제 귀에는 꽃다지의 <전화카드 한 장>이나 <바위처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발라드 콘서트도 아니고.. 이 따위가 민중가요야?" 군바리가 세상 바뀐 줄 모르고 있었던 거죠. 만일 그 때 '댄스 뮤직'으로 만들어진 민중가요를 들었으면 어땠을까요?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아마 기겁을 했을 겁니다. 당시 저에게 민중가요는 그랬습니다.
그전 우리의 민중가요와 운동의 문화 풍토가 그랬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호철씨의 '닭똥집이 벌벌벌~ 닭다리 덜덜덜~'하던 <포장마차>를 두고도 당시 노동문화 단체들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졌다고 합니다.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욕설이 오가고.. "저게 민중가요야! 씨발.."
그런데 우리가 군부독재와 핏발 튀는 투쟁을 벌이고 있던 그 80년대, 마가렛 대처 수상의 보수주의에 맞선 투쟁을 한창 벌이고 있던 영국 한 구석에서는 '댄스뮤직'으로 혁명을 노래하는 한 아나키스트 밴드가 서서히 인기를 얻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노동계급이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총파업을 선언했던 97년에는 드디어 국내에까지 그들의 생기충만한 전복의 노래들이 소개되었습니다. 그 노래가 바로 첨바왐바(Chumbawamba)의 <열변(텁섬핑 Tubthumping)>이라는 곡입니다. 그 해 <텁섬핑>은 유럽과 아시아 지역 음악 챠트 1위권을 석권했고, 국내에서는 TV의 쇼 프로그램과, 코메디 프로그램, CF의 단골메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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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바왐바(Chumbawamba)는 아무런 뜻이 없는 단어입니다.
Tubthumping - 분노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사실 난 음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럴까? 바보같은 소리야. 사람이야말로 중요한 거라고! (영화 '브레스트 오프'의 대사를 그대로 인용해서 노래 앞부분에 붙였음)
우리는 노래할꺼야. 우리가 승리할 때, 우리는 노래할거야
나는 쓰러졌어 하지만 다시 일어나
당신은 결코 날 쓰러뜨릴 수 없어
- Tubthumping 중
첨바왐바의 노래들이 '댄스 뮤직'이 아니고, '민중가요'로 국내에 소개되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 유명한 노래 <텁섬핑>은 당시 영국 리버풀 부두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이며, 그 노래가 담긴 음반 <텁섬퍼>에는 자신이 '노동'당 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영국 노동당을 뒤틀고 비판하는 노래들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그 신나는 '댄스 뮤직'의 실체는 바로 '힘내라! 부두 노동자!'였던 것입니다. (켄 로치 감독의 '명멸하는 불빛'이라는 다큐는 이 부두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기록입니다. 비디오는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구입할 수 있음) 99년에는 토니 블레어 수상의 보수화를 비판하는 <토니 블레어(Tony Blair)>'라는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토니, 당신은 새로운 것을 약속했지.
그러나 당신은 똑같이 오래된 속임수만 쓰고 있어. 당신, 당신, 당신!
지금이야말로 당신에게 작별인사를 할 때야.
......
토니, 당신의 거짓말 빼고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 Tony Blair 중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에는 <세상의 최고(Top of the world (Ole Ole Ole))>라는 멋진 응원곡을 발표합니다.
나는 택시 운전사 / 나는 우편 노동자 / 나는 사무실 청소부 / 나는 파업중인 부두 노동자 / 나는 사파티스타 / 나는 팝 가수 / 나는 승리자 / 나는 승리자 / 올레~ 올레~ 올레~ / 내가 세상의 최고 / 내가 세상의 최고 / 나는 벽돌쌓는 노동자 / 나는 전직 광부 / 나는 홀어머니(single mother) / 나는 버스 운전사 / 나는 양심수(political prisoner) / 나는 인쇄 노동자 / 나는 축구선수 / 나는 승리자! / 올레~ 올레~ 올레~ / 내가 세상의 최고 / 내가 세상의 최고 - Top of the World(Ole Ole Ole) 중
첨바왐바의 첫 음반 <혁(Revolution)>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혼성 8인조 밴드 첨바왐바는 85년 첫음반 <혁(Revolution)>에서 '분열을 중단하고, 함께 투쟁하자'라고 호소하며 '자본가들이 심어놓은 환상을 깨고 지금이 바로 투쟁을 위해 일어설 때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음반 이후 지금까지 그들의 그러한 메시지는 변함이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그들의 역할이 '진실을 폭로하고, 투쟁을 선전, 선동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사건이 생길 때마다 그 사건에 대한 노래를 만들며 노동계급과 민중의 투쟁을 선동하고, 계급구조과 파시스트에 대한 비난을 노래 가사에 녹여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나키즘'을 '민중'과 '계급투쟁'으로 정의합니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문제에 대해서만 노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해방을 찬양하고, 동성애 차별과, 인종 차별에 대해서 노래의 칼날을 치켜듭니다.
그들의 노래는 흔히 음악 자체보다는 그 가사에 의해 평가받는 일이 많은데, 그렇다고 음악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레게, 테크노, 가스펠, 펑크 락, 아카펠라까지 온갖 장르를 넘나드는 그들의 음악은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음악적 완성도를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국내 보수적 일간지의 대표주자인 중앙일보에서는 그들을 마릴린 맨슨과 비교하며 '세련된 운동권 노래패'라고 평가했더군요. 이제 확고하게 자리잡은 그들의 음악은 파티음악으로, 응원곡으로, 그리고 집회에서 민중가요로 폭넓게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들처럼 대중과 함께 신나게 부르고 춤출 수 있는 민중가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첨바왐바에 대해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끝내면 참 행복할텐데, 그들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하고도 씁쓸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첨바왐바는 초기에 음반을 내놓을 때 그들이 직접 운영하는 음반사인 Agit Prop를 이용했습니다. 84년 첨바왐바는 존 레논과 음반업체인 EMI를 비난하는 팜플렛을 배포하며 "EMI는 존 레논을 평화적인 투사의 상징으로 만들고는 그의 <평화에게 기회를(Give Peace a Chance)> 음반을 판매해서 챙긴 수익을 무기 산업에 투자했다. 존 레논은 이메진(Imagine)에서 '소유가 없어지는 것을 상상해보라'라고 노래하면서 그 뮤직비디오를 거대한 저택에서 모피 코트를 입고 무지하게 큰 그랜드 피아노를 치며 만들었다. 이건 터무니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폭로하고, 사람들에게 음반 하나를 구입할 때도 그 행동의 결과를 고려하라고 알려내겠다"라고 인터뷰를 남겼습니다. 그들은 당시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EMI을 음악계의 악마같은 존재라고 비난했었습니다. 85년 첫 음반 <혁> 음반 속지에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실어놓았습니다. 첨바왐바는 클래쉬 등 EMI와 손잡은 그룹을 '손이 더러워졌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93년 그들은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 자신들이 운영하던 음반사를 닫고, 'One Little Indian' 라는 독립(indy)음반사로 옮겨갑니다.
그런데! 그랬던 그들이! 97년에 독립음반사를 나와서 EMI와 계약을 해버립니다. EMI와 함께 내어놓은 첫 곡이 이제는 첨바왐바의 대표곡이 되어버린 그 유명한 <텁섬핑(Tubthumping)>입니다. 첨바왐바가 EMI와 계약한 사실이 알려지자 팬들은 실망의 야유를 퍼부었고, 첨바왐바가 이제 예전 그들이 비난하던 '락 스타'가 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돌렸습니다.
첨바왐바는 팬들에게 메일링 리스트와 인터뷰 등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도 많은 고민과 논쟁을 했다. '착한' 자본가가 있고 '나쁜' 자본가가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었다. 우리는 그런 논리로 팬들을 설득하지 않겠다. 우린 처음 순진하게도 독립음반사인 'One Little Indian'를 믿고 계약서없이 신뢰로 사업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었는데, 오히려 그들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우리를 통제하고, 정치적 신념까지 좌지우지하려 했다. EMI는 음반만 판매해주면 우리에게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는다. EMI는 이제 무기산업에서 손을 땠다. 만일 아직도 무기 판매를 하고 있다면 결코 계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80년대가 아니다. 우리의 일은 선동을 퍼뜨리고, 논쟁을 던지고, 문제를 만들고, 이 천박한 시대에 맞서는 음악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이제 더 많은 대중들 앞에 나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첨바왐바는 지금도 수익금으로 단체들을 후원하고, 투쟁을 지원하고, 집회에 참가하고, 끊임없이 정치적인 노래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 진행되는 반전투쟁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EMI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들의 음악을 접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마 그들의 존재도 몰랐겠지요. 그러나 EMI는 음반업계의 초국적 자본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회사입니다. 우리가 첨바왐바의 음반을 구입할 때마다 그 수익은 과거 무기 장사를 하던 EMI로 가겠지요.(이러한 사실들은 첨바왐바가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에 대해 첨바왐바는 "우리는 사람들이 대형 레코드 가게에서 우리의 음반을 훔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자본주의 하에서 초국적 자본과 대형 음반 업체들은 노동자의 노동을 훔치고, 착취하는 게 일이다."고 이야기합니다.
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악명이 드높은 초국적 자본과 혁명가들의 계약이 이해되십니까? 첨바왐바는 이제 혁명가였던 비주류에서 혁명을 팔아먹는 주류로 변한 걸까요? 그들 말대로 선전을 위해 자본을 이용하는 것일까요? EMI가 아니라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그들의 음반을 사서 들을까요? 훔쳐서 들을까요?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듣는 건 어떨까요?
* 주요 참고 자료
- 첨바왐바 가사 홈페이지 http://www.geocities.com/cwlyrics/
- 쇼비지니스! 첨바왐바 팬페이지 http://www.kipuka.net/chumba/
- 첨바왐바 팬사이트 http://www.geocities.com/q-25.geo/index.html
* 이 글은 분노님의 [Chumba Wamba - Tubthumping]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ps.
춤 출 수 없다면 그건 내 혁명이 아니야! (부두 노동자 투쟁 당시 런던 집회 중)
찾아보니 엠마 골드만이 남긴 유명한 말이네요.
If I can't dance, I don't want to be part of your revolution - Emma Gold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