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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8-05-30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저것들이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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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erecter.egloos.com/3731040(원문출처상)

http://gerecter.egloos.com/3731157(원문출처하)

- 글 속에 오류가 있거나, 문제의 소지가 있는 내용이 있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자유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확인후에, 수정, 보충, 삭제 하겠습니다.



1. 투우사의 노래

2003년 5월 작살나게 비싼 표값을 자랑했던, 오페라 "투란도트"의 상암 월드컵 경기장 공연 이후, 소위 "운동장 오페라"에 대한 논란이 좀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운동장 오페라"라는 것은 장대한 무대 장치와 매우 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오페라 공연을 위해서, 축구장이나 육상경기장 등의 거대한 장소를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2003년 9월 잠실 주경기장에서 공연된 "아이다"의 경우에는, 유명한 2막의 이집트군 개선 행진 장면을 위해서, 실제 코끼리를 동원해서 잠실 주경기장에서 이집트군 코끼리 전차군단이 행진하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아이다" 잠실 주경기장 공연, 코끼리 등장)

이런 식의 공연이 과연 오페라를 정말로 재미있게 즐기는 것이냐, 오페라의 노래와 연주를 잘 들을 수 있는 것이냐, 돈값을 하는 것이냐. 하는 비판이 나돌았던 것입니다. 실제로 "투란도트" 이후로는 그 폐해를 직접 체감한 사람들이 많이 생기기도 했고, 이런 류의 거대 공연이 갑자기 겹치면서 희소가치에 대한 거품도 꺼져들어서, 점차 "운동장 오페라"들은 사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와중에, "운동장 오페라" 유행의 막판 즈음에 나온 것이 바로, "카르멘"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공연이었습니다. 2004년 5월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던, 이 "카르멘" 공연은 "운동장 오페라"의 열기가 사그라들 무렵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난관이 많았습니다. 희소가치가 떨어져서, 투자자들을 모으기도 어려웠고, "카르멘" 공연 자체가, "투란도트"나 "아이다" 보다야 거대하고 장엄한 장면을 집어넣기도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은 "운동장 오페라"라면 문제가 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카르멘)

이런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카르멘" 공연을 추진하는 쪽에서는 한가지 복안이 있었습니다. "카르멘"에 이야기에 잘 어울리고 현란한 엑스트라 많이 나오는 장면을 넣으면서도, 한국에서 보기 쉽지 않은 이국적인 부분을 짜넣자는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카르멘"의 내용은 "군복무 하던 청년이 여자한테 잘못 빠져서 해롱해롱 하다가 패가망신한 뒤, 그 여자 조차도 고무신 거꾸로 신어서, 칼부림하며 난동부린다"라는 이야기를 최대한 그럴듯하게 꾸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 주인공이 주인공을 버리고 새로 사귀는 남자의 직업이 인기 "투우사" 입니다.

그런 고로, 당시 "카르멘" 제작진은 바로 이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등장한 후에, 진짜 "투우" 를 잠실 주경기장에서 벌여 보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투우"라면, 오페라의 배경이 되는 스페인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고, 한국에서 보기는 매우 어려운 것인 동시에, 오페라 내용에도 잘 부합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2004년 운동장 오페라 "카르멘"에 나오는 이국적인 내용의 절정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카르멘" 잠실 주경기장 공연의 기획진, 제작진은, 스페인에서 투우에 사용되는 소를 데려올 계획을 세웠습니다. 소 여덟 마리를 스페인에서 가져오고, 스페인의 투우사들이 잠실 주경기장에서 오페라 공연 중에 이 소들과 투우를 벌이는 것입니다. 물론, 경기장 복판에서 소에게 진짜 칼질을 해서 잡아 죽이려면, 도축에 관련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마취침이 달린 칼을 이용해서, 죽은 듯 잠들게 한다는, 꾀를 내기까지 했습니다.


(올레!)

그런데, 이 계획은 중대한 난관에 부딛혔습니다. 바로,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 때문에, 유럽의 쇠고기나 유럽의 소를 원료로 한 제품을 한국으로 반입해 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투우에 쓰이는 살아 있는 소는 소의 뼈, 척수, 뇌와 많은 쇠고기 덩어리가 통째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당연히 반입 금지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페라 경기 하던 도중에 사용되는 소를 갑자기 분해해서 그 척수를 관객들이 쪽쪽 빨아먹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투우에 사용되는 소까지 반입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정부 규제란 그런 것입니다.

그만큼, 정부의 정책은 엄격하게 결정되고 집행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그냥 아는 사람이 서류 들이미니까 아무 생각없이 날림으로 서명해 주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렇게 생각 없이 한 서명 하나의 영향이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곳,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까지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오페라 "카르멘"의 제작진과 기획진은, 레치타티보와 아리아가 아니라, 광우병과 광우병 규제를 피할 방법에 대해, 조사하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 양머리를 쪼개 보는 농대 교수

광우병 파동의 원조는 1988년의 영국 광우병 파동이었습니다. 최초의 광우병 파동이라고 할 수 있는 1988년 영국 광우병 파동은 기본적으로 양에서 관찰되던 스크래피(scrapie) 병의 증상이, 소 한테서도 발견된 것이었습니다.

스크래피 병의 증상은 양의 뇌에 구멍이 생겨서 양의 뇌가 스펀지 처럼 되어 버리고, 때문에 양이 뇌를 쓸 수 없게 되면서 죽는 병이었습니다. 스크래피 병은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별대단한 전염력이 있는 병도 아니었기 때문에, 애초에는 별 관심을 받는 병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양의 머리를 쪼개서 연구하는 것을 스포츠 비슷한 느낌으로 생각하는 학자들 사이에, 그 특이한 특징이 이야기 되곤 하던, 어찌보면, 비교적 한가하고 상대적으로 인기 없는 농대 교수들의 관심거리 정도라고 할 수도 있을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크래피 병의 증상이 영국의 소에게 발견되면서 부터, 갑자기 사태는 전혀 다른 길을 향해 내달리고, 나아가 지구의 역사를 바꿀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순하고 평화로운 동물의 상징이었건만)

우선은 병의 발병 원인에 때문이었습니다. 조사 결과, 소에게서도 스크래피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 즉 광우병의 원인이 양 시체를 소에게 사료로 먹인 것 때문에, 병든 양의 병이 소에게 전염된 것이라고 잠정 결론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본다하더라도, 최초의 광우병 파동인 1988년 영국 광우병 파동은 어찌 보면, 그냥 소가 걸릴 수 있는 병을 하나 더 발견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간단하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80년대말은 유럽 통합 운동이 여러가지로 일어나던 시기이고, 유럽 나라들 간에 수입수출개방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농민, 독일 농민들은 영국 농축산물과 살벌한 경쟁을 시작하는 터라, 여러모로 견제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처지였습니다. 그리하여,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영국 축산물을 공격하기 위해, "광우병이 전염되면서 세상을 망칠 것이다" 내지는 "광우병이 인간에게도 전염될지 모른다"라는 주장을 강하게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일리 있는 주장이었습니다. 스크래피에 걸린 양을 소가 먹고, 소가 광우병이 걸렸다면, 그런 소를 사람이 먹으면, 사람이 병이 난다는 것도 그럴싸합니다. 더군다나, 이제 광우병이 처음 발견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병이 얼마나 잘 걸리는 것인지, 병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부족 했습니다. 때문에, 영국 농축산물과 경쟁하는 프랑스, 독일에서는 "잘 모르지만 일단 광우병 퍼진 영국소는 먹으면 뇌에 구멍 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지원하는 분위기 였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사건을 다음 단계로 끌고 나가게 됩니다. 영국으로서는, 영국이 프랑스, 독일로 수출을 못하게 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이웃나라의 이런 분위기로, 영국 국민들이 큰 불안을 겪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여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국에서는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광우병 의심 소는 신고를 의무화 하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소가 광우병이 걸린 소인지, 아닌지 하는 검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광우병으로 확인 된 소들은 태워 없애 버리고, 고기 성분이 들어 있는 사료를 소에게 먹이는 것도 금지시켰습니다. 영국 정부는 광우병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 버려서, 프랑스, 독일 정부와 영국 국민들에게 그 안전함을 과시하려고 했습니다.


(존 검머 장관의 TV광고 장면: 영국 소는 안전합니다. 모든 부위가 안전합니다. 특히나 개뿔이 안전합니다.)

이때 프랑스, 독일 등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영국 정부는 광우병과 관련된 시비는 한톨도 남기려고 하지 않으려는 철저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광우병이 걸린 소를 없앨 때, 그 소의 피나 뇌수 등이 물이나 땅에 남겨지는 것까지도 철저히 피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광우병 쇠고기가 들어오면, 그 쇠고기를 씻은 수도물도 오염된다 - 쇠고기 씻은 물만 마셔도 죽는다" 라는 요즘 도는 이야기는 바로, 80,90년대 광우병 파동에서 영국 정부의 이러한 조치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으로 영국 정부는 소가 걸린 광우병이 인간에게는 퍼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썼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과의 교역을 정상화 시키고, 영국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광우병이 소에게는 위험하지만, 사람에게는 별로 안 위험하다는 증거를 내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특히, 광우병에 관한 검사를 철저히 하기 시작하니, 90년 무렵에는 1주일에 수백건씩 광우병이 보고되는 어마어마한 결과가 나오면서,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수천마리의 광우병에 걸린 소가 확인되었다는 말은, 그것이 확인되기 전까지, 그런 소들을 거의 모든 영국사람들이 모르고 계속 먹어 왔다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와 독일의 압박을 벗어나고, 영국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광우병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도록 하던 영국 정부는, 그러나, 1996년 3월 16일. 희망과는 전혀 다른 충격적인 발표를 내어 놓게 됩니다.



3. 치사율 100%

90년대초, CJD라는 희귀질환을 두고, 영국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CJD는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병인데, 역시 치매 처럼 보통 노인들에게 보이는 병입니다. 문제는 CJD라는 병이, 뇌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면서, 결국 뇌가 스펀지 처럼 되고, 그 때문에 뇌가 망가져 죽어 버리는 병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CJD는 병의 형태가 광우병과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스크래피에 걸린 양을 먹고 소가 광우병이 걸려 죽듯이, 광우병이 걸린 소를 먹으면 사람이 CJD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설이 생긴 것입니다.

1993년 5월에 영국의 15세의 소녀가 치매 증상을 보이면서, 이러한 영국의 논란은 본격화 되었습니다. 이 소녀는 CJD 증세를 보였는데, 그러면서도 나이가 보통 CJD가 나타나는 나이든 연배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통상적인 CJD가 아니라, 광우병 걸린 소를 먹고 발병한 새로운 형태의 CJD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88년 영국 광우병 파동으로 낭패에 빠진 영국 축산업을 살리기 위해, 이런 분야의 연구에 많은 관심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CJD와 광우병의 관계는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20대에 CJD로 사망한 엘리자베스 양. TV광고에서 영국소 안전하다고 한 장관의 친한 친구 딸이었습니다.)

CJD에 걸리면, 치료법 없이 죽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CJD로 인한 사망은, 서서히 뇌가 망가지면서 죽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환자의 비참한 모습이 TV에 비춰지자, 감정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그래서 연구 결과가 대체로 정리되던, 1996년에는 극심한 논박이 있었습니다. 1월말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서서 CJD와 광우병은 관계가 없다고 했다가, 불과 2개월후인, 3월에는 당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 때문에 CJD가 발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꺼내기도 합니다.

결국 1996년. 소의 광우병이 인간에게 기존의 CJD와 다른 방식으로 변종CJD (vCJD)를 생기게 한다는 잠정결론이 내려집니다. 1996년 3월 영국에서 나온 이 발표 이후, 영국은 물론이요, 유럽 일각이 술렁이게 됩니다. 88년 영국 광우병 파동으로 광우병이 문제로 부각 되기 전까지, 영국산 쇠고기 제품은 유럽에 얼마든지 돌아다녔고, 그렇다면, 유럽 각지에서 그 쇠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그득그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참고로, 한국에서도 2000년까지 영국산 쇠고기로 만든 제품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 고기로 만든 사료가 들어와 돌아다녔습니다.

이 사람들 중 상당수가, 변종CJD에 걸린채로 잠복기에 빠져 있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더우기 영국에서는 당시,1주일에만도 6백건 이상의 광우병 소가 발견되던 시기라, 광우병 걸린 소들은 온 영국에 가득하던 때였으므로, 공포감은 엄청났습니다.


(거의 이 정도 공포감)

쇠고기 제품의 소비가 절반가까이 뚝 떨어지는 등, 정말로 말그대로 "난리"가 나자, 결국, 영국 당국에서는 결단을 내립니다. 대대적인 소의 도축, 처분, 소각이 이루어졌고, 90년대말까지, 1백 3십만 마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소들을 태워 없애 버렸습니다. 그 비용은 대체로 30억 파운드 이상, 5조원에 가까운 규모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파장으로 유럽전체적으로는 총도합 4백만 마리 정도의 소가 도축되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영국은 광우병이 창궐한 광우병의 본산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리고 그 광우병은, 사람의 뇌를 파괴해 죽여버리는 무서운 것이 되어 버렸으므로, 세계에서 영국산 쇠고기, 유제품등이 본격적으로 금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의외로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이런 일이 그저 "남의 일"처럼 상당히 안일한 태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껏해야,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소에게 고기를 먹인 서구문명의 오만함이 재앙을 부른 것이다. 음양조화 동양문명 만만세-" 류의 사상적인 이야기가 가끔 얼치기 사설에 눈에 뜨이는 정도였습니다.


(인도 선조들이 계속 믿어온 힌두교의 지혜는 과연 얼마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멋지고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것이던가?)

그러나, 사건이 다시 한 번 반전되면서, 결국 광우병 파동은 아시아권에도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게 됩니다.



4. 대영제국의 역습

영국에서 광우병이 창궐하고, 그 광우병으로 인한 변종CJD - 일명 인간광우병 - 환자까지 나타나자, 영국 축산업은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일이 묘하게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영국에서 광우병이 대량으로 발견되고, 또 변종CJD 까지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영국에서 철저하고 엄격하게 광우병을 다루고 처리하는 제도와 기술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기술이 발달하고 처리가 엄격해진, 영국의 기준으로 독일, 프랑스의 축산물을 보니, 위험해 보인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조금만 의심나는 동물이 있어도 철저히 조사해서 광우병인지 아닌지 밝혀내려하고, 만약 광우병이라면, 완전히 파괴해 없애기 위한 장치도 잘 발달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영국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니, 프랑스에도 의심나는 동물이 많은 것 같은데, 별로 검사도 안하는 것 같고, 독일에도 광우병이 터질 것 같은데, 독일에는 광우병을 어떻게 다룰지 별 대책도 없어 보였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평화를 위해서, 영국과 프랑스가 힘을 합쳐야 하는거 아니오?)

사실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광우병 발생 원인을 이상한 고기를 소에게 사료로 먹인 것 이라고 보고 있었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짓을 한 경우는 많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영국산 사료를 먹인 나라도 있었고, 영국보다 사료 관리가 더 엉성한 나라도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광우병이 생긴 조건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나라들이 보였으니, 이런 나라들에서도 광우병이 생겨야 마땅했던 것입니다.

특히, 활발한 EU 교류 때문에, 유럽 각국의 국민들이, "우리나라도 영국보다 상황이 나을것도 없는데, 영국보다 너무 부실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광우병 총본산의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영국에서 이런 점들을 자극하면서, 광우병 파동은 새로운 국면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렇게 먼저 광우병이 발견된 나라들이,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은 나라를 향해, 도리어 "그럼 너네는 깨끗하냐?" 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도는 앞으로, 전형적인 한 형태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것은 나라 사이에서 광우병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 지는지 이해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름다운 프랑스 요리는 육수를 뽑기위해 갖은 재료로 온갖 짓을 다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가장 먼저, 포르투갈에서 90년대말 수백마리의 소가 광우병인 것으로 판명되고, 스위스에서도 광우병 소가 발견되게 됩니다. 포르투갈 산 소와 쇠고기 제품이 유통되지 못하게 되자, 포르투갈에서는 영국이 했던 것처럼, 광우병을 뿌리뽑기 위해,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것을 금지하고, 소에게 먹이는 용도로 생산한 동물성 사료를 모두 폐기해 버립니다. 그리고, 광우병을 막기 위한 각종 조치들을 강화하게 됩니다.

포르투갈이 이처럼 광우병 방어에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고, 그러면서도 쇠고기 제품에 대한 경쟁력은 잃게 되자, 포르투갈 정부는 광우병의 총본산인 영국과 손을 잡고, 한가지 계책을 내놓습니다. 즉, "유럽 전체의 안전을 위하여", 다른 EU 모든 나라에서도 다같이,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고, 쇠고기에 대한 조치를 강화하자는 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까, 광우병이 발생한 영국-포르투갈 뿐 아니라, 다같이 광우병에 신경좀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포르투갈 리스본, 소 동상의 행진)

이러한, 영국과 포르투갈 등의 주장을, 영국/포르투갈 축산업이 망할 위기에 놓인 김에, 다른 나라 축산업도 괴롭히고 보자는 심보라는 비난이 나오게 됩니다. 특히, 독일과, 동물성 사료의 생산과 사용이 금지되면 일자리를 잃는, 사료 회사의 노동자, 값싼 동물성 사료를 애용하는 농민들이 이런 비난에 가담합니다. "너네 나라가 썩어서 광우병 걸린 걸 갖고, 왜 애꿎은 우리나라 사료까지 욕을 하냐"라는 주장이 나온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독일의 칼-하인츠 풍케 농업장관 같은 양반이 대표적입니다. 이 양반은 독일 농민과, 독일의 사료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서, 동물성 사료를 계속 생산해서 유통시키는 쪽을 지지하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비판과 찬성 의견으로 나뉘어 계속 논란을 빚었습니다.

때문에, 동물성 사료가 광우병을 일으키는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이 vCJD에 걸려 죽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 등에 대한 논란이 더욱 거세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유럽 각국에서 광우병에 대한 논란과 연구, 조사와 규제가 더욱 치밀해지기 시작됩니다. 이무렵 즈음에, "동물성 사료가 광우병의 원인이므로 규제해야 한다", "광우병에 걸린 나이가 많은 소의 뼈 뇌등을 먹으면 vCJD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규제해야 한다" 와 같은 설이 표준안, 정설로 자리잡게 됩니다.

2000년 11월. 독일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면서, 드디어 광우병 파동은 새로운 단계로 치닫게 됩니다. 광우병에 걸린 첫번째 소가 발견되자, 독일 당국은 "이 소는 스위스에서 건너온 소다. 독일 소들은 안전하다" 라면서 바람을 가라앉히려고 했습니다. 이런류의 태도는 이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똑같이 발견됩니다. 하지만, 광우병 걸린 소를 잘못 먹고 vCJD에 걸리면 "뇌에 구멍이 뚫려서 죽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불안은 매우 커졌습니다. 독일에서는 광우병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규제가 시작되었고, 마침내 2001년 1월까지, 독일 안에서 9마리의 소가 광우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밝혀 집니다.

이 2000년말의 독일 광우병 파동을 기점으로, 전 유럽이 광우병 파동에 휘말리게 됩니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속속 광우병이 발견되었습니다. 동물성 사료를 지지했던, 당시 독일 농업장관 칼-하인츠 풍케는 사표 쓰고 물러났습니다. 물러난 농업장관을 대신해 자리에 앉은 레나테 퀘나스트 농업장관은 광우병 논란을 완전히 없애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 30개월 이상된 소, 40만 마리를 모두다 도축해 없애 버리기로 했습니다. 이 엄청난 작업을 위해서, 독일 정보는 15억 마르크 이상, 거의 1조원에 가까운 돈을 퍼붓기로 했습니다.


(비교적 멀쩡한 젊은 시절의 칼-하인츠 풍케)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은 영국만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고, 또한 그 과정에서, 광우병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라는 설이 정설로 자리잡았다는 점에서 커다란 전환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90년대말까지만 해도, 국내 유력 일간지에서, "인간 광우병이 쇠고기와 상관 없고, 그저 유전일 뿐이다" 라는 기사를 내놓아서 국민들을 안심시키려고 하기까지 했는데, 그런 안심은 완전히 물건너 가 버린 것입니다.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유럽 각국의 쇠고기와 소 관련 제품들을 반입하는 것이 여러나라에서 금지되었고, 많은 나라들이 광우병에 진지한 관심을 갖게 하는 중대한 계기였습니다.

특히 이때 일본 정부에서는, 소와 관련된 일체의 접촉을 차단하겠다는 의지에서, 소에서 나온 성분과 관련된, 유럽산 화장품, 의약품들까지 금수하는 조치에 착수합니다. 광우병에 걸린 소를 색출해 없애고 있는 상황에서, 광우병에 걸리지 않은 소의 쇠고기도 아닌, 그 소의 추출물로 만든 제품, 그것도 그 추출물을 먹는 것도 아니고, 바르는 것에 불과한 화장품까지 제제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당시 유럽에서 엄청나게 수입되는 화장품을 일거에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방책이었기 때문에, 일본내의 화장품 회사들은 이러한 조치를 은근히 반갑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우리 일본은 결코 일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결코 문을 열어주지 않겠소)

"화장품, 소가죽으로도 광우병이 인간에게 옮아온다" 라는 요즘 도는 이야기는 바로 이때 일본의 조치에서 상당부분 유래하는 일입니다. 일본이 이렇게 유럽의 쇠고기 관련 제품에 대해 철저히 반입을 금지하자, 유럽은 단결하여 일본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네 나라도 지금까지 소한테 고기 먹이고, 문제의 영국산 육골분도 일본에서 돌아다녔는데, 오히려 너네 나라 관리 상황이 더 부실한 것 아니냐?" 하는 문제가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일본 소는 그렇다면 안전한가?" 에 대한 고민은 일본 국민들에게 강한 설득력을 얻게 되어서, 일본에서도 광우병에 대한 관심과 연구, 조사가 발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진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광우병의 총본산 영국에서 광우병이 퍼져나간다고 생각했던 당시 널리 퍼진 생각과는 의외로, 영국의 지구 반대편에 있던 일본에서도 광우병이 발견된 것입니다.



5. 광우병이 아시아로

2002년 5월 13일 아침. 일본 홋카이도의 구시로(釧路)시 보건소에는 갑자기 무단 결근한 사람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29세의 여자로 수의사였던 직원이었는데, 그날 아무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은 것을 보건소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결국, 대체 무슨 일로 출근하지 못한다는 전화 한 통 하지 못한 것인가 의아하게 여겨서, 동료 직원이 이 출근하지 않은 여자의 집에 찾아가 보게 되었습니다.

집에 찾아가 보니, 여자는 죽은 시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2002년 구시로)

놀란 동료 직원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홋카이도 경찰은 여자가 자살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유서가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유서의 내용은, "광우병을 찾아내지 못해, 책임감을 느낀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수의사는 그로부터 3일전이었던 5월 10일, 소 한마리를 진찰하고, "신경계통에 이상은 있어 보이나 큰 병은 아니다" 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 소가 도축된 후에, 다시 한 번 검사를 거치면서 이 소가 병에 걸린 정도가 아니라, 저 무시무시한 "광우병"에 걸렸다는 진단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재검사하는 과정을 통해, 이 소는 "광우병"에 걸린 소로 최종 결론이 납니다. 다시 말해서, 만약 두 번의 추가 검사가 없었다면, 광우병에 걸린 소가 멀쩡한 소로 판단되어, 일본 사람들의 식탁에 올랐을 것이라는 이야기 였습니다.

이 자살 사건은, 광우병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이 어떤 식으로 일본 사회에 퍼져 있는가를 나타내는 어떤 상징적인 사건처럼 회자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처음으로 발견된 것은, 2001년 9월이었습니다.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 이후, "소의 원료가 들어간 화장품도 금지"라는 기준을 내놓을 정도로 철저히 막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땅 안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었으므로, 이것은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런 제길...: 다케베 쓰토무 농림수산상)

일본 정부에서는 허겁지겁 국민들 사이에 확산된 공포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케베 쓰토무(武部勤) 농림수산상은 영국의 예를 보면, 광우병은 뇌나 척수, 눈 등을 통해서만 옮겨지는 듯 하므로, 그 부분을 먹지만 않으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발표 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유럽산 화장품을 금지하던 등의 과거와는 배치되는 것이어서,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크지 않았습니다. 한편, 반대로, 이미 광우병에 대한 난리를 한바탕 치르고 정리 국면에 있던 유럽으로서는 일본의 이러한 상황을 내심 반기는 면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광우병에 관련된 연구, 조사, 규제를 수행하게 되면, 관련 기술은 고스란히 광우병의 본산인 영국에서 전수될 것이 확실했으니 말입니다.

결국 일본 정부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합니다. 즉, 전국 100여개의 검사시설을 총 동원해서, 일본의 소라는 소는 모두 광우병 검사를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일본의 전수 조사 정책입니다. 소라는 소는 모두 조사해 보겠다는 것은, 광우병이 상당히 큰 문제를 일으켰던, 영국, 독일에서 실시된 적이 있던 것인데, 일본에서는 첫번재 광우병 소가 발표된지 얼마되지 않은 초기부터,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여, 재빨리 국민들을 안심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과감하게 이런 태도로)

다시 말해서, 일본 정부는 설령, 광우병이 일본에 퍼진다 하더라도, 소라는 소는 모두 조사하기 때문에, 식탁에 올라가는 일본소는 안전한 것임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꽤 그럴듯 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직후,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터지면서,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슬쩍 잊혀지는 듯도 하였습니다.

일본 정부의 이러한 철저한 광우병 조사 정책은 나름대로 전화위복의 효과를 노리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검사를 하지 않아서 광우병에 걸렸는지 아닌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다른 나라 쇠고기를 먹을 바예야, 검사를 반드시 통과하곤 하는 일본 쇠고기를 먹는게 더 안전하지 않느냐고 선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생각은 이러한 조치가, 향후에 국제 무역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바탕이 될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이 쇠고기 개방을 두고 서로 협상을 하게 된다면, 일본이 일본에서 하는 것처럼, 한국도 모든 쇠고기 마다 광우병 검사를 반드시 해서 안전기준을 똑같이 맞추자고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광우병 검사는 비용이 드는 일이고, 결국은 쇠고기 값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값이 높은 일본산 쇠고기가 오히려 부담이 적은 일입니다. 또한, 이렇게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광우병에 대한 조사, 연구 기술이 준비된다면, 그 기술 자체를 다른 나라에 수출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2001년 일본 광우병 파동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본소를 다 조사해나가다 보니, 광우병에 걸린 소들이 한 마리, 두 마리 계속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88년 영국 광우병 파동이나,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 때처럼 많은 소들이 떼거리로 발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잊을만하면 한 마리씩 꾸준히 발견되었습니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일본소는 광우병 검사를 통과했으니, 다른 나라 소보다 더 안심하고 먹으라고 선전했는데, 몇몇 매장에서 소의 원산지를 속여서 파는 경우가 발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실수로 광우병 위험이 있는 소를 먹게 될 위험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거 원산지 속이기는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다만)

원산지를 속인 소가 유통되었다는 이야기 때문에, 국민들이 공포에 휩싸이자, 당시 일본에서는, "검사를 통과하지 않은 소라도, 그 고기 한 번 먹었다고 죽지는 않는다" 라는 말도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소 한 마리 한 마리를 다 검사하는 일본 소가 안전하고 다른 소는 불안하다" 라는 선전을 해 왔던 통에, "검사 통과 안하면 위험하다고 했잖아?" 라는 불신감이 생기기도 해서 쉽게 공포감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결국, 2003년말에, 일본에서는 모든 일본소 한마리 한마리가 어떻게 자라서 어디로 유통되는지를 다 기록해서, 인터넷에 공개하는 제도를 실시합니다. 그래서, 어떤 쇠고기 제품을 사먹을 때, 그 쇠고기 제품의 등록번호를 조사하면, 그 쇠고기가 어떻게 자라나서 어떤 검사를 통과한 소인지 확인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근본적으로 쇠고기의 원산지를 속이기 어렵게 만들었고, 쇠고기의 원산지를 속이면 금새 적발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2001년 일본 광우병 파동의 근본적인 충격은, 광우병이 영국과 매우 멀리 떨어져 있고, 영국산 제품을 상대적으로 많이 수입하지도 않는, 일본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광우병이 어떤 나라나 지역에 특정된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 퍼져 있는, 혹은 퍼져 나가는 병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형국)

또, 광우병이 지속적으로 계속 발견되기도 하고, 철저한 연구와 조사 속에서, 광우병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도 계속 보고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소가 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 라는 단순무쌍한 설명이 더욱 더 인기를 끌고 퍼져나갔습니다.

광우병에 대한 이런 불안을 타고, 우리나라의 한 학자는 상당히 기묘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6. 광우병에는 국경이 없지만, 고기 써는 사람에게는 조국이 있다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과 2001년 일본 광우병 파동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광우병에 대한 관심이 돌게 됩니다. 그런데, 2000년대초 한국이 광우병에 대처하는 태도는 몇가지 사회적인 이유 때문에 다소간 꼬여들게 됩니다. 그 모습은 유럽 각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른 모습이 됩니다.

우선 한가지 주목해 볼만한 것은, 2001년 일본 광우병 파동이 심화될 무렵에, 우리나라는 구제역 사태를 이미 겪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축들 사이에 구제역이 돌아서, 가축들이 죽어가기 시작했고, 때문에, 우리는 이미 쇠고기나 쇠고기 제품들의 수출이 봉쇄된 상황이었습니다. 구제역은 상당히 기승을 부려서, 수많은 축산농가들이 이미 피해를 입은 상태였고,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것도 꺼림칙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광우병이 아닌 구제역 때문에 이미 좀 깔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는 광우병 문제가 본격화 되기도 전에, 이미 구제역 때문에, 축산물 사태를 이미 겪고 헤쳐나가는 분위기로 흘러가 있었습니다. 역대 광우병 파동들에서 중요한 기점들은 대체로 나라들 간에, 서로 그 나라의 제품을 규제하고, 얼마까지 규제하는 것이 합당한가를 서로 논박하고, 토의하는 과정이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서로 쇠고리를 어디까지 금지할 것인가, 어디까지 들여 놓을 것인가를 싸우면서, 문제가 발전하고, 또 새로운 사실이 대두되던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구제역 때문에, 이미 우리나라 쇠고기, 쇠고기 가공 제품등의 일본, 대만 수출등이 봉쇄된 상황이었고, 국내에서도, 어떤 병의 실태를 파악한다기보다는, 손해본 축산농가를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하는 것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진 상황이었습니다.


(구제역 현장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당시 이한동 총리: 이 양반은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또한가지 중요한 상황은 2001년 무렵이 IMF 사태를 극복해 나가는 고비였다는 것입니다. 이 때는 텔레비전에서 "돈을 좀 써서 경기를 띄워보세" 하는 광고를 틀어대던 시절이기도 했고, 다같이 힘든 와중에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지는 말아야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광우병 문제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고, 상황을 밝히기 보다는, 최대한 축산농가 농민들에게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곱게 넘어가자는 태도가 매우 강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의 선명한 사례 중에 하나는 소위 "갈비 먹는 소" 사건입니다.


(갈비가 어때서, 만만한게 갈비탕인데)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과 2001년 일본 광우병 파동을 거치면서, 쇠고기에 대한 소비가 위축될 기미를 보이자, 농림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우리나라는 광우병이 발생한 나라에서 동물성 사료가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다른 동물성 사료의 반입도 최대한 막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광우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구제역 때문에, 축산농가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우병에 관한 나쁜 이야기가 너무 퍼지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일단 영국산 동물성 사료가 금지된 것이 2000년의 일이니, 88년 영국 광우병 파동 때로부터만 따져도, 무려 12년 동안이나, 영국산 동물성 사료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2년이 지난후에, 동물성 사료를 금지해 놓고, "이제 금지 했으니 문제 없다"라고 하는 말이 과연 설득력 있는가 하는 의심은 일단 지우기 어렵습니다.

더 조롱당할만한 일은 두번째 조치인, "동물성 사료 유입 제한 정책"을 두고 벌어집니다. 이때까지만해도, 정부 당국의 이야기는 "소가 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이 생기는데, 우리는 그것을 막으니까 문제 없다"라고 요약되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곳에서, 정부가 말만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버립니다.

문제는 IMF 사태 이후에, 음식물 찌꺼기를 줄이고, 농가에 사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추진되던, 음식물 찌꺼기 재활용 사업이었습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다가 가공해서, 동물의 사료로 쓴다는 계획은 IMF 사태 이후에, 서로 도우며 알뜰하게 살아 보려는 정책으로 널리 선전되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광우병에 대한 위와 같은 발표를 한 이후에도, 음식물 찌꺼기를 소의 사료로 사용하는 사업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농림부는 동물성 사료의 유통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는 했지만, 산하의 농촌진흥청에서 백주대낮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사업 조차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아예 소갈비집에서 나온 음식물 찌꺼기가 사료로 바뀌어 소에게 먹여진 경우가 드러나면서, 당시 언론에서 선전하던 바로 그 대로, "소가 소를 먹는 상황"이 정확히 재연되자, 이것은 잘팔리는 기사거리가 되어, 농림부에는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농림부에서는, "아무 고기나 먹는게 문제가 아니라, 스크래피 병에 걸린 양을 먹는게 문제이므로, 음식물 찌꺼기 사료는 안 위험하다"라면서, 88년 영국 광우병 당시에 내려졌던 잠정결론을 부랴부랴 선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은 멋있게 보이려고, 약자로 "RDA"라고 부릅니다.)

또 한가지 상당히 문제가 심각했던 사례는 국내 vCJD 의심 환자의 검사 문제였습니다. 국내에 CJD 환자는 수십명 규모로 희귀하지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2001년에, 30대 남자가 CJD 증상을 보여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이 환자는 통상적인 CJD와는 달리, 젊은 나이에 발병 했으므로, vCJD 일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당국에서는 이 환자가 영국 쇠고기를 먹은 적이 없다고 보이고, 그렇다고 쇠고기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므로, 광우병에 옮겨온 CJD 일리는 없다고 발표해 버립니다. 말하자면, "한국에는 광우병이 없기 때문에, 광우병이 없다" 라는 식으로 발표한 것입니다.

이후에 생검을 한 후에도, vCJD가 아닌지 맞는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러면서도, "vCJD의 징후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라는 점만을 홍보하여, 마치 "vCJD가 아니다" 라는 듯이 신문기사와 보도가 돌도록 놓아두어 버렸습니다. 당시 이 병이 vCJD 인지 아닌지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망한 환자의 시신에서 소뇌를 부검해 봐야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확인 작업을 하지 않고, 넘어갔던 것입니다.


(부검의 중요성)

이러한 사건들은, 당시 우리 정부 당국이 철저하게 광우병을 조사할만한 기술도 없고, 그렇다고, 결정한 조치들이 분명히 이행되도록 집행하고 감독하고 위반하는 사람을 처벌할만한 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기는 커녕, 상황을 이해할만한 기술자 조차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한 농림부 관계자가, 상황을 아는 사람을 몰라서, 인터넷에서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는지 검색해 보는데 의존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실토하는 보도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 가장 우스꽝스러운 사건은, 유명한 모 교수의 "광우병 내성소" 소동이었습니다. 당시 언론을 통해 이름을 날리고 있던 한 교수가, "유전자 변형과 동물 복제 기술을 이용해서, 광우병 내성소를 극비리에 연구하고 있고, 3년이면 광우병을 정복할 것이다"라고 발표한 것입니다. 극비리에 연구하는 내용을 왜 결과도 나오기 전에, 학술지도 아닌 신문기자에게 먼저 알려줘서 전국에 공개하는지 의문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더 황당한 것은 이것은 기본적으로 광우병이 퍼져도 잘 안죽는 소를 동물 복제를 통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 광우병이 사람에게 옮겨지는 것을 막는데는 효과가 결정적이라고 보기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우리 정부의 방침은 나름대로 확고했는지, 광우병에 대한 기술적인 조치나, CJD 파악을 위한 정책은 거의 아무 변화가 없던 상황이었는데도, 이 교수의 연구를 파격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이 사람은 얼마후에, 광우병에 관한 검사를 의뢰하기 위해, 자신의 소들을 일본의 연구 시설로 보내면서, 기자들이 "광우병 내성소 일본간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쓰게 했습니다. 이것은, 광우병 검사 기술이 없어서, 소를 일본 연구소에 보내서 부탁하는 형편이면서도, 놀랍게도, "일본에 광우병 극복 기술을 전해주는 왕인 박사가 일본에 천자문을 전해준 것과 버금가는 업적"이라고 신문지상에 소개되었습니다. 물론 변변한 실험 자체가 진행되지도 못했습니다.


(we both reached for the gun~)

이 특이한 교수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는, 전세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7. 상황 반전

2001년 일본 광우병 파동으로, 세계 전체에 광우병이 화제거리가 된 상황에서, 쏟아지는 광우병 관련 보도는 한국과 일본의 축산 농가에 계속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일본은 모든 소를 전부 검사해서 광우병에 걸리지 않은 소만 식탁에 오르게 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계속 광우병 소가 발견되어서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한편, 한국은 매년 1천마리 이상의 소를 뽑아서 검사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초기에는 검사 방법 자체가 부실했던 데다가, 검사하는 소들은 의무적으로 하는 형태가 아니라서, "검사에 통과할만한 소만 검사한다"라는 비판이 가해지기도 했습니다. 단적인 예로, 광우병 검사를 하는 소의 숫자부터가 문제입니다. 농림부는 2004년 4월 19일에, 광우병 검사를 2006년까지 2004년 수준의 다섯배, 그러니까 5천마리 수준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2008년 아직까지도 검사 계획은 2004년과 거의 같은 1천마리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것은 농림부가 기술적인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덮어놓기를 위해 막연히 장담만을 한 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캐나다에서 광우병과 흡사한 병이 사슴에게 생기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문제의 캐나다산 사슴(엘크)에서 나온 녹용이 국내에 대량 유통되었으므로, 이것이 한 번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녹용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증거는 사실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녹용은 한국 사람들이 푹 고아서 그 물을 마시는 재료라는 면에서, 뒤숭숭한 상황을 만들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엘크)

한편, 비슷한 시기,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의 뒷수습을 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별별 이야기가 다 쏟아져 나오면서, 아시아의 민심을 더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광우병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와 통제 조치를 유럽 전체 차원에서 만들기 위해, 잦은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미 광우병이 상당히 퍼진 나라들과 그렇지 않은 나라들, 쇠고기를 많이 수출하는 나라들과, 그렇지 않은 나라들이 서로 입장차이를 빚었습니다.

즉, 광우병을 이미 많이 겪은 나라들은 광우병에 대한 검사와 통제 조치, 동물성 사료에 대한 금지 조치를 강조했습니다. 이런 나라들은 이미 광우병 파동을 겪으면서 스스로 엄격한 검사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고, 이미 동물성 사료를 금지한 상태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자기 나라처럼 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나라와 경쟁조건을 비슷하게 맞출 수 있었고, 또 광우병 검사, 통제 기술을 수출할 수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광우병을 덜 겪은 나라들이나, 쇠고기를 수입하는 나라들은, 광우병에 대한 검사 보다는, 나이가 많이 든 소를 유통시키는 것을 금지하거나, 쇠고기의 뼈와 뇌를 유통시키는 것을 금지하자는 쪽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나라들은 자기 나라 안에서 갑자기 사료를 바꾸거나, 어려운 검사 통제를 도입하기 보다는, 수출하는 나라들이 수고해서 뼈와 뇌를 발라내고, 소들의 연령과 나이를 잘관리하기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뼈를 발라내고 연령과 나이를 관리하느라 쇠고기 수출국이 부담이 생겨서 비용이 더 들게 되므로, 상대적으로 자기 나라 축산농가들에게 유리해지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중요하게 논의된, 이상의 두가지 이야기, 즉, 소를 키우는 방법(사료, 검사방식)과, 소를 죽이는 방법(도축 연령, 뼈와 뇌를 버리는지의 여부)는 후일 많은 나라들의 쇠고기 협상에 한 기준이 됩니다.


(1583년에 그려진 그림. 오른쪽은 엘리자베스 여왕, 중앙의 소는 네델란드를 상징)

유럽에서 여러 논쟁을 벌이는 시기에, 이러한 나라간의 대립 분위기를 타고, 다양한 의견과 추측들이 흘러나옵니다. 특히, 이때 유럽은 미국이 소를 키울 때 성장 호르몬을 사용하는 것에 시비를 걸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미국 당국은 미국의 학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유럽 소들의 광우병 위험을 공격하도록 유도 했습니다. 성장 호르몬이 아무리 나쁘다 한들, 광우병 만큼 나쁘겠냐는 투로, 광우병의 무시무시한 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곤 했습니다.

자주 인용된 것으로는 영국 존 콜린지 교수가 이야기한, "수천 수만명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있습니다. vCJD의 잠복기간이 30년정도일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그래서, 광우병 파동이 처음 벌어진 1988년 이전에 멋모르고 광우병 걸린 소의 뇌와 척수를 먹은 사람들 중에, 상당히 많은 숫자가 이미 vCJD에 걸려 있고, 이 사람들은 지금은 멀쩡하지만, 사실은 광우병에 관한 조치들이 취해지기 전에 병에 걸린 사람들이어서, 이 사람들이 다 죽는 난리가 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돌았던 것입니다.

이 존 콜린지 교수의 이야기가, 요즘 우리나라에 돌아다니는, 광우병은 잠복기가 30년이 넘고, 수천만명이 광우병에 죽는다라는 이야기의 발단으로 보입니다. 요즘 돌아다니는 이야기는, 이처럼 vCJD 잠복기가 소가 걸리는 광우병 잠복기로 잘못 옮겨진 경우가 많고, 또 88년 이전 상황을 겪은 영국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뜻에서 사용한 수천-수만이라는 숫자가, 광우병에 걸려서 죽을 가능성이 무척 크다는 "수천만명이 죽는다"로 잘못 옮겨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런 공포 분위기가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나온 이야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 합니다.


(뭐 이런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습니다만)

다른 이야기로,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영국 퀘니버러 마을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세 명의 사람이 vCJD에 걸렸는데, 세 사람의 공통점은 한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먹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정육점에서 쇠고기의 뇌와 척수를 발라낸 칼에 뇌와 척수의 조각이 묻어 있던 것이, 여러 사람의 고기를 썰때 묻어서 퍼진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가장 비관적인 상황에 관한 추측이었고, 당시 연구 결과로 볼 때 크게 확신할만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요란한 분위기를 타고, 이야기거리가 되었고, 미국 학자의 해설과 함께 미국과 영국의 방송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 도는 이야기 중에, "칼로 고기를 썰기만 해도 광우병이 퍼진다"는 이야기는 바로 이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나온 말로 보입니다. 뇌와 척수의 조각이 칼에 붙어 있다가 고기에 함께 들어가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고기 썬 칼로도 전염"으로 과장되기는 했습니다만, 이 역시, 당시 나온 이야기들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광우병 위협에 대한 여러가지 연구 결과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고, 미국 당국은 다른 나라 쇠고기 제품을 막아내기 위한 무역장벽으로 이러한 연구들을 활용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90년대부터, 가축을 "비자연적으로 기르는 것" 비판 여론이 점차 생겨나고 있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동물 보호론과 함께, 드넓은 벌판에 소를 방목하는 옛날 방식 미국 농법에 대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일종의 환경운동이었습니다. 하다못해 미국 만화에 나오는 초능력 영웅 캡틴플래닛이 미친 소떼들과 싸우는 에피소드도 나왔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소에게 고기를 먹이다가 망했다"라는 주장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는 때문에 미국 내에서 상당히 발달하기도 했습니다.


(캡틴 플래닛)

2000년대초의 광우병 사태는 이처럼 나름대로 국제적으로 심각한 수준으로 계속 커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과 일본의 당국으로서는 상당한 문제거리로 다가 오게 됩니다. 날이 갈 수록 광우병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들이 자꾸 돌기 시작하니, 축산농가를 도울 방법이 막막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대로, 광우병에 대한 낙관론이 서서히 나오기도 했습니다. 88년 영국 광우병 파동, 내지는 96년 영국 광우병 파동 이후로, 철저한 광우병 방지 조치를 취하면서, 더 이상 광우병이 생기지 않고 있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즉 지금 발견되는 광우병에 걸린 소나, vCJD 환자들은 그 조치 이전에 이미 잘못되었는데, 잠복기 동안 발병하지 않고 있다가, 지금 발병하고 있는 것일 뿐, 이제 새롭게 광우병이 퍼져나고 있지는 않다고 본 것입니다.

광우병에 대한 낙관론은, 전세계적으로 광우병에 걸린 소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경향에 이유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광우병에 대한 조사는 점점 더 엄격해지고 있는데, 광우병에 걸린 소들은 거의 사라지는 추세이니, 이것은 곧 새로 생기는 광우병은 없다는 뜻 아닌가,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2000년대 초무렵, 우리나라 당국에서는 곧 광우병은 없어지며, 광우병에 걸린 소의 척수를 먹지 않는 한은, 광우병에 걸리지 않고, 설령 잘못해서 소의 척수를 좀 씹어 먹었다하더라도, vCJD로 발병할 확률은 낮다는 주장을 주로 가져와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기본적으로 쇠고기 시장을 살리기 위한 수법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광우병에 대한 낙관론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지나친 낙관론의 예시: 다음 편을 보면, 드디어 모든 비밀이 밝혀 지겠구나!)

그렇지만, 광우병과 관련된 문제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꾸준히 생기는 상황에서, 이러한 주장의 효과는 크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한들, 뇌의 기능이 점점 멈추어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비치는데, 감정이 안정되기란 어려웠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아무래도, 축산농가들을 살려낼 묘책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유럽은 광우병 문제로 여전히 굳게 닫힌 상태였고, 이러한 상황을 언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광우병 문제가 언제 쯤 되면 지구에서 사라질지 하는 점도 제대로 예측하기 어려웠습니다.

2003년 "카르멘" 잠실 주경기장 공연을 준비하던 기획진과 제작진들은 결국, 유럽에서 투우에 사용하는 소를 데려오는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들은, 고심 끝에 투우에 쓸 수 있는 소를 미국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마침내, 투우사는 스페인에서, 투우에 쓰는 소는 미국에서 구해오는 방법으로 잠실 주경기장에서 투우 장면을 펼치기로, 새로운 계획을 세웁니다.

이때까지 광우병 문제를 보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류의 문제는 고전적인 외교나 행정 문제의 틀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광우병 문제는 그렇다고 그냥 보건이나 방역 문제에 그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광우병 문제에는 생화학과 분자생물학, 신경의학과 보건위생학이 연결되어 있었고, 동시에 경제학과 통계학, 통상정책과 홍보정책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형태의 문제들을 먼저 이해하고, 보다 명확한 기술을 보여주는 쪽이 우세할 수 있는 문제 였습니다. 정부가 이런 복합적인 문제를 처리하는데 얼마나 능력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광우병 문제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앞으로 가면 갈 수록 더 중요해 질 것으로 보입니다.


(불어 공부해서 외교관 된 사람도, 이런 것들과 얽힌 문제에 나서야 하는 세상)

광우병 문제는 점점 장기화 되고, 그 때문에 점점 더 골치 아파지고 있었습니다. 외국과의 통상문제, 광우병에 대한 보건 문제, 광우병으로 위축된 국내 축산농가를 돕는 일 등등이 계속 얽혀들어서 해결될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고민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농림부 당국자들에게 2003년 12월 24일, 산타클로스의 선물이 도착하게 됩니다. 이 선물은 미국의 당국자들에게는 커다란 재앙이었습니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그 밖에...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prion)의 가장 큰 특징은 이것이 "살아 있다"라고 하기 어려운, 단순한 단백질로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대부분의 생명현상과 달리, 프리온은 DNA 없이 퍼져나갑니다. 지구의 생물들이 따르고 있는, 중심 원리(central dogma)를 벗어나는 행동입니다. 따라서, 어찌보면, 프리온은 작은 살아있는 생물이라기보다는, 자꾸 숫자를 불려나가는 특성이 있는, 복잡한 독약 가루, 소에게 해를 끼치는 괴상한 물질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모릅니다.

살아 움직이면서 핵이 분열하고, DNA가 복제되어 늘어나는 일반 생물에 비하면, 프리온은 죽어있는 살덩어리 단백질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만합니다.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프리온은 마치 시체가 살아 움직이는 좀비와 비슷한 형국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프리온에 대한 현상은 기존의 전통적인 생물학에서 배치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고, 프리온에 관한 질병에 대한 연구도 다른 병에 비해서는 이해가 떨어집니다.

프리온은 1백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도 버티고,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인류를 치료 불가능의 방법으로 죽여 버리고, 지구의 생물학에서 통용되어온, 중심 원리를 거스르는 형태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마치 외계 생물체 같아 보입니다. 지구보다 훨씬 뜨거운 금성이나 수성에서 온 우주의 침입자(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일지도 모릅니다. 영국에서 굳이 광우병이 창궐한 것은, 영국에 이 놈들이 가장 먼저 착륙했기 때문은 아니겠습니까?

물론, 마지막 문단은 황당무계하고도 이치에 닿지 않고 어림없으며 믿어서는 안되는 소리로, 이런 소리 한다고 동네 통반장 아주머니가 더운날 음료수 한 잔 사주지도 않습니다. 진지하게 연구해서 프리온이라는 것의 정체를 밝힌 미국의 스탠리 프루시너는 1997년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글/ 창조한국당원 게렉터


- 글 속에 오류가 있거나, 문제의 소지가 있는 내용이 있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자유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확인후에, 수정, 보충, 삭제 하겠습니다.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8.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


(앤 배너먼 미국 농무부 장관: 유니세프 활동할 때가 훨씬 속 편했지)

2003년 12월 24일. 미국의 앤 배너먼 농무부 장관은, 미국 최초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 될 듯 하다는 내용을 발표합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미국 당국에서는 다른 어느 나라와도 달리, 이 날이 발표에서, "이것은 테러에 의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라는 내용을 꼭 덧붙였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소를 키우고 있는 나라에서 광우병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또다른 충격이었습니다.

농무부 장관의 발표가 나오자마자, 미국의 축우조합은 한국과 일본에 협조를 요청합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많이 수입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게, 아직 확실한 것은 없으니, 수입 중단은 피해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미국 쇠고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인 일본은 즉시 수입을 중단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검역 일정을 미루는 방법으로 잠시 시간을 버는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이후 며칠동안 미국측의 최종 발표를 기다렸고, 결국 광우병임이 최종 확인 된 후, 우리나라도 수입을 금지시켰습니다.

한편, 이 때문에,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카르멘" 공연을 위해, 투우를 준비하던, 제작진과 기획진은 결국 최종적으로 투우에 실패합니다. 유럽 광우병 파동 때문에, 투우사는 스페인에서, 소는 미국에서 데려와서,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이제는 미국에서도 광우병이 발견되는 바람에, 미국산 소도 데려 올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제작진은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미국산 소를 한국으로 들여 오는 것은 결코 정부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투우를 할 수 있는 소를 구할 수 있는 다른 나라는 이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카르멘" 제작진은 마침내 투우를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위 한 번 없었지만, 투우 중지)

이렇게 단 한마리 소의 광우병 발병에 대한 가능성만으로, 쇠고기 수입이 전면 중단된 것은, 따지고 보면, 미국 당국이 자초한 면도 있었습니다. 그전까지 미국 당국에서는 미국은 광우병이 없는 청정국가임을 자부하면서, 유럽과 캐나다의 쇠고기 제품을 철저하게 공격했습니다. 미국은 과감하게 반입금지 조치와 수입 금지 조치를 내세웠고, 우유나 치즈를 통해서도 광우병이 전해질 수 있다는 의견을 중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은 유럽산 치즈, 버터에 비해 미국산 유제품에게 큰 경쟁력을 실어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미국 당국에서 나름대로 활용하는 듯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된다니, 다른 나라들은 당연하게도 즉각적이고 엄중한 금수조치를 단행한 것입니다.

한편, 한국 입장에서는, 쇠고기 수요의 커다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가 전면 금지된 것은, 축산농가 회생의 기회나 다름없었습니다. 쇠고기를 파는 사람 자체가 확 줄어든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껏 오락가락했던 광우병 논란을 일거에 극복하고, 시장에서 쇠고기 값을 올려 받을 수 있는 기회였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실제로, 축산농가의 농민들이 볼 수 있는 이득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쇠고기 거래 가격이 상승할 것은 분명해 보였고, 그렇다면, 정부 당국으로서는 안심할만한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드디어 축산농가들이 광우병 파동에 휩쓸려, 떨어지는 쇠고기 값에 따라 망하는 것을 막았다고 좋아할만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소 싸움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할지)

미국 당국은 최대한 수습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앤 배너먼 농무부 장관은 별 확실한 근거도 없이, "미국 쇠고기는 절대 안전하다. 나 자신도 이번 크리스마스에 미국 쇠고기를 먹겠다" 고 발표 첫날 부터, 이야기를 늘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당국은 이 광우병 발병의 파장을 줄이기 위해, 광우병과 관련이 있는 소들은 다 떨궈 없애고, 나머지는 광우병과 상관없는 안전한 소 라고 주장하려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미국측은 광우병에 걸린 이 소가 무슨 문제가 있어서 광우병에 걸렸다고 밝히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없는 대부분의 미국소는 안전하다고 주장하려 했던 것입니다.

앤 배너먼 농무부 장관은 일단, "이게 다 캐나다 때문이다"로 몰고 갔습니다. 광우병으로 죽은 소의 유전자 검사를 해서, 이 소가 캐나다 소일 가능성이 높다는 증명을 해낸 것입니다. 캐나다는 이미 광우병이 발병한 나라였으므로, 캐나다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미국으로 들어와서 죽었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외의 미국소는 모두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나고 있다고 이야기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캐나다의 농장을 뒤지고 다니고, 죽은 소의 자식들 유전자까지 철저히 조사한 끝에, 미국 기술진들은 이 소가 캐나다 소라고 주장했고, 캐나다 당국도, 그 소가 캐나다에서 태어난 것은 맞다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국제수역사무국 OIE 의 기준에 따르면, 광우병이 생기는 장소가 광우병 발생국이고, 이미 광우병이 생긴 제품이나 물건을 들여온 나라는 단순한 수입국일 뿐, 광우병 비발생국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이 말은, 소가 광우병이 걸리는 시점에서 그 소가 사는 나라가 광우병 발생국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고, 따라서, 소가 캐나다에서 광우병에 걸린 뒤, 미국으로 넘어 왔다면, 이것은 캐나다에서 광우병 걸린 쇠고기가 생산되었고, 그 쇠고기가 미국으로 수입된 것일 뿐이라는 식으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이런 문제의 소가, 캐나다산 소라면, 캐나다가 광우병이 있는 나라이지, 미국이 광우병이 있는 나라는 아니라는 주장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Blame Canada!)

이런 주장은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 때도 유럽의 몇몇 나라들이 처음에 써먹던 것이었습니다. 미국측은 유전자 조사를 이용해서, 별 증거자료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사실을 입증해 냈습니다. 캐나다 쪽에서는 소가 캐나다에서 태어난 것은 인정해 주었지만, 캐나다에서 광우병이 걸렸는지는 확신할 수 없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것은 미국도 캐나다 처럼 광우병 발생국으로 만들어서, 경쟁력을 캐나다와 동일한 수준으로 만들려는 캐나다측의 입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 당국으로서는 다급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광우병 발표 이후, 5일 동안 미국 소값이 쑥숙 떨어졌습니다. 선물시장 거래가격 기준으로 20% 정도가 폭락했고, 몇몇 쇠고기 수출 일을 하는 가공 업체들은 도산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설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당국은 광우병 소식이 터져 나온지 채 10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미국 쇠고기 최대 수입국인 일본에 미국 쇠고기 수입을 다시 시작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일본은 단박에 이러한 요청을 거절 했습니다. 근거는 명확했습니다. 일본은 소라는 소는 모두 다 광우병이 있는지 없는지 검사해보도록 규정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광우병이 없는 나라라면 모를까, 광우병이 이미 발생한 마당에, 일본처럼 철저하게 검사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잘라 말한 것입니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일본소도 엄격하게 검사한 뒤에 먹는데, 다른 나라에서 소를 사오면서 부실하게 검사한 소를 사올 이유가 없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지)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이 문제를 만만하게 넘기지 않았습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지 W. 부시는 자타가 공인하는 텍사스 카우보이였고, 수많은 미국의 축산업자들이 조지 W. 부시의 지지자들이었습니다. 조지 W. 부시 측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리고, 텍사스 카우보이의 베짱을 보여주기 위해서, 반드시 쇠고기를 다시 팔게 해주겠다고 결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과연, 미국 정부는 정부 전체의 온갖 협상 능력과, 최고 수준을 가진 해당 분야 기술자들의 실력, 국제 기구를 통한 입체적인 압박을 동시에 이용해서, 지금껏 그 광우병 파동을 겪은 그 어느 나라보다, 효과적으로 광우병 파동을 무마하기 시작합니다.



9.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개망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총리의 악명 높은 가라오케 외교)

문제의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가 한달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은 각종 외교관들과 통상 관료들을 동원해서, 일본 당국이 수입을 다시 시작하도록 부탁합니다. 기본적인 근거는, 일본도 광우병 있는 나라이고, 미국도 광우병 있는 나라니까 같지 않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은 광우병 걸린 소가 많이 나왔지만, 미국은 이제 딱 한 마리, 그것도 캐나다에서 온 소 한 마리 나왔으니, 그래도 일본 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 미국 당국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일본 당국은 미국에 실태조사단을 보내서, 미국의 광우병 관리 상황을 확인하고 관리 감찰해 본 뒤에, 문제 없으면, 수입을 다시 하겠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본이 미국에 보낸 조사단은 사실 이미 조사 결과를 정해 놓고 조사를 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사람이 먹을 소라면, 모든 소에 대해 다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는 철저한 일본의 체계에 비하면, 의심되는 소들만 골라서 검사하는 미국의 체계는 충분히 욕할만 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미국도 일본처럼 소라는 소는 다 검사한다면, 그때 일본이 미국 쇠고기를 받아 들이겠다고 제안합니다.

이것은 미국으로서는 큰 부담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넓은 나라에서 축산농가들이 상당히 자유롭게 소를 키우는 미국에서, 모든 소를 다 조사하는 것은 미국 당국과 축산업자들에게 엄청나게 귀찮은 일이었고, 곧 비용이 많이 소모되는 일이었습니다. 미국 농무부는 일본과 동일한 기준으로 소를 검사하면, 소를 받아들이겠다는 일본의 주장을 거절했습니다.


(귀찮잖아...)

미국 농무부는 최고 실력을 가진 기술자들을 동원하고, 근거를 잘 살리는 통계학적인 설명을 덧붙여서, 모든 소를 다 조사하지 않더라도, 일본에서 모든 소를 다 조사하는 것과 거의 같은 안전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농무부는 미국 축산농가들과 한 마음이 되고, 또 미국 대통령과 한뜻이 되어, 이러한 입장을 여러모로 강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국 일본측은 미국의 "이게 다 캐나다 때문이다" 를 받아 들여서, 사실은 미국이 광우병이 없는 나라라고 치고, 미국 쇠고기를 받아 들일 수도 있다는 입장을 취합니다.일본은 대신 만약을 대비해서, 2단계에 걸쳐 수입을 하겠다는 계획을 내어 놓습니다. 나이가 어린 소에 대해서, 뇌, 척수, 뼈등을 뺀 살코기만 수입하고, 이후, 미국의 상황이 충분히 호전되었다고 판단 되면, 범위를 넓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방안은 이후, 한국, 일본의 미국과 협상에서 자주 나오는 표본이라 할만합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미국 측에서 소에서 뼈와 척수를 제거하고, 또 소의 나이를 판단해서 어린 소만 유통시켜야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는 "광우병"이 발견되는 사례와 멀리 떨어진 소들을 추려내려는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측이 뼈와 척수를 일일이 제공하고 나이를 파악하는 노력을 하도록 해서, 미국이 어느 정도 비용을 부담하게 하려는 수법이기도 했습니다. 또, 미국 쇠고기가 일본 시장에 투입되는 가격과 양을 조절하고, 가능한한 국민들에게 광우병에 대해 무슨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선전 할 수 있는 조건을 설정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다 요리하고 먹을 때 뼈 발라내는 것도 귀찮은데)

하지만, 일본의 이 방안은, 일본, 미국, 양쪽에서 모두 결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이런 귀찮은 조건 없이, 쇠고기를 일본에 수출하기를 원했으므로, 이런 방안의 세부 항목을 따르는 것을 자꾸 피했습니다. 한편, 일본에서는 일본 소는 모두 다 광우병이 없는지 검사한 후에야 먹는데, 외국에서 대려 오는 미국 소는 광우병이 걸린 것이 실수로 모르고 유통되어도 상관없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조건으로 협상을 하는 것은, 일본 정부가 일본소는 핍박하고, 미국소를 오히려 환대하는, 사대주의 굴욕 역차별 이중기준 이라는 일본국내의 비난도 상당했던 것입니다.

결국 협상은 쉽사리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측은 계속해서 일본에 쇠고기 개방을 요구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의회의 상원의원들이 합심하여, 미국 농민을 돕기 위해, 반드시 일본 시장을 뚫겠다는 생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2005년 초반에는 그리하여, 미국 의회의 상원의원들이 일본에 쇠고기 개방을 거부하는 데 대해 무역제제를 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은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을 보낸 자리를 포함해, 가능한한 모든 상황에서 항상 쇠고기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등, 쇠고기 수입을 일본-미국 동맹에 관한 문제로 까지 만들어 나갔습니다.


(강하게 나갈때의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

이후, 미국에서 제2의 광우병 소, 제3의 광우병 소가 발견되기까지 했지만, 결국 수입 중단 2년만인 2005년말. 일본은 미국 쇠고기를 다시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축산농가들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일본 축산농가들의 반발은 미국 쇠고기 들어오면, 일본 쇠고기 값 떨어진다는 단순한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2001년 일본 광우병 파동 이후, 일본소는 모두 다 광우병 검사를 하게 의무화 해서, 항상 일본 축산농가들을 귀찮게 하고, 만에 하나 광우병이 발견되면 난리를 치르게 만들어 놓고, 미국 소는 대체 왜 대충 검사해도 시장에서 팔게 해 주는지, 불공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일본정부가 일본농민과 일본국민 보다, 미국농민과 미국국민의 편의를 더 봐주고, 미국농민을 더 우대한다는 맹렬한 비난이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것은 미국의 쇠고기 수출에 숨통을 트여준 것으로 볼 수도 있을만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나라들에게는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하기 위해서, 국내의 제도를 초월할 정도로, 양보해야 할 때도 있다는 매우 안좋은 선례를 남긴 것이었습니다. 자기나라 소는 모두 검사하고 먹는 일본 사람들이, 검사도 제대로 안하고 먹는 쇠고기가 미국 쇠고기니까, 미국 쇠고기가 얼마나 안전하고 좋으냐, 하는 어떤 지지 근거를 만들어준 협상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은, 이때 일본과 이루어진 협상과의 틀 안에서 진행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새로운 패션)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변명이랍시고, 그래도 뼈 없는 쇠고기만 수입해 오는 것이니까, 별 문제 없이 안전하지 않겠느냐, 라는 요지로 국회에서 연설했습니다. 그렇게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일본 국민들에게 이 문제를 설명하면서, 미국에서 규정을 잘 지켜서 안전하고 확실하게 쇠고기를 유통시킬테니, 안심하라고 국민들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를 누군가 비웃으며 저주라도 하는 것인지,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미국 쇠고기는 뼈없는 것이니까 괜찮다는 말을 한지, 불과 다섯시간 후에,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서 등뼈가 발견되는 대형 사고가 터집니다.



10. 소 이빨에 달린 운명


(젖소 이사금)

일본이 미국 쇠고기를 다시 수입하려고 협상하던 때와 비슷한 무렵, 우리나라는 한미 정상 회담이 추진됩니다. 훨씬 더 깐깐한 규정을 갖고 있는 일본도 미국 쇠고기를 받아들이는 판국에, 광우병에 관한 관리가 부실한 우리나라가 미국 쇠고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문제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미 정상 회담을 기점으로 우리 정부는 일본과 비슷한 조건으로 쇠고기 수입을 결정합니다.

물론 이번에도 협상 타결 직전까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설레발치는 예측 보도는 사실 무근이다" 라면서 쇠고기 수입을 안할 수도 있을 것처럼 하다가, 불과 한두달 사이에 쇠고기 수입이 결정된 것입니다.

특히 이 쇠고기 수입 협상 내용은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이 소가 나이가 많으면, 예전에 걸린 광우병이 도진 것으로 보고, 새로운 광우병 발견으로 치지 않는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즉 미국에 광우병이 또 터져도, 조건만 맞으면 광우병 따위 무시하고 쇠고기를 수입한다는, 광우병에 대한 공포 심리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상당히 납득하기 어려운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2005년 협상을 마무리 짓던 와중에, 공교롭게도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또 한마리 발견되는 사건이 정말로 벌어집니다. 자칫하면,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된 상황인데도, 우리나라는 쇠고기를 수입해서 들여와야할 상황이었습니다.


(이게...)


(이것으로 된 상황)

우리측에서는 광우병에 걸린 소의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물었습니다. 만약 소의 나이가 여덟살보다 작으면, 이 소는 미국에서 새롭게 발생한 광우병에 걸린 소로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수입할 수 없다는 명목하에, 수입을 금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소의 나이가 만약 여덟살 이상이라면, 예전에 광우병에 이미 걸렸던 소가, 잠복기를 거쳐 뒤늦게 발병한 것으로 쳐야 합니다.그렇게 된다면, 지금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었지만, 이러한 사건은 그냥 과거지사로 치고 묻어 두고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뻔히 광우병이 걸린 소가 발견되었는데도, 우리나라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새로 광우병에 걸린 소의 나이가 과연 몇 살이냐, 라는 질문에, 미국에서 보내온 답이 걸작이었습니다.

"모르겠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미국 당국에서는 "10살인 것 같지만, 문서로 된 증명서는 찾을 수 없다"고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미국 당국에서는 소가 언제 태어나서 어떻게 유통되었는지 하는 문서가 남아 있지 않은 소라서, 확실한 것은 증명할 수 없지만, 소 이빨을 보니까 10살짜리 소인 것 같다고 의견을 보내온 것입니다.


(소의 귀에 붙인 번호표와 증명기록으로 철저히 관리했다면, 금새 나이를 알 수 있겠지만)

만약, 미국 당국의 "광우병 걸린 소는 10살"이라는 의견을 받아 들이면,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보고 된 상황임에도, 쇠고기를 수입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박홍수 당시 농림부 장관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사항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우리가 물러서는 자세를 보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그 때, 우리측 조사단을 미국에 보내서, 과연 문제의 소가 몇살인지 확인하고 오겠다고 국민들에게 밝혔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간 조사단이 갔다 온 뒤에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광우병에 걸려 죽은 소 이빨을 보니, 열 살 넘는 소랑 비슷한 것 같습니다."

출생기록도 못찾고, 소의 뿔도 확인하는데 실패한 상황에서, 우리측 조사단은 소 이빨을 보고 소가 열 살이 넘는다고 스스로 인정했던 것입니다.


(하기야, 공룡도 이빨만 보고 많은 것을 알 수 있기는 하다만)

이러한 우리측의 협상 태도는 당시 일각에서 굉장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일단 미국에 광우병이 발생해도, 죽은 소가 나이만 많으면 용서해 준다는 조건 부터가 엉성한 것이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더더욱 욕을 많이 들어 먹었던 것은, 죽은 소의 나이가 불확실하다면, 미국에서 확실하게 입증할 때까지는, 그 위험을 신중하게 평가해야 하는게 국민을 보호할 책임일텐데, 그 책임을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미국에게 확실하게 증명하기 전에는 인정하지 못한다고, 엄한 태도를 보이기는 커녕, 우리측 조사단이, 마치 미국편을 드는 것처럼, 자청해서 소 이빨을 보고, 소가 열 살 넘는 것 같다고, 맞장구 치며, 그러한 추정을 인정해주는데 급급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미국에서 소의 나이를 판정하는 기준으로 종종 사용되는 소 이빨 확인에 대해서, 그 정확도를 어디까지 우리가 평가해 줄 것인가, 하는 기술적인 사항을 중심에 놓아야 하는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서, 우리 정부 당국은, 문제를 처음 부터 잘 예상하고 파악해서 정교하게 대응하지도 못했고, 국민들에게 신뢰감있는 태도를 주는데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 사건은, 2천년가까이 전에 신라에서 떡에 나온 이빨 자국의 숫자로 임금이 누구인지 결정했던 일 이래로, 이빨 모양이 중대한 영향을 끼친 가장 심각한 일화일 것입니다.



11. 미국산 쇠고기 들어오다


(한국은 선비, 일본은 사무라이, 영국은 신사, 독일은 병정. 그렇다면, 미국인의 전통하면, 당연히 카우보이 아닌가?)

이러한 사연을 거쳐, 마침내 미국산 쇠고기는 국내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일본과 같은 뼈, 뇌, 척수 제거 규정, 연령 제한 등의 규정이 있는 상태였지만, 여러가지 문제는 끊임 없이 지적되었습니다.

미국 쇠고기가 한우로 둔갑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 하는 기본적인 문제만 해도, 답이 없습니다. 과거 일본에서 했던 것처럼, 한우의 유통을 인터넷으로 찾아 볼 수 있게해서, 소비자들이 필요하다면, 자신이 산 제품이, 어떤 소에서 나온 것이며, 그 소는 어떻게 자라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대비책의 첫걸음으로 제시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터넷 사이트가 시험적으로나마 공개되어 가동된 것은, 매우 뒤늦은 올해 2008년 초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더군다나, 세계에서 가장 학문과 기술이 발달한 나라와 통상협상을 하면서, 핵심 사안인 광우병에 대한 지식, 기술 수준에 대한 준비도 비웃음 당할만한 수준이었다고 짐작됩니다. 광우병에 대한 정보의 홍보와 정책, 광우병, vCJD와 관련된 정책 집행과 시설 현황을 보면, 대강 광우병을 덮어 놓고 넘어가려던 90년대말과 근본적인 차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과연, 미국산 쇠고기가 얼마나 안전한가"에 대해 판단을 정확하게 내리고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해 대응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미국에 퍼주기로 양보를 해 주었다고 한들, 얼마나 퍼주고 얼마나 양보했는지, 혹은 미국에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얼마나 필수적인 것인지 판단이라도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시도라도 해볼만한, 기술 자체를 보유하지 않은 상황처럼 보였습니다. 광우병이 뭐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미국측 안을 믿고, 일본에서 하는 것을 보고 대강 맞춰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일본 따라하면 대강 본전은 남길 수 있지 않나?)

"소 미치고 외양간 고친다"라 할만한 이런, 정부의 엉성함에 대한 비판 이외에, 좀 더 직접적인 이유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세력도 상당히 있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기본적으로 우리 축산농가들을 다시 값싼 미국 쇠고기와 경쟁하는 처지로 내 몰아 붙인 것이었습니다. 국내 소값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축산농가의 쇠고기 수입에 대한 근원적인 반감은, 이 광우병 논란에 항상 중대하게 개입합니다. 또, 이때의 쇠고기 수입 문제는 한미FTA와 자주 연결되곤 했기 때문에, 한미FTA에 대한 반대파들도 쇠고기 수입 문제를 지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심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싫어하는 사나이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쇠고기 개방 문제는 민주노동당이라는 국회 내부의 결집 구심점이 있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한미FTA를 반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쇠고기 경쟁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은 입장이었기 때문에, 두팔을 걷어 붙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공격에 나선 것입니다. 2007년 미국 쇠고기 수입에 대해, 이렇게 민주노동당이 중심에서 나선 것은, 상황을 또 오묘하게 만들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정파가 들고 나서서, 앞장서서 쇠고기 수입 문제가 연결된 것은 두 가지 특징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이때를 계기로 해서, 미국 쇠고기가 들어오면 광우병으로 국민 건강에 커다란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이 급속히 정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앞서 영국, 유럽의 광우병 파동 때에 나돌았던 이야기들이 수집되고, 강조되어, 광우병의 무서움을 퍼뜨리고, 미국 쇠고기에 대한 반감을 일으키게 하는, 많은 내용들이 바로 이때 나왔습니다. 실제로, 지금 유행하는 이야기들의 상당수가 바로, 작년, 2007년 미국 쇠고기가 수입되어 들어왔을 때, 돌았던 이야기들입니다.

또한가지 지목할만한 점은, 바로 민주노동당이 적극적으로, 민주노동당의 선전과 다른 당의 공격을 위해, 미국 쇠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까닭에, 외려 이 주제가 민주노동당만의 생각이자, 민주노동당만의 사상으로 지나치게 부각되는, 역효과가 있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반대파들에게 조선노동당 앞잡이라는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과 연결되어 있는 2007년 당시의 쇠고기 문제도, 전형적인 "노동당"류의 선전/선동으로, 별볼일 없이 무시되던 시각이 상당히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상당히 민감해 보이는 이 광우병이라는 주제가,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 이나, 야당인 한나라당 그 어느 대형 정치세력과도 연결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확대시킬 기회를 놓치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좀 파리 날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실제로, 2007년 대통령 선거 무렵에, 대통령 후보들이 쇠고기 협상 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졌는지 살펴 보면, 그 때 상황이 자명하게 보입니다. 당시, 정동영 후보는, 2007년 10월 29일 KBS 1TV의 "대선후보 초청토론회"에 나와서, "미국산 쇠고기를 뼈까지 통째로 수입하는 것도 찬성하느냐"라는 질문에,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의 지위를 인정하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을 밝혔고, 문제의 배경에 대해서도, "미국산 쇠고기는 원래 수입되고 있었는데, 최근 3-4년간 광우병 우려 때문에 중단된 것 뿐이다"라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문국현 후보 같은 분은, 당시 이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못한 까닭에서, 아예 문제 자체를 명확히 파악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한겨례 신문사에서 11월 주최한 토론회에서 쇠고기 수입에 대한 의견을 묻자, 문국현 후보는, "이 문제는 솔직히 잘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하지만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만 막는다면, 호주, 뉴질랜드산 쇠고기와 역차별이 아니냐"하는 답을 해서, 미국 쇠고기 수입을 지지했습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때 문국현 후보가 광우병과 쇠고기의 관계에 대해 예리한 판단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 정도는 틀린 판단이 아닐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은 이때문에, 한미FTA, 광우병 을 연결시켜, 여러 후보들을 공격했고, 특히 문국현 후보의 경우에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할만한 세력이 문국현 후보 쪽으로 이탈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인지, 이례적으로 문국현 후보가 광우병과 국민건강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점을 맹비난하는 글을 내기도 했습니다.


(Should I say Brutal Beef Korea?)

민주노동당은 상당히 구체적인 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었던 심상정 의원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만원씩 모금을 해서, 그 돈으로 미국 쇠고기가 수입되는 족족 다 사서 태워 없애 버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따져본다면, 실현가능성도 떨어지고, 효과는 더욱더 떨어지는 계획이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당시 민주노동당은 농민 이익 단체, 한미FTA 반대파와 손잡고, 지속적으로 광우병과 쇠고기 수입 문제를 건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민주노동당이나 한미FTA 반대파들의 이러한 활동은, 결코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미국산 쇠고기는 2007년 한 해 동안, 중간 중간에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꽤나 수입되어 널리 유통되었습니다. 그렇게 눈앞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유통되고 있는데도, 그것을 중요한 정치적인 주제로 부각 시키고,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데는 실패했습니다. 심지어 KBS 일요스페셜에서, 수입 전에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 미국 쇠고기 보고서"라는 노골적인 제목의 TV물을 방영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때 농림부가 반박 자료를 배포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러나, 2008년의 MBC PD수첩에 비하면 그다지 큰 효과를 불러오지 못한 방송이었습니다.


(훗훗훗, 사장을 바꿔 보는 것은 어떻겠소?)

더군다나, 미국측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이제는 광우병을 그냥 없는 것으로 치고, 그냥 광우병 걱정 없는 예전 상황처럼 미국 쇠고기를 유통시켜 달라는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측의 요청은 한미FTA 통과와 맞물리면서 나름대로 정치권에서 꽤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지기까지 했습니다. 광우병 걱정을 부풀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자는 투의 주장을 한 유명한 정치인들은 꽤 있었습니다. 기존의 정치적인 입지를 생각한다면, 가히 충격적일 정도로, 나서서 다소 성급한 발언을 한 정치인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때까지만 해도, 쇠고기 문제가, 그저 쌀개방, 금융시장개방과 같은 단순한 개방/비개방의 문제로 비치는 것이 훨씬 더 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때까지만해도, 쇠고기 문제를 광우병 문제라는 기술적으로 복합적인 내용과 연결시켜서, 이해하는 분위기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쇠고기 문제가 광우병으로 연결되어 논란이 벌어지기 보다는, 어떤 세계화에 대한 사상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지지층에 대한 대립 문제에 그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런식으로, 정치적인 파당의 이합진산, 정당간의 대립구조가,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반응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를 살피는 것은, 흥미롭고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운용하느냐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의 중요한 한 축일 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주요 정책과 정치세력, 국민의 관심의 관계가 연결되면, 그냥 허구헌날, "정치논리로 너무 몰아가지 말았으면 합니다"라고 말하고 때웁니다.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라는 말과 함께, 항상 그런 세력이 모이고, 의견이 활발히 교환되는 모습에 염증을 느끼는 태도를 취합니다. 하지만, 당시 민주노동당이 깃발들고 구호 백날 외쳐도, 소외 당했던 모습과, 지금 상당히 커다란 주제로 광우병 문제가 부각되는 상황을 본다면, 오히려 우리 대통령이 "정치논리"라고 부리는 것은, 반드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상황인지도 모릅니다.


(이정도는 되야, 순수하고도 투명한 "정치논리" 그 자체)




12. 마지막 협상


(비슷한 점도 많고, 결코 어울리지 못할 점도 많은 두 사람)

미국 당국은 한미FTA 협상과 쇠고기 협상을 항상 연결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한국측 FTA 반대파의 논리와는 정 반대로, 미국의 여론은 한미FTA가 미국이 손해를 감수하고 한국에 이익을 주는 것이라는 입장이 어느 정도 강합니다. 이것은 미국 당국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 나가기 위해 엄살을 부리는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미국 여론 역시 "미국-멕시코 FTA 때문에 미국의 일자리가 멕시코로 다 빠져나가서 미국에 실업자가 생겼다"라는 류의 이야기가 상당히 인기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따져 보자면, 미국 당국은 한미FTA가 아니라도, 미국 농민들을 위해서, 반드시 쇠고기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때문에 양쪽의 입장이 조금 더 복잡해 집니다. 양쪽이 서로 한미FTA와 쇠고기 협상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면서도, 또 서로 막상 협상에 들어가면, 한미FTA와 쇠고기 협상을 연결시키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정부 당국은 "어차피 쇠고기는 들어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 기왕지사 이렇게 된거, 이 쇠고기 협상을 이용해서 한미FTA 협상이라도 유리하게 잘 하면 더 좋지 않냐?"는 식으로 자주 홍보해 왔습니다.

따라서, 미국 당국은 한미FTA 협상을 잘 해주는 대신에, 한국이 쇠고기 수입을 다시 해달라는 것을, 각종 다양한 방법으로 요청했습니다.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 이전에는, 미국소가 연령, 부위에 관계없이 한국에 자유롭게 수입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 이전의 상황으로 다시 상황을 돌리고 싶어한 것입니다.


(영화에서 보면 시간 잘 돌리지 않습니까? 한국측에서도 시간 좀 돌려 주십시오)

2007년 쇠고기 수입 재개 이전 부터 이미, 쇠고기 수입 재개를 요청하는 편지를 미국 상원의원들이 우리 대통령에게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 상원의원들은 민주당, 공화당을 초월하여 합심해서 쇠고기 수입 재개를 요청했고, 이 편지에서 쇠고기 수입이 재개 되어야만, 의회에서 FTA 비준동의안을 통과 시킬 명분이 생길 것이라고 하면서, 한미 FTA를 하려면, 쇠고기를 수입하라는 조건을 표현 했습니다.

한미 FTA 협정이 체결되고, 미국 쇠고기 수입이 다시 시작되자, 이번에는 미국측에서 더 자유롭게 미국 쇠고기가 수입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한미 FTA가 미국 의회를 통과하려면, 미국 쇠고기를 광우병 위험이 통제된 것으로 인정하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수입하도록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수년 동안 미국에서 발견된 광우병에 걸린 소는 딱 세 마리 밖에 없고, 이제는 더 이상 절대 안 생기는 것 같으니까, 어지간하면 국제수역사무국에서 하는 이야기 대로, 그냥 "광우병 위험 통제되었음"으로 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웬디 커틀러 이에 대해, 한미FTA 미국측 수석 대표는 한국에 와서, 쇠고기 문제가 미국 의회에서 한미 FTA를 비준하는데 결정적(critical)이라고 직접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미국 의회와 미국 정부가 단결해서 다각도로 우리측에게 유리한 조건을 최대한 이끌어 내려고 노력하는 모양새였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한미FTA 에 대해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하고, 버락 오바마 후보는 한미FTA는 재검토하고, 쇠고기 문제만 처리하겠다류는 더욱 딱딱한 모습을 보이면서, 한미FTA 추진이 어려워질 가능성 속에서 나온 이야기 이기도 했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재빨리 움직여서 미국 대통령이 바뀌기 이전, 내지는 대통령 선거가 본격화 되기 이전에, 한미FTA를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크게 유행했던 것입니다.


(FTA 때문에 한국에 온 웬디 커틀러. 그렇다면, 이 양반이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어도 웬디스 햄버거라고 해야 하는가?)

따라서, 2007년 7월 무렵, 뼈 있는 미국산 쇠고기도 수입하려는 계획을 정부가 세우고 있다는 것이 각종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이것은, 국제수역사무국 OIE 에서, 미국에서 광우병 위험이 통제되고 있다는 판정을 한 것 때문에, 2007년 5월에 뼈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데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당시 보도에서는, 뼈 있는 쇠고기를 수입하되, 30개월 보다 나이가 많은 소에서 나온 쇠고기에 대해서는, 광우병 안전에 대해 어떤 상징적인 성격을 갖는 규제를 하나 달겠다는 생각이 이야기 되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이후에도 계속 이어저 실제로, 이번에 타결된 협상에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던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문제는 중심이 되어 부각되기 보다는, 가능한한 미뤄지는 형국이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2008년 1월 4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한미FTA 에서 쇠고기 문제가 걸림돌이 될 것인데, 어떻게 쇠고기 문제를 해결할 계획을 준비해 놓았는지, 정부의 외교부에 물었습니다.


(인수위원회 위원장 이경숙의 한 때: 이경숙 총장 본인 맞음)

2008년 1월 11일. 우리 정부의 외교부는 쇠고기 문제는 한미FTA 가 아니더라도,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해결해야 할만큼, 협상을 빨리 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측에 "쇠고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 FTA 이행법안의 미국 의회 제출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합니다.

같은 날인, 2008년 1월 11일, 카를로스 구티에레즈 미국 상무장관이 한국이 미국이 광우병 위험이 통제된 것으로 인정하고,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 이전처럼, 미국 쇠고기가 자유롭게 한국에 유통되기를 바랬습니다. 이날 미국 상무장관은 다시 한 번, "의회 지도자들도 한국이 쇠고기 시장을 다시 완전히 개방하기 전까지는 FTA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고 밝힙니다.


(카를로스 구티에레즈 상무장관)

문제가 완전히 구체화 된 것은 2008년 1월 19일 입니다. 이때 정부 당국의 농림부가 "쇠고기를 뼈 있는 쇠고기까지 완전히 수입하되, 다만 30개월 보다 나이가 많은 소에 대해서는, 미국의 동물성 사료 정책에 따라 그 수입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안을 갖고 있다는 점이, 신문지상에 보도 되었습니다. 이것은 현재 타결된 쇠고기 협상과 거의 동일한 것입니다. 따라서, 바로 이 시점 이전에 정부측에서는 사실상의 협상 내역이 구체화 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청와대 모두, 이것은 방침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단지 한가지 방안일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당시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농림부 관계자는, 이것이 "기본적 협상 전략"의 일환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날 경향신문은 한가지 흥미로운 보도를 곁들입니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전화 통화한 내용을 보도했던 것입니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한덕수 총리 등 내각이 미국측 요구조건을 일정 정도 들어줘 타협을 보자고 의견을 정리했지만, 청와대가 반대하면서 미국측과의 협상이 무산된 것으로 안다"는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이런 내용으로 볼때, 당시 대통령이 나름대로 복안이 있었던 듯합니다. 아마, 한미FTA를 추진하면서, 미국에게만 유리하고 우리에게는 피해만 보는 협상이라는 비판에 대해 대통령이 상당한 부담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미국측에게 양보하는 느낌이 나는 협상을, 다시 한 번 또 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여기에는 실리적인 이유도 있어 보입니다. 이제 한달여만 있으면 대통령이 바뀌는 상황에서 자신이 위험부담이 있는 정책을 일부러 나서서 제시할 필요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류의 정책은 후임 대통령에게 미뤄 놓는 것이, 당연히 좋은 것입니다. 특히, 당시 총리, 장관등의 생각과 대통령의 생각이 다르게 나타나는 대목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때 나름대로 고민은 많이 했어요: 노무현 전대통령 본인 맞음)

반대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2월중에 쇠고기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는이야기를 합니다. 어차피 두 대통령이 모두 한미FTA를 끌고나가려고 힘쓰는 상황이라면, 기왕이라면 빨리 쇠고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좋고, 가능하면, 자기가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려운 교섭이 끝나는 것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2008년 2월 5일. 정부측의 쇠고기 협상에 대한 태도를 확실히 살펴볼 수 있는 기사가 실립니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FTA 촉구 조찬회의에서, "'과학적인 근거 없이 국제수준 이상의 검역을 요구하는 것은 어거지"이고,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한·미 FTA 비준 처리의 장애가 돼서는 안된다"고 화끈하게 말해버린 것입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총선이 끝나고,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목전에둔, 4월 13일. 드디어, 마지막 한미 쇠고기 협상이 시작 됩니다.

미국 당국측 주장은 간단하고도 일관성 있었습니다.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의 광우병이 통제되고 있다고 판정한 것을 근거로, 미국이 광우병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간주하고,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 이전처럼, 자유롭게 수출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측에서는 어떻게 든지, 소의 나이 30개월에 해당하는 조항을 넣고자 노력했습니다. 우리측은 나이 30개월 미만의 소에서 나온 쇠고기는 뼈째로 다 수입하는 것은 인정했습니다만, 미국측에서는 30개월이고 뭐고 필요 없이 전면 개방을 주장하여 협상은 오래 끌게 되었습니다.


(협상 타결 소식은 대통령 본인의 입을 통해, 미국 기업인 간담회 와중에, 전세계 어느 언론매체보다 먼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 때 대통령은 말이 헛나와서 농림부 장관을 자꾸만 노동부 장관이라고 발음하기도 했습니다, 딴 생각 중이었음?)

마침내, 4월 18일, 우리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서, 마지막 한미 쇠고기 협상은 타결 되었습니다. 내용은 나이 30개월 이상의 소에 관해서는, 미국이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를 강화하는 것을 공포한 이후를 조건으로, 수입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13. 협상 타결 이후


(우리나라에게 너무 불리한 강대국과의 협상에 반대하여 시위를 벌이다가 사법처리된, 젊은 시절의 이명박)

17세기 조선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정치인이었던 송시열은, 자신의 글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쇠고기의 맛을 최고로 쳐서, 먹고 죽을 지라도 쇠고기를 먹는다" 라는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시 소에게 전염병이 퍼져서, 많은 소가 줄줄이 죽어 나자빠진 상황에서 나온 것입니다. 당시 송시열은 소의 소비와 공급을 정부 당국에서 철저하게 조절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특히, 당시 소는 단순히 쇠고기의 원천일 뿐 아니라, 중요한 농업 장비였고, 또 나라 경제의 한 축이기도 했기 때문에, 특별히 중시 여긴 것입니다.


(우암 송시열)

17세기에 비해, 21세기의 상황은 더욱더 복잡해졌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국내에서 소의 소비와 공급을 조절하는 것이 문제 아니라, 국제적인 통상 문제에서, 세계화로 인한 문화접변 문제에, 광우병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가 어지럽게 쇠고기 유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사건의 전개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 조차 쉽지 않고, 그 대응은 더욱더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술적인 부분에서 역량을 키우고, 국민 심리에 대해 이해하고 순응하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 정부가 꽤나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여준 것만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는 광우병 안전지대라고 선전은 하지만, 정작 사료나 광우병 검사를 제대로 집행할만한 기술과 제도조차 허술한 상황부터가 그랬습니다.

최근에 나오는 이야기는 문제가 더 심하면 더 심하지, 개선된 점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미국 쇠고기가 안 좋아 보이면 안 사먹으면 되는 문제"라고 선전하면서도, 정작 원산지 표시를 숨기거나 속이려는 것을 단속하고 관리할, 제도와 체계를 마련해 놓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런 말을 꺼내는 것은 무책임해 보일만합니다.

온갖 유언비어에 대해, "악질적인 선동"이라고 합니다만, 사실 그런 유언비어가 멀게는 2000년과 2001년의 해외 광우병 파동에서 유래한 것이고, 가깝게는 2007년의 쇠고기 수입 재개때 이미 나왔던 것입니다. 유언비어의 내용이 얼마나 사실에 근거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 문제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정도 수준의 유언비어에 대해서는 정부가 미리미리 설득력있고 믿음직한 대응과 대처를 할 준비를 해두는 것이 정석일 것입니다. 급하게 교수들 모아서 기자 회견 한번 할 정도의 안이한 생각으로, 일을 끌고 나가고 있는 것은, 그러한 대처하는 모습 자체가 기술적인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뜻도 됩니다.


(장관님 잠깐만, 그 질문에 답하실 때는요, 소곤소곤소곤...)

2008년 4월 18일의 쇠고기 협상은,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순간과 일부러 시한을 맞추어, 쇠고기 협상 타결을 미국 측에 내세우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 있다고 할만합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친분, 한미의 친분, 동맹을 강조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모습을 꾸미기 위해, 이런 시기와 상황을 이용한 느낌도 역력합니다.

하지만, 역시 상황은 간단하게 돌아가지 않은 것입니다.

총선 이후에, 상황이 완전히 바뀐, 민주당과 민노당의 시점이 전혀 달라졌고, 대통령 개인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시민들의 시각이 여기에 어떻게 결합하는가 하는 것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다른 통상 교섭과 달리,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강조되는 형국으로, 한미 정상 회담의 와중에 쇠고기 협상이 화제에 오른 것도 특기할만 합니다.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무슨 생각을 했던 간에, 이런 식으로 행동했다면야, 현 대통령이 정면으로 쇠고기 협상의 책임을 지는 형국이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특히나, 일반 시민들, 학생들, 인터넷 사용자들의 심리가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은 특징적인 것으로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7년에는 "허구헌날 듣던 농민들의 지루한 농산물 개방 반대 운동" 정도로 치부되기 일쑤였던 관심이 부족했던 사안이, 조건이 어떻게 바뀌면서, 전혀 다른 급의 파급효과를 내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은, 여러모로 깊게 관심을 가져야 할만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잠실 주경기장 카르멘 공연)

끝으로 덧붙이자면, 2004년 5월 15일, 잠실 주경기장 "카르멘" 공연은 실제 투우를 포기하고 예정되로 진행되었습니다. 명성 있는 테너 호세 쿠라가 남자 주인공을 맡았고, 가로 길이 100미터의 초대형 스크린을 이용해서 잠실 주경기장에 들어찬 관객들에게 오페라를 잘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심해, 결국 이 스크린 마저도 철거 되고야 말았고,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다소 어수선한 진행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이래저래, 12만명에 달하는 관객이 다녀갔지만, 들인 돈값에 비해 좋은 평가를 듣는데는 실패하고야 말았습니다.


그 밖에...

상황은 더욱더 파악하기 어렵게 이상해져만 갑니다. 민주당은 쇠고기 협상에 대한 항의로, 한미FTA 비준을 거부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한미FTA를 미국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쇠고기 협상을 했지만, 쇠고기 협상은 그대로 남겨두고, 한미FTA는 우리 쪽에서 먼저 무산시키겠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미FTA에 대한 열렬한 찬성파들이 또다른 시각으로 쇠고기 문제, 나아가 광우병 문제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논쟁과 세력들의 나뉨이 더 복잡해 질지도 모릅니다.

한편, 역사가 있고 그 규모가 큰 정당인 한나라당에서는 문제가 새롭게 엮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의원들이나, 일부 개성적인 인사들이 대통령의 행동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자신의 특징을 더욱 드러내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국민들의 감정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록,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같은 곳들의 움직임과 함께 어울리면서 상황이 돌아갈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소위 박근혜 계파가, 대통령에 대한 반대를 뚜렷이 하면서, 영남 지방 농민들에 근거를 두고 독자적인 세력을 더욱 맺어나갈지도 모를 노릇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글/ 창조한국당원 게렉터





[여러분께서 말씀해 주셨기에, 관련 참고자료를 추가 하였습니다. 신문기사 자료를 시간 역순으로 열거했습니다. 여기에 밝혀 둔 신문기사들 이외에, 농림부, 농촌진흥청에 웹사이트에 공개되어 있는 자료들을 참조하였습니다. 본문 내용에서 자료 출처가 직접 명시된 부분은 제외하였습니다.

본문 중에서 제 의견이나 추측에 관한 부분과 사실 보도를 언급하는 부분을 최대한 구분해 밝혀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이런 부분에서 명확하지 않아서 문제가 있어 보이는 대목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확인 후에 다시 더 명확하게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연합뉴스 (2008.04.18) "<양보만한 쇠고기 타결..광우병 안전장치 '실종'>(종합)"
연합뉴스 (2008.04.15) "한미 쇠고기 연령.SRM(광우병위험물질) 놓고 줄다리기"
노컷뉴스 (2008.02.29) "美쇠고기와 FTA는 고차방정식…갈수록 꼬이네"
한겨레 (2008.02.29) "“미 쇠고기 개방돼야 한-미 FTA 비준 빨라져”"
매일경제 (2008.02.28) "'쇠고기 개방해야 FTA 비준'…슈워브 美USTR대표"
문화일보 (2008.02.28) "“한국 쇠고기 개방 빠를수록 美 FTA 비준속도 빨라질것”"
부산일보 (2008.02.28) "한·미 FTA '쇠고기 문제' 극명한 시각차"
mbn (2008.02.27) "정운천 내정자 '한미 FTA, 쇠고기와 별개'"
중앙일보 (2008.02.27) "커틀러 한·미 FTA 미국 대표 “쇠고기 부분 개방 관심 없어 … 다 열어라”"
조선일보 (2008.02.27) "내달 미국 쇠고기 수입 재개 검토… 5월 한·중 FTA 협상"
mbn TV (2008.02.18) "'FTA·쇠고기 문제 현 정부가 마무리'"
경향신문 (2008.02.14) "‘조목조목 미국’ 한·미 FTA “쇠고기·車” 내용 초점"
파이낸셜뉴스 (2008.02.10) "한미 FTA 비준 관건 ‘쇠고기 협상’ 길어질듯"
SBS TV (2008.02.05) "쇠고기에 발 묶인 한미FTA…연내 비준 불투명"
YTN (2008.02.04) "'쇠고기 타결없이는 한미 FTA 난망'"
한겨레 (2008.02.05) "미 도축장, 광우병 의심 소 ‘강제 검역’ 파문"
프레시안 (2008.01.29) "영어에 '푹 빠진' 인수위 'FTAㆍ 쇠고기 관련 문건 全無'"
중앙일보 (2008.01.22) "[사설] 쇠고기 수입 개방으로 한·미 FTA 걸림돌 치워야"
동아일보 (2008.01.21) "[사설]한미 FTA와 쇠고기 수입개방 함께 풀어야"
중앙일보 (2008.01.21) "“한국과 쇠고기만 해결되면 미국 의회가 FTA 비준할 것”"
연합뉴스 (2008.01.19) "美 '쇠고기문제 해결시 한미FTA 비준될 것'"
동아일보 (2008.01.12) "“FTA 비준 위해 美쇠고기 수입문제 조기 해결”"
mbn (2008.01.11) "미 상무 '쇠고기 전면개방, FTA비준 선결요건'"
연합뉴스 (2008.01.11) "'한국 쇠고기시장 전면개방.. FTA비준 선결요건'<美상무>"
연합뉴스 (2007.11.10) "영국서 '인간광우병' 대량 발병 가능성 제기<英紙>"
한겨레 (2007.11.09)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
이데일리 (2007.11.08) "한미FTA 대책위원장 '美쇠고기 합리적 해결시 비준 쉬워질것'"
노컷뉴스 (2007.10.20) "따가운 여론 · FTA 압박…농림부 美 쇠고기 협상 '고립무원'"
SBS TV (2007.10.17) "커틀러 '쇠고기 개방 문제 해결 돼야 FTA 비준'"
mbn TV (2007.10.17) "'쇠고기 개방해야 한미 FTA 비준'"
한겨레 (2007.10.16) "“쇠고기 전면 개방 없인 한-미 FTA 비준 어렵다”"
연합뉴스 TV (2007.10.16) "커틀러 '쇠고기 시장 개방이 한미FTA 비준 첩경'"
연합뉴스 (2007.10.11)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사 반대'"
한겨레 (2007.10.08) "광우병에서 아이들 지킬 수 있을까"
이데일리 (2007.09.29) "宋외교 '한미 FTA 통과되겠지만 쇠고기가 문제'"
뉴시스 (2007.09.18)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한미FTA국회비준 저지외치는 축산농민들"
뉴시스 (2007.09.18) "전국한우협회 '미 쇠고기 수입 중단·FTA 무효' 촉구"
동아일보 (2007.09.18) "“쇠고기-자동차가 한미FTA 좌초시킬 수도”"
경향신문 (2007.09.11) "[동영상 뉴스] “나 커서 광우병 걸리면 누가 책임져요?”"
한겨레 (2007.09.06) "광우병국민감시단, 미국산 쇠고기 수입한 농협무역 규탄"
동아일보 (2007.09.04) "美 쇠고기수입 개방폭 논의…이번주 광우병 전문가 회의"
경향신문 (2007.09.02) "美쇠고기 ‘연령제항·광우병특정위험물질’ 쟁점"
SBS (2007.08.24) "미국산 쇠고기 검역 재개…FTA 의식 '봐주기'?"
헤럴드 생생뉴스 (2007.08.24) "쇠고기 수입검역 재개, FTA 고려한 결정"
노컷뉴스 (2007.08.22) "한미FTA범국본 '미국산 쇠고기 감시단' 발족"
연합뉴스 보도자료 (2007.08.17) "[한미FTA농축수산비대위] 농대위, 미국산 광우병 위험 쇠고기 검역결과 은폐 규탄 성명"
헤럴드 생생뉴스 (2007.08.03) "재경차관 “미 쇠고기 조기검역 재개 가능성… FTA 등 고려”"
한국일보 (2007.08.03) "'쇠고기 전면수입→FTA 조기비준' 시나리오 암초"
YTN (2007.08.02) "FTA 저지 범국본,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하라'"
mbn TV (2007.08.02) "박홍수 농림 '쇠고기는 FTA와 별개'"
경향신문 (2007.08.02) "‘광우병 위험’ 美쇠고기 검역 전면중단"
한국일보 (2007.08.02) "미국산 수입 쇠고기서 광우병 위험 등뼈 검출"
연합뉴스 (2007.07.26) "`광우병위험 美 쇠고기 판매 중단하라'"
경향신문 (2007.07.22) "[기고]인간광우병에 취약한 한국인"
뉴시스 (2007.07.13) "광우병 쇠고기 수입하는 한미FTA 반대한다"
한국경제 (2007.07.03) "이혜민 기획단장 '쇠고기 수입문제 해결 안되면 美의회 FTA비준 쉽지않을것'"
국민일보 (2007.07.03) "이혜민 단장 “쇠고기 문제 해결돼야 美의회 FTA비준될것”"
연합뉴스 (2007.07.03) "이혜민 '쇠고기 해결돼야 미국 FTA 비준 원만'(종합)"
연합뉴스 (2007.07.02) "재경차관보 '車.쇠고기 한미FTA 걸림돌 아니다'(1보)"
연합뉴스 (2007.06.19) "한미FTA 추가협상과 쇠고기 수입대책 토론회"
한겨레 (2007.06.12) "광우병 국민감시단 발족식"
연합뉴스 (2007.06.12) "주부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감시단 발족"
mbn (2007.06.08) "쇠고기 검역 보류 해제...'한미 FTA 의식' 논란"
한국일보 (2007.06.07) "'쇠고기 수입보류 철회안하면 한미 FTA 비준 동의와 연계'"
서울경제 (2007.06.07) "'美의회, 한국 쇠고기 수입규제땐 FTA비준 거부'"
mbn TV (2007.06.07) "미 상원, '쇠고기 전면 개방 FTA와 연계해야'"
mbn (2007.06.07) "미 상원, '쇠고기 전면 개방 FTA와 연계해야'"
mbn (2007.06.07) "미국 상원의원 '쇠고기 수입·FTA 비준 연계'"
한겨레 (2007.06.07) "광우병 수입쇠고기 ‘꼼짝마’"
서울경제 (2007.06.06) "쇠고기, 다시 FTA 최대 복병으로"
한겨레 (2007.05.30) "미 농무부가 광우병 전수검사 ‘빗장’"
국민일보 (2007.05.25) "[한·미 FTA 협정문 공개] 美, 쇠고기 완전개방―비준 연계 공세"
연합뉴스 (2007.05.25) " 쇠고기 세이프가드 실효성 논란(종합)"
SBS TV (2007.05.24) "미 '쇠고기 완전개방 안하면 FTA 비준 없다'"
연합뉴스 (2007.05.23) "국제수역사무국, 미국을 광우병 위험 통제국으로 판정"
한겨레 (2007.05.23) "국제수역사무국,미국 ‘광우병 위험통제국’ 판정"
경향신문 (2007.05.23) "OIE, 美 광우병 ‘위험 통제국’ 판정"
한국일보 (2007.05.23) "美 '광우병 위험 통제국' 판정"
한겨레 (2007.05.20) "국제수역사무국 총회 개막…22일 ‘광우병 등급’ 결정"
한겨레 (2007.05.03) "“미 광우병 관리 문제많아” 의견서"
경향신문 (2007.05.02) "“한미FTA 쇠고기 긴급수입제한 무용지물”"
연합뉴스 (2007.05.01) "강기갑 '한미FTA 쇠고기 세이프가드 무용지물'"
한겨레 (2007.04.27) "“뼈쇠고기 수입해야 한-미 FTA 비준”"
경향신문 (2007.04.26) "보커스 “美쇠고기 수입 안하면 FTA 비준 못해준다”"
노컷뉴스 (2007.04.26) "美 상원의원, 한국 쇠고기 수입 않으면 FTA 비준 안될 것"
연합뉴스 (2007.04.26) "'쇠고기 수입 안하면 한미 FTA 협정 처리 안해'"
경향신문 (2007.04.24) "[사설] 불신 키우는 광우병 검역 ‘이중잣대’"
연합뉴스 (2007.04.24) "강기갑 '정부도 살코기 광우병 위험 인정'"
YTN (2007.04.14) "커틀러, 'FTA 비준 위해 쇠고기 시장 개방해야'"
연합뉴스 (2007.04.14) "커틀러 'FTA 비준위해선 쇠고기시장 개방 필요'"
매일경제 (2007.04.13) "이태식 주미대사 '美 FTA비준 쇠고기가 관건'"
한국경제 (2007.04.11) "[한·미 FTA 이후 이것이 궁금하다] 한우, 허술한 유통관리…겉도는 쇠고기 이력 추적"
연합뉴스 (2007.04.10) "농림부 美 광우병 평가 검토의견 제출"
동아일보 (2007.04.10) "“美광우병 위험통제국가 판정땐 미국산 쇠갈비도 수입검토”"
이데일리 (2007.04.09) "한미FTA협상단장 '광우병 안전인정땐 뼈쇠고기도 수입'"
연합뉴스 (2007.04.08) "<특집:FTA를 기회로> ①美쇠고기 맞장뜨자"
한국경제 (2007.04.07) "[한.미 FTA 시대] '뼈 있는 쇠고기' 빠르면 8월께 수입재개 가능"
경향신문 (2007.04.07) "[한·미FTA] 광우병 ‘위험’ 여전…싸니까 먹어라?"
한국경제 (2007.04.06) "[한.미 FTA 시대] 커틀러 '쇠고기 수입 문 빨리 열어라'"
SBS (2007.04.05) "미, '쇠고기 시장 완전 개방해야 FTA 서명'"
한국일보 (2007.04.05) "[FTA] 쇠고기 개방, 대통령이 구두약속 했다는데…"
YTN (2007.04.05) "'쇠고기 개방 안하면 FTA 서명 거부'"
연합뉴스 (2007.04.05) "'쇠고기 개방안될 경우 FTA 서명 거부할 것'(종합)"
SBS TV (2007.04.03) "쇠고기 등 FTA 피해 최대 80%까지 소득보전"
연합뉴스 (2007.04.03) " 美농무 '쇠고기 개방해야 FTA 비준'"
매일경제 (2007.04.02) "FTA 최후의 순간까지 피말린 쇠고기 협상"
동아일보 (2007.04.02) "反FTA 시위…뼛조각 쇠고기… ‘가시밭 위의 424일’"
연합뉴스 (2007.04.01)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퍼포먼스"
서울경제 (2007.03.31) "[한·미 FTA 협상] 美, 왜 쇠고기 집착하나?"
국민일보 (2007.03.30) "[한미 FTA 협상 마지막 날] 조핸스 농무 “쇠고기 개방해야 상원 비준 도움”"
mbn (2007.03.28) "[한미 FTA] 타결 여부 '쇠고기 검역'에 달려"
동아일보 (2007.03.23) "몹쓸 광우병! 한국인이 만만하니?…미-영국인보다 더 취약"
서울경제 (2007.03.14) "뼛조각 쇠고기 FTA와 연계"
서울경제 (2007.03.11) "한·미 FTA, 한국은 자동차… 미국은 쇠고기"
매일경제 (2007.03.09) "커틀러 대표 '쇠고기 안되면 FTA는 없다'"
mbn (2007.03.08) "'쇠고기 완전개방 안하면 FTA 없다'"
연합뉴스 (2007.02.16) "슈워브,'한국,쇠고기 개방없이 FTA 체결 어렵다는 것 알아'"
문화일보 (2007.02.09) "“쇠고기 수입조건 협의 FTA와 연계 않기로”"
한국일보 (2007.02.04) "美 '쇠고기 검역과 FTA 연계 않겠다'"
매일경제 (2007.01.23) "웬디 커틀러 '쇠고기 개방없인 FTA 타결 없다'"
한겨레 (2007.01.23) "미 커틀러 대표,‘쇠고기 포기 못해’…FTA 연계 재확인"
YTN TV (2007.01.15) "'쇠고기 해결돼야 FTA 현실화'"
YTN (2007.01.15) "'쇠고기 해결돼야 FTA 현실화'"
연합뉴스 TV (2007.01.12) "朴 농림 “쇠고기 뼈 문제, FTA와 관계없다”"
연합뉴스 (2007.01.12) "朴 농림 “쇠고기 뼈 문제, FTA와 관계없다”"
한겨레 (2007.01.07) "주부 3명중 1명 “미국쇠고기=광우병”"
연합뉴스 (2006.12.06) "불타는 광우병 미국소 모형"
연합뉴스 (2006.11.24) "'美쇠고기 뼛조각, 광우병 위험물질 아니다'<검역원장>"
연합뉴스 (2006.11.21) "민노당 광우병 쇠고기 수입중단 촉구"
연합뉴스 (2006.11.21)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연합뉴스 (2006.11.21) "민노당 광우병 쇠고기 수입중단 촉구"
연합뉴스 (2006.11.20) "김선미 '광우병위험 쇠고기 다량 유통'"
한겨레 (2006.11.08) "[지금은방송중] 광우병보다 위험한 언론과 정부"
연합뉴스 (2006.11.03)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중단 촉구"
연합뉴스 (2006.11.01) "'작년 광우병 의심 쇠고기분말 831㎏ 수입'"
한겨레 (2006.10.30) "‘광우병’뒤 금지됐던 미국쇠고기 35달만에 다시 수입"
연합뉴스 (2006.09.18) "강기갑 '정부, 30개월미만 소 광우병 가능성 인정'"
한국일보 (2006.09.08) "'어린소도 광우병 발생' 논란 여전"
연합뉴스 (2006.09.04) "강기갑 '정부보고서도 美쇠고기 광우병 위험경고'"
경향신문 (2006.08.24) "[기고] 광우병 쇠고기와 美의 선물"
연합뉴스 (2006.05.13) "日서 26번째 광우병 소 확인"
연합뉴스 (2006.04.26) "'미국 광우병 소 8세이상'..수입절차 진행"
연합뉴스 (2006.04.19) "농림부 美광우병 소 나이 조사단 파견"
한겨레 (2006.04.05) "미 광우병 소 출생기록 없어"
연합뉴스 (2006.03.27) "'英 1만4천명이 인간광우병 감염 가능성'"
연합뉴스 (2006.03.15) "일본 23번째 광우병 감염 확인"
한겨레 (2006.03.15) "미국 앨라배마서 ‘광우병 소’ 세번째 발견"
연합뉴스 (2006.03.12) "美, 새 광우병 의심사례 정밀 조사중"
연합뉴스 (2006.02.18) "미 '수출규정 몰이해로 日에 광우병 의심소 수출'"
연합뉴스 (2006.02.09) "'美 광우병 추정 '주저앉는 소' 20마리 식육처리'"
한국일보 (2006.01.22) "광우병 위험부위 발견…日, 美쇠고기 수입 재금지"
연합뉴스 (2006.01.22) "<황교수 `광우병 내성소' 두고도 뒷말 무성>"
연합뉴스 (2005.12.23) "'황 교수 제공 광우병 내성 수정란 임신 안돼'"
연합뉴스 (2005.06.01) "일본서 19번째 광우병 의심소 발견"
경향신문 (2005.02.28) "광우병 쇠고기 안전성 韓·美 첫 전문가 협의"
연합뉴스 (2005.02.04) "<인간광우병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이란>"
연합뉴스 (2005.02.04) "日 첫 인간광우병환자 발생, 50대 남자 사망(1보)"
동아일보 (2005.01.23) "황우석교수 개발 ‘광우병 내성 소’ 국가지원 보류"
연합뉴스 (2005.01.23) "황우석 `광우병 내성소' 실용화사업 탈락"
동아일보 (2005.01.20) "[그때 그 기술 어떻게 됐나]광우병 내성 소"
연합뉴스 (2005.01.13) "`수입쇠고기 추적시스템'으로 광우병 차단"
경향신문 (2004.07.28) "광우병 美쇠고기 위장수입"
동아일보 (2004.07.28) "광우병파동 美쇠고기, 멕시코産으로 위장 수입"
한국일보 (2004.07.28) "'광우병' 美쇠고기 일부 시중 유통된 듯"
연합뉴스 (2004.07.28) "<초점>광우병 공포 재연되나"
동아일보 (2004.06.06) "광우병발생국 “이젠 禁輸풀어라” 加총리 수입재개 요청"
동아일보 (2004.05.11) "국제獸疫사무국, 광우병 관련 교역기준 완화 추진"
동아일보 (2004.04.19) "광우병검사 소 2006년까지 5배 늘려"
연합뉴스 (2004.04.19) "광우병 검사건수 대폭 늘려"
동아일보 (2004.04.06) "[수도권]광우병탓 오페라 ‘카르멘’ 실연 무산"
한겨레 (2004.04.02) "“광우병관련 수입금지 지나쳐”"
한겨레 (2004.04.01) "광우병관련 부풀리기 보도 발생원인 등 정보는 없어"
연합뉴스 (2004.02.26) "美, 광우병 검사대상 확대"
연합뉴스 (2004.02.22) "日서 10번째 광우병 감염소"
한국일보 (2004.01.24) "[농림] 27일 한ㆍ미 2차 광우병 회담"
동아일보 (2004.01.20) "한우 광우병 의심땐 유통 전면 금지"
한겨레 (2004.01.15) "광우병 관련보도 미 행태 무책임 잘 지적"
한겨레 (2004.01.07) "미 광우병 젖소, 캐나다산 확인"
한국일보 (2004.01.07) "[미국] 美 광우병 소 캐나다산 확인"
한겨레 (2004.01.06) "미국 사골 든 생라면 판매 “광우병 발생전 수입” 배짱"
한국일보 (2004.01.05) "[기고] 광우병 너무 걱정할 필요없다"
동아일보 (2003.12.30) "[사설]‘광우병 쇠고기’ 협상대상 아니다"
한국일보 (2003.12.30) "[광우병 파동] 美 쇠고기 수입재개 요청 거부"
동아일보 (2003.12.28) "광우병파동 韓美 통상마찰 우려…美,수입금지 해제 요청할듯"
한국일보 (2003.12.28) "[광우병] 美 '광우병소 加서 수입됐다'"
한국일보 (2003.12.26) "[광우병] SRM부위 분류않고 수입ㆍ유통"
한국일보 (2003.12.26) "[광우병] 한우 가격 폭등 조짐 '광우병 희비'"
한국일보 (2003.12.26) "[광우병] 수입물량 4만톤 대부분 유통"
한국일보 (2003.12.25) "[광우병] 한우는 99.9% 안전하다"
경향신문 (2003.12.25) "[사설]광우병 쇼크 슬기롭게 넘겨야"
경향신문 (2003.12.25) "광우병, 한우는 안전?"
동아일보 (2003.12.25) "[美 광우병 충격]한우는 안전한가"
동아일보 (2003.12.25) "[美 광우병 충격]줄줄이 수입금지…관련산업 타격"
동아일보 (2003.12.25) "[美 광우병 충격]日, 濠-뉴질랜드産 쇠고기확보 비상"
한국일보 (2003.12.24) "[광우병 해외사례] 1986년 영국서 첫 발생"
경향신문 (2003.12.24) "90년대 ‘광우병 악몽’ 각국 수입중단 사태"
경향신문 (2003.12.24) "광우병이란?"
경향신문 (2003.12.24) "‘광우병 악몽’ 각국 수입중단 사태"
한국일보 (2003.12.24) "[미국] 광우병 美선 처음으로 발생"
한국일보 (2003.12.24) "[美광우병 파동] 소 부위별 감염 가능성 달라"
YTN (2003.12.18) "영국, 수혈 광우병 감염 환자 사망"
한겨레 (2003.12.14) "광우병 끄떡없는 소 첫탄생"
매일경제 (2003.12.11) "광우병저항소 3년내 대량생산"
경향신문 (2003.12.11) "광우병 안걸리는 소 세계최초 복제성공"
한국일보 (2003.12.10) "[생활과학] 광우병耐性 소 세계 첫 생산"
경향신문 (2003.12.10) "광우병 안걸리는 소 복제 성공"
YTN (2003.11.04) "일본 9번째 광우병 추정 소 발견"
한겨레 (2003.10.10) "광우병 의심 쇠뼈 대량유통"
경향신문 (2003.10.09) "광우병 우려 수입 소뼈 대량유통"
한국일보 (2003.09.18) "[보건원] 전북서 인간광우병 의심환자"
매일경제 (2003.09.18) "광우병 의심환자 전북 진안서 발생"
YTN TV (2003.09.05) "광우병 의심 쇠고기 대량 유통"
SBS TV (2003.09.05) "광우병 의심 곱창, 3만여명 분 유통"
연합뉴스 (2003.09.05) "`양심마저 팔아넘겼다'..광우병의심' 쇠고기 수입판매"
연합뉴스 (2003.07.15) "광우병 대비 방역체계 보완"
연합뉴스 (2003.05.29) "'광우병, 미국 소에도 존재 가능성'<英 과학잡지>"
파이낸셜뉴스 (2003.05.26) "사스 태풍에 이은 광우병 파동"
파이낸셜뉴스 (2003.05.25) "캐나다=사스 태풍에 이은 광우병 파동"
머니투데이 (2003.05.22) "캐나다,광우병 충격 최소화에 안간힘"
YTN (2003.05.21) "캐나다, 첫 광우병 발생"
한국일보 (2003.01.23) "[일본축산] 일본 7번째 광우병 발생"
동아일보 (2003.01.20) "日서 6번째 광우병 감염 소 확인"
연합뉴스 (2002.09.20) "영국인 7천여명 '인간 광우병' 감염 우려"
연합뉴스 (2002.09.06) "日 가나가와현서 소 37마리 광우병 감염 의심<닛케이>"
연합뉴스 (2002.08.23) "日서 5번째 광우병 감염소 확인"
연합뉴스 (2002.08.16) "佛서도 광우병 발생"
연합뉴스 (2002.08.16) "덴마크, 수출 가축 광우병 발생"
연합뉴스 (2002.08.09) "加, 첫 인간광우병 사망자 발생"
국민일보 (2002.08.07) "日닛폰햄, 광우병 보조금 타려고 수입고기 국산 둔갑"
연합뉴스 (2002.05.13) "광우병 파악못한 日여직원 자살"
동아일보 (2002.05.12) "日 광우병감염 소 4번째 확인"
한국경제 (2002.04.29) "中, 광우병 우려해 외제 화장품 압류"
연합뉴스 (2002.04.02) "'日농수상 광우병관련 급여 반환'"
매일경제 (2002.04.02) "광우병 파동 책임... 日 장관들 급료 반납"
머니투데이 (2002.01.31) "日 광우병 피해액 2000억엔 넘어"
연합뉴스 (2002.01.27) "英, 105번째 인간광우병 사망자 발생"
연합뉴스 (2001.12.27) "<日 農水相 광우병 관련 失言>"
동아일보 (2001.12.25) "[2001 10대뉴스/국외]광우병 구제역 공포 전세계 확산"
연합뉴스 (2001.12.22) "'日, EU 광우병 경고 3차례 항의'"
로이터 (2001.12.14) "오스트리아, 최종 검사에서 첫 광우병 사례 확인"
연합뉴스 (2001.12.13) "日, EU 광우병 경고 무시 <每日>"
연합뉴스 (2001.12.04) "佛서 5번째 인간광우병 환자 발생"
연합뉴스 (2001.12.02) "'미국 소 광우병에 저항력'"
연합뉴스 (2001.11.27) "佛정부, 광우병 전염위험 10년전 인지"
동아일보 (2001.11.22) "日 “소 5100마리 소각”…광우병 감염여부 검사확대"
소년한국일보 (2001.11.21) "일본서 광우병 소 또 발견돼"
연합뉴스 (2001.11.21) "<日열도 진정기미 광우병 파동 재연 조짐>"
연합뉴스 (2001.10.27) "'英 인간광우병 총 4만건 넘지 않을 것'"
한국경제 (2001.10.25) "[프리즘] '개' 풀어 광우병 막는다 .. 인천공항에 탐색견 배치"
연합뉴스 (2001.10.12) "<日 광우병 파동 수도권 강타>-2"
연합뉴스 (2001.10.12) "<日 광우병 파동 수도권 강타>-1"
연합뉴스 (2001.10.12) "<일본 광우병 파동 일지>"
연합뉴스 (2001.09.22) "日 광우병 의심소, 광우병 최종 판정"
연합뉴스 (2001.09.21) "광우병 이유 영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부당"
한국일보 (2001.09.11) "[광우병] '광우병' 우리나라는 안전한가"
한국일보 (2001.09.11) "[광우병] 감염경로 '안개' 대책 '우왕좌왕'"
한국일보 (2001.09.11) "[심재철의원] '광우병 우려 간염백신 수입'"
동아일보 (2001.09.11) "[국감자료]광우병 위험國 소로 만든 백신 66만개 수입"
동아일보 (2001.09.11) "[사설]광우병 안전지대 아니다"
로이터 (2001.09.10) "일본서 광우병 소 발견, 아시아 최초 발생 (종합)"
로이터 (2001.09.10) "일본, 광우병 감염 추정 소 발견 (1보)"
연합뉴스 (2001.09.10) "日서 광우병 의심 소 첫 발견(1보)"
연합뉴스 (2001.09.07) "英 인간광우병 급증세"
연합뉴스 (2001.08.29) "미 인간광우병 예방위해 헌혈기준 강화"
연합뉴스 (2001.08.17) "인간광우병 치료 항체 발견"
연합뉴스 (2001.08.12) "英 일부 식품업체 10년전 광우병 위험 잡고기 사용"
매일경제 (2001.08.10) "지난 1.2월 광우병 의심 축산물반입 유통"
연합뉴스 (2001.08.10) "'광우병 관련 축산가공품 수입'(종합)"
연합뉴스 (2001.08.04) "英, 광우병 10년전 양에도 감염된 듯"
연합뉴스 (2001.06.19) "日 '광우병 日에서도 발생가능성 있다'에 긴장"
연합뉴스 (2001.06.04) "'광우병, 닭에도 전염 가능성'<스위스연구팀>"
연합뉴스 (2001.04.28) "광우병, 스크래피 감염 양이 촉발"
국민일보 (2001.04.26) "[위기의 축산농가를 살립시다] 일본은 광우병 ‘無風’…국내산 소비 더 늘어"
연합뉴스 (2001.04.21) "獨광우병 감염사례 2건 추가 발생"
연합뉴스 (2001.04.20) "EU 광우병원인 동물사료금지 연장할듯"
국민일보 (2001.04.12) "[위기의 축산농가를 살립시다] (1) 여물먹고 자란 韓牛 “광우병 걱정없다”"
국민일보 (2001.04.12) "[위기의 축산농가를 살립시다] 광우병·구제역 ‘불신의 벽’을 허물자"
한국경제 (2001.03.23) "광우병변종 '크로이츠 야코브병' 잠복기간 최장 30년..BBC방송 보도"
연합뉴스 (2001.03.23) "인간 광우병 잠복기간 최장 30년"
한국경제 (2001.03.21) "정육점 오염된 칼 광우병 전염 우려..英BBC방송 보도"
국민일보 (2001.03.20) "한우 5마리 경매 나왔다…주인 “광우병 무대책 항의”"
동아일보 (2001.03.14) "영국 대규모 축산 방식이 광우병·구제역 원인"
한국일보 (2001.03.11) "[광우병] EU농업공조도 '파열음'"
매일경제 (2001.03.09) "'30대 CJD 환자 인간광우병 아니다'...국립보건원"
연합뉴스 (2001.03.09) "'30대 CJD 환자 인간광우병 아니다'..보건원 판정"
국민일보 (2001.03.09) "[긴급점검 광우병·구제역 파동] 가축병 그 실체는…"
국민일보 (2001.03.09) "[긴급점검 광우병·구제역 파동] 구제역, 인류가 부른 환경재앙?"
국민일보 (2001.03.09) "[긴급점검 광우병·구제역 파동] 가축병 창궐 유럽 ‘신선한 肉類’ 비상"
연합뉴스 (2001.02.27) "EU 광우병 공동대책 마련 실패"
한국일보 (2001.02.26) "[영국] 광우병 전국확산 및 유럽 전염우려"
연합뉴스 (2001.02.24) "광우병 북유럽으로 확산"
연합뉴스 (2001.02.23) "獨서 광우병 사례 3건 추가 발생"
국민일보 (2001.02.17) "[미션클릭] 광우병과 창조의 섭리"
매일경제 (2001.02.15) "[기자24시] 광우병과 정부 불신"
한국일보 (2001.02.14) "[농림부] 음식물사료 먹인소 광우병 안전"
한국경제 (2001.02.13) "'음식물 사료 먹인 소 광우병 징후없어' .. 한갑수 농림장관 밝혀"
연합뉴스 (2001.02.10) "英, 정부관리들 폐쇄성이 광우병 확산 인정"
연합뉴스 (2001.02.10) "EU, 광우병 위험부위 수출한 독일에 경고"
한국경제 (2001.02.09) "한우 쇠고기값 큰폭 하락 .. 광우병 파문으로"
한국일보 (2001.02.08) "[FAO] '100개국이상 광우병 노출'"
한국일보 (2001.02.08) "[지평선] 영국의 광우병 교훈"
동아일보 (2001.02.08) "'100개국 이상 광우병위험 노출'…유엔식량기구 경고"
동아일보 (2001.02.08) "[농림위]'광우병보다 무서운 건 정부정책 못믿는 국민'"
한국경제 (2001.02.08) "'광우병 안걸리는 소 곧 탄생' .. 서울대 황우석교수 밝혀"
연합뉴스 (2001.02.08) "'광우병 안걸리는 소 3년내 탄생'"
연합뉴스 (2001.02.08) "광우병 발병 독일서 혈장 7만1천ℓ 수입"
동아일보 (2001.02.07) "한국 '광우병 청정국가' 아니다…잠정적 비발생국가로 인정"
한국일보 (2001.02.07) "[기자의 눈] '광우병'이란 유령"
연합뉴스 (2001.02.07) "'우리 선조들 광우병 대비했다'"
국민일보 (2001.02.07) "광우병 감염경로 및 예방책"
국민일보 (2001.02.07) "‘광우병 한숨’ 땅이 꺼진다"
국민일보 (2001.02.07) "국산 쇠고기 안전하다…농림부 '광우병 안전' 결론"
한국일보 (2001.02.06) "[한국시론] 광우병, 잘못된 통념들"
한국일보 (2001.02.05) "[광우병 파동] 쇠고기이어 녹용도 '한파'"
매일경제 (2001.02.05) "광우병 막으려면...소 등골 생식 자제"
연합뉴스 (2001.02.05) "농림부 광우병 예방조치 미흡"
연합뉴스 (2001.02.05) "식약청, 광우병 예방대책 태스크포스팀 구성"
연합뉴스 (2001.02.05) "<연합시론>광우병 대책 이대로 좋은가"
한국경제 (2001.02.04) "소 뇌.척수부분 가장 위험 .. '국내에도 광우병 공포'"
연합뉴스 (2001.02.04) "日, 광우병 예방위해 유럽산 우육가공품 수입금지"
동아일보 (2001.02.02) "영국산 동물사료 광우병 문제됐던 93~96년 수입됐다"
동아일보 (2001.02.01) "日, 광우병우려 미백화장품 판매금지"
한국일보 (2001.02.01) "[국립보건원] '인간광우병 환자 국내엔 없다'"
연합뉴스 (2001.02.01) "'CJD환자 47명 발견,인간광우병은 없어'"
매일경제 (2001.02.01) "농림부 광우병 검역 강화"
한국일보 (2001.02.01) "[보건당국 공식발표] 인간 광우병 환자 없다"
동아일보 (2001.01.31) "[음식]유럽 광우병, 대규모 도축사태로"
한국일보 (2001.01.31) "[광우병] 유럽 파동여파…국내도 '광우병 신드롬'"
동아일보 (2001.01.31) "[광우병 불똥 확산]국내 쇠고기사용 급감·유럽 40만마리 도살"
국민일보 (2001.01.31) "[사설] 광우병 안전지대 아니다"
연합뉴스 (2001.01.31) "獨 '광우병 퇴치위해 소 40만마리 도살 불가피'"
동아일보 (2001.01.30) "[아하! 질병이야기]'인간 광우병' 에이즈보다 치명적"
한국일보 (2001.01.29) "[농림부] 광우병 예방 중장기 대책 추진"
한국일보 (2001.01.29) "[검역원] 광우병 예방 중장기 대책 마련키로"
한국경제 (2001.01.29) "농림부, '광우병 방역 중장기대책' 마련"
로이터 (2001.01.29) "FAO, EU외 전세계 국가들에게도 광우병 대응 촉구"
동아일보 (2001.01.26) "'인간 광우병' 법정 전염병 지정키로"
동아일보 (2001.01.26) "국내서도 '인간 광우병' 한때 술렁"
매일경제 (2001.01.26) "非 EU국가들도 광우병 위험 있다"
한국경제 (2001.01.22) "독일 광우병피해 최소 9천억 .. 소 40만마리 도축키로"
연합뉴스 (2001.01.19) "'독일 광우병 500건 이상 발생 우려'"
연합뉴스 (2001.01.18) "EU, 광우병 대책 강화 방침"
한국일보 (2001.01.17) "[EU] '全유럽 광우병 확인'"
연합뉴스 (2001.01.17) "<회전목마> EU광우병 파동, 국내 육가공업체 호기(?)"
한국경제 (2001.01.11) "광우병 발생률 예상보다 높아..유럽 각국 초긴장"
한국경제 (2001.01.11) "'광우병 발생률 예상보다 높아'..獨장관 사퇴등 파문 확산"
국민일보 (2001.01.10) "‘광우병 화장품 불똥’ 국내로 튈라"
한국경제 (2001.01.10) "광우병 발생률 예상보다 높아..유럽 긴장고조"
한국일보 (2001.01.10) "[독일] 광우병파동 장관 2명 사퇴 獨슈뢰더내각 위기"
한국경제 (2001.01.10) "'광우병 파동'...독일 장관 사퇴 .. 정책적 오류 시인"
연합뉴스 (2001.01.10) "獨광우병 책임 관련 각료 2명 사퇴"
동아일보 (2001.01.08) "유럽산 화장품 광우병 '불똥'"
동아일보 (2001.01.03) "EU 광우병 검사 착수…30개월이상 소 대상"
한국일보 (2000.12.29) "[프랑스·독일] 광우병 또 발견 쇠고기시장 붕괴 조짐"
연합뉴스 (2000.12.29) "英佛 각료들 광우병 관련 살인혐의로 기소될 듯"
한국일보 (2000.12.29) "[유럽전역] 광우병 공포 확산"
국민일보 (2000.12.28) "캐다나産 녹용 ‘사슴광우병’ 우려"
동아일보 (2000.12.28) "'사슴 광우병 발생'…캐나다産 녹용 수입금지키로"
한국일보 (2000.12.28) "[식약청] 캐나다산 녹용 '사슴 광우병'"
매일경제 (2000.12.28) "캐나다산 녹용, 광우병 '비상'"
연합뉴스 (2000.12.27) "프랑스서 또 광우병 소 발견"
연합뉴스 (2000.12.14) "'佛 광우병 소 100마리 식용으로 도축'"
연합뉴스 (2000.12.13) "日, 광우병 예방 위해 가축 수입 규제 강화"
연합뉴스 (2000.12.12) "광우병 유럽 밖으로도 확산"
연합뉴스 (2000.12.11) "사료업계, 광우병.자금난.환차손으로 3중고"
연합뉴스 (2000.12.11) "제일제당, 유럽 광우병 파동으로 매출 증가 전망"
연합뉴스 (2000.12.07) "EU 광우병 검사 신뢰도 문제"
동아일보 (2000.12.01) "英-佛 '광우병 공동대처'…독일 동물성자료 전량소각"
한국일보 (2000.11.26) "[광우병 全유럽 확산]"
동아일보 (2000.11.26) "독일-포르투갈서도 광우병 소 첫 발견"
연합뉴스 (2000.11.25) "유럽 광우병 파동 독일과 포르투갈로 확산"
연합뉴스 (2000.11.25) "佛 농민, 정부 광우병 대책 항의 시위"
연합뉴스 (2000.11.21) "EU농업장관, 진통끝에 광우병 조사 합의"
매일경제 (2000.11.16) "英.佛 광우병 공방"
한국경제 (2000.11.14) "EU, 일정 연령이상 모든 소 대상 광우병검사 실시 제안"
연합뉴스 (2000.11.13) "EU, 회원국에 포괄적인 광우병 검사 요구"
연합뉴스 (2000.10.28) "'광우병 감염자는 더 많을 수 있다'<英紙>"
연합뉴스 (2000.10.26) "英정부 광우병 대처 방법에 '중대 잘못'"
한국일보 (2000.10.24) "[프랑스 광우병 공포]"
연합뉴스 (2000.06.30) "EU,광우병 위험 부위 전면 유통 금지"
한국경제 (2000.02.29) "광우병 파동...덴마크산 쇠고기 수입금지"
한국경제 (1998.06.11) "[원포인트 건강] 광우병은 유전...쇠고기와 관계없어'"
한국경제 (1997.10.07) "광우병 발병인자 발견 .. 노벨의학상 수상 프루시너 교수"
한국경제 (1997.07.23) "'광우병' 신규제 합의 .. EU 농업장관들"
한국경제 (1997.04.29) "'개도 광우병 감염' .. 영국 과학자들 공개 안해"
한국경제 (1997.02.24) "'미국산 쇠고기 처리기계 광우병 전파 우려 있다'"
한국경제 (1997.01.22) "독일, 영국산 소 도살 계획 .. 광우병 전염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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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경리씨가 타계한 5일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조문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박경리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토지>에 나오는 인물 같은 평사리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그리고 아저씨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인간의 향기뿐 아무것도 없다. 충격과 감동, 서러움은 뜬구름 같이,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같이 사라져버렸다. 다만 죄스러움이 가끔 마른 침 삼키듯 마음 바닥에 떨어지곤 한다. 필시 관광용이 될 최참판댁 때문인데 또 하나, 지리산에 누를 끼친 것이나 아닐까.

 

지리산의 수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에 의해 산은 신음하고 상처투성이다. 어디 지리산뿐일까마는 산짐승들이 숨어서 쉬어볼 만한 곳도 마땅치 않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식물, 떠나버린 생명들, 바위를 타고 흐르던 생명수는 썩어가고 있다 한다.

 

도시 인간들이 이룩한 것이 무엇일까? 백팔번뇌, 끝이 없구나. 세사(世事) 한 귀퉁이에 비루한 마음 걸어놓고 훨훨 껍데기 벗어던지며 떠나지 못하는 것이 한탄스럽다. 소멸의 시기는 눈앞으로 다가오는데 삶의 의미는 멀고도 멀어 너무나 아득하다." - <토지> '서문' 몇 토막

 

한국 문학의 거목이 쓰러졌다. 한국 문학을 일구어내던 토지가 무너졌다. 지난달 4일 뇌졸중과 지병 악화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 인공호흡기에 목숨을 매단 채 중환자실과 집중치료실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었던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5일 뇌졸중 등 합병증으로 결국 별세했다. 향년 82세.

 

고 박경리 선생(4월 26일자 오마이뉴스 참조)은 그동안 고혈압과 당뇨 등 지병을 안고 지내오다 지난해 7월 폐암에 걸렸다. 하지만 선생은 <토지>의 작가답게 여러 가지 지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원주에서 흙과 더불어 살았다. 흙이 모여 있는 곳이 토지요, 토지가 있는 곳이 곧 선생의 모든 것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명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고 박경리 선생의 생전 모습(2000년 9월).
ⓒ 홍성식

비보를 접한 문단 한 관계자는 "고인은 우리 문학사에 <토지>라는 새로운 생명의 땅을 남겨놓고 가셨다. 우리 문인들은 이제 고인이 남기고 가신 문학의 토지에 새로운 문학의 씨앗을 뿌려,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일궈내 고인이 못 받은 노벨문학상을 반드시 받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문단 관계자는 "고인은 한국 문학에 샛별과 같은 분이셨다. 이제 그 샛별이 떨어졌으니 무엇을 좌표로 삼아 이 캄캄한 문학의 밤길을 걸어야할지 모르겠다"며 "고인이 25년 동안 매달려 완간한 <토지>는 예전에도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고 박경리 선생은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1955년 작가 김동리(1913~1995)의 추천으로 월간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21권짜리 대하소설 <토지>와 <파시>, <김약국의 딸들> 등을 내놓으며 한국 문학사의 샛별로 떠올랐다.

 

특히 선생이 1969년부터 1994년까지 무려 25년에 걸쳐 쓴 21권짜리 대하소설 <토지>(원고지 3만1200장)는 문단에서 '광복 이후 한국 문단이 거둔 최고의 수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토지>는 TV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 가극, 창극 등으로도 만들어져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선생의 유족으로는 딸 김영주(62)씨와 사위 김지하(67, 시인)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현대아산병원이며, 장례는 문인장으로 치러진다. 장지는 경남 통영.

 

토지의 어머니, 작품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다

 

우리 민족의 <토지>로 남아 우리 곁을 영원히 지킬 것만 같았던 박경리 선생이 이 세상을 훌쩍 떠나버렸다.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같은 문학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서운하기 짝이 없다. 선생과 살아생전 개인적으로 한 번도 곁에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작품으로만 알고 지냈던 토지의 어머니, 강연장에서 멀찌감치 지켜보았던 토지의 어머니 박경리 선생. 그 선생의 모습을 이제는 작품과 사진 속에서만 만나볼 수 있게 되다니. 안타깝다. 이렇게 허망하게 가실 줄 알았더라면 지난해 원주에 갔을 때 바쁘더라도 선생을 뵙고 왔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면 내가 직접 찍은 선생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었을 것을. 이제 선생의 모습은 영원히 내 카메라에 담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동안 나는 수많은 문인들의 사진을 찍었다. 대부분의 문인들의 모습을 내 카메라에 담았다는 말이다. 근데, 하필 선생의 모습만을 담지 못했다. 이런! 남이 찍은 사진에서 선생의 모습을 대하게 되는 낭패라니.

 

어쩌랴. 좀 더 부지런하지 못했던 자신을 탓할 수밖에. 하지만 너무 자학을 할 필요는 없다. 선생의 작품이 선생의 살아생전 모습처럼 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 선생의 작품 토씨 하나하나에 선생의 숨결이 골고루 담겨 있지 않은가. 선생이 남긴 <토지> 위에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뿌려 잘 가꾸는 것이 선생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 21권짜리 대하소설 <토지>를 쓴 작가 박경리 작가 박경리가 <토지>를 달랑 남겨놓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 나남출판사
원주

 

<토지>, '거대한 마침표' 어떻게 찍었을까 

 

대하소설 <토지>는 1994년 8월 15일 새벽 2시에 끝났다. 25년이나 걸린 <토지>의 '거대한 마침표'는 소설 속에서도 8월 15일(1945년)이었다. 1897년부터 1945년까지 하동 평사리에서 서울과 간도, 일본을 넘나들다가 마침내 끝 간 데 없이 드넓은 평원에 다다른 21권짜리 대하소설 <토지>.

 

8월 15일 새벽,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서 <토지>의 마침표를 찍은 박경리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런 감정이 없어요. 끝났는지 실감이 나지 않아요. 배만 살살 좀 아프네요"라고. 왜 배가 갑자기 살살 아파왔을까. 너무 오랜 세월 씨름을 하다가 마침내 마침표를 찍자 배까지도 너무 놀랐기 때문일까.

 

<토지>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끝." <토지>는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딸 양현이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어머니 서희에게 일본의 패망을 전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토지>의 마지막 1주일 동안 선생은 새벽 2시에 일어나 원고지 앞에 앉았다. 글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을 때에는 원고지를 바라보다가 가만히 펜촉을 원고지에 댔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문장이 술술 이어져 나갔다고 했다. 이어 아침 6시가 되면 실잠에 잠시 들었다 일어나 고양이와 강아지에게 밥을 주고, 집안일과 밭일 등을 했다.

 

"소설과 소설 쓰기의 마지막이 우연하게도 8월 15일에서 끝난 것이었다. 당초에는 8월 10일쯤 완결 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7월 하순 경주에서 열린 문학인 대회와 지독한 가뭄과 무더위, 그리고 낯선 방문객들 (기자들 같은) 때문에 늦어진 것이었다. 굳이 8월 15일에 맞출 생각은 없었다."

 







  
고 박경리 선생 생전 모습(2004년 마산MBC 창사특집 특별대담).
ⓒ 마산MBC

박경리, 세계에 가장 알리고 싶은 우리 문인

 

<토지>는 연재가 계속될 때 뿐만 아니라 완간 뒤에도 문단에 다양한 논의의 불씨를 당겼다. <토지>에 관한 비평서만 해도 이미 여러 권 출판되어 있다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게다가 전국 대학원에 제출된 <토지>를 다룬 석, 박사 논문만 해도 이미 수십 편에 이르며, 지금도 <토지> 연구자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서 '문학의 모든 장르를 통틀어 세계에 가장 알리고 싶은 우리 문인과 작품'으로 작가 박경리 선생과 작품 <토지>가 뽑혔다. 이와 함께 현대문학을 전공하는 교수 등 전문 독자 300명과 일반 독자 300명 등 총 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박경리와 <토지>가 각각 60.7%와 58.3%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토지>는 국제적으로도 인기가 드높다. 1983년에는 <토지> 1부가 일본 문예신서에서, 1994년에는 <토지> 1부가 프랑스 벨퐁출판사에서, 1984년에는 <토지> 1부가 영국 키건폴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으며, 지금 독일어 번역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문학의 거목이자 세계 문학의 거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박경리 선생. 이제 선생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저 뭇 생명을 키워내는 땅 <토지>로 되돌아갔다. 선생께서 <토지> 서문에 쓴 글을 다시 꼼꼼하게 되새김질하며 선생의 영전에 큰 절 올린다. 부디 잘 가소서. 선생이 남긴 토지 위에 후학들이 새로운 문학의 꽃을 활짝 피우겠나이다. 

 







  
▲ 최참판댁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었던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 이종찬
하동 평사리

 

"그해, 그러니까 토지를 끝낸 1994년 8월 15일, 그때도 나는 해방감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멍청히 앉아있었다. 방향조차 잡을 수 없었고 막막했던 길 위에서, 폭풍이 몰고 간 세월이 끔찍하여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토지>의 운명도 기구했다. 25년 동안 여러 지면(紙面)을 전전했고 4부까지 출간되었으나 3년 동안 출판정지, 절필한 일이 있었다. 완간이 된 뒤에도 출판 계약이 끝나면서 3년간 책을 내지 않고 절판 상태를 애써 외면했다.

 

작품이 나간 이상 독자에게는 읽을 권리가 있고 이미 작가 손에서 떠난 거라며, 꾸지람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구세대에 속하고 편협한 나로서는 문학작품이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생산되고 소비되는 오늘의 후세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 <토지> '서문' 몇 토막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누구인가?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1926년 10월 28일 경남 충무시 명정리에서 박수영(朴壽永)씨의 장녀로 태어나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했다. 1946년 1월 30일에는 김행도(金幸道)와 결혼했으나 1950년 12월 25일 남편과 사별했다.

 

1955년 8월 <현대문학>에 김동리에 의해 단편 '계산'이 추천되었으며, 1956년 8월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 완료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57년에는 단편 '불신시대'로 제3회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받았으며, 1958년 첫 장편 '연가'를 <민주신보>에 연재하면서 단편 '벽지', '암흑시대' 등을 발표했다.

 

1959년에는 장편 '표류도'를 발표, 제3회 <내성문학상>을 받았으며, 1962년 전작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발표했다. 1963년에는 장편 '파시'를, 1965년에는 장편 '녹지대'를 발표했으며, 장편 '시장과 전장'으로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을 받았다. 1966년에는  단편 '집', '인간', '평면도', 연작 '환상의 시기'를 발표했으며, 수필집 <Q씨에게>를 펴냈다. 

 

1968년에는 단편 '우화', '약으로도 못 고치는 병'을 발표했으며, 1969년부터 '토지' 1부를 <현대문학>에 연재(1969. 9∼1972. 9)하기 시작했다. 1970년에는 단편 '밀고자'를 발표했으며, 장편 '창'을 연재했다. 1972년에는 '토지' 1부로 제7회 <월탄문학상>을 받았으며, '토지' 2부를 <문학사상>에 연재(1972. 10∼1975. 10)했다.

 

1974년에는 장편 '단층'을 발표했으며, 1977년 '토지' 3부를 <독서생활>(1977. 1∼1977. 5)과 <한국문학>에 연재(1977. 6∼1978. 1)했다. 같은 해 수필집 <호수>, <거리의 악사>(민음사)를 펴냈다. 1979년에는 박경리 문학전집 전16권(지식산업사)을 펴냈으며, 1980년 원주시 단구동 742번지(지금의 토지문학공원)에 정착했다.

 

1983년에는 '토지' 4부를 <정경문화>에 연재(1983. 7∼1983. 12)했으며, 1985년 수필집 <원주통신>(지식산업사)을 펴냈다. 1987년에는 '토지' 4부를 <월간경향>에 연재(1987.8∼1988.5)했으며, 1988년 시집 <못 떠나는 배>(지식산업사)를 펴냈다. 1990년에는 제4회 <인촌상>을 받았으며, 중국기행문 <만리장성의 나라>, 시집 <도시의 고양이들>(동광출판사)을 펴냈다.  

 

1991년 8월 연세대학교 원주 캠퍼스에서 강의를 시작했으며, 1992년 9월 1일부터 '토지' 5부를 <문화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장편 <김약국의 딸들>, <파시>, <시장과 전장>(나남출판)을 펴냈다. 1994년에는 <박경리의 원주통신-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문학선 <환상의 시기>, <가을에 온 여인>(나남출판)을 펴냈으며, 같은 해 8월 15일 집필 25년 만에 <토지>를 탈고했다.

 

같은 해 이화여대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0월에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올해의 여성상>을, 12월에는 유네스코 서울위원회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1995년 3월에는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객원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현대문학사)를 펴냈다. 

 

1996년 3월에는 제6회 <호암상예술상>을, 4월에는 칠레정부로부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문학기념메달>을 받았고, 5월에는 토지문화재단 창립 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1997년에는 연세대학교 석좌교수로 임용되었으며, 사단법인 토지문화관 이사장을 맡았다.

 

1998년에는 토지문화관을 착공, 건립한 뒤 1999년 6월 9일 개관했다. 1999년에는 장편 <표류도>(나남출판)를, 2000년에는 시집 <우리들의 시간>(나남출판)을, 2007년에는 <가설을 위한 망상>(나남출판)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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