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유병록
검은 행렬이 이동한다 구부러진 길을 따라 눈 쌓인 비탈을 지나 아주 긴 말줄임표처럼 천천히 걸어간다
도착지에 가까워지자 자꾸 무릎이 꺾여 주저앉는데 얼어붙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다 가슴을 치다 울음을 터뜨리는데
선두에서 죽은 입술이 피리를 부는가 관 속의 두 손이 북을 두드리는가 행렬은 멈춰 서지 않고
예고되지 않았는지 이미 건너간 후였는지 앞세우고 가는 사진 속 얼굴은 웃고 있다 죽음이 틈입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대, 살아서 이렇게 환하게 웃은 적이 있었던가 살아서 이만한 대열을 이끈 적 있었던가
수천수만 개의 바구니 같은 눈송이가 지상으로 내려오고 검은 외투들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앞으로 나아간다
웃음이 통곡의 대열을 이끌고 행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