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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 제6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작
서정춘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너무 쉽게 살아지고 너무 쉽게 말해지고 너무 쉽게 쓰는 것도 罪가 될까
그럴까봐 罪될까봐 시인은 몇 십년이 지나서야 시집들을 묶어 내었다
당연히 많은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뱉어내는 것도 罪될까봐
이 시집의 여백은 광활하다
기러기
허드레
허드레
빨랫줄을
높이 들어올리는
가을 하늘
늦비
올까
가을걷이
들판을
도르래
도르래 소리로
날아오른 기러기 떼
날아오른 기러기 떼
허드레
빨랫줄에
빨래를 걷어가는
분주한 저물녘
먼
어머니
최명희 선생이 강물이 흐르는 소리를 찾기 위해 글쓰기를 멈추고 생각해낸 끝에
'소살소살' 이라는 말을 얻었다
종소리가 오래, 멀리 퍼져나가는 소리를 찾기 위해 글쓰기를 멈추고 생각해낸 끝에
'가앙' 이라는 말을 얻었다
이 시 속의 '허드레 허드레'란 말 또한 시인이 오랜 고민 끝에 얻어낸 말이리라
허드레, 허드레, 하찮은 이 명사는 어느 새 의성어의 옷으로 갈아 입고 행간 사이 사이를 요동치고 있다. 시인 또한 이 말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골몰했을 것이다. 끌끌 속으로 앓다가 기어코 하나씩 뱉어내는 말들, 그렇기에 그 울림은 깊고도 먼 곳으로 날아간다
종소리
한 번을 울어서
여러 산 너머
가루가루 울어서
여러 산 너머
돌아오지 말아라
돌아오지 말아라
어디 거기 앉아서
둥근 괄호 열고
둥근 괄호 닫고
항아리 되어 있어라
종소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