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의 메디아 1~10 세트 - 전10권 - RETRO PAN
신일숙 지음 / 유어마나(거북이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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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컬러본으로 신일숙님 작품을 다시 만나는것 만으로도 소장가치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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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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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다작'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다작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도 사실 작품성이나 오락성이 들쭉날쭉하는 경향이 많다. 모차르트가 천재로 알려져 있고 그의 많은 곡이 지금도 연주되고 있지만 그가 생전에 작곡한 곡이 500곡이 넘는다는 걸 감안하면 그의 모든 곡이 항상 좋았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름 자체가 이미 브랜드가 되어버린 히가시노 게이고지만 그의 소설의 성패는 매 번 다른 것 같다. 심지어 어떤 책은 졸작이라고까지 혹평을 듣기도 한다. 나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만 믿고 샀다가 그대로 중고 시장에 팔아버린 책이 몇 권 된다.

하지만 다행히도 최근 몇 년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행보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물론 내가 그의 최근작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어느 정도 엄선하는 눈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그의 작품이 다시금 전성기로 가는 것인지 적어도 읽고 나서 괜히 읽었다는 후회나 짜증은 적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누가 범인인가를 파헤치는 여느 추리 소설과는 달리 그 범인이 왜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느냐를 박진감 넘치게 풀어낸다는 점이었다. 대부분 그의 소설에서 사건은 이미 발생했고, 범인은 명확하다. 다만 '왜'라는 의문이 모든 인물을 관통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주인공은 고군분투한다. 위험한 비너스 역시 주인공 '하쿠로'와 '아키토'의 어머니인 '데이코'의 죽음이 '왜' 발생했으며 그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파헤치는 것이 내용의 주된 흐름이다.

내용을 전개하면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상당히 많은 등장인물을 소설 속에 내보냈다. 그것도 복잡한 내연, 양자, 재혼 등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서 주말 드라마나 아침 드라마에 나올 법한 대저택의 사람들을 만들고 그 거미줄에 주인공을 연결한다. 덕분에 일각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오락성을 강화시킨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내 생각에도 그동안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중에서 오락성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내용 전개가 재미있어서 휙휙 넘기며 읽었고, 막 다 읽은 순간에는 남는 게 없네라고 생각했는데,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는 분명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졌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는 시그니처라고 해도 좋을 만큼 특유의 '이과적'지식이 사건의 중요한 키포인트로 등장한다. 위험한 비너스에서는 수학사의 난제인 리만 가설이 '용의자 X의 헌신'에 이어 또다시 등장하고, '울람 나선'도 중요한 논제다. 그리고 '후천적 서번트 증후군'이 중요한 키워드인데, 인간의 특정 영역이 비현실적으로 발달되어서 나타나는 서번트 증후군을 통해 인류사의 난제로 남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가 벌어진다. 하지만 인체실험은 불행한 결과를 만들어냈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소수의 비밀을 풀어 줄 프랙탈 도형이 담긴 그림이 소설에서 모든 이들이 찾는 중요한 목표물이다. 

인간을 후천적으로 변이 시켜서 뛰어난 능력을 갖게 하는 실험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자행되고 있을 것이다. 특히 뇌과학 분야는 엄청난 발전 속도를 자랑하는데, 사람의 집중력을 비정상적으로 향상시켜서 특정 상황에서 공포감을 없애거나 높은 집중력을 갖게 하는 실험들은 이미 행해지고 있으며 개중에는 성공한 것도 있다. 하지만 인간적인 면을 절제하여 만들어낸 비인간적인 초인적 능력이 과연 좋은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던져진다. 초인이 존재하는 시대에 일반적인 사람들의 역할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모 데우스'에서 지적하듯이 앞으로의 시대에서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부분은 디지털화의 걸림돌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영역은 점점 축소될지도 모르고 결과적으로 '인간'의 절멸을 맞이할 수도 있다. 소설 속에서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미래에는 인위적인 엘리트를 만들어내거나 혹은 그 엘리트 인간조차 필요 없는 시대로 우리가 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체적인 소설은 사실 오락성이 굉장히 강해서 재밌고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주제만큼은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대로 사회에 질문을 던져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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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hH
로랑 비네 지음, 이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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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원 작전은 세계 2차 대전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면 생소했을 내용이다. 서점의 책들 중에서 제목이 끌려서 직감적으로 골랐던 책인데, 속도감 있는 전개 덕분에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얼마 전에 프라하에 다녀온 적이 있어서 내용의 무대가 되는 체코의 일부 지명이나 인명이 낯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나치스의 수많은 전범들 중 아마 살아 있었다면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여지없이 사형을 받았을 하이드리히의 암살에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흥미로운 점은 하이드리히의 일대기나 혹은 유인원 작전에 참여한 가브치크나 쿠비시의 일생에 작가가 상상력을 불어 넣어 재편성하는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본인이 수집한 자료를 박진감 넘치게 나열하여 이야기를 끌어가는 전개 방식이었다. 다만 이 작가가 그렇게 열심히 조사했음에도 몇몇 내용은 사실과 다른지, 책 앞 일러두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들어가 있었다.

'단, 원문에서 발견되는 역사적 오류 역시 가급적 그대로 번역 수록하였습니다.'

번역자와 편집자의 고뇌가 느껴지는 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원작이 잘못되었으니 작가한테 연락해서 고치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번역가가 임의로 내용을 고치면 소설의 흐름이 망가질 우려가 있다. 잘못된 부분을 접한 순간 역자가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줄거리에 대해서 간단히 말하자면, 금발의 짐승이자 가장 잔인한 나치스의 도살자 중 한 명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간단한 성장사가 초반에 등장한다.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하이드리히는 나치스 내의 지위가 공고해지며 체코에서의 지배권을 히틀러로부터 부여받는다. 그리고 서유럽 국가들의 미온한 태도 속에 나라를 강제로 빼앗긴 체코의 망명 인사들은 하이드리히 암살을 계획하고 가브치크와 쿠비시를 위시한 낙하산 특수부대 요원들에게 임무를 하달한다. 이들의 암살 기도는 역사가 말해주듯 하이드리히의 죽음으로 성공했으나, 동료의 배신으로 그들 역시 치열한 저항 끝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나치는 하이드리히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그의 죽음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무고한 체코인들까지 학살하고, 최종적으로는 '라인하르트 작전'으로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다.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결국은 뒤주 속의 죽음으로 귀결되기에 답답할 수밖에 없듯, HHhH 역시 마지막은 가브치크와 쿠비시의 죽음 그리고 그에 대한 나치의 잔혹한 복수로 끝나기에 읽으면서도 안타깝다는 생각과 답답함이 항상 공존한다.

그리고 작가는 일반 소설과 다르게 책을 쓰면서 느낀 본인의 감정을 여과 없이 책 속에 같이 담아냈다. 스스로 쓰면서도 괴로웠다거나 어떤 자료가 잘 찾아지지 않아서 힘들었다거나 같은 불평과 볼멘소리가 책 곳곳에 숨어있고, 그러면서도 책의 전개를 해치지는 않는다.

그리고 HHhH를 읽으며 다시 한 번 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스 치하의 일반인들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HHhH에서 독일인들은 명확한 목표를 받지는 않았지만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유대인들을 혐오하고 나치스의 선전에 사로잡힌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향하는 기차에 탄 유대인들을 보면서 기차를 출발 시킨 사람, 화물칸의 문을 닫은 사람, 검표원 즉 독일 일반인들은 상당수가 뉘른베르크 재판에 회부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그들이 자의 혹은 타의로 나치에 부역하였다. 일반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공포와 탄압 그리고 마치 그 내용이 진실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괴벨스 이하의 지독한 선전이 그 당시의 독일과 주변국들을 확실한 광기로 몰아넣었다. 전쟁이 끝났을 때, 그리고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과오임을 알았을 때 그들이 반성했을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을지는 개인의 몫일 것이다.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인종 평등주의자가 되지는 않는다.

체코 여행 중에 가이드로 나오신 분이 체코인들의 기질을 나름 재밌게 풀어내기 위해서 체코는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누구보다도 빠르게 실리를 택해 항복한 나라라고 하였다. 하지만 HHhH를 읽다 보면 실리를 위해 자발적으로 나라를 들어 바친 체코 지도자의 모습은 없고, 프랑스와 영국의 불명예스러운 방관 아래 어쩔 수 없이 옆 강대국에게 겁박을 당했던 지도자의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유인원 작전'이 전개되는 동안 수많은 체코인들이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대원들에게 잠 잘 곳과 숨을 곳을 알려준다. 그들은 후에 체포된 이후에도 상대방을 밀고하지 않았고, 덕분에 누군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말로 체코인들이 단순히 실리만을 택해 나라를 바쳤다면 2차 세계 대전 중 유일하게 성공한 요인 암살 작전인 유인원 암살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을 리도 없고, 체코가 지금 이렇게 부강한 독립국으로 남을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프라하는 전쟁으로 파괴되는 것은 면했지만 수많은 체코인들은 나치 치하에서 무고하게 살해당했다. 가이드를 하면서 듣는 이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들의 가장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한 부분을 그렇게 가볍고 무참하게 설명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본래의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HHhH는 근래에 읽은 책 가운데 역사 소설을 박진감 있는 독특한 구성으로 풀어 낸 수작이었다. 물론 이 시대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술술 읽히지 않는 책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독자와 같은 거리에서 문제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작가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2차 세계 대전의 치열했던 프라하로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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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작삼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이소영 옮김 / 봄고양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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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작가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상 중의 하나는 "아쿠타카와 상"이다. 우리나라의 "이상 문학상"처럼 일본의 작가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를 알게 된 것은 나생문 혹은 라쇼몽이라 불리는 작품 덕분이었다. 영화로도 제작된 적이 있는 이 작품은 한 사건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참으로 인상 깊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소설을 검색하던 중 아쿠타카와의 단편 집인 희작삼매가 나왔다는 걸 알게 되어 바로 구입했다. 특히 덤불 속게사와 모리토가 읽고 싶었다. 두 작품은 작년에 공연한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의 원작이기도 하다. 두 작품 외에도 동안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어서 읽을 기회가 없던 단편도 여럿 실려 있어서 주저 않고 구입했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글은 인칭에 상관없이 인물의 세밀한 감정을 파고드는 치밀함과 집요함이 있다. 자칫 우리가 평범하게 느낄 수 있는 상황을 그는 그 상황을 당한 화자가 되어 전혀 다른 의미로 풀어낸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성공한 작가의 인생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서 전전긍긍하는 삶을 보여준 희작삼매나 효부 며느리의 등쌀에 자유를 빼앗긴 불행한 시어머니 오타미의 이야기가 나오는 한 줌의 흙은 우리의 인생이 어떤 망원경과 프리즘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얼마만큼 달라 보일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아쿠타카와의 작품이기도 한 덤불 속은 한 사건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람들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명확하게 일어난 일은 덤불 속에 부부와 강도가 있었고 남편이 죽었다 인데 누가 남편을 죽인 것인지 그리고 강도와 부인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다르다. 결국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그저 서로가 서로의 진실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뜻밖에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작품인 보은기역시 한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만 덤불 속과 달리 여기서는 전체 스토리를 완성시키기 위해 각자의 시선이 필요하다. 은혜를 갚기 위해 돈을 마련한 도둑과, 그 도둑에게 은혜와 거절당한 원수를 갚기 위해 도둑이 되어 대신 죽임을 당한 아들, 그리고 도둑에게 도움을 받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저마다의 시선 속에 잘 녹아 있었다.
 
게사와 모리토는 불륜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둘이 느끼는 감정은 불륜과 다르다. 서로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아니라 개인적인 자존심과 이기심으로 얼룩졌고, 그것을 위해 불필요한 살인과 복수 그리고 음모를 꾸민다. 서로의 관점에서 같은 이야기가 다르게 맞붙고 서로가 죽이고 싶은 상대도 다르다. 공연에서는 1막에서는 게사가 모리토를 2막에서는 모리토가 게사를 죽이는 식으로  서로 다른 결말을 말해주었었다.
 
그 밖에도 사람의 질투, 회한, 독기 등 다양한 감정을 특유의 빠르고 담담하면서도 치밀한 문체로 풀어낸 아쿠타카와의 다른 단편들 역시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른 단편집이 하나 더 있다기에 다음에는 그것을 구입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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