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다작'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다작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도 사실 작품성이나 오락성이 들쭉날쭉하는 경향이 많다. 모차르트가 천재로 알려져 있고 그의 많은 곡이 지금도 연주되고 있지만 그가 생전에 작곡한 곡이 500곡이 넘는다는 걸 감안하면 그의 모든 곡이 항상 좋았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름 자체가 이미 브랜드가 되어버린 히가시노 게이고지만 그의 소설의 성패는 매 번 다른 것 같다. 심지어 어떤 책은 졸작이라고까지 혹평을 듣기도 한다. 나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만 믿고 샀다가 그대로 중고 시장에 팔아버린 책이 몇 권 된다.

하지만 다행히도 최근 몇 년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행보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물론 내가 그의 최근작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어느 정도 엄선하는 눈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그의 작품이 다시금 전성기로 가는 것인지 적어도 읽고 나서 괜히 읽었다는 후회나 짜증은 적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누가 범인인가를 파헤치는 여느 추리 소설과는 달리 그 범인이 왜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느냐를 박진감 넘치게 풀어낸다는 점이었다. 대부분 그의 소설에서 사건은 이미 발생했고, 범인은 명확하다. 다만 '왜'라는 의문이 모든 인물을 관통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주인공은 고군분투한다. 위험한 비너스 역시 주인공 '하쿠로'와 '아키토'의 어머니인 '데이코'의 죽음이 '왜' 발생했으며 그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파헤치는 것이 내용의 주된 흐름이다.

내용을 전개하면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상당히 많은 등장인물을 소설 속에 내보냈다. 그것도 복잡한 내연, 양자, 재혼 등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서 주말 드라마나 아침 드라마에 나올 법한 대저택의 사람들을 만들고 그 거미줄에 주인공을 연결한다. 덕분에 일각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오락성을 강화시킨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내 생각에도 그동안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중에서 오락성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내용 전개가 재미있어서 휙휙 넘기며 읽었고, 막 다 읽은 순간에는 남는 게 없네라고 생각했는데,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는 분명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졌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는 시그니처라고 해도 좋을 만큼 특유의 '이과적'지식이 사건의 중요한 키포인트로 등장한다. 위험한 비너스에서는 수학사의 난제인 리만 가설이 '용의자 X의 헌신'에 이어 또다시 등장하고, '울람 나선'도 중요한 논제다. 그리고 '후천적 서번트 증후군'이 중요한 키워드인데, 인간의 특정 영역이 비현실적으로 발달되어서 나타나는 서번트 증후군을 통해 인류사의 난제로 남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가 벌어진다. 하지만 인체실험은 불행한 결과를 만들어냈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소수의 비밀을 풀어 줄 프랙탈 도형이 담긴 그림이 소설에서 모든 이들이 찾는 중요한 목표물이다. 

인간을 후천적으로 변이 시켜서 뛰어난 능력을 갖게 하는 실험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자행되고 있을 것이다. 특히 뇌과학 분야는 엄청난 발전 속도를 자랑하는데, 사람의 집중력을 비정상적으로 향상시켜서 특정 상황에서 공포감을 없애거나 높은 집중력을 갖게 하는 실험들은 이미 행해지고 있으며 개중에는 성공한 것도 있다. 하지만 인간적인 면을 절제하여 만들어낸 비인간적인 초인적 능력이 과연 좋은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던져진다. 초인이 존재하는 시대에 일반적인 사람들의 역할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모 데우스'에서 지적하듯이 앞으로의 시대에서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부분은 디지털화의 걸림돌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영역은 점점 축소될지도 모르고 결과적으로 '인간'의 절멸을 맞이할 수도 있다. 소설 속에서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미래에는 인위적인 엘리트를 만들어내거나 혹은 그 엘리트 인간조차 필요 없는 시대로 우리가 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체적인 소설은 사실 오락성이 굉장히 강해서 재밌고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주제만큼은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대로 사회에 질문을 던져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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