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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노동의 역습 - 대가 없이 당신에게 떠넘겨진 보이지 않는 일들
크레이그 램버트 지음, 이현주 옮김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오늘 소개할 책은 근래에 읽은 책 중에서 나를 가장 불편하면서도 놀랍게 만들었던 책이다. 사실 "그림자 노동"이란 단어가 아직까지는 그렇게 우리에게 와 닿는 단어는 아니다. 심지어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기업가 입장에서 그림자 노동은 기업의 비용을 줄이고 고객의 참여감을 높여 장기적인 충성도를 확보할 수 있는 상당히 매력적인 수단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그림자 노동에 대해 깨닫거나 불만을 가질 틈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기업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비용 절감을 위해서 귀찮은 일을 당연하게 또는 재미있는 일로 포장하여 우리에게 넘겼는지 보여주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 서비스 문화의 변환점을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의 진출 시기로 보는 사람이다. 그전까지 카페는 의자에 앉아 메뉴판을 보며 주문하고, 완성된 음료를 직원이 갖다 주고, 다 마신 잔은 직원이 치우는 시스템이었다. 즉 홀서빙을 전담할 직원이 필요했다. 그런데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면서 홀서빙 직원이 하던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소비자가 해야 할 일로 변했다. 이제는 카페에서 먹은 자리를 스스로 치우지 않으면 기본 에티켓도 모르는 사람 취급을 당하기 일 수다. 내 돈을 내고, 내가 서빙하고, 내가 치우는 곳이 되어버렸다. 어찌 보면 불합리한 상황을 우리 모두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외국은 이렇게 한다는 식으로 소비자를 유혹했고, 지금은 그게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저자는 우리 주변에서 이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셀프 주유소"를 예를 들며 본격적으로 그림자 노동을 선물한다. 셀프 주유소가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는 더 저렴하게 주유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열광했지만, 그 이면에는 이제 주유라는 일까지 소비자가 떠맡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많은 주유소 직원과 아르바이트 생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림자 노동은 일자리를 줄인다. 하지만 일은 줄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셀프 주유쯤은 절약할 줄 아는 현대인의 미덕처럼 할 줄 알아야 한다. 일자리는 줄어들었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늘어난 것이다.
셀프 주유소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그림자 노동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성교육, 감성교육, 동아리 활동, 체험학습 등 현대 사회는 아이와 부모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매우 권장하는 사회다. 물론 아이의 교육을 위해 부모와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사회는 부모에게서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뺏으면서 동시에 아이에 대한 역할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뒤처지는 게 싫어서 부모들은 숙제를 대신해 주기도 하고, 특정 부모들끼리 모여서 예체능을 배우는 단체를 만들고 이 단체를 지지하기 위해 주말도 없이 뛰어다닌다. 슈퍼대디, 슈퍼우먼의 신화를 강요하고 있다.
그림자 노동은 DIY 가구 조립에도 숨어있고 (DIY는 당신의 개성을 존중하고 당신에게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멋진 일이 되었다. 특히 이 분야에서 이케아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식당에서 종업원 대신 키오스크를 상대하고 있으며, 여행사 직원에게 알아서 일정을 짜 달라고 말하는 대신 각종 비교 사이트에서 최저가 호텔과 항공권을 검색하고 비교한다. 여행사 직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시대가 온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요즘은 제품을 사도 상세한 설명서가 들어있지 않다. 기업들은 설명서를 인쇄할 비용을 획기적으로 아낄 수 있었다. 간략 설명서에 그저 홈페이지에서 상세 설명서를 다운로드할 수 있다고 적어 놓고 파일을 올려두면 된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기계를 산 뒤 기본 간략 설명서에 만족한다. 3D프린터가 보급되면 이제는 A/S 기사가 오는 대신 고객이 직접 A/S가 필요한 부품을 인쇄해서 직접 수리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우리의 일은 정말 많이 증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 시대는 정보를 너무나 쉽게 제공하는 시대다. 심지어 내 개인 정보를 관리할 중요한 책임이 기업보다는 나 자신에게 있는 것 같다. 수많은 이용자들의 개인 정보가 유출되어도 너무 쉽게 넘어가는 반면, 내 실수로 해킹을 당하거나 정보가 유출당하면 그건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 되고 소중히 쌓은 계정을 잃을 수도 있다. 때문에 나는 내 정보를 열심히 지금처럼 열심히 올리면서 그 정보를 훔쳐 가지 않도록 열심히 백업하고 비밀번호도 변경해주면서 보호해야 한다. 무료로 무언가를 사용한다는 건 결국 내 정보를 그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적은 비용을 내고 그들이 원하는 빅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SNS 서비스는 나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내 정보가 상품이 되어 그들의 데이터 사업의 주요 아이템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그림자 노동이 삶에 깊숙이 침투한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소비자가 노동을 떠안는 추세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노동을 할지 안 할지는 여전히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이다. 내가 직접 서빙을 해야 하는 커피 전문점을 안 갈 수 있고, 돈을 더 들여 완제품 가구를 구입할 수 있으며, 여행사에 전화해서 원하는 상품을 추천받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아끼고 싶은 비용 혹은 서비스적 가치와 내 시간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판단이다. 기업이 사고 싶은 소비자의 시간을 어떻게 팔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