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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의 반격 - 디지털, 그 바깥의 세계를 발견하다
데이비드 색스 지음, 박상현.이승연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6월
평점 :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실재(實在)”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날로그는 유형의 물질이지만 디지털은 무형의 숫자이고, 아날로그는 소유하지만 디지털은 공유와 확산을 목표로 한다. 아날로그는 내게 속해있고, 디지털은 내 것임에도 어디에나 있다.
공유 경제는 우리 사회의 쓸쓸한 발전의 결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회의 효율성이 그렇게 향상되고 생산성이 그렇게 좋아졌는데, 우리는 소유할 물건을 살 능력도 안 되고, 소유한 물건을 둘 공간도 없다. 미니멀 라이프가 마치 쿨하고 멋진 것처럼 회차된다. 집에 무언가를 무겁게 쌓아놓기보다는 버리고 정리하라고 말한다. 쓸데없는 물건을 정리하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버리는 게 정말로 필요 없고 쓸데없어서인가? 혹시 소유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못해서는 아닐까.
인류는 근대에 들어서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노동 시간이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잡아먹기까지 한 시대를 보내왔다. 그리고 집에 있던 여성들까지 노동에 동참하지 않으면 한 가정을 부양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소유는 점점 사치가 되어갔는가. 그리고 그 반발이 나는 아날로그를 통해서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서 저자는 우리가 소유하고 싶어 했던 다양한 제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때로는 디지털로 인해 대체될 것만 같았던 산업을 이야기한다. LP 시장, 인쇄물, 노트, 오프라인 서점, 보드 게임, 필름 등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며 사양 산업이 되었다가 최근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분야들이다. 그리고 이런 아이템에만 멈추지 않고 저자는 교육, 실리콘 밸리, 구 공업지대와 같은 산업에서 아날로그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이야기도 설명한다.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 PC 시장은 금방이라도 시장을 삼켜버릴 것 같았고, 아마존의 킨들은 온 세상의 책을 다 독식할 것만 같았지만 이들의 발전은 어느 순간 답보 상태에 머물러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는 걸 좋아하고, 직접 손으로 잡는 독서를 즐긴다. 물론 데이터 처리와 정리 면에서 디지털 기기는 아날로그가 따라올 수 없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창의적인 무언가를 하는 작업에서 디지털이 첫걸음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첨단의 끝을 달리는 실리콘 밸리에서조차 아이디어는 종이에 적고 그리고 수정하면서 만들어진다.
LP 시장, 다품종 소량 생산의 인쇄물 시장, 고급화된 노트, 보드게임은 그 자체에서 주는 실재 가치로 인해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어 하고, 만지고 싶어 한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충족감은 디지털로는 채울 수 없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가 발전해도 우리의 삶은 아날로그다.
얼마 전 포스팅했던 오프라인 서점 역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도쿄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우리는 여행 가이드북을 사기 위해 여행 코너에 들른다. 하지만 아주 단순한 여행 가이드를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깊이 있는 큐레이션을 만나기는 힘들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여행이나 요리와 같이 특정 테마를 주제로 한 서점들이 생기고 있는데, 이들 서점의 핵심은 바로 큐레이션이다. 프라하를 여행하기 전 내가 HhHH를 읽었다면 훨씬 더 여행이 재밌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마존을 비롯한 그 어떤 알고리즘으로도 프라하 여행자에게 HhHH를 추천하지는 못한다. 넷플릭스의 영화 추천이 항상 내 취향을 빗나가는 이유도 같다. 하지만 사람이 있는 오프라인 서점은 큐레이션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디지털이 아날로그의 종말을 불러올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하며, 오히려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가 얼마나 유의미할 수 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시대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디지털은 완벽한 승자 독식 시대다. 사람의 일자리를 디지털로 채우고 소수의 설계자들이 많은 돈을 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소비할 능력마저 잃어버릴지 모른다. 오죽하면 국민들에게 기본적인 소득을 어떤 식으로든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논의가 일부 국가에서 나오고 있을까.
이 책의 아쉬운 점은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풀어내는 능력이 그에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원문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체의 분위기나 전체적인 문장의 구성이 읽으면서 불필요한 반복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용적으로도 본인이 취재한 내용을 순서대로 담고 있지만 이를 보다 잘 정리했으면 보다 읽기 쉬운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미국에서는 상당한 판매 부수를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기대에 비해서 내용을 풀어내는 것이 부족했다. 좀 더 읽기 쉬웠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생각의 전환점을 찾을 수 있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