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열린책들 세계문학 216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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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비교를 많이 하더군요. 그래서 겁나서 안 읽으려고 했습니다. 워낙이 박식한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진저리를 쳐서..양장으로 나온 개정판이 아니라 사전같이 설명이 주욱 달린 예전의 책을 읽은 터라..근데 얘기가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서..설마 에코 같을까..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오호..정말 재밌습니다. 명화와 체스의 교묘한 숨바꼭질..본 사건의 주인공들이 얽히는 얘기보다 중세의 그림속에 숨겨진 사건이 훨씬 짜릿하고 좋았습니다. 명화의 숨겨진 얘기가 아니라면 여러모로 평이한 딴 작품들보다 나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숨넘어가게 급박함을 요하는 상황이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속도감은 찾기 힘듭니다. 그래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사건을 풀어가는 주인공들이 사는 현재와 그림속 과거에 모두 존재하며 공간을 넓히고 시간을 뛰어넘어 서로를 이어주는 체스가 이채롭습니다. 그들속에 체스가 깊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체스의 수보다 훨씬 다양하고 극적인 수가 많으면서도 더 우아하고 관대하면서도 단호한 바둑을 소재로 한 근사한 추리소설이 한 권 읽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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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 카운티의 추억
로버트 제임스 월러 지음, 김훈 옮김 / 시공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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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프란체스카와 킨케이드의 이루지 못한 사랑은 안타까움에 애간장을 끓이는 체로 그냥 그대로 두었으면 전설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명확한 결론과 동화적인 결말이 아니면 어떻습니까..짙은 여운으로 곱씹을 수 있게 때 늦은 일이지만 매디슨 카운티의 추억은 안 나오는 게 여러모로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와중에 위로가 되는 건 킨케이드의 본인도 모르던 아들이 있다는 정도입니다. 프란체스카와 킨케이드의 어쩌면 절절한 만남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기대를 하시는 분이라면 분명 실망이 저와 같을 것 같습니다. 나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킨케이드에게 아들이 있다는 게 내게 왜 이렇게 위로가 되는지 알 수가 없군요. 아마도 주책스런 성격때문이겠지요.. 킨케이드의 젊은 날과 관련된 일들이 주축이니 제목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가령 젊은 날의 킨케이드 그를 말한다면 어떨까요.. 본인의 또 다른 주책이었습니다. 책을 덮고 내린 확실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아름다우면 아름다운체로..추하면 추한체로 두는 것은 온전한 아름다움을 지켜내기 위한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높은 경지의 자기 수양을 이룬 사람만이 해 낼 수 있는 가장 근사한 마무리이다.. 이상 개똥 철학을 근간으로 내린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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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비시선 121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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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처음 읽었던 때는 서른이 오기는 올까하고 생각하던 이십대였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서른을 예전에 넘기고 삼십대를 사는 여자이고 보니 시집이 달라보인다. 딱 부러지는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최영미의 시를 외우고 다니거나 하진 않지만 처음 읽었던 그 때도 최영미의 시가 좋았고 지금도 좋다. 좋은 이유중 가장 큰 이유는 솔직함. 이 여자 참 솔직하네 생각한 것이 여적이다. 이쁜 척 안하고 그냥 속내를 드러낸 것 같아서다. 나풀거리는 나비를 그리듯 유연하고 매끈하게 쓴 시도 좋지만 어디 솔직함으로 자신을 담아낸 시만 할까 하는 마음이 든다. 사랑시를 좋아하시는 우리 모친은 동감할 수 없겠지만..나는 최영미의 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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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티잔, 매혹의 여인들
수잔 그리핀 지음, 노혜숙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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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명시된 남녀평등 위에 사는 현대의 여성은 과거의 여인네들 보단 확실히 사람다운 모습과 품위를 갖추고 삽니다. 여전히 보이는 벽과 보이지 않는 벽속에서 자신을 찾고 나타내기 위해서 부대끼긴 하지만 말입니다. 부대끼는 세상속에서 여자의 아름다움은 축복인 동시에 걸림돌이기도 하죠. 어느 순간 나를 밀어주는 순풍이었다가 힘겹게 오르는 사다리에서 발목을 잡는 무거운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그 양면적인 성격을 띨 수 밖에 없는 여자의 아름다움은 그 옛날 과거의 여인들에겐 다시 없는 찬스였나 봅니다. 아름다움 자신을 세상에 던지고 동시대의 여인들이 가질 수 없고 누릴 수 없었던 자유와 부를 한껏 누린 여인들을 코르티잔이라고 한답니다. 부유한 남정네를 상대하고 사회속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 여자들을 코르티잔이라 부른다는 걸 오늘에사 알았군요.

코르티잔은 특별한 아름다움을 갖고 낮은 신분으로 태어난 여인들이 당연히 누려야할 사람의 권리를 조금이나마 행사하기 위해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아름다운 그녀들이 하는 일이니 전설이 생기고 아무개에서 아무개로 이어지는 계보도 생깁니다. 책 속에 언급된 코르티잔중 하나인 베로니카는 얼마전 영화속에 주인공이더군요. 영화에서 뭐라고 나온 것 같은데 그게 코르티잔인줄 몰랐습니다. 그냥 우리가 흔히 부르는 고급음음이라고 나와서...몸을 밑천으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저리 불린다해서 별 억울할 것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여자들에게 붙여지는 낮고 천한 표현의 성적인 저 말이 그리 유쾌한지 않습니다.

부르는 말이 달라지고 드러나는 모습이 변했다해서 코르티잔이 하던 일이나 일의 성격이 확 달라진 건 아닌가 봅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누구누구를 지칭하며 말을 할 수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여성의 자유와 존엄이 획득될 수 있었다면 더 없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정숙한 아내를 둔 남편을 상대로 호사를 누린 그녀들에게 돌 던질 마음은 안 생기네요. 물론 얻는 것 없이 잃기만 해야했던 같은 여자인 아내의 눈물이 걸리긴 하지마...모든 제약과 억압을 뛰어넘고 싶었던 그녀들의 방법에 동조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여성을 경시하는 시대속에서 어쩌면 그들은 사람다운 사람이고자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 패를 던지고 도박을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가장 크고 진한 인생이라는 게임에서..그 기개만은 높이 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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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산 21가지
이종호 / 새로운사람들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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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때 경주로 수학여행 간 기억이 나네요. 천마총의 돌들을 쓰다듬으며 이 돌이 천년을 넘게 왔단 말이지 하고 혼잣말 했던 생각도 나구요. 우리 문화하면 뭐든 제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 반대로 우리 문화하면 곰팡내나는 모든 것으로 치부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두 가지 경우 다 미처 다 알지 못 하는 무지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무지의 부덕을 놓고자 책을 읽었습니다. 너무 어렵게 깊지도 부족하게 얕지도 않습니다. 간혹 뭔 소린지 모르는 전문가적인 사실도 간혹 쓰여져 있기는 하지만 좋은 책입니다. 유익하게 봤습니다. 우리 문화..유형의 문화든 무형의 문화든 ..가 더 많이 알고 싶습니다. 이런 책을 통해서 조금씩 안내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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