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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없는 수영장 ㅣ 사계절 1318 문고 147
김선정 지음 / 사계절 / 2024년 8월
평점 :
김선정 작가의 "물 없는 수영장"은 청소년들의 시선에서 묻혀 있던 과거의 고통을 되짚어내며,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인간 중심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외면해온 생명들의 이야기, 특히 구제역 사태로 대량 살처분된 동물들의 비극적인 역사를 고발하며,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 사회의 비인간적 측면을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이 작품은 한적한 시골 고등학교의 ‘물 없는 수영장’이라는 기묘한 공간에서 시작되며, 이는 묻혀버린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품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에 최적의 장소라 생각됩니다. 웹소설 작가 지망생인 기현이 수영장에서 시작된 소문과 괴이한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이를 소재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지만, 점차 수영장과 연관된 과거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단순한 이야기 그 이상의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오래전 이곳에서 묻힌 수많은 생명들, 그 중에서도 특히 구제역으로 인해 살처분된 동물들의 아픔과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천천히 펼쳐집니다. 그들 앞에 드러나는 비밀은 단순한 학교의 기이한 사건이 아니라, 십여 년 전에 발생한 구제역 사태와 그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동물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청소년들이 자신의 시선으로 잊힌 역사를 다시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구제역 사태는 어른들이 이미 묻어버린 문제지만,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여전히 신선한 충격과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단순히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고자 했지만, 점차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게 되고 이를 밝히려는 적극적인 태도로 변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이 결국 현재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직면하고 해결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또한 구제역 사태로 인해 대량으로 살처분된 동물들의 이야기는 소설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태어나고, 또 인간의 선택에 의해 생명이 좌우되는 동물들의 운명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묻혀버리곤 합니다. 이 작품은 구제역이라는 비극을 통해,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 얼마나 비윤리적일 수 있는지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작가 김선정은 "눈 뜬 채 눈감은 생명들"이라는 표현을 통해, 인간이 외면해 온 동물들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우리는 그들의 생명이 하찮다고 생각하거나, 인간의 필요에 의해 희생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동물들 역시 인간과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 존재임을 상기시키며, 인간이 저지른 폭력의 대가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를 이야기합니다.
또한 동물뿐만 아니라, 그 사건에 연루된 인간들 역시 고통을 겪습니다. 살처분에 동원된 농장 노동자, 수의사, 그리고 이방인으로 취급받으며 차별받는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이들은 모두 구제역이라는 사건 속에서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며, 잊혀져야만 했던 존재들입니다. 특히 그 과정을 직접 경험한 수의사의 비극적인 죽음은 이 문제의 복합성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우리는 흔히 동물의 고통을 인간과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이 소설은 인간과 동물의 고통이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특히 수영장은 본래 사람들로 북적이며 활기찬 활동이 일어나는 장소지만, 이 소설의 수영장은 물이 빠진 채 방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묻힌 진실과 비극적인 역사를 상징합니다. 수영장이라는 장소는 실제로도 구제역 사태의 비극적 결과가 잠식된 공간으로 드러납니다. 이처럼 무언가를 숨기고 은폐한 공간은, 작품이 다루고자 하는 생명과 죽음, 그리고 책임의 문제를 더 강렬하게 부각시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청소년들의 역할입니다. 기현, 진호, 영리, 이 세 명의 주인공은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점차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의 이기심을 깨닫게 됩니다. 작가가 "오래도록 묻혀 있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는 과거의 비극이 더 이상 묻혀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새로운 세대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감추려 했던 진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되짚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책 속에서 아이들은 구제역 사태의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어른들로부터 진실을 듣고, 그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우리가 외면했던 생명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는 단순히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것을 넘어서, 모든 생명이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들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고통받는 존재들, 눈감아야만 했던 이들 모두가 구제되어야 한다는 이 책의 외침은, 오늘날 우리가 지닌 책임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죽음의 행진을 멈춰야 한다"(p.222)는 과거의 비극에서 눈을 돌리지 말고, 더 나은 세상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이자 호소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구제역 사태는 현재 청소년들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지만, 그들이 이 사건을 통해 배우는 것은 결국 미래의 사회를 책임지게 될 자신들의 역할입니다. 또한, 소설 속 주인공들이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사건을 파헤쳤지만, 점차 자신들이 드러낸 진실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청소년들에게 문제 해결의 과정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또한, 이 소설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수많은 동물이 무참히 살처분된 사건은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을 어떻게 무시하고 경시해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동물들이 겪은 고통은 단순한 방역 조치가 아닌, 생명에 대한 경시와 착취의 산물임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동물이나 다른 생명을 쉽게 간과하고 있지만, 이 소설을 통해 모든 생명은 존엄하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가치를 다시 한번 새기게 됩니다. 이는 청소년들이 사회와 자연, 그리고 생명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물 없는 수영장"이라는 작품을 통해 청소년들은 잊힌 비극과 함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어른들이 감추고 외면했던 문제들을 아이들이 드러내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존엄성과 그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우는 이 책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청소년들의 인식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