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 숍앤센터
설재인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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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교보문고 VORA (@kyobobook_vora )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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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으로 인간이 되는가.
몸인가, 마음인가, 아니면 타인을 대하는 태도인가.

설재인 작가의 《셸리 숍앤센터》는 버려진 인체 기관을 조합해 만들어진 생명체 ‘프랑’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순간이동에 버금가는 교통수단 웨일홀의 부작용으로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그렇게 버려진 인체 기관들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는 설정부터 파격적이다. 여기에 인간의 취향에 맞춰 제작되고, 사랑받다가 버려지며, 심지어 죽은 뒤에도 재활용되는 프랑의 세계가 더해진다.

처음에는 기괴한 신체 묘사와 파격적인 세계관이 시선을 사로잡지만,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불편함의 정체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프랑의 모습이 낯설고 기이하게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 그들을 그렇게 만든 인간 사회가 더 섬뜩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몸이 조각나고 찢기는 공포보다 더 무서운 것은 누군가의 고통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고, 자신의 필요가 사라지는 순간 그 존재의 가치마저 없애버리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프랑은 인간이 버린 신체 기관을 재료로 만들어진다. 어떤 프랑은 팔이 여덟 개이고, 어떤 프랑은 코가 여러 개이며, 인간과 거의 구별할 수 없는 외형을 가진 존재도 있다. 인간은 자신의 취향에 맞춰 프랑을 주문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반려의 모습으로 소비한다. 하지만 그 사랑에는 분명한 조건이 붙어 있다. 인간이 원하는 모습이어야 하고, 인간의 말을 따라야 하며, 인간에게 쓸모가 있어야 한다.

이 설정을 보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소유욕에 대해 생각했다.

반려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의 생활 방식에 맞춰 행동하기를 바라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기를 기대한다. 물론 현실의 반려동물과 소설 속 프랑을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를 독립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대상으로만 바라볼 때, 사랑은 얼마든지 통제와 소유의 형태로 변할 수 있다.

특히 프랑을 설명하는 광고 문구인 '개보다 나은 프랑'은 이 세계의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훈련하기 쉽다는 점이 프랑의 장점으로 내세워진다. 여기에는 생명체의 가치를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지에 따라 평가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사랑받을 만한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세계.
쓸모가 없어진 순간 사랑받을 자격까지 사라지는 세계.

프랑의 비극은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은 프랑을 만들었지만,
그들이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지 결정할 권리까지 정당하게 갖게 된 것일까. 창조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대로 소유하고, 이용하고, 폐기해도 되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은 소설 속 가상의 생명체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쓸모없거나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간 여자아이와 똑같이 생긴 프랑 노엘과 거대한 몸집에 거친 성격을 지닌 프랑 허슬이 있다. 노엘은 인간과 닮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하고, 허슬은 인간의 기준에서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위협적인 존재처럼 취급된다. 두 존재는 외형부터 성격까지 대조적이지만, 인간이 정해놓은 질서 속에서 상처받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노엘의 고민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과 똑같이 생겼다면 인간일까? 인간의 뇌를 가졌다면 인간일까? 생각하고 분노하고 사랑하고 고통을 느낀다면, 그 존재를 인간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노엘이 느끼는 혼란은 인간이라는 범주가 얼마나 견고한지 묻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과 프랑의 차이를 구분하는 기준이 외형이라면, 노엘은 그 기준을 흔드는 존재다. 하지만 인간과 비슷한 얼굴을 가졌다고 해서 노엘이 인간 사회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닮음은 정체를 감춰야 하는 이유가 된다.

책 속에서 노엘은 이렇게 생각한다.
🔖“프랑임을 숨겨야 했지만. 그것은 프랑 때문이 아니라 오롯이 인간들 때문이었다. 인간들이 자신을 소름끼쳐 할까 봐.”

자신이 누구인지 부끄러워서 숨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두려워 숨겨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존재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데도 세상의 시선 때문에 자신을 감추고, 자신의 모습을 부정해야 하는 상황은 얼마나 외로울까.

종종 차별받는 사람에게 왜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정작 돌아봐야 할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배척하는 사회일 것이다.

다름은 그 자체로 잘못이 아니다.
다름을 이유로 타인을 밀어내는 시선이 문제다.

허슬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질문을 드러낸다. 거대한 몸과 거친 말투, 폭력적인 행동 때문에 쉽게 위협적인 존재로 보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다. 노엘을 괴롭히는 존재처럼 보이면서도 다른 이들이 노엘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함께 고통을 겪은 존재로서 노엘과 연결된다.

이들의 관계는 우정이라고 부르기에는 거칠고, 애정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모순적이다. 그러나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같은 세계의 폭력에 맞서게 된다는 점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서로 닮아서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임에도 같은 고통을 알아보기 때문에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

노엘과 허슬의 관계는 연대가 반드시 온화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때로는 분노와 불신, 충돌을 거쳐서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기도 한다.


작품에서 인간다움을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 있다.
🔖“혹시 인간을 공격한다는 죄책감이 든다면 마음을 편히 먹으렴. 그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하니까, 괜찮아.”

노엘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인물의 태도는 겉으로는 이해와 허용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엘은 속으로 되묻는다.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은 인간답나요?”

인간은 자신을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성과 도덕성, 공감 능력, 언어와 사회성 같은 특성을 인간다움의 근거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과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은 다르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한 것은 아니며,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악한 것도 아니다.

소설 속 인간들은 프랑에게 충성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프랑을 학대하고, 사랑을 말하면서 필요에 따라 버리며, 생명을 만들어내면서 그 생명이 겪는 고통에는 무관심하다.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는 프랑을 사랑스러운 반려라고 부르지만, 불편해지는 순간에는 통제하고 처분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한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은 인간이라는 신체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는 것일까.

인간다움이란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대하는 태도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에게 친절한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런 보상을 돌려주지 못하는 존재, 자신과 다르게 생긴 존재,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존재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윤리적 태도가 드러난다.

물론 인간다움을 단 하나의 기준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고, 자신의 힘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으며, 상대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려는 태도는 중요하게 여길 만한 가치일 것이다.

그래서 노엘의 질문은 프랑에게 인간의 자격을 부여해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독점해온 그 자격이 과연 정당한지 묻는 반문에 가깝다.

인간이 프랑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려면, 그 우월함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이름만으로 충분하다면, 인간다움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버려진 프랑의 입양 절차와 과거의 동물 입양에 관한 이야기가 대비되는 대목이었다.

🔖“당신은 인간인가? 인간다운가? 인간답다는 개념을 알고 있는가? 끝까지 인간답고 싶은가?”

과거에는 유기된 개와 고양이를 입양할 때도 복잡한 문답을 거쳐야 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질문들은 어느 순간 인간에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

이어지는 질문은 더욱 묵직하다.
🔖“왜 유기된 프랑들은 이렇게 죽고 '재활용'되어야 하는가? 왜 인간다움에 대한 문답은 더 이상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는가? 아니, 애당초 '인간답다'는 게 뭔가? 인간이 뭔가?”

이 대목을 읽으며 기준을 만드는 사람과 그 기준으로 평가받는 사람 사이의 권력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는 규칙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 규칙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누군가는 판단하는 자리에 서고, 누군가는 판단받는 자리에 머문다. 그리고 그 기준이 불공정하더라도 권력을 가진 쪽이 그것을 정상적인 질서라고 주장하면, 차별은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진다.

작품 속 프랑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지만, 정작 자신들의 삶을 결정할 권리는 갖지 못한다. 인간은 프랑을 소유할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하면서도 프랑에게 인간을 대할 때와 같은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는 편견을 넘어선다. 한쪽은 다른 쪽의 존재 가치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다른 쪽은 그 판단에 저항할 수단마저 제한당한다.

차별이 무서운 이유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에만 있지 않다. 차별이 제도와 관습, 경제적 이해관계와 결합하면 폭력은 개인의 악의가 없어도 반복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잔인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세계가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인간들은 프랑을 괴롭히는 행위를 악행으로 여기기보다,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허용된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프랑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프랑의 쓰임을 정하는 것도 인간이며, 프랑이 버려진 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도 인간이다.

그렇다면 프랑에게 필요한 것은 친절한 주인이 나타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주인의 선의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구조 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더 근본적인 변화일 것이다.


노엘과 허슬이 자신들을 파괴하려는 세계에 맞서기로 결심하는 과정은 작품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들의 저항은 복수하고 싶다는 욕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삶을 다른 존재가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 안에 자리한다.

노엘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면서도, 그보다 더 근본적인 확신을 얻으려 한다.
🔖“나는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확증을 얻고 싶어.”

이 말은 노엘이 인간과 프랑 사이에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압축한다. 인간과 같은 얼굴을 가졌다는 이유로 인간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 확인하려는 것이다.

노엘은 인간이 인간을 쉽게 죽이지 않는다는 말과, 프랑을 손쉽게 죽이는 현실 사이의 모순을 마주한다.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간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은 노엘의 선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억압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것은 정당한 자기방어일 수 있지만, 저항의 과정에서 폭력이 반복된다면 그다음에는 어떤 세계가 만들어질 것인가.

작품은 이 문제를 단순하게 정리하지 않는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아주 느리게.”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은 흔히 비극이 되풀이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여기서 더 생각해볼 것은 반복되는 것이 사건 자체인지, 아니면 사건을 만들어내는 구조인지에 관한 문제다.

지배하는 존재와 지배받는 존재가 바뀌어도 누군가를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불평등한 권리를 부여하며,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과거의 비극은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될 수 있다.

그러므로 혁명은 권력을 빼앗아오는 일로 끝나서는 안된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이전의 질서에서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새롭게 얻은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도 기존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장면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이후에 어떤 세계가 가능할지 질문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억압받던 존재가 권력을 얻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세계에서도 누군가는 타인을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싶어 할 수 있다. 누군가는 더 많은 권리를 원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얻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다른 존재의 자유를 제한하려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진정한 해방은 지배자의 자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마음대로 결정할 권리가 누구에게도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흔히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차이를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가진 존재를 마주하면 누구나 낯섦을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낯섦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낯섦을 이유로 상대의 권리를 빼앗지 않는 태도를 배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존중은 무엇일까.

상대가 나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친절하게 대하는 것일까.
상대가 나와 비슷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존재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를 인정하는 것일까.

나는 마지막에 가까운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를 좋아할 수는 없다. 모든 차이를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함부로 대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존중은 반드시 호감에서 출발할 필요가 없다.

프랑의 세계는 이 사실을 불편할 정도로 선명하게 드러낸다.
인간이 프랑을 사랑하는지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프랑을 사랑하지 않을 때조차 그들의 존재와 삶을 존중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셸리 숍앤센터》를 읽고 남는 것은 인간다움이라는 말의 무게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다운 것은 아니다.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은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끊임없이 질문받아야 하는 가치가 아닐까.

물론 타인을 존중한다고 해서 언제나 선한 선택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의로 시작한 행동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정의를 위한 저항도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인간다움은 한 번 획득하면 영원히 유지되는 자격증처럼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계속해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봐야 한다.
옳다고 믿는 기준이 누군가를 부당하게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질서가 다른 존재의 고통 위에 세워져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다운 것일까,
아니면 인간답게 행동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존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부터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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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오디세이아 (스키버 금장 에디션, 한정판) - 1616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오디세이』 원작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호메로스 지음, 장혜민 옮김 / 더스토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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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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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읽기 위해 소장하고, 어떤 책은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미르북컴퍼니에서 출간한 《초판본 오디세이아》는 그 두 가지 기쁨을 모두 기대하게 하는 책이다.

《오디세이아》가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날까지 읽히는 이유는 오디세우스의 모험이 신과 괴물, 영웅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오디세우스. 그가 겪는 방황에는 전쟁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 고통이 있고, 무수한 유혹을 지나면서도 놓지 못하는 그리움이 있으며,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되찾고 싶은 자신의 삶이 있다.

고전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질문이 지금도 낡지 않았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트로이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는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영웅이다. 트로이 목마의 계략으로 전쟁의 흐름을 바꾼 인물이지만,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그의 삶까지 평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10년이라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오디세우스에게 트로이아 전쟁의 승리는 분명 위대한 성취였지만, 그것만으로 아내와 아들을 기다리게 한 세월을 없앨 수는 없었다. 그가 마주한 바다는 전쟁이 남긴 상실과 후회, 인간의 한계, 그리고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막막함까지 품고 있다.

그래서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읽을 때 영웅의 승리보다 승리 이후의 시간이 더 궁금해진다. 누구나 박수받는 순간을 꿈꾸지만, 정작 삶을 결정하는 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견디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의 매력은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지혜로운 인물이지만 언제나 현명한 판단만 내리는 것은 아니다.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기지를 발휘해 살아남고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며 명예를 과시하는 바람에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게 된다.

이 장면은 영웅의 위대함과 인간의 나약함이 얼마나 가까이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살아남는 데 성공한 순간에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는 욕망 때문에 더 큰 고난을 자초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비슷하다. 잘못을 인정하면 끝날 일을 자존심 때문에 복잡하게 만들고, 이미 충분히 해낸 일 앞에서도 다른 사람의 인정을 갈구한다. 때로는 옳은 선택을 했다는 확신이 오히려 자신의 실수를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디세우스는 신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그들의 분노를 사기도 하며, 뛰어난 지략으로 위기를 넘기면서도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문제에 발목을 잡힌다. 이러한 모습은 그를 멀리 있는 신화 속 영웅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결함을 지닌 인간으로 느끼게 한다.

지혜란 한 번도 실수하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이 흥미로운 이유 역시 그가 언제나 옳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과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아 다시 길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에는 그를 붙잡는 수많은 유혹이 등장한다. 키르케와 세이렌, 칼립소의 섬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그중에서도 칼립소의 섬에 머무는 이야기는 유독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영원한 삶과 안락함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지더라도,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과 같지 않다면 어떨까.

불멸은 인간에게 매혹적인 선물처럼 보인다. 늙지 않고 죽지 않으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누구나 행복할 것 같지만, 오디세우스에게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일이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있는 삶을 되찾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행복의 조건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환경을 갖추는 것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은 반드시 같지 않다. 겉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여도 마음이 머물 곳을 찾지 못한다면, 그 삶은 과연 온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는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해 주는 관계와 기억, 책임과 시간이 있다. 그가 돌아가려는 것은 풍경 속에서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다. 그렇기에 그의 귀향은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선택에 가깝다.

물론 고향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과거와 똑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디세우스가 떠나 있는 동안 세상은 변하고,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긴 시간을 견뎌야 했다. 돌아온다는 것은 달라진 현실 속에서 다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일이다.

어쩌면 인간이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곳은 과거의 어느 한순간이 아니라, 그곳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인지도 모른다.


인내라는 말은 무언가를 참고 견디는 태도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긴 여정을 생각하면 인내는 아픔을 참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향하는 방향을 잃지 않는 것, 당장 편안해질 수 있는 선택 앞에서도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무너질 듯한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인간은 언제나 강할 수 없다.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티는 것이 반드시 훌륭한 인내인 것도 아니다. 때로는 지치고 흔들리는 자신을 인정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강인함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무감각함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가깝게 다가온다.

인간에게도 각자의 바다가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걱정과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아쉬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건너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필요한 것은 언제나 흔들림 없는 의지가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다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작은 이유일 것이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견디는가. 고통 그 자체를 견디는 것이 목적일 수는 없다.
견딘다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다. 오디세우스에게는 이타카가 있었고, 그곳으로 돌아가려는 간절함이 있었다.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언제나 도착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고 있다면 길을 잃었을 때도 다시 방향을 찾을 가능성이 생긴다. 반대로 아무리 좋은 환경에 머물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마음은 쉽게 방황할 수 있다.


여행하는 인간, Home Viator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설명하는 말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표현은 'Home Viator', 곧 돌아갈 곳을 향해 길을 떠나는 여행하는 인간이라는 개념이다.

여행은 익숙한 곳을 벗어나 낯선 세계를 경험하는 일이다. 새로운 풍경을 보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과 마주한다. 그러나 모든 여행이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여행은 내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인지 깨닫게 하고, 어떤 여행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삶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오디세우스는 수많은 장소를 거치지만 결국 이타카를 향한다. 그에게 여행은 낯선 세계를 정복하는 일이기보다, 낯선 세계를 통과하며 자신의 삶을 다시 이해하는 과정에 가깝다.

사람 역시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여러 번 떠나고 돌아온다. 어린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고, 익숙했던 관계가 달라지고, 이전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한때는 반드시 얻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을 내려놓기도 하고, 잊고 지냈던 마음을 다시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돌아갈 곳은 처음 떠났던 자리와 완전히 같을 수 없다. 나 자신이 이미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편안했던 곳이 더 이상 편안하지 않을 수도 있고, 멀리 떠나온 뒤에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 것도 있다.

그러므로 귀향의 의미는 변화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달라진 세계 속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자리를 찾는 데 있다.


고전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읽을 가치가 생기는 책이 아니다. 시대와 문화가 달라졌음에도 인간의 본질적인 고민을 건드리기 때문에 계속해서 읽힌다.

《오디세이아》에는 신들의 개입과 괴물과의 싸움, 초자연적인 사건이 가득하다. 오늘날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두려움과 욕망, 자존심과 후회, 사랑과 상실은 지금도 낯설지 않다.

더 이상 세이렌의 노래를 피해 항해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자신을 유혹하는 수많은 선택 앞에 선다. 포세이돈이 일으키는 폭풍을 만나지 않더라도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흔들린다.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히지 않더라도 스스로 만든 실수 때문에 곤란해질 때가 있다. 신화의 세계와 현실의 모습은 다르지만, 그 안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마음은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번 《초판본 오디세이아》는 이러한 문학적 가치에 더해 책 자체를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마음까지 불러일으키는 에디션이다. 가죽 양장과 금박, 역사적인 표지 디자인의 재해석은 고전을 읽는 경험에 시각적이고 물질적인 즐거움을 더한다. 여기에 상세한 도판과 해설, 현대 독자를 고려한 번역이 더해진다는 점도 앞으로 이 작품을 접하는 독자들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오디세이아》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삶에서 무엇을 성취했느냐보다 무엇을 잃지 않으려 했느냐는 질문이다.

오디세우스는 수많은 위기를 넘기고 마침내 고향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고난 끝에 성공을 거둔 영웅의 이야기로만 읽는다면, 그 긴 방랑이 품은 의미를 충분히 바라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돌아오기 위해 떠났고, 돌아가는 동안 수많은 것을 잃었으며, 그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다시 자신의 삶과 마주한다. 귀향은 여정의 끝이지만, 동시에 앞으로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며, 잃어버린 것을 되찾았다고 해서 지나간 시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시간을 통과한 자신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다면, 방황의 시간마저 새로운 의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돌아갈 곳을 찾는 이유가 반드시 과거가 그리워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다시 살아갈 가능성을 믿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달라진 자신으로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다시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오디세우스의 바다는 끝없는 고난의 공간이지만, 그가 귀향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곳은 동시에 가능성을 품은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마음에 남는 것은 마지막까지 돌아갈 곳을 잊지 않았던 한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은 언제나 강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지치고, 흔들리고, 잘못된 선택을 하면서도 다시 나아갈 이유를 찾기에 살아갈 수 있다.

떠나온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삶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 길을 지나온 내가 다시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찾는 것, 그것이 인간이 평생에 걸쳐 이어 가는 귀향의 의미일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긴 항해는 끝나지만,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는 인간의 여정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리고 언젠가 각자의 바다를 건너며, 자신만의 이타카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 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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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쫄지 마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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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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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맞서며,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사람들. 그런데 만약 그 믿음이 어느 순간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명분으로 변한다면 어떨까. 자신이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면?


이번 작품에서 만나는 홀리 기브니는 서로 다른 이유로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들 사이에서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고, 눈앞에 닥친 위험을 막아야 하는 사람이다. 한쪽에서는 잘못된 판결로 무고한 죽음을 초래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겠다며 또 다른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려는 범인이 등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성 인권 운동가를 향한 집요한 스토킹과 테러 위협이 이어진다.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두 사건을 움직이는 힘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의 믿음이 옳다는 확신이다.
누군가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살인을 계획하고, 누군가는 종교적 신념과 개인적인 적대감을 앞세워 타인을 위협한다. 자신이 믿는 가치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타인의 삶과 선택은 더 이상 존중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제거하거나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바뀐다.

이 지점이 《절대 쫄지 마》를 연쇄 살인 미스터리 이상의 작품으로 느끼게 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책에서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은 범인이 자신의 살인을 악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무고한 사람이 부당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또 다른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잘못된 판결과 억울한 죽음이라는 문제의식 자체를 따져 보기 전에, 그가 선택한 해결 방식부터 이미 모순에 빠져 있다.

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과연 정의일까?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일과 죄 없는 사람을 희생시켜 고통을 되돌려 주는 일은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도 범인은 자신의 행동을 속죄라고 부른다. 자신의 폭력을 정의로운 행위로 해석함으로써 죄책감마저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특히 다음 문장은 작품의 비틀린 논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나는 열세 명의 죄 없는 자와 한 명의 죄지은 자를 살해할 것이다. 그로써 죄 없는 자의 죽음을 초래한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속죄 행위다.”

마지막에 놓인 ‘속죄 행위’라는 표현이 무섭다. 속죄는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데서 출발해야 하지만, 이 인물에게 속죄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다. 자신의 논리에 맞지 않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희생자를 만들어 내면서도, 그 결과를 정의의 실현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소설 속 범죄자만의 특이한 논리로 치부하기 어렵다. 현실에서도 누군가의 잘못을 알게 되면 분노가 먼저 앞설 때가 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합당한 처벌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분노가 커질수록 사실을 확인하기보다 먼저 비난하고, 책임을 묻기보다 응징을 원하며, 때로는 잘못과 무관한 사람에게까지 적대감을 확장하기도 한다.

물론 분노와 범죄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다만 분노가 정의를 대신하고, 응징이 책임을 대신하기 시작할 때 어떤 위험이 생기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절대 쫄지 마》는 정의로운 목적이 언제나 정의로운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도 타인의 생명을 수단으로 삼는 순간, 그 명분은 스스로의 정당성을 무너뜨린다.

작품에 등장하는 블랙스톤 원칙은 형사사법에서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는 일을 얼마나 경계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죄 없는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설은 이 원칙을 뒤틀어 놓은 범인의 논리를 통해 사법 제도의 오류가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실제로 잘못된 판결이 발생하고, 증거 조작이나 권력의 개입으로 진실이 가려진다면 그 피해는 한 사람의 삶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피해자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 사건을 담당한 사람들, 그리고 사법 제도를 신뢰했던 사회 전체에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렇다고 사법 제도의 잘못을 바로잡는 방법이 사적 제재가 될 수는 없다.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증거를 재검토하고, 책임을 규명하며, 정해진 절차를 통해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사법 제도의 오류를 이유로 또 다른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은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아니라 잘못을 반복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범인의 논리는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다. 죄 없는 사람의 죽음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를 세상에 증명하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진실은 밝혀지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그가 정말로 정의를 원했다면, 왜 또 다른 피해자가 필요했을까?

작품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진실과 권력의 관계다. 잘못된 판결의 배경에는 증거를 조작한 사람이 있고, 그 진실은 뒤늦게 세상에 드러난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졌다는 사실과 잘못된 결과가 바로잡힌다는 사실은 다르다.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홀리 기브니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녀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완벽한 영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두려움과 부담을 마주하고,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다고 해서 위험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이번 작품에서 홀리는 연쇄 살인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는 동시에 여성 인권 운동가 케이트 매케이를 향한 위협에도 대응해야 한다. 두 사건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하나는 이미 벌어진 살인과 그 뒤에 숨은 논리를 추적하게 하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테러를 막기 위해 시간과 싸우게 한다.

독자는 범인의 정체와 다음 희생자를 궁금해하면서도, 홀리가 각각의 위험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할지 지켜보게 된다. 사건이 복잡해질수록 중요한 것은 눈앞에 드러난 사실을 성급하게 단정하지 않고, 서로 다른 단서의 연결고리를 살피며, 위협받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판단을 이어 가는 태도다.

이런 점에서 홀리가 작품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범죄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절대적인 진리처럼 내세운다면, 홀리는 그 신념에 휩쓸리지 않고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사실인지, 누가 옳다고 주장하는지가 아니라 누가 실제로 피해를 입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제목인 《절대 쫄지 마》는 공포에 압도되어 판단을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로도 다가온다. 두려움이 없어서 용감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있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놓지 않는 것. 홀리의 활약에서 발견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그런 종류의 용기일 것이다.


범죄와 추적이 중심인 이야기 속에서 유독 오래 시선이 머무는 문장도 있었다.

🔖“엄마의 딸이 되어 드릴게요.” 그는 엄마의 가슴에 기대고서 말했다. “엄마의 아들도 되어 드릴게요. 저는 둘 다 될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 딸이 되고 아들이 된다는 말은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사랑과 위로를 기꺼이 건네겠다는 약속처럼 들린다. 가족이라는 관계가 반드시 하나의 역할이나 형태로만 규정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에게 중요한 것은 정해진 이름표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과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문장이 살인과 증오, 왜곡된 신념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 속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한쪽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누군가의 마음에 기대어 자신이 줄 수 있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의 믿음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마음을 내어 주며 타인을 지탱하려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아닐까.

이 문장은 사건의 소음 속에서도 인간적인 마음이 얼마나 깊은 울림을 남길 수 있는지 생각하게 했다.


쫄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책 속 문장 중에서는 다음 구절도 제목과 함께 기억하고 싶다.

🔖“막판까지 깡으로 버텨야 해. 쫄지 말고, 한눈팔지 말고.”

살다 보면 두려움 때문에 결정을 미루거나,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결과를 알 수 없어서 불안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 지치기도 한다. 그럴 때 쫄지 말라는 말은 지금 마주한 현실에서 시선을 돌리지 말라는 당부처럼 느껴진다.

홀리가 마주하는 범죄는 개인의 용기만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증거를 확인하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위험을 예상하며, 필요한 순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제목의 메시지는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는 태도의 의미로 읽혀졌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 싶어 한다. 억울한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진실이 밝혀지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책임을 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분노가 판단을 대신하고, 복수가 정의를 대신한다면 처음에 지키고 싶었던 가치마저 훼손될 수 있다.

죄 없는 사람의 죽음이 잘못이라고 주장하면서 또 다른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일.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논리에 맞지 않는 사실은 외면하는 일. 신념을 지키겠다며 다른 사람의 선택과 삶을 부정하는 일. 이 모든 모순은 자신이 옳다는 확신만으로는 올바른 행동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며 정의란 잘못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며, 책임을 물을 때조차 또 다른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의를 바로잡겠다며 또 다른 죄를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그 폭주를 막기 위해 끝까지 진실을 추적하는 홀리 기브니. 《절대 쫄지 마》는 정의가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서늘한 질문을 남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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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주 투자의 모든 것 - 단돈 100만 원으로 월 30만 원 버는
배지원.노우진 지음 / 다산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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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단맘 (@gbb_mom ) 님의 서평단 모집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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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투자를 시작하려고 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내가 이걸 알아볼 수 있을까?”에 가까울 것이다.

차트를 보는 법도 모르고, 재무제표는 어렵고, 경제 뉴스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기업과 산업 이야기가 쏟아진다. 게다가 어렵게 모은 돈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있다면 매수 버튼을 누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것은 공모주를 ‘상장 첫날 팔아서 수익을 내는 투자’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액으로 시작해 공모주 청약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경험을 해보고, 그 과정에서 기업을 바라보는 눈과 투자 판단력을 조금씩 키워가는 방법으로 접근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공모주를 주식시장에 처음 들어가는 사람을 위한 하나의 ‘연습장’처럼 바라본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공모주를 두고 🔖“주식이라는 낯선 나라에 입국하기 위해 거치는 가장 안전하고 친절한 입국 심사대”라고 표현한다.

이 표현이 재미있으면서도 책의 성격을 꽤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느꼈다.
주식 투자는 처음부터 거창할 필요가 없다. 적은 금액으로 청약하고, 기업을 살펴보고, 배정 결과를 확인하고, 상장 이후 주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투자라는 행위의 흐름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모주는 안전하다’고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책에서도 공모주 시장의 과거 논란과 기업가치에 대한 문제를 함께 다룬다. 공모가가 항상 싸다고 볼 수도 없고, 모든 신규 상장 기업이 좋은 투자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공모주 역시 주식이고, 투자에는 손실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느껴진 부분은 ‘무엇을 보고 투자할 것인가’였다.


공모주를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 의무보유확약 같은 단어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숫자를 알고 있다고 해서 그 숫자의 의미까지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책은 어느 증권사에서 청약하는 것이 유리한지, 균등배정과 비례배정은 어떻게 다른지, 기관의 의무보유확약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을 통해 같은 공모주라도 투자자가 어떤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히 경쟁률만 보고 청약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공모주 투자를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당연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 투자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주식이나 공모주 관련 콘텐츠를 보다 보면 “이번 공모주는 꼭 청약해야 한다”, “이 종목은 패스해야 한다”는 결론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의 결론만 따라가다 보면 정작 내가 왜 투자했는지는 남지 않는다.

수익이 나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게 되고, 손실이 나면 무엇을 잘못 판단했는지 알 수 없다.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판단의 근거를 축적하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말하는 공모주 투자는 그래서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몇십만 원으로 균등배정을 경험하는 것에서 시작해도 되고, 경험이 쌓이면 기업의 사업 내용과 공모가, 수급 등을 더 깊이 살펴볼 수도 있다.

투자의 깊이를 처음부터 크게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장에서 다루는 산업의 흐름과 정부 정책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특히 🔖“정부 정책에 맞서지 마라.”라는 문장에 이어지는 설명은 투자에서 정책을 자금의 이동이라는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어떤 산업에 정부의 지원이 집중되는지, 어떤 분야에 규제가 완화되는지, 국가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기업과 자본이 움직이는 방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공모주 투자가 ‘청약 날짜를 찾아서 돈을 넣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AI, 로봇, 반도체, 바이오, 플랫폼 등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받는 산업을 이해하고, 그 산업 안에서 실제로 경쟁력을 가진 기업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모주 투자 역시 작은 경제 공부의 과정이다.
기업 하나를 보기 위해 산업을 보고, 산업을 보기 위해 정책과 시장을 보고,
다시 그 안에서 기업의 사업모델과 숫자를 들여다보게 된다.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부분은 기업의 ‘상장 이유’를 살펴보라는 내용이었다.

성장하는 기업이 더 큰 도약을 위해 IPO를 한다고 흔히들 생각한다. 하지만 기업이 상장하는 이유가 언제나 성장자금 확보 하나로만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는 IPO가 기업 입장에서 비용과 부담을 수반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기존 투자자의 투자금 회수나 지배구조 등의 문제도 상장 배경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부분은 기업을 바라볼 때 겉으로 드러난 성장 스토리만 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AI 기업”, “혁신적인 플랫폼”, “미래 산업의 핵심 기업” 같은 화려한 단어는 투자자의 기대를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투자자가 돈을 넣는 곳은 이야기가 아니라 기업이다.

그 기업이 무엇으로 돈을 벌고 있는지, 성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공모가가 적정한지, 기존 주주와 신규 주주 사이의 이해관계는 어떤지까지 살펴봐야 한다.

좋은 산업에 속해 있다는 것과 좋은 투자 대상이라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모주 투자의 또 다른 재미는 일반적인 주식 투자와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같은 종목을 청약하더라도 어느 증권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배정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배정 물량과 청약자 수가 증권사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책에서도 🔖“같은 공모주에 청약하더라도 증권사마다 배정 물량과 청약자 수가 달라 경쟁률에 차이가 생기고, 결국 같은 돈을 넣고도 받을 수 있는 주식 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투자라는 것이 ‘무엇을 사느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선택할지 → 얼마를 넣을지 → 어디에서 청약할지 → 언제 팔지 → 계속 보유할지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투자 판단이다.

특히 소액 투자자에게는 이런 작은 차이가 더 중요할 수 있다. 투자금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수익률 몇 퍼센트를 높이는 것보다 제한된 자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메시지는 거창한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시작은 가볍게, 판단은 점점 깊게 해나가시면 됩니다.”

나는 이 문장이 이 책 전체를 가장 잘 대변한다고 느꼈다.
투자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장벽은 ‘모르면 시작할 수 없다’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부터 기업의 재무제표를 완벽하게 분석할 필요는 없다. 작은 금액으로 경험하고,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하나씩 공부하고, 다음 투자에서 조금 더 나은 판단을 해보는 과정도 충분히 의미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수익 자체만이 아니다.
왜 이 종목을 선택했는지, 왜 팔았는지, 왜 보유했는지 기록하다 보면 나만의 투자 기준이 생긴다.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투자 근력’의 시작일 것이다.


《공모주 투자의 모든 것》은 제목만 보면 공모주 청약의 기술을 알려주는 실전 투자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조금 다른 책으로 보인다.
공모주는 하나의 수단이고, 더 중요한 것은 투자자가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갖도록 만드는 것에 가깝다.

소액으로 시작해서 기업을 살펴보고, 공모가와 기업가치를 비교하고, 수요예측과 경쟁률을 해석하고, 상장 이후 시장의 반응을 확인한다.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가 아니라
‘나는 이 기업의 이 부분을 보고 판단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 변화가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성장일 것이다.


🤔 나는 지금까지 투자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왔을까?

누군가 추천해서 샀던 것은 아니었는지, 높은 수익률이라는 말에 흔들렸던 것은 아닌지, 기업의 이름이나 유명세만 보고 판단했던 것은 아닌지.

공모주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청약 버튼을 누르기 전에
“나는 왜 이 기업에 투자하려고 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일 것이다.

그 질문에 나만의 근거를 가지고 답할 수 있다면, 설령 결과가 예상과 달라지더라도 그 투자는 다음 판단을 위한 경험으로 남는다.

투자에서 처음부터 큰돈을 벌겠다는 마음보다, 작은 돈으로 시작해 한 번의 판단을 배우고, 또 한 번의 판단을 쌓아가는 태도.

《공모주 투자의 모든 것》은 바로 그 느리지만 단단한 투자 습관을 이야기하는 책처럼 느껴졌다.

공모주에 관심은 있지만 무엇부터 공부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 주식 투자를 시작하고 싶지만 손실이 두려운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남의 추천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으로 투자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해드린다.

오래 살아남는 투자자는 매번 대박을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을 계속 수정하고 배워가면서 시장에 남아 있는 사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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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재테크 교과서 - 스스로 완성하는 자산관리 올인원
프롬어스아카데미 지음 / 이든하우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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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뱅만부 (@100manbu )님의 서평단 모집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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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관한 공부는 이상하게도 늦게 시작할수록 아쉽다.
월급을 받고 저축을 하고, 필요할 때 소비하고, 남은 돈을 다시 모으는 것만으로도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의문이 생긴다.

‘나는 지금까지 돈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었던 걸까?’

저축과 투자의 차이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금융상품에 가입하고, 경제 뉴스에서 금리나 물가 이야기가 나와도 그것이 내 자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시절이 있다. 그래서 재테크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 움직이는 원리부터 이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처음부터 특정 투자상품을 사라고 이야기하기보다 돈의 탄생과 은행의 신용창조, 인플레이션 같은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경제지표와 재무제표를 읽는 법을 거쳐 ETF, 채권, 금, 공모주, ISA, 미국주식으로 범위를 넓혀간다. 이후에는 연금과 보장자산, 세금, 셀프 재무설계까지 연결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재테크를 ‘한 번의 투자로 큰돈을 만드는 일’이 아닌,
평생 관리해야 하는 시스템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은 ‘저축’이라는 단어였다.

예전에는 돈을 벌고 아끼고 저축하는 것이 재테크의 상당 부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물가가 오르고 금융환경이 계속 변하는 상황에서는 현금을 보유하는 것만으로 자산의 실질적인 가치를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

책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은행을 설명하는 대목은 돈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준다.
돈을 보관하는 것과 돈의 가치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재테크의 출발점은 ‘내가 가진 돈의 가치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재테크를 하다 보면 경제 뉴스가 너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금리가 올랐다, 물가가 상승했다,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좋았다, 미국 연준의 정책 방향이 바뀌었다는 뉴스가 쏟아지지만 그것이 주식이나 채권, ETF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책에서 경제 신문과 경제지표를 재테크의 기초로 다룬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투자는 결국 정보를 해석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금리와 물가, 고용 같은 경제지표를 이해하면 뉴스가 숫자와 헤드라인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금리가 올랐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올랐는지, 그 변화가 채권과 주식에는 어떤 의미인지, 내 자산배분에는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재테크 초보에게 필요한 것은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언어를 익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좋은 기업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주가가 많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기업이라고 할 수도 없고, 유명한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좋은 가격에 투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책은 이 부분에서 매출액, 영업이익, ROE, PER, PBR 등 비교적 기본적인 재무지표를 활용해 기업을 바라보는 방법을 설명한다.

재무제표 공부를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격적인 기술로만 생각하지 않고, 위험한 기업을 피하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 바라본다는 점을 새로 배우게 되었다.

투자에서는 무엇을 사느냐 못지않게 무엇을 피하느냐도 중요하다.
공부의 목적은 모든 투자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실수를 줄이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한 가지 투자법만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TF부터 채권, 금, 공모주, ISA, 미국주식까지 다양한 자산과 금융상품을 한 권 안에서 다루고 있다. 투자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면 각각의 상품이 어떤 구조이고 어떤 위험을 가지고 있는지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본업이 따로 있는 개인투자자라면 모든 기업을 깊이 분석하고 매일 시장을 따라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투자를 잘한다는 것은 반드시 많은 종목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위험 감수 수준에 맞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는 점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이어지는 3층 연금과 보장자산을 다룬다는 점도 눈에 들어왔다.

재테크 책이라고 하면 흔히 ‘어떤 주식을 사야 하는가’, ‘어떤 ETF가 좋은가’, ‘어떻게 수익률을 높일 것인가’에 집중하기 쉽다.

하지만 인생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돈을 많이 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지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젊을 때는 투자수익률이 중요하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연금, 보험, 세금, 주거비, 의료비, 가족의 재정까지 함께 생각해야 한다. 재테크는 주식계좌 하나를 관리하는 일이 아니라 내 삶 전체의 재무구조를 관리하는 일에 가까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재테크의 완성’을 연금과 보장자산까지 연결한 구성은 책 전체의 방향과 잘 맞는다.


자녀를 위한 포트폴리오와 합법적인 증여에 대한 내용도 눈길을 끈다.
아이에게 많은 돈을 물려주는 것만이 경제적 지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돈을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일 수도 있다.

책은 자녀에게 제공할 수 있는 자산을 현금에 한정하지 않고, 장기적인 투자와 경제적 자립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경제교육의 목적은 돈 때문에 삶의 선택지가 좁아지지 않는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나니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앞으로의 삶을 위해 돈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그래서 이 책은 투자 입문서이면서 동시에 개인 재무관리의 기초 교과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재테크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재테크는 내가 벌어들인 돈을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성장시키며, 언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삶의 기술이다.

돈을 공부하는 이유는 돈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운 삶을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조금만 더 일찍 이런 내용을 체계적으로 배웠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투자는 언제든 시작할 수 있지만, 경제와 금융을 이해하는 데 쌓이는 시간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첫 번째 재테크 교과서》는 돈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선을 바꾸고, 스스로 자신의 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을 만드는 데 의미가 있는 책으로 느껴졌다.

재테크를 시작하고 싶지만 무엇부터 공부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 ETF와 주식은 하고 있지만 경제와 세금, 연금까지는 아직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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