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미의 딸
이서 지음 / 반타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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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발효된 씨간장처럼, 탐욕과 죄악도 세월 속에 썩어가며 대물림되는 저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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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미의 딸
이서 지음 / 반타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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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리뷰어스클럽 서평단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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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안이 오랜 세월 지켜온 전통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대를 이어 지켜온 자부심이자 소중한 유산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쉽게 버릴 수 없는 삶의 터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전통이 다른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을 딛고 세워진 것이라면 어떨까. 오랜 시간 이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아름다운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수탈과 착취로 부를 축적한 일본의 간장 명가,
120년의 역사를 간직한 양조장, 그리고 대를 이어 내려오는 기이한 저주.
여기에 씨간장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결합해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오랫동안 썩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는지를 서늘하게 보여준다.

이야기의 시작은 한 모녀의 평범하지만 간절한 생존에서 비롯된다.

엄마 준요와 함께 퓨전 간장게장집 '기와'를 운영하던 은재.
어렵게 마련한 가게가 이제야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건물주의 퇴거 통보로 삶의 터전마저 잃을 위기에 놓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 준요가 스스로 입을 검은 실로 꿰맨 채 숨진 모습으로 발견된다.

엄마를 잃은 슬픔을 감당하기도 전에 은재에게 남겨진 것은 일억 원의 빚과 막막한 현실이었다. 그런 은재 앞에 나타난 일본인 미쓰즈는 준요가 사실 일본 간장 명가 키네장유의 후손이며, 은재에게도 물려받을 유산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엄마가 감추고 살아온 과거, 자신이 알지 못했던 외가의 존재,
그리고 당장 눈앞에 놓인 빚이라는 현실.

은재는 유산을 받기 위해 교토로 향한다.
그곳에서 마주한 키네장유는 평범한 가문의 저택이나 오래된 간장 공장과는 어딘가 달랐다. 오래된 목조 건물과 거대한 양조장, 쉽게 걷히지 않는 안개, 공간을 가득 채운 묵직한 간장 냄새. 겉으로는 은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사람들마저 어딘가 수상하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하나둘 벌어진다.

방 한구석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여덟 개의 눈알, 2층 창문 밖에 나타난 머리카락, 밤마다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 엄마의 다이어리에 적힌 죽은 인간을 흙으로 빚는 법과 반혼술에 관한 기록까지.

은재가 물려받으려 했던 것은 돈이었을까.
혹은 엄마가 평생 도망치려 했던 무언가였을까.

처음에는 유산을 둘러싼 가족의 비밀을 추적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읽어갈수록 이 작품은 상속 미스터리의 범위를 넘어선다.

검은 씨간장에 발효되는 것은 콩만이 아니었다.
씨간장은 오랜 시간 이어온 간장의 종균이자 새로운 간장을 만드는 바탕이 된다. 오래된 것을 남겨 다음 세대로 이어간다는 점에서 전통과 계승을 상징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씨간장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맛처럼, 키네장유의 역사도 오랜 세월 축적되어 왔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장인의 정성과 전통만이 아니다. 조선에서 빼앗은 것들, 누군가의 고통으로 쌓아 올린 부, 그리고 그 부를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끔찍한 대가가 함께 발효되고 있었다.

모로미(もろみ, 醪)는 간장이나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원료가 발효되는 중간 단계의 덧을 뜻한다. 완성된 간장이 되기 전, 여러 재료가 뒤섞여 오랜 시간을 거치는 과정이다.

이 단어를 알고 나니 작품의 제목도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무엇이 남겨지고 무엇이 버려지는가.
그리고 오랜 시간 숙성된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일까.

사람들은 오래된 것을 귀하게 여기고, 대대로 이어져 온 것을 전통이라 부른다. 하지만 시간이 죄를 씻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감춰진 죄를 더 깊숙이 묻어두고, 그것을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 문장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썩은 것은 버려지지만 발표된 것은 칭송을 받지. 죄도 오래 묵으면 향기가 난단다. 인간들은 그 비린 냄새를 전통이라고 부르지.”

이 문장을 읽으며 오래된 역사라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잘못까지 미화되는 현실을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자랑스러운 전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일 수 있다. 시간이 지나고 가해자의 후손들이 그 유산을 당연한 권리처럼 누린다고 해서, 그 시작점에 있었던 잘못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 씁쓸한 것은 은재 역시 처음부터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키네장유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수탈과 착취를 통해 부를 축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도, 그녀는 당장 살아갈 돈이 필요했기에 그곳으로 향한다.

이 선택을 쉽게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이 살아온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놓이고, 엄마마저 잃은 상황에서 일억 원의 빚을 떠안은 사람에게 도덕적 선택만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당장의 생존이 절박한 사람에게 돈은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재의 선택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잘못된 역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마음. 자신과 관계없는 과거라고 선을 긋고 싶지만, 그 과거가 자신의 핏줄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유산을 받고 싶다는 욕망과 물려받아서는 안 될 것을 물려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흔들리는 은재의 모습은 인간의 모순을 보여준다.


🔖“하지만 핏줄이란 건 그렇게 간편하고 서늘한 증명서였다. 애정이나 역사적 부채감이 소거된 채, 유전자 하나로 증명되는 관계.”

가족이라는 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무엇일까.
함께 보낸 시간일까, 서로를 향한 애정일까, 아니면 단지 같은 피가 흐른다는 사실일까.

이 작품에서 핏줄은 원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책임과 굴레에 가깝다. 은재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가문의 역사를 마주해야 하고, 엄마가 평생 감추고 싶었던 비밀까지 짊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키네장유라는 가문보다 엄마 준요와 딸 은재의 관계가 마음에 남았다.

준요는 왜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으로 떠났을까.
왜 자신의 과거를 딸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엄마가 떠나온 곳에는 무엇이 있었기에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 했을까.

은재는 엄마의 죽음 이후에야 엄마가 살아온 삶의 일부를 알아간다.
생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과거와 두려움, 그리고 도망쳐야 했던 이유를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사실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삶의 비밀은 존재한다.
때로는 사랑하기 때문에 감추기도 하고, 지키고 싶기 때문에 침묵하기도 한다.

준요의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엄마가 딸에게 물려준 것은 끔찍한 과거에서 벗어나 살아갈 기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문장은 그 모든 의미를 한층 무겁게 만든다.

🔖“키네장유의 유산은 돈이 아니었다. 남의 목숨을 태우고 남은 재였다. 그 잿더미 위에 그녀가 태어났다.”

유산이라는 단어에는 보통 긍정적인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누군가가 평생 일구어 놓은 재산과 삶의 흔적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일.
하지만 이 작품에서 유산은 축복이 아니라 희생의 결과물이다.

누군가의 목숨을 대가로 얻은 부라면 그것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무리 많은 돈과 재산을 손에 넣더라도 그 안에 담긴 비극까지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오래된 양조장에서 나타나는 기괴한 존재와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공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진짜 무서운 것은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 하는 사실이다.

특히 양조장의 습도와 날씨에 따라 무언가가 달라지고, 그곳의 규칙을 어기면 안 된다는 듯한 사람들의 태도는 공간 자체를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끼게 한다.

🔖“이런 날은 좋지 않아요. 습도가 변하거든요. 그러면 간장에 쓰이는 콩이 콩이 아닌 것으로 바뀌어요.”

간장을 만드는 공간에서 습도와 발효는 자연스러운 요소지만, 이곳에서는 익숙한 설명이 어느 순간 기이한 경고로 바뀐다. 특히 “여기가 통째로” 날아가 버린다는 표현은 오래된 양조장이 품고 있는 비밀을 더욱 불길하게 만든다.

평범한 식재료가 낯선 존재로 변하고, 익숙한 가족의 얼굴이 의심스러워지는 순간. 작가는 독자가 알고 있다고 믿는 일상적인 것들을 조금씩 낯설게 뒤틀어 공포를 만들어낸다.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거미와 진흙 인형, 반혼술 등의 소재는 죽음과 생명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죽은 사람을 다시 만들어내려는 인간의 욕망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고 싶은 마음일까, 아니면 자신이 가진 것을 잃고 싶지 않은 집착일까.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의 경계가 무너지는 양조장은 오랫동안 감춰온 죄가 형체를 얻어 되살아나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읽는 내내 오래된 저택과 양조장의 축축한 공기, 어디선가 풍겨오는 간장 냄새,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상상하게 된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소리와 기척으로 먼저 느끼게 하는 장면들은 직접적인 설명보다 더 강한 불안감을 남긴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사람들의 관계다.
은재를 반기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어긋난 가족들의 태도, 오래된 가문을 지켜온 사람들의 침묵,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은재.

그 집에서 은재는 가족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 친밀함이 과연 진심인지, 아니면 오랜 시간 이어진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인지는 쉽게 확신할 수 없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믿어도 되는 것일까.
핏줄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서로를 지켜야 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욕망과 희생을 생각하게 한다.


《모로미의 딸》을 읽고 나서 가장 마음에 걸린 것은 1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어져 온 가문의 역사와 그 안에서 희생되어야 했던 사람들이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희미해질 것 같지만, 어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사라지고 세대가 바뀌어도 그 결과는 다음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에게는 물려받고 싶은 재산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벗어나고 싶은 굴레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말하는 저주는 초자연적인 현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탐욕으로 시작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다음 세대에게까지 당연한 것처럼 물려주는 행위 자체가 또 다른 저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재에게 남겨진 선택은 돈과 혈통, 가족과 역사 중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물려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없다. 태어난 곳이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무엇을 이어갈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검은 씨간장처럼 천천히 깊어지는 불쾌한 공포와 함께, 인간의 욕망이 남긴 흔적을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오래 묵었다고 모두 귀한 것은 아니며, 대대로 이어졌다고 모두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가장 오래된 것을 끝내는 일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세월이 만든 깊은 맛과 세월이 감춘 오래된 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 핏줄이라는 이유로 이어지는 비극,
그리고 엄마가 끝내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마주하는 딸의 이야기.

기이한 존재가 등장하는 오컬트 호러를 좋아하는 독자뿐 아니라, 가족의 비밀과 역사적 죄의식, 인간의 욕망을 깊이 있게 다룬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인상적인 작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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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판박이
아베 코보 지음, 곽형덕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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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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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자신을 화성인이라고 주장하는 낯선 남자의 등장부터가 흥미롭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를 찾아와 화성의 토지를 알선하겠다고 하고, 자신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보라고 권하는 남자라니.

얼핏 보면 엉뚱한 사람의 기이한 행동을 다룬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아베 고보가 만들어 놓은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남자가 정말 화성인인지 아닌지를 밝혀내는 과정이 아니다.
그가 화성인이라고 주장하는 순간부터 당연하게 믿어온 현실의 기준이 하나씩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을 때 쉽게 비정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상식에서 벗어난 말과 행동을 하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다수가 동의하는 생각과 행동을 정상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과연 그 기준은 얼마나 확실한 것일까.

다수가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며,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작품 속 남자는 자신이 화성인이라고 굳게 믿는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물일 수밖에 없다. 아내의 경고와 주인공의 의심은 독자에게도 그를 경계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남자가 자신의 주장을 펼칠수록 상황은 복잡해진다. 미친 사람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의 말이 지나치게 치밀하고, 그렇다고 그의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의 근거가 부족하다.

그렇게 독자는 어느 순간 판단을 유보하게 된다.

이것이 아베 고보가 만들어 내는 문학적 긴장감이 아닐까 싶다.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보다 독자가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 진실을 알아내고 싶어 하는 독자의 욕구를 이용하면서, 정작 진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특히 라디오 프로그램 '안녕하세요 화성인'이라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허구를 만들어 내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작가가 자신이 만들어 온 이야기와 닮은 인물을 현실에서 마주한다는 상황 자체가 상당히 역설적이다. 방송 속에서 화성인은 흥미를 끌기 위한 소재였지만, 어느 날 실제로 자신이 화성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집 앞에 나타난다.

허구를 만들어 내던 사람이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매일 접하는 뉴스와 이야기, 타인의 경험과 주장도 생각해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정보는 사실처럼 전달되고, 어떤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그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과연 언제나 명확할까. 익숙한 이야기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낯선 이야기는 충분히 살펴보기도 전에 배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베 고보는 SF라는 형식을 빌려 미래의 과학기술보다 현실을 낯설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그래서 이 작품의 화성은 익숙하다는 이유로 의심하지 않았던 현실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작품의 제목인 《인간 판박이》 역시 여러 방향으로 생각하게 한다. 판박이라는 말에는 원본과 복제본, 진짜와 가짜라는 구분이 들어 있다. 서로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닮았지만 어딘가 다르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외형일까, 사고방식일까, 언어와 행동일까.
아니면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는 의식 그 자체일까.

인간과 꼭 닮았다는 것은 과연 인간이라는 뜻일까.

인간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를 인간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반대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사회가 정한 기준에서 조금 벗어났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인간답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기준에 상대를 맞추려 할 때가 많다.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설명을 요구하고, 설명이 충분하지 않으면 낯선 존재로 밀어내기도 한다.

이 작품이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유는 타인을 판단하는 방식까지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책 속 문장에서도 그런 불안과 혼란이 느껴진다.

🔖“그 기묘한 남자는 5월 어느 맑은 날 정오를 조금 지난 무렵, 재봉틀 외판원 같은 한가로운 발걸음으로 나타났다.”

첫 문장부터 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맑은 날의 평범한 일상, 그리고 재봉틀 외판원처럼 한가롭게 등장하는 낯선 남자. 특별히 위협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평범하다고 넘기기에도 어딘가 이상하다. 이처럼 일상적인 풍경에 아주 작은 이질감을 끼워 넣는 방식이 작품의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사건이나 극적인 장면으로 시작하지 않아도 평범한 일상이 얼마든지 낯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또한 남자가 자신을 화성인이라고 밝히는 장면은 작품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보통의 인간이 아닙니다. 화성인입니다.”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는 말은 단순히 외계인이라는 정체성을 밝히는 것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보통의 인간이란 대체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이라는 기준은 누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요컨대 거스르는 것이 무서웠을 뿐이잖습니까.”

이 문장은 누군가의 행동을 지적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서 마주하는 두려움이 담겨 있는 듯하다.

정말 옳다고 생각해서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일까.
아니면 반대했을 때 감당해야 할 시선과 불이익이 두려워서 침묵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때로는 자신의 판단보다 주변의 분위기를 먼저 살피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갈등을 피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접다 보면 어느 순간 무엇이 자신의 진짜 생각이었는지조차 흐려질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장은 소설 속 인물들의 상황을 넘어 지금 우리의 모습에도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혹시 당신이라면 대답할 수 있을까. 뭐라고 대답하면 의사가 만족할지, 당신이라면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부디 가르쳐 주길 바란다. 내가 특별히 좋아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니.”

이 문장에는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과 무력감이 함께 담겨 있다.
말하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은 분명 다르다. 침묵한다고 해서 반드시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 대답하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설명을 요구하고는 한다.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고, 자신의 행동을 납득시키고,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의 내면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말해도 전달되지 않는 감정이 있고, 어떤 질문에는 정답을 알고 싶어도 끝내 대답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는 것이 진실을 말하는 일과 같은 것인지도 생각하게 된다.

이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침묵을 거부나 무관심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침묵에는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 혼란이 있을 수도 있으며,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한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


《인간 판박이》는 화성인이라는 비현실적인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인간의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작품이다.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 다수의 의견에 순응하는 태도,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까지.

특히 아베 고보가 SF를 상상력의 영역에 가두지 않고 현실을 의심하는 문학적 도구로 활용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계를 잠시 낯설게 만들면, 그 안에 감춰져 있던 모순과 불안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무엇으로 내가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 사회가 정한 기준을 따르는 것, 다수가 옳다고 말하는 것을 믿는 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인간다운 존재가 되는 것일까.

인간이라는 존재를 증명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연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의심할 수 있는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저마다 누군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일 수 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낯선 사람으로 규정하기 전에, 그 사람의 세계에는 어떤 논리와 사정이 있는지 한 번쯤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기묘한 이야기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낯선 화성인이 아니라 익숙한 인간의 모습이다.

읽는 동안에는 기이한 상황과 논리에 이끌리고, 책을 덮은 뒤에는 인간과 정상성, 진실과 침묵에 관한 질문이 남는 작품. 《인간 판박이》.
내가 믿고 있던 정답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에 가깝다.

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낯선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일은 인간인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똑같은 모습만을 요구하며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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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할게요 (10주년 기념 전면 개정판)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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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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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휴대전화 화면을 몇 번 두드리면 마음을 전할 수 있고, 보내기 버튼 하나면 순식간에 안부를 건넬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 많을수록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마음속에 가득한데 막상 문장으로 옮기려 하면 무엇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고, 몇 번이고 적었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 보내지 못한 채 남겨 두기도 한다.

편지는 그런 순간에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대에게 보여 주기 위한 말이 아니라,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기 위한 기록.

사랑했던 순간도,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이별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닫게 된 감정도 편지라는 형식 안에서는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으니까.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될 것이다》,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 등을 통해 섬세한 감성과 다정한 문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려 온 정영욱 작가.

이번 책은 작가의 첫 작품이자 출간 10주년을 맞아 새롭게 다듬어진 전면 개정판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처음 책을 펼치기 전에는 사랑과 이별에 관한 감성적인 에세이를 떠올렸다.
하지만 목차나 책 속에 담긴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니 책에서 이야기하는 감정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부터 관계가 끝난 뒤에야 알게 되는 소중함, 외로움과 후회, 미련, 기다림,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까지. 한 사람을 사랑했던 시간은 그 시절의 나를 이루었던 시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모두 그를 잊기 벅찬 것이 아니다. 그를 애정했던 나를 잊기 벅찬 것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사랑이 끝난 뒤에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의 정체를 생각해 보게 된다. 헤어진 사람을 잊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정말 놓아주기 어려운 것은 그 사람과 함께했던 나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바라보던 눈빛,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설레던 마음, 별것 아닌 일에도 하루가 행복했던 순간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서툴렀을지 몰라도 누군가를 온전히 좋아할 줄 알았고, 작은 일에도 기뻐할 줄 알았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때의 감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상대방보다 그 사람을 사랑했던 시절의 나를 더 오래 그리워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오래 머물렀던 문장은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다.

🔖“외롭다는 건 생각보다 더 복잡한 감정이야. 혼자가 되어 누군가가 그리울 때가 아니라, 더는 그리워할 그리움조차 없을 때.”

외로움은 곁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마음 둘 곳이 없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으면서도 누구에게도 기대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때로는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문장을 읽으며 외로움에도 여러 얼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외로움과 더 이상 기다릴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은 분명 다르다. 그리고 가장 쓸쓸한 순간은 마음이 아픈 것조차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을 때인지도 모른다.

책 속 문장들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아주 작은 순간을 붙잡아 그 안에 숨어 있던 마음을 들려준다.

🔖“기억하는 건 기억하려 애써 붙잡아 두는 거고, 잊지 못하는 건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새겨지는 거고.”

기억과 잊지 못함의 차이를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싶었다. 기억은 의식적으로 붙잡으려는 노력에 가깝지만, 잊지 못하는 것은 애써 외면해도 어느 순간 불쑥 찾아오는 감정에 가깝다. 오래된 노래 한 곡에 특정한 계절이 떠오르고, 익숙한 거리에서 오래전 함께 걷던 사람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일은 희미해진다고 하지만 모든 기억이 같은 속도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감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뎌지지만, 어떤 순간은 시간이 지나서야 그 의미가 선명해진다. 그때는 몰랐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기도 한다.

그래서 책의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지나간 사람을 떠올리는 동시에 지나간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사랑에 관한 문장 중에서는 다음 구절도 눈길을 끌었다.

🔖“좋아한다는 건 모든 것을 품어 주는 게 아니라 하필 품은 것이 그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좋은 모습만 바라보는 일이 아닐 것이다.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까지 알게 되고, 나와 다른 부분을 마주하면서도 그 사람이라는 이유로 마음이 향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상처를 주고, 함께하고 싶으면서도 각자의 행복을 위해 멀어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

🔖“한쪽 눈을 크게 뜨기 위해 한쪽 눈을 감아야 하는 것처럼 네가 행복하기 위해 내가 줄어들어야 했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 우리가 작아져야만 했습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참 아프게 다가온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관계를 이어 가는 일이 서로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관계가 지속될 수는 없고,
때로는 놓아주는 일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배려가 되기도 한다.

이별은 관계의 끝이지만, 그 관계 안에서 경험했던 감정까지 부정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함께했던 시간이 소중했다는 사실과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성숙한 이별이란 아팠던 마음까지 자신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제목인 《편지할게요》도 그래서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진다.

편지를 쓰겠다는 말에는 아직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는 뜻도, 언젠가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기다림도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편지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도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답장을 받지 못해도 괜찮고, 끝내 부치지 못해도 괜찮다. 마음을 적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에 놓인 [추신│답장은 괜찮습니다]라는 부분도 오래 생각하게 한다. 편지는 누군가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비로소 꺼내 놓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 이미 멀어진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일 수도 있고, 오래전의 나에게 건네는 안부일 수도 있으며,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인사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10주년 기념 전면 개정판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의 문장과 그 이후 작가가 쌓아 온 시간의 감정이 한 권에 함께 담겼다는 것은, 오래된 책을 다시 펴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문장도 읽는 사람의 나이와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읽었던 문장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지나간 관계를 이해하는 문장이 될 수 있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읽었던 글이 어느 날에는 자신을 위로하는 글로 남을 수도 있다.

책은 그대로인데 읽는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다.

《편지할게요》는 마음이 복잡한 어느 날 다시 펼쳐 보고 싶은 책에 가깝다.
목차에 담긴 수많은 제목만 보아도 사랑, 이별, 그리움, 외로움, 기다림이라는 감정들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삶에 머무는지 느낄 수 있다.

어떤 문장에서는 오래전 사랑했던 사람이 떠오르고,
어떤 문장에서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이별이 생각날 것이다.
또 어떤 문장에서는 누군가가 아닌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몇 개의 문장이 일상 속에서 편지처럼 남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했던 말, 그때는 차마 하지 못했던 고백,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까지.

인생에는 끝내 보내지 못한 편지가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다.
그 편지 안에는 미안하다는 말도, 고마웠다는 말도, 보고 싶다는 말도,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문장의 끝에는 살아온 나의 시간이 남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책.

지나간 사랑을 잊으라고 재촉하지 않고, 아픈 마음을 서둘러 정리하라고 말하지 않으며, 그저 그때의 마음도 당신의 일부였다고 건네는 책.

《편지할게요》를 읽고 나면 문득 오래된 편지 한 통을 다시 꺼내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는 누군가에게,
혹은 오랫동안 안부를 묻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잘 지내고 있나요.
그때의 우리는 서툴렀지만 진심이었고, 지나온 시간은 아팠지만 분명 소중했다고.'

답장을 받지 못해도 괜찮다.
전하지 못한 마음도 마음이었으니까.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써 보고 싶다.

'편지할게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는 이야기들을 담아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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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도 ㅣ 허밍북스 슬릿 1
조강우 지음 / 허밍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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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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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는 존재하지만 언젠가는 지도에서도 사라질 섬이 있다면, 그곳에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갈까. 자신이 살아온 집과 익숙한 풍경이 조금씩 바다에 잠기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어떤 상실감으로 다가올까. 그리고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끝까지 섬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조강우 작가의 《동백도》는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운명에 놓인 섬을 배경으로 한 실종 사건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실종의 진실이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재난만이 아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불안이 만들어내는 집단의 광기, 그리고 진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입사 3년 차 기자 김연우는 아직 자신의 이름을 내건 대표 기사를 쓰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동백도에서 실종된 여성을 찾아달라는 제보가 들어온다.
행정상으로는 이미 이주가 완료된 섬, 그러나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서류상으로는 섬을 떠났지만 실제로는 사라져버린 이수아.

기자에게 이번 취재는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였을 것이다. 실종 사건과 곧 사라질 섬이라는 소재는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기사였을 테니까. 하지만 그가 동백도에 도착한 뒤 마주한 것은 예상했던 취재 현장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태풍이 지나간 밤 11시 47분. 섬의 모든 것이 멈춰버린다.
전기와 통신은 물론이고 자동차와 배, 심지어 시계까지 작동하지 않는다.
외부와 연결되는 모든 통로가 끊어진 공간.
그곳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의 규칙에 의지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설정이 흥미롭게 다가왔던 이유는 재난의 규모보다 재난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휴대전화로 확인하는 뉴스, 인터넷을 통해 얻는 정보,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연락망, 그리고 언제든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는 믿음까지.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정보가 사라진 자리를 소문이 대신하는 과정이다.

🔖“봤다가 아니었다. 봤다더라. 소문은 그렇게, 전기가 없는 섬의 유일한 연료가 되었다.”

이 문장은 작품의 분위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전기가 끊긴 섬에서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더 이상 기계나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말이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반복된 이야기는 어느 순간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이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도 수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간다. 누군가가 올린 짧은 영상과 몇 줄의 게시물,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사실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에 맞춰 정보를 해석하고, 때로는 그 이야기에 분노하거나 누군가를 비난한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정보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까지 그만큼 성숙해졌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정보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시대이기에 잘못된 이야기가 진실보다 먼저 도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점에서 동백도는 단절된 섬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통해 현재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비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품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기자와 인플루언서의 대비다.

두 사람 모두 무언가를 기록하고 세상에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기록하는 방식과 그 기록을 바라보는 태도는 다르다. 기자에게는 기사로 만들어야 할 사건이 있고, 인플루언서에게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콘텐츠가 있다. 한 사람은 취재 수첩을 들고, 다른 한 사람은 카메라를 든다.

그런데 섬의 모든 장치가 멈추면서 두 사람이 의지하던 기록의 방식도 흔들린다.

🔖“나는 아직 적을 수 있었지만, 이수민은 찍을 수 없었다.”

짧은 문장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와 기록에 대한 서로 다른 욕망이 응축되어 있다. 무엇을 기록하느냐만큼 중요한 것은 왜 기록하려 하는가일지도 모른다.
진실을 남기기 위해서인지,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인지.

김연우 역시 자신이 이수민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그 또한 특종을 기대하며 섬에 들어온 인물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과 실종을 자신의 성과로 바꾸려 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 대목을 읽으며 기록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을 수집하는 능력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야기로 옮길 때 그 사람의 삶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불행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작품은 기자와 인플루언서의 차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오늘날 기록하고 전달하는 모든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동백도라는 공간이 가진 상징성도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섬이라는 설정은 기후 위기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기후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평생 살아온 터전을 잃는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이웃, 삶의 방식과 기억을 한꺼번에 잃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동백도가 사라지는 섬이라는 사실보다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더욱 마음에 남는다. 세상은 이미 그들을 떠난 사람으로 분류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누가 죽어도 장사 잘돼요. 다만 물이 보이냐 안 보이느냐의 차이지."

죽음조차 누군가에게는 소비되고 거래되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 뉴스가 되는 죽음과 그렇지 못한 죽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동백도라는 섬이 사라져 간다는 사실은 자연환경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발과 정책, 행정적인 절차 속에서 어떤 사람들의 삶은 숫자로 정리되고, 어떤 사람들의 사연은 제대로 들리지 않은 채 뒤로 밀려난다.

이주 완료라는 문서 한 장이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존재까지 지워줄 수는 없다. 행정적으로는 떠난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 간극이야말로 작품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 중 하나라고 느꼈다.

그리고 작품을 읽으며 인상적으로 다가온 또 하나의 요소는 바다다.
동백도에서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두려움의 대상이며,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존재다.

동백도는 여전히 집이고, 떠나지 못한 이유가 있으며,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삶의 터전이다.육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오랫동안 바다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사람이 바라보는 바다는 분명 다를 것이다.

🔖"지금은 파도가 높아. 방향도 안 맞고. 들물 끝자락 지나고. 바람이 서쪽으로 더 틀면 그때 북쪽으로 탈 수 있어."

이 말에는 오랜 시간 물가에서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과 경험이 담겨 있다. 누군가에게 바다는 막막한 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바람과 파도, 물때를 읽어 길을 찾아야 하는 공간이다.

동백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동안 당연하게 믿어왔던 기준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문서와 공문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오고, 기술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순간에도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은 누군가에게 살아남을 방법이 된다.

위기 속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 속에서 쌓아온 감각과 타인의 경험을 인정하는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 재난은 사람들을 한자리에 가두는 동시에 그동안 감춰져 있던 관계와 감정을 밖으로 끌어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붉은 불빛을 두고 누군가는 핵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심판이라고 말한다.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사실을 기다리기보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설명해 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누군가를 향한 의심과 혐오로 번져간다.

불안한 사람들은 질서를 원하지만, 정작 자신이 믿는 질서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워한다.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명분은 어느새 타인을 배제하는 이유가 되고, 정의와 구원을 이야기하던 목소리는 누군가를 심판하는 언어로 변한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낯설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어 한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일보다 명확한 적을 만들어내는 일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백도에서 벌어지는 혼란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섬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심리는 현 사회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무엇보다 '사라진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섬이 사라지고, 사람이 사라지고, 통신이 끊기고, 기록이 멈춘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기억하는 일마저 사라지는 순간이 아닐까.

바위틈에 끼어 있는 방호복 소매에서 발견한 이름, '이수아'.

이 장면은 한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절박함으로 다가왔다.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분명한 존재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많은 소문과 추측 속에서 사건은 거대한 이야기로 변해가지만, 그 시작에는 한 사람을 찾고 싶어 하는 또 다른 한 사람이 있다.

이 부분에서 사건의 규모와 사람의 존재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은 재난과 사회적 혼란에 주목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라진 가족 한 사람을 찾는 일이 그 어떤 사건보다 절실할 수 있다.

뉴스가 될 만한 사건과 한 사람에게 절실한 사건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놓치지 않는 것이 기록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일 것이다.


《동백도》는 재난이라는 장르적 긴장감을 바탕으로 인간의 공포와 욕망, 미디어의 책임, 공동체의 민낯을 함께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다. 실종된 여성을 찾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자는 누가 사라졌는가만큼이나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동백도라는 섬의 이미지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섬은 조금씩 사라지고,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점점 더 서로를 믿지 못한다.
모든 것이 멈춘 공간에서 오히려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은 더욱 빠르게 움직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거창한 정의나 그럴듯한 문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름,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하려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매일 수많은 이야기를 보고 듣고 기록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 속에서 정작 한 사람의 진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섬이 사라지는 일은 자연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잊고,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며,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로 누군가를 심판하는 일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그것은 경계하고 돌아봐야 할 인간의 몫이다.

사라지는 섬에서 벌어진 재난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재난 앞에서 드러난 사람들의 민낯이었다.

범인을 찾고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는 스릴러를 넘어, 우리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기록하며 타인의 삶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동백도》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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