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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실격 시즌 1 - 이걸 영화라고 찍었냐 ㅣ 감독실격 1
Zinn 지음 / 9월의햇살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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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카메라 뒤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을 떠올린다.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과 자본을 움직이고, 자신의 이름을 작품에 새기는 사람. 그래서 감독에게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가까이 붙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감독 실격》은 그 반대편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미 한 편의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지만 실패했고, 데뷔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다음 작품을 만들지 못하는 감독.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스스로도 의심하고, 다른 감독의 성공을 부러워하면서 질투하고, 매일 아침 자신의 데뷔작 평점과 관람평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이 인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아마 이 소설의 가장 묘한 힘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웃기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주인공 최감독은 자신이 ‘폭망한 감독’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영화판에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알고 있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도 안다. 문제는 타인의 시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미 자신의 안에 자리 잡은 자기혐오와 패배의식이라는 점이다.
🔖“나는 시나리오를 못 쓴다. 창작의 재능이 없는 것이다.”
영화감독의 자기고백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오랫동안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실패의 원인을 자신의 존재 자체에서 찾기 시작하는 순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번에는 운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제작사가 도와주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투자자를 잘못 만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가 반복되면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외부의 이유를 찾는 일을 포기한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내가 부족한 사람이었던 건 아닐까.’
《감독 실격》은 바로 그 마음을 들여다본다.
특히 주인공이 자신의 데뷔작을 둘러싼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가 이미 오래전에 끝났는데도 그의 인생에서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 작품은 과거의 실패로 남았지만, 주인공에게는 현재진행형의 낙인이 되어 있다.
🔖“평점과 관람평 체크는 10년 전 데뷔와 동시에 폭망 이후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모닝 루틴이다.”
이 장면은 처음 읽을 때는 우스꽝스럽다. 망한 영화의 평점을 10년째 확인한다는 행동 자체가 너무 집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이것만큼 슬픈 행동도 없다.
정말 잊고 싶다면 보지 않으면 된다.
정말 아무렇지 않다면 확인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그는 매일 확인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들고, 혹시라도 자신의 영화를 다시 좋게 봐주는 사람이 나타났을지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하면서 오히려 그 실패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붙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실패를 극복하지 못할 때 실패를 자신의 이름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폭망 감독’이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것도 그래서 유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감독 실격》은 영화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내가 이 작품에서 더 크게 보았던 것은 영화계 그 자체보다 사람이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경력, 흥행 성적, 인지도, 투자 가능성, 인맥.
어떤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이 얼마나 ‘쓸모 있는가’를 끊임없이 계산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기획사에서 기다림을 강요당하고, 어린 후배 PD에게 일방적으로 시간을 통보받고, 두 시간 동안 방치되는 장면은 안쓰러웠다.
🔖“내가 아무리 폭망 감독이라 해도 이건 예의가 아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더 아픈 부분은 ‘폭망 감독이라 해도’라는 말이었다.
이미 주인공 스스로 상대가 자신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했다고 해서 무례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닌데, 실패를 오래 경험한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부당한 대우조차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 점에서 《감독 실격》은 영화계의 갑질이나 냉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가 그 구조가 한 사람의 자존감을 어떻게 갉아먹는가를 보여준다.
‘나는 원래 이런 대우를 받을 사람인가?’
이 질문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 순간부터 타인의 무시는 더 이상 외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까지 침투한다.
이 작품에서 최감독은 ‘좋은 사람’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질투. 욕망. 허세.
다른 사람의 성공을 배 아파한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인물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실패한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겸손하고 성숙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패가 오래될수록 사람 안에는 열등감과 질투, 자존심과 욕망이 동시에 커질 수 있다.
특히 다음 문장은 이 작품의 인물을 아주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남 영화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굉장히 솔직하다.
보통 다른 사람의 성공을 축하해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타인의 성공이 나의 실패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특히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저 사람은 저렇게 잘하는데 나는 왜 안 되지?’
‘저 사람에게는 기회가 오는데 왜 나에게는 오지 않지?’
‘저 사람이 성공했다는 사실이 결국 내가 실패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감독 실격》은 이런 마음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아서 진짜 같다.
동민이라는 인물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동민은 영화과 졸업 후 입봉 준비만 17년째 중인 감독 지망생이다.”
17년.
숫자만 놓고 보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긴 시간이다. 하지만 작품 속 설명처럼 공모전에 떨어지고, 제작을 준비하다가 무산되고, 계약이 성사될 듯하다가 사라지고, 다시 다른 작품을 준비하다 보면 시간이 그렇게 흘러갈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씁쓸한 것은 동민 자신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생에 감독 데뷔는 글렀다는 사실을….
그런데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최감독은 이미 실패한 감독이고 동민은 아직 실패하지 않은 감독 지망생이다. 그래서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묘한 위안을 얻는다.
🔖“동민은 폭망 감독보다는 감독 지망생이 낫다는 주의다. 감독 지망생에겐 미래가 있지만 폭망 감독에겐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가 참 씁쓸하면서도 재미있었다.
둘 다 상대방보다 자신이 아주 조금은 나은 위치에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완전히 행복해서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적어도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낫다’는 아주 작은 우월감으로 버티기도 한다. 반대로 누군가의 실패를 보며 자신의 실패를 위로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악한 사람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저 너무 오래 실패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영화계 블랙코미디로만 읽히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주인공이 끊임없이 욕망과 윤리 사이에서 흔들리기 때문이다. 특히 여배우와 관련된 장면들은 최감독의 내면에 있는 욕망과 자기합리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는 자신이 어디까지 가도 되는지 끊임없이 계산한다. 감독이라는 위치, 상대방의 호의, 술자리, 계약과 평판 등을 머릿속으로 저울질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부정하지 못한다.
🔖“술 한 잔 까지는 괜찮겠지?”
이런 문장들이 재미있는 이유는 너무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큰 잘못을 하기 전에 대개 작은 허용부터 만든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건 별일 아니겠지.’
그렇게 자기 안에서 허용 범위를 조금씩 넓혀 간다.
《감독 실격》은 이 과정을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게 하기보다, 사람이 욕망 앞에서 얼마나 쉽게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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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소설의 진짜 힘은 처절한 상황을 굉장히 웃긴 방식으로 바라본다는 점이었다. 두 시간을 기다리면서도 상대방의 의도를 분석하고, 자신의 자존심이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고, 식사 시간이 애매하다는 것까지 계산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의 밑바닥에는 분명한 절망이 있다.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싶지만 기회를 잃을까 봐 참는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다음 작품을 위해 견딘다.
상대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이런 모습은 영화계 사람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회사에서, 인간관계에서, 창작의 자리에서, 혹은 꿈을 좇는 과정에서 한 번쯤 비슷한 감정을 경험한다.
‘이렇게까지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하나?’
그런데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시나리오를 못 쓴다. 창작의 재능이 없는 것이다.”
이 문장은 자기비하처럼 보이지만,
책 전체를 읽고 나면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정말 재능이 없는 사람일까?
혹은 실패를 너무 오래 경험한 나머지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야만
버틸 수 있게 된 사람일까?
창작자에게 재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는지, 실패가 정말 실력 부족의 결과인지 우리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한 편의 영화가 흥행하지 못했다고 해서 감독의 모든 능력이 부정되는 것도 아니고, 한 번의 성공이 그 사람의 모든 재능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너무 쉽게 결과가 사람을 규정한다.
흥행하면 ‘실력 있는 감독’이 되고, 실패하면 ‘망한 감독’이 된다.
그리고 그 이름표가 한 사람의 다음 기회까지 결정한다.
그래서 제목인 《감독 실격》도 읽고 나면 달리 보인다. 누군가에게 ‘실격’ 판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가능성까지 부정당하는 경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감독은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그게 이 사람의 가장 이상하면서도 솔직한 모습이다.
정말 영화를 싫어했다면 진작 떠났을 것이다.
정말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면 매일 데뷔작의 평점을 확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말 포기했다면 다시 시나리오를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를 계속 움직이는 것은 성공에 대한 욕망이면서 동시에 영화에 대한 미련이다.
영화판을 넘어, 실패를 견디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은 영화산업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줄 것 같다. 감독과 제작사, 투자자, 배우, PD, 작가 지망생 등이 서로 어떤 이해관계 속에서 움직이는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영화보다 훨씬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패한 사람은 언제까지 실패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한 번의 실패가 그 사람의 다음 기회까지 결정해도 되는가.
다른 사람의 성공 앞에서 질투하는 마음은 정말 부끄러운 것인가.
꿈을 오래 좇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일까, 아니면 때로는 미련한 일일까.
‘폭망 감독’
처음에는 우스운 표현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그 말이 한 사람을 너무 오랫동안 따라다니는 낙인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한두 번쯤 실패한다.
시험에 떨어질 수도 있고,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고, 사랑에 실패할 수도 있고,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한 사건과 실패한 인간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쉽게 둘을 동일시한다.
한 사람을 실패라는 단어 하나로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굳이 교훈적인 문장으로 말하지 않고 최감독의 하루하루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한 뒤 스스로에게 ‘너는 이제 끝났다’고 말하는 일이 아닐까.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다.
때로는 구차하고, 욕심 많고, 질투하고, 비겁하고, 초라하다.
그래도 계속 마음이 가는 곳이 있다면 사람은 다시 그곳을 향해 돌아간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두의 마음 한구석에는
작은 ‘폭망 감독’이 하나씩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잘될 거라고 믿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일,
아직도 가끔 검색해 보는 오래된 실패,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며 부러워했던 순간,
이미 포기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해보고 싶은 꿈.
그 모든 것을 떠올리고 나면 ‘실격’이라는 단어가 다르게 보인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정말 실격인 걸까.
아니면 아직 다음 장면이 시작되지 않았을 뿐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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