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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 - 국내 최초 나우아틀어 원전 기반 아즈텍 제국의 신화와 전설 ㅣ 드디어 시리즈 9
카밀라 타운센드 지음, 진정성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9월
평점 :
#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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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는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생의 순환”이라는 철학서입니다.
카밀라 타운센드는 정복자의 왜곡된 기록 너머에서
아즈텍인들의 시적 사유, 그들의 ‘시간의 감각’을 되살려냅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이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우리는 영원에서 시간을 빌려 쓰는 중이다.”
⁉️아즈텍 신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이 순간은 몇 번째 태양의 시대인가?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당신은 어떤 빛으로 타오르고 있는가?
📌“모든 것은 변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
이 문장은 아즈텍 신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사상입니다.
그들은 태양이 매일 죽었다가 다시 떠오른다고 믿었고,
그 주기를 “삶의 은유”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 또한 언젠가 사라질 다섯 번째 태양의 시대이지만,
그렇기에 지금을 더 열렬히 살아야 합니다.
그들의 신화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거부합니다.
죽음은 “없어짐”이 아니라 “변형”입니다.
픽사의 <코코>가 보여준 “죽은 자들이 웃으며 노래하는 장면”이
바로 이 사유의 시각적 표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카밀라 타운센드(Camilla Townsend)는
미국 럿거스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입니다. 특히 아즈텍 문명과 나우아틀어(Nahuatl, 아즈텍의 고유 언어) 원문 연구를 20년 넘게 이어왔으며, 정복자의 시선이 아닌 원주민의 언어로 쓴 진짜 아즈텍의 역사를 복원해 왔습니다.
그녀의 저서 《Fifth Sun(다섯 번째 태양)》은 2020년 쿤딜 역사상(Cundill History Prize)을 수상하며, “서구의 편견을 걷어낸 새로운 역사 서술의 모범”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번 한국어판 《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는 그 연구의 결정판으로, 우리가 몰랐던 아즈텍 신화의 시적이고 철학적인 세계관을 현대적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Coco) 에 등장하는 “죽은 자들의 날(Día de los Muertos)”은 바로 이 아즈텍 문명의 유산입니다.
아즈텍인들은 죽음을 단절이 아닌 순환의 한 과정, 즉 “삶의 또 다른 단계”로 여겼습니다. 이 세계관은 “네 번의 멸망 후 다섯 번째 태양이 떠올라 새 세계가 시작된다”는 ‘다섯 번째 태양 신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따라서 ‘죽은 자들의 날’은 죽음을 애도하는 날이 아니라,
죽은 자와 산 자가 다시 만나는 시간,
삶의 유한함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작가는 서구가 왜곡한 “피의 제국 아즈텍” 이미지를 벗기고, 그들이 지닌 우주론적 통찰과 시적 인간관을 드러냅니다.
또한 “아즈텍을 야만으로 단정했던 서구 중심적 시선을 넘어,
그들의 목소리로 그들의 신화를 듣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즉, 정복자 코르테스의 기록이 아닌, 아즈텍인들이 직접 남긴 노래, 이야기, 설화, 제의문을 통해 그들의 내면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타운센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즈텍 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탐구하는 일이 아니라,
죽음과 삶을 동시에 끌어안았던 인간의 사유 방식을 되찾는 일이다.”
작가는 ‘신화 읽기’를 세계관의 확장으로 봅니다.
그리스 신화가 인간의 욕망을, 북유럽 신화가 영웅의 운명을 노래했다면,
아즈텍 신화는 “순환과 변신의 세계관”, 즉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라는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서양의 역사 속에서 아즈텍은 늘 ‘피의 제국’이었습니다.
인간의 심장을 바치는 의식으로 대표되는 문명. 그러나 타운센드는 말합니다. 📌“그들의 희생 제의는 피비린내 나는 야만적 문화가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이고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문화였다”
이 문장은 이 책의 핵심을 응축홉니다.
아즈텍의 제의는 살인이 아니라 ‘우주와의 계약’이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심장을 바치는 행위는 신에게 생명을 돌려주는 순환의 의식이었습니다. 태양은 인간의 피를 먹고 매일 아침 다시 떠올랐습니다.
즉, 아즈텍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생명의 순환을 유지하는 윤리적 행위였습니다.
이 시선의 전환은 우리가 아즈텍을 단순히 ‘정복당한 야만인’으로 읽어왔던 방식에 근본적인 균열을 냅니다. 서구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신화를, 그들의 관점에서” 듣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책의 중심에는 ‘다섯 번째 태양의 신화’가 있습니다.
아즈텍은 네 번의 세계가 멸망하고 다섯 번째 태양이 떠오른다고 믿었습니다.
📌“지금의 세상이 도래하기 전에 네 세계가 있었다. 재규어의 시대, 바람의 시대, 비의 시대, 물의 시대였다”
각 시대는 인간의 교만과 자연의 균열로 종말을 맞이했고, 그 폐허 위에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이 신화는 단순한 창세 설화가 아닙니다. 아즈텍은 세계의 ‘순환성’을 강조했습니다. 모든 것은 생겨나고, 무너지고, 다시 태어납니다.
따라서 ‘현재’란 영원의 시간에서 잠시 빌려온 찰나일 뿐입니다.
📌“아즈텍인은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 영원한 우주로부터 빌려온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귀하고 소중하게 여겼다”
이 인식은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으로 이해하게 만듭니다.
현대 사회가 불멸과 성장만을 추구하는 동안,
아즈텍은 ‘소멸의 아름다움’을 가르쳤습니다.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다음 세상의 서곡입니다.
그리스 신들이 인간의 욕망을, 북유럽 신들이 전사의 명예를 상징했다면, 아즈텍 신들은 ‘균형과 변환’을 상징합니다.
태양신 토날리와 불 속으로 몸을 던져 빛이 된 나나우아친, 회개와 재탄생의 상징인 케찰코아틀의 이야기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그대로 품고 있습니다.
신들은 전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수를 하고, 스스로의 결함을 끌어안으며 변화합니다.
이는 인간과 신의 관계를 수직적 예속이 아니라, 상호 순환의 관계로 바꿉니다.
‘신의 뜻’이 곧 ‘인간의 운명’이 아니라, 신과 인간이 함께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공존의 의무’인 셈입니다.
아즈텍 문명의 수도 테노츠티틀란은
📌“물 한가운데 있는 선인장의 곡장, 독수리가 활공하고 뱀이 머무는 곳”에 세워졌습니다.
이 도시는 단순한 정치 중심지가 아니라, 신화의 구현체였습니다.
선인장 위의 독수리는 오늘날 멕시코 국기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도시의 ‘구조’였습니다.
구불구불한 유럽 도시와 달리, 테노츠티틀란은 철저히 계획된 수상 도시였습니다.
피라미드와 수로, 시장과 제단이 하나의 우주적 질서로 배열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질서 있는 우주(cosmos)’를 지상의 공간으로 구현하려는 시도였고, 아즈텍의 문명은 그 자체가 거대한 신화적 상징이었습니다.
1519년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상륙했을 때, 아즈텍은 이미 세계관의 정점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복자들의 기록은 그들을 “미개한 피의 제국”으로 왜곡했습니다.
📌“유럽인들은 원주민이 코르테스를 케찰코아틀 신으로 오해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서구 중심적인 시선에서 본 잘못된 이야기였다"
타운센드는 이런 오랜 오해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아즈텍의 몰락은 ‘신앙적 오해’가 아니라, 철과 화약의 불균형한 충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화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죽은 자들의 날’로 이어지는 축제는, 그들의 신화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합니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전통을 보존하는 것은 인류 전체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일이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재회이며, 슬픔이 아니라 축제입니다.
그들은 무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춥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 죽은 자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유는 오늘날 죽음을 ‘종말’로만 인식하는 현대인에게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삶과 죽음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대신, 그 둘을 하나의 연속된 고리로 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아즈텍 문명이 남긴 궁극의 철학입니다.
책을 덮고 난 후, ‘죽음’을 처음으로 다른 언어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늘 영속과 불멸을 추구하지만, 아즈텍은 “변화와 소멸” 속에서 의미를 찾았습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
이 단순한 명제가, 다섯 번의 세계가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이해된 것입니다.
타운센드의 글은 학문적이지만, 문학처럼 읽힙니다.
그녀는 ‘정복자의 기록’ 대신 ‘정복당한 자의 목소리’를 복원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사라진 문명의 신화를 읽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인간의 질문 ― ⁉️“나는 왜 살아 있는가?” ― 에 대한 대답을 듣습니다.
《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는 신화를 ‘역사’로, 역사를 ‘철학’으로 확장시킵니다.
이 책은 잃어버린 문명에 대한 복원이자, 살아 있는 인간의 성찰입니다.
삶과 죽음, 창조와 파괴, 시작과 끝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체험하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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