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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고요한 것은 ㅣ 걷는사람 소설집 18
홍명진 지음 / 걷는사람 / 2025년 7월
평점 :
#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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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고요한 것은》은 화려한 서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독자는 더 많은 것을 듣고, 봅니다. 분홍 여사의 고독사, 미조의 부재, 장귀자의 아카이빙…
이 모든 서사는 ‘사라지는 존재들’의 무게를 감각하게 합니다. 홍명진 작가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삶은 결국 무대이고, 우리는 그 무대 위에서 고요히 서로를 응시하며 살아간다.”
홍명진은 오랫동안 소설과 비평의 경계를 넘나들며, 삶의 가장자리에 있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문학적으로 담아온 작가입니다. 일상의 틈과 균열에서 포착되는 불안, 죽음과 고독, 그리고 타자에 대한 응시를 주제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왔습니다. 이번 소설집은 그가 수년간 발표한 단편들을 모은 첫 소설집으로, “죽음의 서사를 통해 결국 삶을 이야기하는” 그의 일관된 문제의식을 집약합니다.
《밤이 고요한 것은》은 “응시의 윤리”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집입니다. 사회의 중심에서 배제되거나,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존재들 ― 돌발성 난청을 앓는 인물, 노년의 간병자, 이름 없는 여성, 고립된 중년 ― 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화려한 사건보다 말의 여백, 침묵의 결, 사라짐의 무게를 통해 드러납니다. 이 작품을 읽으며, 평소라면 지나쳤을 타인의 그림자를 섬세하게 감각하게 됩니다.
홍명진은 <작가의 말>에서 📌“죽음의 서사가 깔려 있지만 결국은 삶의 이야기”라고 밝힙니다. 죽은 자는 말할 수 없고, 죽음을 겪는 자는 살아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죽음을 응시하는 삶’이며, 동시에 ‘삶을 떠받치는 고요한 윤리’를 탐색하는 시도입니다. 작가는 화려한 극적 장면 대신, 누구나 맞닥뜨리는 부고 메시지, 소멸의 순간을 통해 우리 존재의 본질을 직면하게 합니다.
《밤이 고요한 것은》은 크게 소리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요와 침묵 속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는 삶의 결을 포착합니다. 등장인물들은 사회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채, 타인의 눈길조차 쉽게 닿지 않는 곳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응시합니다. 응시는 관찰이나 관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자의 고통과 고요를 함께 감각하는 윤리적 행위입니다. 이 소설집이 전하는 힘은 바로 그 조용한 응시에 있습니다.
여덟 편의 단편은 모두 죽음, 상실, 고독과 같은 주제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창한 서사로서가 아니라, 일상 속 불현듯 들려오는 부고 메시지처럼 불쑥 찾아옵니다. <마지막 산책>에서 병든 아내를 간병하던 노년 남성은 결국 아내와 함께 ‘마지막 잠’을 선택합니다.
📌“그의 몸은 아내의 몸과 함께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죽음은 파국이라기보다, 함께 고요히 들어가는 또 다른 동반 행위로 그려집니다.
표제작 <밤이 고요한 것은>에서는 돌발성 난청을 앓는 주인공 모연이 분홍 여사의 죽음을 마주합니다. 📌“분홍 여사가 언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새에 홀로 죽어간 사람”. 이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를 요약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고요히 사라지는 이웃들을 곁에 두고 살지만, 그들의 죽음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모자>에서 ‘나’는 과거 인연의 부고를 접하지만, 집을 나서지 못합니다. 소야 씨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옵니다. 📌“나는 밤의 메뚜기 떼들 속에서도 당신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이기도 하고, 내가 당신이기도 할 테니까요”.
여기서 죽은 자와 산 자, 타자와 자아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고립된 ‘나’는 부재한 타자를 통해 오히려 자기 존재를 직면합니다.
이 작품집의 인물들은 대체로 ‘중심’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무대에 서기보다, 무대 뒤편에서 다른 존재의 흔적을 기록하거나 기억합니다.
<장귀자 아카이빙>이 대표적입니다.
주인공 기란은 사라져가는 한 여성의 삶을 아카이빙합니다. 📌“낡은 흑백 필름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과 펄럭이는 깃발… 그 시간의 어딘가엔 기란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결국 기록은 완벽한 복원이 아니라, 닿을 수 없음을 감각하는 행위임을 보여줍니다.
홍명진의 인물들은 병, 갱년기, 불면, 불안과 같은 감각의 파열 속에 놓입니다.
<불면> 속 여성은 대낮에 울린 화재경보음으로 일상이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그녀가 방관하고 있는 사이에도 곰팡이는 증식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일상의 균열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은유합니다.
침묵과 고요 속에서도 삶은, 아니 오히려 고요 속에서 삶은 더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이 작품집은 절망만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마술이 필요한 순간>에서 중년 여성은 연극을 시작한 딸을 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목적이 분명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대단한 성공을 위한 계획이 아닙니다. 때론 ‘내일 무엇을 먹을까’라는 소소한 목적조차 삶을 버티게 합니다. 소설은 독자에게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웅장한 목표가 아니라 작은 희망들임을 일깨웁니다.
<불면>의 화자는 📌“누구에게나 삶은 시연을 펼쳐 볼 수 있는 무대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삶 자체가 무대고 무대가 곧 삶이었다”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은 《밤이 고요한 것은》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입니다. 삶은 리허설 없는 본공연입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흔들리며, 무대 뒤로 숨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요한 무대 위에서조차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감각하며, 흔적을 남깁니다.
이 책을 읽으며, ‘응시의 윤리’라는 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작가는 인물들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의 사라짐을 지켜봅니다. 우리는 흔히 타인의 죽음과 상실을 잊거나, 외면하거나, 지나간 뉴스처럼 소비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끝내 외면하지 않고 그 곁을 머뭅니다. 그 태도야말로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윤리적인 응답입니다.
또한 이 소설집은 독자로 하여금 얼마나 많은 분홍 여사를 놓쳐왔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타인의 침묵을 외면하지 않고 감각하는 일, 그것이 이 책이 건네는 가장 깊은 울림이었습니다.
《밤이 고요한 것은》은 화려한 플롯이나 강렬한 사건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의 균열 속에서 고요를 감각하고 싶은 독자, 타인의 부재를 곁에 두고 사는 우리의 현실을 되새기고 싶은 독자에게는 깊은 울림을 줄 것입니다.
《밤이 고요한 것은》은 고요히 사라져가는 존재들의 숨결을 기록하는 책이었습니다. 응시의 윤리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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