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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수집가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윤시안 옮김 / 리드비 / 2025년 8월
평점 :
#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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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미스터리의 윤리.
왜 이 방법이어야 했는가 - 오마주를 넘는 갱신.
밀실의 끝은 결국 인간 심리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
다시는 나오기 힘든 본격 미스터리의 명품.
《밀실수집가》는 1937년 교토부터 2001년 후쿠시마까지
다섯 건의 밀실 살인 사건을 다룬 연작 단편집입니다.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 현장마다 신비로운 인물 ‘밀실수집가’가 등장해
사건의 진실을 밝혀냅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전통과 신본격의 세련된 트릭이 어우러진,
미스터리 애호가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걸작입니다.
오야마 세이이치로(大山誠一郎)는
현대 일본 추리문학계에서 “수수께끼 본격파”의 대표 주자로 꼽힙니다. 《알리바이를 깨드립니다》, 《왓슨력》 등으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렸으며,
고전 미스터리에 대한 애정과 오마주가 작품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밀실수집가》는 그가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며
명실공히 본격 추리 장르의 계승자이자 혁신자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대표작입니다.
밀실 미스터리는
“범인이 어떻게 잠긴 방을 드나들었는가”라는 불가능 범죄의 묘미에 집중합니다.
존 딕슨 카, 애거사 크리스티 같은 거장들이 구축한 이 장르 전통은
일본의 ‘신본격’ 추리문학으로 계승되었습니다.
《밀실수집가》는 이런 계보 속에서 태어난 작품으로,
미스터리 애호가라면 고전 트릭에 대한 기본 이해가 있으면
더 깊게 즐길 수 있습니다.
저자는 “밀실”이라는 장르의 순수한 매력을 되살리려 했습니다.
독자가 인과관계와 수수께끼 풀이의 쾌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사회파 메시지보다 퍼즐과 논리에 집중했습니다.
동시에 ‘밀실수집가’라는 인물을 통해
수수께끼 그 자체를 탐닉하는 탐정상(像)을 제시하며,
“왜 우리는 불가능 범죄에 매혹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첫 문단부터 톤을 정합니다.
“희미한 파열음” 두 번—피아노가 있던 잠긴 음악실, 총을 맞고 쓰러진 교사,
밖에서 그 장면을 목격한 여학생, 그리고 안쪽에서 잠긴 창문과 문.
오야마 세이이치로는 고전 본격이 사랑해 온 그 원초적 장면을 21세기 감각으로 재기동시킵니다.
《밀실수집가》는 다섯 개의 불가능범죄를 시대(1937–2001)와 장소를 달리해 배열한 연작 단편집이지만,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건이 교착할 때 홀연히 나타나는 ‘밀실수집가’라는, 일종의 ‘형식의 수호자’가 섭니다.
다섯 편의 서로 다른 시대·공간(1937~2001)을 가르는 연작 단편집은,
말 그대로 “밀실” 그 자체를 서사의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범인은 늘 자취를 감추고, 경찰은 손을 놓을 때쯤—그때 ‘밀실수집가’가 등장해 교착을 깨뜨립니다. 그는 등장과 함께 이렇게 말하죠.
📌“진상을 알아냈습니다.”
이 냉정하고도 낙차 큰 선언이 만들어내는 고·저의 리듬,
곧 ‘불가능’에서 ‘가능’로의 돌연한 전환이 이 책의 쾌감입니다.
경찰은 의심하고 독자는 움찔합니다.
그의 등장은 서사의 리듬을 뒤집는 장치입니다.
누군가가 고민을 끝낼 때의 청량감
—그 ‘미결의 시간’을 벼랑 끝까지 끌고 가는 편집 감각이 탁월했습니다.
🌿버드나무 정원(1937)
📌“희미한 파열음이 울리고… 선생님이 뒤로 튀어 나가듯 쓰러졌다.”
잠긴 음악실, 유리 넘어 ‘실시간’ 총격.
관찰자의 시점과 실내의 동선이 맞물릴 때
발생하는 현실감 결여의 현실성이 압권입니다.
“파열음”이라는 소리 단서가 트릭의 미세한 톱니가 됩니다.
🌿소년과 소녀의 밀실(1953)
📌“진상을 알아냈다”
경찰이 철통감시하던 옆집에서 시신이 발견됩니다.
관찰의 절대성이 오만으로 변하는 순간을 예리하게 찌릅니다.
여기서 핵심은 ‘감시’의 그물 코 하나.
‘보았다고 믿는 것’과 ‘보지 못한 틈’을 논리적으로 분리해내는 대목에서
오야마의 단편 장기가 빛이 납니다.
🌿죽은 자는 왜 추락하는가(1965)〉
📌“오후 5시 반~6시 반 사이라고? … 9시 반에 추락한 시체를 봤는데”
‘추락을 목격한’ 사건이 실은 사후 트릭과 맞물립니다.
사망시각과 목격시각의 간극, 이 시간차의 난제가 퍼즐의 심장입니다. 카(Carr)의 흔적을 분명하게 잇되, ‘왜 지금 떨어져야 했는가’라는
동작의 미스터리를 시간/공간 논리로 정교하게 봉합합니다.
공간의 위아래를 뒤집는 배열이 고전의 기품을 살립니다.
🌿이유 있는 밀실(1985)
이 단편이 이 책의 심장입니다.
밀실 자체의 동기가 미스터리의 화룡점정입니다.
“이처럼 싱겁게 풀렸다.”지만(…그 ‘싱거움’은 독자에겐 결코 싱겁지 않습니다), 경감의 말처럼 📌“범인은 왜 밀실을 만들었는가”
‘밀실을 만든 이유’를 끝까지 묻습니다.
밀실이 자살·사고 위장에 쓰이지 않았다면 밀실의 서사적 효용은 무엇인가
—장르 내적 메타 질문이 본격의 품격을 올립니다.
🌿가야코네 지붕에 눈 내려 쌓이네(2001)
📌“밀실수집가가 나타났어요.”
눈 밀실의 정석 위에 심리와 동선, 발자국의 부재가 얹힙니다.
외부가 봉인된 폐쇄성은 오히려 관계의 내부를 비춥니다.
경찰의 대사는 거의 메타-우화처럼 읽힙니다.
‘흔적 없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이유’를 찾아내는 일,
고전에서 가장 사랑받는 ‘눈’ 밀실의 단단한 구현입니다.
다섯 편 모두 증언-공간-시간의 배열을 바꾸거나,
‘보고 있음’의 확신을 미세하게 흔들어 트릭을 성립시킵니다.
이때 ‘밀실수집가’는 자연 법칙을 비트는 마술사가 아니라,
오해의 층위를 걷어내는 편집자처럼 움직입니다.
각 편은 길지 않지만,
독자가 스스로 추리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닫힌 음악실에서 총성만 울리고 범인은 증발’(〈버드나무 정원〉),
‘경찰이 철통감시한 옆집에서 발견된 고교생 커플의 시체’(〈소년과 소녀의 밀실〉), ‘등 쪽 자상으로 사망했는데 6층 밀실에서 5층 창밖으로 추락’
(〈죽은 자는 왜 추락하는가〉),
‘위(胃) 속에서 열쇠가 나온 피해자’(〈이유 있는 밀실〉),
‘눈 덮인 폐쇄 공간에서의 살인’(〈가야코네 지붕에 눈 내려 쌓이네〉)…
트릭의 형태가 서로 겹치지 않고,
시대의 물성과 상황을 활용한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수수께끼 → 정밀한 청취 → 논리의 점화’라는 본격의 리듬을
한 치의 군더더기 없이 즐기게 합니다.
밀실수집가는 허풍을 부리는 괴짜로 보일 법하지만,
이후의 전개는 철저히 단서의 배열, 시간·공간 조건의 재포맷,
인간 행동의 심리적 한계라는 세 기둥 위에 올라섭니다.
해결의 순간은 독자에게 ‘아, 그래서 그 디테일이…’ 하는 작은 전율을 선사합니다.
이 책이 유독 기분 좋은 이유는 정공법의 힌트가 정직하게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야마는 쓸데없이 사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파열음(총성), 잠금의 방식, 사망추정시각, 발자국의 부재, 열쇠의 위치(위 속) 등 핵심 단서가 첫 독에 포착 가능한 지점에 배치됩니다.
독자는 ‘밀실수집가’와 동일한 자료를 갖고 싸웁니다. 그리고 종종 집니다.
그 패배의 느낌이 공정하기 때문에, 결말의 해갈감이 더 큽니다.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장르의 윤리에 가깝습니다.
밀실의 동기를 자살·사고 위장으로 좁히지 않고,
관계·심리·욕망의 낙인까지 탐색합니다.
“범인은 왜 밀실을 만들었는가”라는 경감의 중얼거림이
독자의 머릿속에서도 오래 울립니다.
밀실이 단지 ‘불가능을 위한 무대장치’가 아니라,
범인의 세계관을 체현하는 구조물이 되는 순간, 본격은 인물의 소설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밀실수집가》는 퍼즐을 넘어서 서사의 감도를 얻습니다.
✨️독서 팁! - 본격러를 위한 미세조정
✔️시간표를 그려라 - 목격시각/사망시각/발견시각의 차이에 트릭이 삽니다.
✔️‘안쪽에서 잠금’의 경위를 의심하라
- 누가, 언제, 무엇으로, 왜. ‘왜’에 답이 숨어 있습니다.
✔️소리·발자국·열쇠는 늘 말이 많다 - ‘없음’ 또한 단서입니다.
✔️수집가의 첫 질문을 메모하라 - 그의 질문 방식이 이번 트릭의 관문입니다.
《밀실수집가》는 퍼즐의 정교함, 리듬의 정확함, 오마주의 교양으로
본격의 가장 찬란한 미덕을 환기합니다.
시대를 건너뛰어도 늙지 않는 주인공처럼,
다섯 편의 밀실은 낡지 않은 고전성으로 반짝입니다.
끝장을 보는 비틀기나 과장된 반전 없이,
정석의 아름다움만으로 독자를 설득하는 드문 단편집.
“또 밀실이야?” 하고 투덜대던 독자도,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엔 아마 이렇게 중얼걸 것입니다.
💭“역시, 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