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촌 한국추리문학선 21
고태라 지음 / 책과나무 / 202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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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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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촌》은 오컬트가 미스터리를 압도하지도, 미스터리가 오컬트를 박제하지도 않습니다. 둘이 동등한 규칙을 가진 두 게임처럼 서로의 빈틈을 찌르며 굴러갑니다. 덕분에 독자는 두 가지 추리를 동시에 수행해야 합니다.

✔️합리적 경로 -동기·기회·수단, 동선과 장치, 공간의 스위치들
✔️민속적 경로 - 금기·제의의 순서, 지세와 수맥, 신격과 몸주신의 상보

고태라 작가는 이 두 노선을 교차시키며
전통/현대, 신앙/이성의 대립을 ‘설명’이 아니라 드라마로 체화시킵니다.
마지막 퍼즐이 포개질 때 오는 쾌감은 그래서 두 배였습니다.


취재가 촘촘합니다.
굿의 절차, 악사의 역할, 애동제자의 훈련, 작법·부적·살의 어휘가
서사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리듬은 절제되어 있고, 정조는 과장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풍경·사물의 감각(소리/공기/질감)으로 복선을 심는 솜씨가 뛰어납니다. “매콤한 양념”처럼 불현듯 미각으로 다가오는 비유가 시선을 오래 붙잡아 두었습니다.


한국 샤머니즘의 스펙트럼을 제대로 ‘서술’하면서도,
본격 미스터리의 공정성을 고집스럽게 지켜낸 보기 드문 결정체.
이성과 신앙, 제의와 범죄, 사주와 동선을 한 자리에 앉혀 끝까지 설득합니다. “귀신에게 총을 쏘듯” 허공을 치는 탐정의 순간조차,
결국은 이 세계의 언어를 배우는 통과의례였습니다.


고태라 작가는 한국적 오컬트와 본격 미스터리를 결합하는 독특한 장르 세계를 개척해온 소설가입니다. 그는 민속학, 무속 신앙, 풍수지리, 명리학 같은 전통적 지식을 세심하게 조사하고, 이를 본격 미스터리의 플롯에 접목시키며 한국형 미스터리의 가능성을 확장해 왔습니다.
《무녀촌》은 그간의 탐구를 집대성한 결정판으로, 미스터리 독자뿐만 아니라
민속 문화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도 유의미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무녀촌》을 깊이 읽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배경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국 무당은 크게 ‘세습무(세습으로 무업을 이어받는 무당)’와 ‘강신무(신내림을 받아 무업에 들어선 무당)’로 나뉩니다.
작품 속 갈등의 큰 축이 바로 이 두 유형의 대립입니다.
✔️무곡리는 음기가 과잉된 ‘음혈(陰穴)’ 지세로 묘사됩니다.
이는 사건의 배경이자 등장인물들의 신앙적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전통적인 탐정소설의 규칙(단서의 공정성, 합리적 추리의 가능성)이
무속이라는 세계와 맞닥뜨리며 도전받는 지점을 이해하면 재미가 배가 됩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본격 미스터리의 공리(公理)를 시험합니다.

✔️이성과 논리가 신앙과 주술의 세계에서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합리적 탐정의 추리가 미신적 맥락에서는 궤변이 되는 아이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끝내 사건을 해석하려 애쓰는가?

즉, 《무녀촌》은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라 장르 자체에 대한 질문이자,
한국적 오컬트 문화를 세계적인 미스터리 문법과 충돌시킨 실험적 작품입니다.


《무녀촌》은 민속학·무속·풍수를 촘촘히 엮어 본격 미스터리의 규칙을 시험대에 올립니다. 배경은 음양이 뒤집힌 마을 무곡리. 여기서 “탐정”은 더 이상 전지적 이성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는 귀신을 총으로 겨누는 사람처럼, 언어가 통하지 않는 세계에 입장한 관찰자가 됩니다. 그 낯섦이 이 소설의 장르적 전율을 만듭니다.


이 작품이 돋보이는 이유는 무속을 자극적 장식으로 소비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세습무와 강신무의 위계, 악사의 역할, 애동제자의 길, 굿의 구조와 장단, 집의 배치까지 서사의 논리로 흡수합니다.

📌“중앙의 본채는 세습무, 좌우의 날개채는 강신무의 생활 공간”이라는 설명은 단순한 분위기 연출을 넘어 인물 관계와 권력 지형을 읽는 열쇠가 됩니다.
굿판의 미세한 어긋남—📌“씻김굿이므로 청결해야 하는데 매콤한 양념이 배어”든 불협—은 이후 벌어지는 비극의 전조로 작용합니다.


작품 속 무당은 선입견을 깨는 직업윤리를 지닙니다.
📌“힘든 이를 웃겨주고… 슬픈 이의 손을 잡고 우는” 존재, “산 자와 죽은 자를 돌보는” 사람. 무당의 윤리는 돌봄이고, 탐정의 윤리는 설명입니다.
작가는 이 두 윤리를 정면 충돌시키면서, 설명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돌봄의 순간—예컨대 집단의 애도, 망자의 씻김—을 빚습니다. 그래서 읽는 이는 이 소설에서 범인을 밝히는 카타르시스만이 아니라, 비극을 견디는 의식 자체의 힘을 목격하게 됩니다.


본격 미스터리를 읽는 재미는 결국 단서의 배치와 회수입니다.
《무녀촌》은 그 기본기를 탄탄하게 지킵니다.
비정상적으로 ‘조용한’ 산의 공기(“벌레 울음소리 한 번 듣지 못했다”),
굿의 설계에서 새어 나오는 미세한 ‘기술’의 어긋남, 가옥 배치의 상징성,
죽음의 연쇄 앞에서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는 “범인의 유무” 같은 장면들은
모두 심증→물증으로 진화합니다.

단서가 풍경에 녹아 있고, 풍경이 결국 범인을 밀어냅니다. 이 점에서 작가의 문장은 절제되어 있고 '감각적 묘사=논리의 씨앗'이라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또한 미스터리 애호가의 금과옥조인 페어플레이를 의심하면서도 배반하지 않습니다. 독자에게 주어진 정보는 인물들과 공유됩니다. 다만 정보의 언어가 다릅니다. 무녀들의 발화는 점술, 풍수, 꿈, 기(氣)의 어휘로 제시되고, 떠돌이 학자 민도치는 과학적 인과와 상식으로 해석하려 합니다. 같은 사건이 서로 다른 언어로 기술되니, 독자는 두 층의 텍스트를 병행해 읽어야 합니다.
그 과정이 바로 《무녀촌》만의 지적 유희입니다.


무곡리는 양기를 갈아 마실 팔자의 소년 금가야가 태어남으로써 잠시 희망을 얻지만, 그 자체가 표적이 됩니다. 이 설정은 전형적인 ‘선택받은 아이’의 영웅담이 아닙니다. 오히려 집단이 아이에게 투사한 희망의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아이를 지키려는 굿과 금기, 폐쇄적인 질서와 권력의 균열, 믿음과 사리사욕이 뒤엉킨 장면들 속에서, 소설은 한국적 샤머니즘의 공동체 미학과 폭력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문장의 톤은 초반 멸균된 고요를 지나 중반 의식의 과열로 상승하고, 종장에 이르면 정화와 잔향으로 수렴합니다. 굿의 장단처럼 몰입과 이완이 교차하여 독서의 리듬을 스스로 만듭니다. 장르적으로는 ‘오컬트의 공포’와 ‘추리의 긴장’을 같은 박자로 묶어, '눈으로 읽는 북(鼓)'을 완성합니다.

🎈개인적으로 되짚어보는 하이라이트 요소

📌“자질만으로 걸물이 탄생한다면… 산 자와 죽은 자를 돌보는 것이 무당이다.”
- 무당을 ‘울음과 웃음의 기술자’로 설명하는 대목은, 이 직업을 윤리의 문제로 끌어올립니다. 이후의 모든 굿 장면을 읽는 기준점이 됩니다.
📌“씻김굿이므로… 그 기저에는 매콤한 양념이 배어있었다.”
— ‘매콤한 양념’이라는 세속의 욕망이 청결의 의식에 스며드는 순간, 사건의 동력이 켜집니다. 장르적 복선의 모범 사례.
📌“범인의 유무부터가 오리무중이라… 진정 귀신이 저지른 사달인지 혼란할 지경이었다.”
— “진정 귀신이 저지른 사달인지”라는 문장에 담긴 자책과 회의. 추리의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세계에서, 추리라는 행위가 왜 필요한지 역으로 증명합니다.


《무녀촌》은 본격 미스터리가 오컬트를 패배시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신, 서로의 법칙을 끝까지 밀어붙여 공존 가능한 해석의 지대를 만듭니다.
그래서 결말의 쾌감은 범인의 검거만이 아니라, 설명과 의식이 각자 감당해야 할 몫을 인정하는 데서 옵니다.

한국적 정서와 장르 실험이 보기 드물게 균형을 이룬 작품.
🌿“탐정의 수레바퀴는 지옥에서도 굴러간다” 는
출판사의 책소개가 허언이 아님을 이 책은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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