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수요일 토요일
페트라 펠리니 지음, 전은경 옮김 / 북파머스 / 202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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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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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출간과 동시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입니다. 🎈“올해 단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이 책”이라는 아마존 리뷰의 찬사처럼, 이 소설은 독자의 마음을 찌르듯 파고들어 오래도록 여운을 남깁니다.

죽음을 꿈꾸는 15세 소녀 린다와 기억을 잃어가는 86세 노인 후베르트.
서로 다른 끝에 서 있는 두 존재가 일주일에 세 번, 서로의 곁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린다는 삶을 끝내고 싶어 하는 소녀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후베르트를 돌보는 과정에서, 그녀는 오히려 자기 자신이 위로받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후베르트 역시 기억은 점점 사라지지만, 린다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여전히 존엄과 의미를 누립니다.

이 소설이 특별한 건, 돌봄이 일방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보살피는 자와 보살핌 받는 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두 사람은 서로를 구원합니다. 이 과정은 “삶이 주는 가장 조용한 축복”처럼 다가옵니다.

책을 덮으며, 저는 제 곁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의 우주를 존중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은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 돌봄과 구원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섬세하고 따뜻한 문장으로 독자를 감싼 소설입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서로에게 신비로운 의미가 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여전히 삶을 견디고,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갈 이유가 충분합니다.


페트라 펠리니는 오랫동안 간호사로 일하며, 병원에서 마주한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존엄에 대한 질문들을 마음속에 쌓아왔습니다.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은 그런 경험에서 태어난 그녀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불과 22페이지 원고로 오스트리아 문학상을 수상하고, 독일 13개 출판사가 판권 경쟁을 벌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작품의 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약한 존재를 보호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책은 죽음을 꿈꾸는 15세 소녀 린다,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 후베르트, 그리고 세상에 절망한 친구 케빈이라는 약하고 여린 존재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곁’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페트라 펠리니는 이 소설을 통해 ⁉️“돌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돌봄은 상대를 교정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며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린다는 후베르트를 억누르거나 교정하려 들지 않고, 그가 안전요원으로 활약했던 순간을 함께 기억하게 해줍니다. 그 태도 속에 ‘존엄을 지키는 돌봄’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의 힘을 보여줍니다.
린다는 후베르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 삶을 붙잡습니다. 약한 존재들이 서로를 살려냅니다.


🌿“기억은 지워져도, 마음은 남는다”


올해 단 한 권만 고르라면 왜 이 책일까.
읽는 내내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세 장면—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이 조용히 반복됩니다. 15살 소녀 린다, 치매를 앓는 86세 후베르트, 24시간 간병인 에바를 따라 작은 실내를 돌고, 때로는 수영장 소리의 녹음을 따라 바깥의 햇빛으로 나갑니다. 거창한 사건 대신 ‘곁에 머무는 시간’ 자체가 서사의 동력이 됩니다.


이 소설이 다른 돌봄 서사와 다른 지점은, 알려야 할 것과 지켜줘야 할 것의 경계선을 뚜렷하게 긋는 태도입니다. 에바가 📌“그래도 알아야지”라고 말할 때, 린다는 📌“그냥 편히 지내게 내버려둬요”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돌봄을 ‘진실 고지’의 영역으로 한정하지 않고, 상대의 존엄과 평안을 우선순위에 올려놓는 윤리. 이 한 줄에 소설의 방향이 응축돼 있습니다.


린다는 에바와 후베르트의 딸이 자기 기준의 선의로 후베르트를 판단한다고 지적합니다. 📌“모든 사람은 각각 하나의 우주다.” 그래서 린다는 가르치지 않고 ‘맞춰줍니다’. 후베르트가 과거의 시간 속에서 배회하면, 그 시간을 함께 살도록 돕습니다. 아이를 ‘현재로 끌어오라’고 다그치는 어른과 달리, 린다는 상대의 우주로 들어가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후베르트가 안마당과 하늘을 잃자 린다는 수영장의 소리를 녹음해 들려줍니다. “5월 20일 토요일 스포츠 풀장, 21일 아동용 풀장, 28일 수영 대회”를 고르는 장면은 다큐멘터리의 현장음처럼 생생합니다. 시각 대신 청각으로 불러오는 기억. 후베르트의 전성기가 소리의 몽타주로 귀환할 때, 읽는 이는 ‘기억의 소유’보다 기억의 감각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린다의 첫 독백. “열여덟 전에 작별하겠다”는 계획, 자신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선한 변화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냉소적 상상. 그런데 일주일에 세 번의 돌봄이 린다를 세상에 붙잡아 두는 중력이 됩니다. 후베르트의 녹음에 귀를 기울이고, 등 뒤를 쓸어주고, ‘그냥 맞다고 해주면 된다’는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는 사이, 린다는 살아 있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됩니다. 그 변화의 정점에서 울리는 문장—📌“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신비로운 의미를 지닌 존재다.” 이 소설의 테제입니다.


📌“인생은 보통 너무 시끄럽다.” 린다의 말처럼 소설에는 고함, 엔진, 개 짖음이 배경음처럼 흐릅니다. 그럼에도 린다는 작은 침묵의 방을 만들 줄 압니다. 후베르트의 양팔이 무릎에 놓이고, 햇빛이 스며들고, 린다의 손이 그의 등에 올려지는 장면은 감정의 과잉 없이 최대의 다정을 완성합니다. 이 절제된 다정이 작품의 미학입니다.


후반부의 상실은 남용된 눈물 대신 관계가 남긴 손의 감각을 보여줍니다. 린다는
📌“죽음은 힘들지 않아야 해요. 사는 게 이미 충분히 힘드니까요”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책은 ‘슬픔의 크기’를 키우지 않고, 슬픔을 견디는 방식을 가르쳐줍니다.
그 방식은 놀랍도록 단순합니다—함께 같은 시간을 산다.


간호사로 일한 작가의 경력이 문장에 배어 있습니다. 임상적이되, 냉정하지 않습니다. 짧은 단위의 시퀀스가 월·수·토의 리듬으로 겹쳐져 돌봄의 루틴을 체감하게 합니다. 곳곳의 유머(“후베르트의 눈썹 위에 담배를 올려놓자”는 상상)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가 아니라 ‘가볍게 할 수 있게’ 만듭니다.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은 한 편의 잔잔하고도 눈부신 영화 같았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향하는 노인과, 삶의 시작점에서 좌절한 소녀가 만나 서로를 살려냅니다. 특별한 사건 없이도, 돌봄의 반복 속에서 서로의 세계가 조금씩 달라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책을 덮고 나면 독자는 묻게 됩니다.
⁉️“나는 누구의 곁이 되어주고 있는가? 그리고 내 곁을 지켜주는 이는 누구인가?”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신비로운 의미가 된다”는 문장을 삶 속에서 보여주는 소설이었습니다. 인간이란 결국 서로의 곁을 내어주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소녀와 노인의 만남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일깨워줍니다.

기억이 사라져도, 함께 산 시간은 몸의 기억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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