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은 종말 ㅣ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3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4년 6월
평점 :
정보라의 "작은 종말"은 현대 한국 문학에서 드문 강렬한 문제의식과 독특한 상상력을 담고 있습니다. 이 소설집은 2020년부터 2023년 겨울까지 발표된 열 편의 단편을 모은 것으로, 작가의 최신 작품들을 통해 독자들은 정보라의 현재와 그녀의 문학적 세계를 온전히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인물들은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각자의 고통과 투쟁을 이어갑니다. 비수술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비정규직 사서, 피해 생존자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현실과 부딪칩니다.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밀도 있게 드러냅니다.
'지향'에서는 무성애자인 주인공이 동지 강의 죽음을 회고합니다. 강과 주인공은 같은 지향을 가진 사람들로, 함께 데모를 하며 평등을 지향하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강의 죽음은 주인공에게 큰 상실감을 안기지만, 강이 지향했던 세상을 이어가겠다는 결심을 다지게 만듭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개인의 상실이 사회적 운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무성애자인 주인공의 섬세한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성적 끌림과 감정적 유대가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는 성애적 끌림의 부재가 감정의 부재가 아님을 명확히 하며, 무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오해를 불식시킵니다.
'무르무란'에서는 사냥을 통해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에서의 갈등을 다룹니다. 검은깃털의 도끼로 사슴을 쓰러뜨리고 뿔을 가지겠다고 주장하는 흙발굽, 그리고 이를 중재하는 큰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전통 사회의 갈등과 지혜를 탐구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권력과 지혜의 문제를 상기시킵니다.
사냥과 예술이 어떻게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전해지는 지혜와 문화가 어떻게 다음 세대에 이어지는지를 탐구합니다. 이는 전통 사회의 예술과 현대 사회의 예술이 가지는 본질적인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개벽'은 평평한 지구를 창조한 외계인의 이야기와 함께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다룹니다.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벌을 내린다는 설정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음모론과 비이성적 믿음을 비판적으로 조명합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현대 사회의 비합리성과 이에 대한 경고를 강력하게 전달합니다.
현대 사회의 비합리성과 음모론을 다루며, 이를 통해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위태로운지를 경고합니다. 작가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왜 우리가 도망쳐야 해?" 이는 단순한 물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작은 종말"은 정보라 작가의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유별난 상상력이 결합된 작품으로,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탁월하게 묘사합니다. 이 소설집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인물들의 고통과 투쟁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며,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정보라의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의 사회와 개인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현대 한국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과, 정보라가 그려내는 보랏빛 유토피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