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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4월
평점 :
배명훈의 "청혼"은 전통적인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의외의 전개를 보여주는 SF소설입니다.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사랑과 전쟁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독특하게 접근하며, 인간의 감정과 우주 과학의 광활함을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소설은 우주 군인인 '나'가 지구에 있는 연인 '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서신들을 통해 우주와 지구라는 극한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이러한 설정은 독자에게 공간적 거리가 물리적으로 사랑을 막을 수 없음을 일깨워주는 한편, 사랑하는 이와의 소통이 얼마나 깊은 감정적 교류를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편지 속에서 '나'는 17분 44초라는 시간을 언급하며, 이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메시지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이는 물리적인 시간이 사랑하는 이들 사이의 심리적인 거리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며, 이러한 시간 지연이 갖는 의미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사랑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닿기까지 기다림의 무게와 불확실성이 느껴지며, 이는 인간관계의 취약성과 간극을 잘 드러냅니다.
또한, 배명훈은 천체물리학과 군사학을 접목시킨 복잡한 우주 전쟁의 묘사를 통해 이야기에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궤도연합군과 외계 함대 간의 전투는 소설의 SF적 요소를 강조하면서도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전쟁의 잔혹함과 이별의 슬픔이 교차하는 가운데, 사랑의 힘과 희생이 어떻게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지를 보여줍니다.
작품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작품이 개별 인물보다는 전체적인 이야기와 그 배경, 그리고 그것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중점을 둔다는 점을 나타냅니다.
또한, 작품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의 관계와 열망에 대한 깊은 사유를 제공하며, 독자에게 여러 가지 질문과 생각을 던져줍니다. 작품을 통해 우주와 인간, 그리고 그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어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을 것입니다.
작품은 우주 전쟁의 역동성과 스릴을 담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주인공의 미지의 적과의 전투뿐만 아니라, 그의 지구에 있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갈등도 병행하여 묘사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이중성은 작품에 깊이와 풍부함을 더해주며,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또한, 책의 중반 이후 적의 정체에 대한 힌트가 등장하지만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부분은 작품에 더 깊은 미스터리와 긴장감을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마지막 편지에서 '나'가 '너의 별이 되어줄게'라고 말하는 부분은 특히 감동적입니다. 이는 물리적인 존재로서는 불가능하더라도, 정신적인 유대감과 사랑의 힘으로는 언제나 상대방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의지를 표현합니다. 비록 신체적으로는 고통스러운 이별을 맞이하게 되지만, 영혼의 연결고리는 우주의 어떤 힘도 끊을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처럼 "청혼"은 우주라는 광대한 배경 속에서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을 탐구하며, 사랑과 이별, 그리고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물음을 던집니다.
배명훈은 기존의 로맨스와 SF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 내면의 심연과 우주 공간의 무한함을 연결하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문학적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작가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사랑과 이별, 인간과 우주를 관통하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그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