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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예수의 언어 - 영원불멸의 고전에서 길어올린 삶의 지혜와 진리의 가르침
김학철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초역이란? 원문에서 피룡한 부분만을 뽑아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김학철 저자는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신약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기독교 교양을 학문의 주제로 삼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그가 이번에 저술한 <초역 예수의 언어>는 성경 그중에서도 신약성경을 기반으로 하여 '예수의 말'을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스타일로 옮기고 있다.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사회, 문화적 맥락을 감안하여 문자를 넘어선 과감한 번역을 할 수 있는 초역. 그의 지인들은 그가 쓴 글을 보고 유대인들의 '미드라쉬'와 비슷하다고 평한다.
성서주석방법인 미드라쉬는 현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성서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큐티인가 싶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급하게 읽지 않기를 당부한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천천히 읽어보았다..)
하루에 하나씩만 읽으며 성찰의 씨앗으로 삼으라고 한다. .(점점 더 큐티 느낌인데..)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복음서 속의 '예수의 말씀'을 세 가지 주제로 나누었다.
마음고쳐먹기, 생각 다시하기, 인생 새로보기..
결국 세 가지 주제모두 현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생각해보고 행동하길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책을 보는 이유가 이렇지 않을까!
책의 문장을 통해 지금 이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고자 하는 마음이 투영되어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 사실 이 책은 어려울 수 있다.
한 예로, 마태복음 4:4절을 보자.
성경 구절은 이러하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된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것을 초역한다면 어떻게 될까?
"먹고사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지만 "물질적 필요가 채워졌으니 이제 더 필요한 것이 없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말은 인간을 낮춰보려고 하는 악마의 입에서 나오지요.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 참다운 삶을 알려주는 진리를 꼭 먹어야 하는 밥처럼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
문장의 길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딘가 미묘하게 다르다고 느껴진다.
참다운 삶을 알려주는 진리를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이라고 표현하는 데 초역은 이를 다르게 이야기한다.
작위적 해설이라고도 볼 수 없다. 다만 신앙인이 아닌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게, 조금 더 인생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난 반크리스쳔에 가깝다.
무종교인이긴 하지만 크리스천에 대한 반감이 있다.
아마도 내가 배교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때는 믿었으나 지금은 믿지 않는 상태..
그래서 사실 <초역 예수의 언어>란 책을 받았을때.. 아 괜히 서평단 승낙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진짜 궁금했다.
분명 신앙을 넘어 '4대 성인'의 한 사람인데 그러한 분의 말씀을 꼭 신앙적 메시지로만 받아들여야 하는가 말이다.
부처의 말씀은 꼭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많은 구절들이 인용되고, 삶의 중요한 메시지로 소개되기도 한다.
한때 "초역 부처의 말"이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런데 왜 "예수의 말"은 종교라는 두터운 벽에 가려져 있는지..비종교인들은 다가가기 어려운지..
책 <초역 예수의 언어>는 이러한 벽을 허물 수 있는 아주 적절한 책이다.
삶에서 만나게 될 여러 어려움과 고난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들을 소개하면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이야기한다.
이야기 한편을 하나더 소개해본다. 누가복음 10장 29-37편의 긴 글이다. 이를 저자는 짧은 문장으로 초역한다.
29절.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절.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절.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절.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절.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절.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절.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법률가 그대는 내게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길이 무엇인지 나를 시험하듯 묻고는, 그대 스스로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답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내게 '나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정말 그것이 알고 싶은가요? 아니면 그저 '이웃' 개념을 두고 논쟁하고 싶은 것인가요? 필요하면 논쟁을 해야겠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웃'이 누구인지 말하기 이전에 이웃을 향한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얼마나 초역이 되었는가 느껴지지 않는가?
난 성경은 별로지만 '예수'라는 사람이 궁금해 하는 분
성경은 많이 읽었고, 예수님의 메시지를 좀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어 하는 분
성경을 '삶'에도 적용하여 살고 싶어 하는 분
이런 분들에게 천천히 이 책 <초역 예수의 언어>를 읽어보길 권한다.